보통은 유쾌한 군대 만화를 그리시는 분이신데, 종종 슬픈 이야기도 그리시고, 오늘 보도연맹 상편이 블로그에 올라옴,
헌데 우동사리만 낀 중장년인지 이상한 커뮤글만 본 급식~학식인지는 몰라도 나대는 놈 하나가 거하게 물 흐리는데.
건군기에서 6.25전쟁 시기 제노사이드를 다루는 분이 등판하셔서 사료로 잘근잘근 씹어주니
출처 못 믿겠다, 어디 우리 민족끼리 같은 곳에서 퍼왔냐며 힐난하다가
주한미국 대사관 기록 등에서 발췌한 자료라고 밝히자(사실 이미 글에 문서명과 파일번호까지 친절하게 써 있음)
EX)
문서 출처: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주한미군 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준장의 서한철 중 37964 파일.
문서 내용:1.보고서 작성자-국립 경찰국 보안과 백한종 경감, 동 이구락 경위
2.장소-경북 문경군 산북면 석봉리 석달 부락.
3.관련 부대-예천과 점촌에서 온 3사단 25연대 2대대 7중대 2소대 및 3소대의 한국군.
4.세부 조사 사항-이 마을에는 23가구에 주민 1백39명이 살고 있었는데, 학살 당시에는 방문객 5명(남자 1, 여자 5)을 더해 모두 1백44명(남자 75, 여자 69)이 있었다. 7중대장은 유응철 대위(28)이다. 7중대 1소대는 문경에 주둔하고 있으며 2소대는 점촌에, 3소대는 예천에 주둔하고 있었다. 석달 마을을 공격한 부대는 2소대와 3소대이다. 2소대 지휘관은 안택효 중사(28)이고, 그의 소대에는 32명의 병사가 있었다. 3소대 지휘관은 유진규 소위(23)로서 그의 휘하에는 35명의 병사가 있었다. 이들은 M1소총·유탄 발사기·수류탄·총검으로 주민을 학살했다. 학살은 49년 12월24일 13:00시부터 14:00시까지 이루어졌다. 공격하는 와중에 가옥 23채와 내부의 모든 가구가 불탔으며 1백44명 중 민간인 남자 43명과 여자 43명이 살해되었고, 민간인 남자 5명과 여자 7명이 다쳤다. 문경경찰서 정보과에서 파견된 형사 황영훈은 7중대장과 함께 있었는데, 소대 지휘관이 중대장에게 수상한 마을을 공격했다고 보고하는 것을 들었으며, 이 보고를 받고 중대장이 소대 지휘관에게 매우 화를 냈다고 말했다. 황형사는 문경경찰서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고, 다음날 한국 국립 경찰은 현장에 나가 사진을 찍은 뒤 시체들을 가매장했다. 그때까지 다친 여자 3명과 어린이 2명이 시체더미에 생존해 있었다. 경찰은 부상자들을 김천도립병원과 점촌병원으로 후송했다. 중대장은 자신이 학살 명령을 내리지 않았고, 단지 2개 소대에 12월24일까지 정찰 임무만 마친 뒤 17:00시에서 18:00시 사이에 귀대하라고 명령했다고 말했다. 이상의 조사 내용은 군대를 현장으로 인도했던 민간인 2명과 부상자들, 황형사의 증언을 토대로 했다.
말문이 막히자 욕하면서 우리 집안도 4.3사건하고 지리산 학살 유가족이 있다. 그렇다고 옹호 못 하는 법 있냐고 씨부리자
"4,3의 대규모 학살시기랑 지리산 학살시기랑 시기가 동일합니다,
당시 제주도는 해안이 봉쇄당한 상태이기 때문에 육지로 토벌당국의 허가없이 갈수도 없던 상황입니다. 즉 제주도 학살과 지리산학살은 비슷한 시기에 대량학살이 발생했고 당시 남쪽지역은 같은 성씨인 집성촌이 많았기 때문에 같은 친족들의 희생이 비슷하게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4.3와 지리산 희생자라고 주장하는거 자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저 머저리는 박정희가 이승만을 극혐했다는 소리에 무슨 생전 처음 듣는 헛소리하냐며 무식 인증하는 건 덤.
이거 역시 1962년에 박정희가 낸 성명문으로 뚜드려 팸.
이번 편 댓글 불판 나올 거 같더니만 ㄷㄷ
건군전쟁 보고 팬티 젖은 놈인가 봄.
댓글 불판은 의외로 한두놈이 내고 나머지는 이승만 까기 바쁨 ㅋ 그나저나 저 대댓중에 한 사람이 님이군요
난 아예 없는데? 오히려 ㄴㄷ나 ㄱㅂㅁ님한테 오히려 신세지는 타입임
자국민 학살로 따지면 마오쩌둥하고 비벼야 할 놈이 이승만이구만
중공군애들 오기 전에 영국 노동당에서 전범 기소해야 한다 이야기도 나왔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