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4년 이괄의 난 당시 파주 방어사 이중로는 마탄 전투에서 이괄과 한명련을 상대로 항전하다가 군이 패하자 스스로 자결했다.
이중로, 그리고 그와 함께 싸웠던 풍천부사 박영신은 이괄 휘하에서 종군하던 이수백에 의해 참수당한 뒤 그 목이 함부로 다루어 졌다.
이수백은 반란군이 승승장구할 당시에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옛 전우들을 죽이는데 가차 없었으나
반란의 패색이 짙어지자 역으로 이괄과 한명련을 배신하여 그 목을 조정에 바쳐 목숨을 도모했다.
덕분에 이수백은 반란군의 심복으로 활동하면서 조선의 관군 장수들을 다수 죽이거나 시신을 훼손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배 선에서 끝났고,
그마저도 1631년에 석방되어 잘 먹고 잘 살았다.
(사실 본래는 유배라는 처벌 역시도 신료들의 강력한 주장에 의한 바였으며 본래는 되려 논상의 대상으로까지 거론되었다.)
개빡친 이중로의 두 아들, 이문웅과 이문위, 그리고 박영신의 세 아들, 박지병, 박지원, 박지한. 다섯 명은
함께 이수백을 죽이기로 맹세했고 때를 기다리다 1634년 그를 죽였다.
이중로가 전사한 지 딱 10여년이 되는 해였다. (당시 셈법으로는 11년)
그리고 이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수백의 목을 바치며 자신들이 사사로이 복수를 행하였으니 처벌해달라고 상소하였다.
사사로운 복수이자 살인이었기에 강하게 처벌되는 것이 국법이었고 실제로 당시 국왕이었던 인조 역시도
'이수백의 죄와는 별개로 이런 사사로운 복수를 허용하고 용서한다면 어찌 적도가 귀순을 하겠으며 또한 감히 적도의 수괴를 죽여 항복할 생각을 하겠느냐'며
이수백은 이미 용서를 받은 만큼 그를 국법이 아닌 사적제재로 죽인 것은 처벌해 마땅하니 사사로운 정에 휘둘리지 말고 처분을 논하라'는 논지로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복수를 행한 이들이 모두 진무공신이자 충신의 아들들이었던데다 그 정상이 참작할 만 하고, 모두 죄를 자복했다는 점에서
김류를 비롯하여 당시의 관료들이 모두 그들을 커버 쳐주었고
덕분에 이들 모두 유배라는 가벼운 선에서 처벌이 끝났으며, 1년 후에는 특별히 사면되었다. 특히 이문웅과 이문위는 추후 관직을 받아 일하니, 대대로 평가가 후하였다.
웹툰 칼부림에서는 이문웅과 이문위를 모티브로 하여 이중로의 아들이라는 설정으로 이문성, 이문수, 이문호 삼형제가 등장한다.
참고사료 : 인조실록, 승정원일기, 응천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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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나니 이중로, 박영신의 복수를 이룬 게 딱 10여년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보니 제목으로 '군자보구 십년불만'이 더 어울릴 것 같아서 제목 바꿈
일 저지르고 기꺼이 죄를 받겠다니까 지들도 나쁜거 아는 상태임 사적제재는 나쁘다는둥 할 필요가 없는 케이스
이중로와 박영신의 아들들이 공사 구분을 잘 하긴 했네.. 아버지에 대한 효를 지키면서 이 과정에서 어지러워진 질서가 용납되면 사회가 혼탁해지니 스스로 죄를 청해서 분란를 막은거면 처신을 잘 한듯.
이괄의 난 나비효과가 병자호란 아님?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서 조선군이 실패했던 원인의 파급효과중 하나로 지목할 수는 있지만 이괄의 난 그 자체가 병자호란의 발생을 단초한 근원이라는 것에는 솔직히 동의하는 사람이 적을 거임.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이중로와 박영신의 아들들이 공사 구분을 잘 하긴 했네.. 아버지에 대한 효를 지키면서 이 과정에서 어지러워진 질서가 용납되면 사회가 혼탁해지니 스스로 죄를 청해서 분란를 막은거면 처신을 잘 한듯.
일 저지르고 기꺼이 죄를 받겠다니까 지들도 나쁜거 아는 상태임 사적제재는 나쁘다는둥 할 필요가 없는 케이스
이괄의 난 나비효과가 병자호란 아님?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서 조선군이 실패했던 원인의 파급효과중 하나로 지목할 수는 있지만 이괄의 난 그 자체가 병자호란의 발생을 단초한 근원이라는 것에는 솔직히 동의하는 사람이 적을 거임.
ㄴㄴ 만주족이 성장하던거에 쪽■■가 동북아급 민폐를 끼치는 바람에(임진왜란)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ㄷ
와 진짜 고사성어에 딱 들어맞는 케이스 ㄷㄷ
현대 이전까지는 복수가 장려되는 사회였다면서? 부모 형제 친구가 당한걸 복수하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라는 식으로
이 일을 이후로 자동문이 되어버린 ^애국보수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