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후한 선주(유비)가 촉의 왕으로 있을 적, 공명(제갈량)이 상국이 되어서, 비록 백성이 적었지만 근검으로 백성을 부유케 했으며, 비록 병사가 적어도 절제로서 강하게 단련하고, 도덕을 성지로 삼고 예의를 방패로 삼았기에 오, 위가 보기에 촉은 탄환과 같은 작은 땅이었음에도 촉과 정립한 데에 충분히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물며 조선은 원래 시서의 나라이자 예의의 나라로, 존군하고 청상하여 윗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의리가 있음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昔後漢先主之王蜀也, 孔明爲相國, 雖小民以勤儉富民, 雖寡兵以節制强, 道德爲城池 禮義為干櫓, 吳·魏視蜀不過彈丸之地, 而與蜀鼎足者良有以也. 況朝鮮素稱詩書之國, 禮義之邦, 尊君親上, 死長之義也, 知之熟矣.
사대문궤 권12, 군사교관 천총 진양기 유시
물론 선조에게 올리는 유시였으므로 최대한 예를 갖춘 유시문이긴 함.
이 이후 이어지는 유시문에서 진양기가 공명과 비슷한 포지션으로 본 건 이조판서 이덕형.
이덕형....그럴 만 하네
요게 왜란 전인감요? 왜란 중이나 이후면 약간 돌려까는 느낌도..? 막줄은 알아서 잘 보여라ㅇㅇ하는 거 같기도 해서
1619년 찬집청에서 1592년부터 1608년 사이 명과의 외교 문서를 모아 편찬한 관찬서라고 하니 왜란 시작~이후
1595년. 돌려깔려는 의도는 없음. 명의 책봉국으로서 훌륭하고 군주 훌륭하고 신하들과 선비들도 군자라고 칭찬하는 내용. 아무리 상국의 장수라 할지라도 도독이나 총병급도 아니고 일개 천총이 그런 의도를 가졌다간 앞 날이 암담함.
그렇구나! 천총이면 일개 장교였군 선조라서 묘하게 얘는 까일만했네 싶다 생각해쓰요
1595년이면 휴전기간이어가지고 뭐 장수가 내려와서 나라 개판이네 할 껀덕지는 없었을듯
사서->시서 로 고쳐주세양
오 원문을 읽은 사람이 있을 줄이야
이전에, 후한의 선주(유비)가 촉땅에서 왕이었을 때, (제갈)공명이 상국이 되었으니, 비록 백성은 적지만 근검함으로 백성들을 부유하게 했고, 비록 병사는 적었지만 절제로 강하게 하여, 도와 덕을 성과 해자로 삼고, 예와 의를 방패로 삼았습니다. 오나라와 위나라가 촉나라를 보기에 탄환과 같은 땅이었으나 촉과 솥발처럼 (정립되어) 있었던 것은 실로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조선은 평소에 시와 서의 나라이자 예의의 나라로 불리며 임금을 존숭하고 윗사람을 친히 여기며 장자(윗사람)을 위해 죽는 의를 (그 나라 사람들이)안지가 오래되었습니다./익숙히 알고 있습니다. 대강 이렇게 직역될것 같긴 한데 모르겠당. 나도 조금 의역한게 있고 결정하지 못하겠는 것도 있어서... 대강 뒤에는 '그러니 서렌치지 말고 빡겜하슈' 같은 내용이 나오겠네예 재밌네양
殫->彈 탈초나 텍스트화 하면서 잘못 입력했나보네 .
이걸 찾아내다니 대단한데
그리고 "雖寡兵以節制强"의 强 뒤에 글자가 빠진 거 없는지 확인해보시구려. 앞문장과 대구를 이루려면 글자수가 같아야 함.
이 부분에 대해서는 원문에 딱히 그런 것 없음.
텍스트화 하면서 다시 읽어보기도 했고. 다만 탄환의 경우에는 그냥 슥 훑어보고 지나가 버려서 놓침.
왠만하면 같게 하는데 아닐 때는 꼭 그러지 않기도 하고(이건 특히 산문이라...) 저 구절이 제갈무후묘기에서 긁어온거면 원문도 以武侯之才, 知已付託土, 雖狹國以勤儉富民, 雖寡兵以節制强。 이라 빠진건 안보이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