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살아계시던 당시에 파사익왕의 아내이신 말리까 왕비는
박색이었으나 지혜롭고 총명하여 부처님의 뛰어난 속가 제자이자
파사익왕이 가장 사랑하던 왕비였다.
그러나 그녀는 실상 신분이 천하디 천한 수드라라 본래에는 장자 집에서
이름도 없던 한낱 하녀였다.
말리까 왕비가 15살이던 해에 일이었다.
그녀는 집 뒷편의 언덕에서 시내에서 물을 담으면서 이렇게 한숨 쉬었다.
"나는 평생 이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녀로 살아야하는가?
나는 제발 자유를 누렸으면 좋겠구나."
그녀가 그렇게 한숨 짓는데 저멀리서 한 사문이 걸어오는게 보였다.
그분은 키가 크고 무척 잘생겼으며 환한 빛이 느껴졌다.
절로 경외심마저 든 하녀는 그 사문에 정성스럽게 가장 맑은 윗물을 떠서 드리며
"거룩하신 사문이시여.비록 천하나 저의 이 공양을 받아주시옵소서."
라고 무릎을 꿇고 바쳤다.
그러자 사문은 아무말 없이 빙그레 미소지으며 그녀가 준 물을 그대로 마시며 목을 축이고는
그대로 길을 걸어서 그곳을 떠났다.
물을 담은 후에 그녀가 항아리를 이고서 언덕을 내려가는데
옷은 매우 고급에 덩치가 큰 사내 한명이 숨을 헐떡이면서 피로한듯 앉아 있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면서 자신이 힘든거 같으시니 도와준다고 하고서는 다리를 주물러주고
물도 바치면서 시중을 들었다.
그녀가 하는것을 물끄러미 보던 사내가 물었다.
"넌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모릅니다."
"모르는데 어찌 이리 잘해주는 것이냐?"
"모르지만 너무나 피로해보이신듯 했습니다."
그말에 사내는 아무말이 없었는데 멀리서 열댓명의 건장한 무사들이 달려오더니 말했다.
"왕이시여.놓쳐서 죄송합니다.
그렇게 급하게 달려가실줄은 몰랐습니다."
그말을 듣고서야 그녀는 그가 국왕이며 파사익왕임을 알았다.
파사익왕은 사실 나라안에서도 유명한 왕으로 그는
성격이 포악하고 흉폭하여 신하들조차 벌벌떠는데다 힘도 장사여서
주변국들마저 두려워하는 왕이었다.
파사익왕은 소녀를 돌아보고는 말했다.
"네 덕에 잘 쉬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소원이 있느냐?뭐든 한가지는 들어주마."
왕이 말하자 소녀는 말했다.
"폐하.저는 자유를 갖고 싶습니다."
그말에 파사익왕이 갸우뚱 거리며 물었다.
"자유?금은보화나 권력이 아니라?"
"네에.저는 일개 하녀에 불과한 몸이옵니다.
그런 제가 감히 왕의 몸에 손을 데는것만으로도 죽을죄인줄은 아오나
감히 바란다면 자유를 얻는것.단지 그것 한가지 뿐이옵니다."
파사익왕은 그제서야 그녀가 하층 계급인 수드라임을 알았다.
그러고서는 그녀를 데리고 그녀의 주인집으로 가서 장자를 부르니 장자는
포악한 파사익왕이 왔다는 소리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저분은 어찌하여 날 찾는단 말인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
총명하여 말싸움 해도 질텐데 큰일이다.'
두려운 마음에 문을 여니 왕이 자기집 하녀를 데리고 서있으면서 말했다.
"그대가 이 아이의 주인이냐?"
"그렇습니다.왕이시여.저의 집 하녀가 틀림 없습니다."
"이 아이를 나에게 줘야겠다.불만 없겠지?"
그말에 장자는 왕이 단지 그 하녀를 원함을 알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옵니다.누가 감히 폐하의 뜻을 거스르겠습니까?"
