露と落ち 이슬로 떨어지고
露と消えにし 이슬로 사라지는
我が身かな 내 몸이련가
浪速のことは 나니와의 것들은
夢のまた夢 꿈 속의 꿈
여기서 '나니와'를 일반적으로 히데요시의 오사카 성을 염두에 두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음. 오늘날 일본에서도 오사카의 행정구역이나 오사카를 부르는 다른 표현으로 남아 있고.
그래서 김훈 작가는 칼의 노래에서 아예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니. 오사카의 영화는 꿈 속의 꿈이로다"라고 의역하기도 했고.(개인적으로는 이 의역도 매우 훌륭한 의역이라고 생각함)
근데 우리나라도 신라의 향가나 고려-조선시대의 시조, 여러 고전시가도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 만큼 일본도 마찬가지라서 히데요시의 이 사세구에서 '나니와'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이 있는 편.
나니와를 지명이 아니라 그냥 '모든 것', '그 어느 것'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어서.
어쩌면 일본어 특유의 동음이의어를 이용해서 지명이라는 의미와 '어느 것'이라는 의미를 둘 다 담은 것일 수도 있고.
그래서 단순히 '오사카의 부귀영화'일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은 꿈 속의 꿈'이라고 해석해도 된다는 것. 인생무상의 의미로.
여담으로 히데요시가 사망한 곳은 오사카가 아니라 교토 근교의 후시미 성(伏見城)이라는 곳.
일본사를 교과 과정에서 배울 때 '전국시대 후기'를 흔히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라고 많이 표기하는데(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임), 여기서 가리키는 '모모야마'가 바로 후시미 성이 있던 부지를 일컫는 지명.
문제는 이 모모야마라는 이름은 히데요시가 살아 있을 때 붙은 이름이 아니라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붙은 이름이라서, 당시와는 맞지 않는 표현이라는 지적이 있지.
그래서 이 표현을 대체하는 표현으로 오다(織田)-도요토미(豊臣)시대라는 의미를 담아서 두 성씨의 앞자를 딴 '쇼쿠호 시대(織豊時代)'라는 표현도 있고, 일본에서는 비교적 널리 퍼진 표현임. 나도 이 표현이 좀더 정확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히데요시의 재림.
래서 단순히 '오사카의 부귀영화'일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은 꿈 속의 꿈'이라고 해석해도 된다는 것. 인생무상의 의미로.....중의적으로 썼다고 보이는데.. 풍신수길 저 쉑은 한반도에 해악을 끼쳐놓고 아아아 인생무상 이ㅈㄹ을 해대니 .지금까지 한반도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가 없지. 진짜 저승으로 빤스런한 작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님.
저런 게 원래 저 시대 일본애들 특징임 ㅋ 사세구라는 게 다 인생무상이나 공(空)사상을 드러내는 거라서. 그래서 후대의 윤색이나 위작설이 도는 사세구도 적지 않음.
난 그대로 직전신장의 인생오십년이 제일 멋지긴 하더라 마무리는 혼노지 불꽃쇼
사실 주군피셜 '대머리쥐'라고도 불렸기 때문에 원숭이 대신에 설치류를 넣어도 된다... 친칠라처럼 ㅇㅇ
사색구에 박을만큼의 애착이 없었을것같기도함 오사카란 지역에
개인적으론 716을 히데요시의 재림이라고 생각함 ㅋㅋㅋㅋ 고향도 그렇고 별명도 쥐인것도 그렇고
알필요있어?
히데요시의 재림.
사실 주군피셜 '대머리쥐'라고도 불렸기 때문에 원숭이 대신에 설치류를 넣어도 된다... 친칠라처럼 ㅇㅇ
마삼중공업
개인적으론 716을 히데요시의 재림이라고 생각함 ㅋㅋㅋㅋ 고향도 그렇고 별명도 쥐인것도 그렇고
래서 단순히 '오사카의 부귀영화'일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은 꿈 속의 꿈'이라고 해석해도 된다는 것. 인생무상의 의미로.....중의적으로 썼다고 보이는데.. 풍신수길 저 쉑은 한반도에 해악을 끼쳐놓고 아아아 인생무상 이ㅈㄹ을 해대니 .지금까지 한반도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가 없지. 진짜 저승으로 빤스런한 작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님.
저런 게 원래 저 시대 일본애들 특징임 ㅋ 사세구라는 게 다 인생무상이나 공(空)사상을 드러내는 거라서. 그래서 후대의 윤색이나 위작설이 도는 사세구도 적지 않음.
존나 이기적인 새끼임. 지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돈과 권력에 미친. 지 자식 하나 못남기고 영원할 것 같은 권력도 죽음을 막지 못하니 지는 꿈 같았겠지 시불. 전쟁은 한반도에서 벌어졌으니. 그래서 약하면 안됨 강해야 됨.
진짜 하는짓이 완전 찢 그자체라니까 지 살려고 몇명을 갈아마신거여 진짜/.//
조선이나 명 뿐만 아니라 당연히 자국의 백성들에게도 좋은 지도자라 할 수 없기도 했고. 임진왜란의 원인이야 여러 해석이 있지만 여러 원인들 중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개인의 야욕'이라는 점은 빼 놓을 수 없는 거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절명시(사세구)의 다양한 해석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절명시 사세구는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일반적으로 '나니와'를 히데요시의 오사카 성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 하지만 일본에서는 '나니와'를 지명이 아니라 '모든 것', '그 어느 것'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어, 단순히 '오사카의 부귀영화'일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은 꿈 속의 꿈'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 히데요시가 사망한 곳은 오사카가 아니라 교토 근교의 후시미 성이며,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라는 표현은 히데요시가 살아 있을 때 붙은 이름이 아니라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붙은 이름이라는 지적이 있다.
사색구에 박을만큼의 애착이 없었을것같기도함 오사카란 지역에
자기 성을 후손들이 공구리로 처바를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그 이전에 저런 거 지을 만한 문학적 소양이 있었을까...?하는 의심도 해 본적 있음. 뭐 말년에는 나름대로 승려나 귀족들과도 교류했으니 그때 소위 교양이라는 걸 배웠던 걸로 보이지만.
그런 것 같음. 본인 자식도 없어다고 봐야 할 것 같고. 본인이 아들로 인정한 히데요리가 자기를 닮지 않고 부인의 애인을 닮았으니.
난 그대로 직전신장의 인생오십년이 제일 멋지긴 하더라 마무리는 혼노지 불꽃쇼
그건 노부나가의 '애창곡(?)'이지 노부나가가 직접 지은 건 아님...ㅎㅎ 근데 그 가사대로 살다 가긴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