그말에 흡족해진 파사익왕은 소녀를 데리고 말에 태워서 궁궐로 들어갔다.
비록 박색이었으나 그녀의 행동이나 말이 파사익왕으로 하여금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한편 파사익왕은 후궁이 500명이엇는데 후궁들이 왕이 사냥터에서
여자 한명을 데려온다 하자 질투심에 모두 몰려나와서 구경 했는데
소녀가 박색인것을 보고는 다들 코웃음 치고 말았다.
그러나 소녀는 무척 총명하여 왕이 필요한걸 잘알았고 파사익왕도 소녀 옆이 너무나 편안하였다.
그리하여 몇년 있다가 그녀를 정식 왕비로 삼으면서 이름을 말리까라고 지었다.
소녀를 처음 만난 언덕 이름을 따서 말리까라고 지었다고 한다.
젊은 왕비가 된 말리까는 그날 언덕에 만난 사문이 무척 궁금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기억력이 좋았으므로 자신이 만난 장소와
얼굴을 그려서 시녀들에게 그분을 찾으라 명하였고
보름정도 걸려서 찾자 시녀가 놀라며 말했다.
"왕비님.그분은 요즘 큰 이름을 날리시는 부처님이십니다."
그말에 말리까 왕비도 놀라고 말았다.
언덕에서 신세 한탄하다가 소원을 담아서 물공양 올린 그분이 부처님이었다니.
현명한 말리까 왕비는 파사익왕이 비록 왕이나 사문을 사적으로 자주 만나러 가면 싫어할것을 잘 알았기에
파사익왕에게 가기전에 고했다.
"왕이시여.세간에 부처님이 출현하셨다하니 국왕과 나라를 위하여
뵙고 왔으면 합니다."
그말에 파사익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부처님이 출현했다는 소식은 들었다.왕비가 알아서 하라."
허락을 받은 왕비는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온갖 진귀한 음식과 공양을 가지고는 찾아뵈었고
찾아가 뵈니 정말로 그때 자신이 공양을 올린 그분이었다.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린 말리까 왕비는 무릎을 꿇고서 인사를 드리며
세가지 질문을 하였다.
"세존이시여.질문을 드려도 되겠나이까?"
"해보거라.왕비여."
세존의 허락이 떨어지자 말리까 왕비는 그간 맺혀있던 응어리를 풀듯이 질문을 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같은 사람인데 누구는 용모가 아름답고 누구는 흉하옵니까?
어찌하여 같은 사람인데 누구는 부자로 살고 누구는 가난하옵니까?
어찌하여 같은 사람인데 누구는 귀한 대접을 받고 누구는 학대와 천대를 받나이까?"
그말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답하셨다.
"화를 자주내는 이는 다음생에 외모가 흉하나
화를 안내는 이는 용모가 아름다워진다.
전생에 인색하여 사문이나 가난한이들에게 베풀지 않은자는 가난하나
인색하지 않아서 사문이나 가난한 이들에게 콩 한쪽도 베푼 이들은 이번생에 부자로 살며
남을 시기질투하여 모질게 대하거나 한 이들은 천대받거나 학대 받지만
남을 부러워할지언정 같이 성공을 기뻐한 이들은 반대로 귀한 대접을 받느니라.
말리까 왕비여.
모든것은 스스로가 지은 인과응보이니라."
그말에 말리까 왕비는 한번에 환희심이 일어서 부처님께 경배하였고 부처님께서 법문을 설하여
말리까 왕비는 그것을 자신이 쉽게 풀어서 파사익왕에게 전해주었다고 한다.
말리까 왕비는 심성이 곱고 착하여 지혜롭기까지해서 당시 많은 백성과 신하들에게 지지를 받을뿐만 아니라
백성들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전생에 무슨짓을 한건가
나보다는 상황이 나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