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올해도 3월이다.
주말에 잠깐 다녀오는 여행이기에 약간은 비싼 항공권 가격을 감안하고 새벽에 출발해서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으로 잡아봤다.
전날 밤에 늦게 들어온 덕에 조금 늦잠을 자긴 했지만,
맡길 짐도 없고 국내선이라 그런지 공항에 30분 전에만 도착해도 문제없이 탑승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 비행의 특권은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북에서 남쪽으로 가는 길이니 왼쪽 줄에 앉으면 일출을 볼 수 있겠다 싶어 자리를 잡았는데,
마침 날이 좋아 지평선 너머로 뜨는 해가 확실히 눈에 들어온다.
멀리 제주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비행기 안에서 찍는 사진은 유리창에 비치는 반사광에, 창문의 먼지와 얼룩까지 여러모로 사진을 찍기 좋은 조건이 아니지만
확실히 평소에 볼 수 없는 풍경을 보여주는지라 끊기가 힘들다.
렌터카 회사에서 차를 빌린 뒤 세화해변까지 쭉 달려왔다.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하늘이 쾌청하지는 않다. 그래도 육지에서 미세먼지로 고생하던걸 생각하면 숨 안 막히는 게 어딘가 싶다.
바다를 보다가 멀리서 차를 봤는데 차 하부에 뭔가 달려 있어서 발로 건드려 보니 언더커버가 살짝 들려 있다.
다행히 주행 중에 바닥에 닿지는 않는 모양인데 영 거슬려 렌터카 회사에 연락을 해 둔다.
차 빌리면서 하부까지는 확인을 안 해왔는데 아무래도 습관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아침부터 서둘러 움직이고 운전대를 잡았더니 아무래도 조금 피곤해서 커피를 한 잔 하고 싶다.
시간이 너무 일러서 30분은 기다려야 열 것 같은데, 딱히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바다나 구경하러 다시 해변으로 간다.
근처의 길을 따라 걷던 중 등산객으로 보이는 부부가 라면이 정말 맛있다고 얘기하는 걸 들어버렸다.
도대체 무슨 라면이길래 이렇게 극찬일까 싶어 근처를 둘러보는데 근처에 라면을 팔 만한 가게가 여기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째 가게가 문을 닫은 것 같아 근처를 돌아보는데 옆에 큰 건물로 자리를 옮긴 모양이다.
앞에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앉으니 해물 생각이 간절해져 전복해물라면을 한 그릇 시켜본다.
이렇게 호화로운 재료를 라면에 넣는게 어째 아깝기도 하지만, 어설픈 해물 짬뽕보단 이렇게 끓여 먹는 라면이 더 맛있는게 사실이다.
꽤 푸짐하게 들어간 해산물들을 발라내며 먹다 보니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음에도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워버렸다.
이 전에 다녀간 사람들이 말하는 정도로 어마어마한 맛은 아니지만 전날 술 한 잔 했으면 꽤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라면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시간이 꽤 지나서 조금 전의 카페로 왔다.
가게 앞에 길고양이가 서성이길래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인상 좋으신 주인분께서 들어와도 괜찮다 말해 주신다.
카페 이름이 들어간 메뉴인 ‘미엘 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단단하게 올라간 크림에 달짝지근한 맛의 커피가 속을 따스하게 데워주니, 이 정도면 아침에 끼니 대용으로 먹어도 괜찮을 것 같다.
잠도 깨고, 라면으로 짭짤했던 뒷맛도 개운하게 잡아줬다.
책이라도 읽으며 조금 쉬다 가도 좋을 것 같아 가져온 책을 꺼냈는데, 어째 영 재미가 없어 오래 앉아있기가 힘들다.
화장실에서 수돗물로 입을 헹군 뒤, 새로 책을 한 권 사기 위해 근처에 있는 서점을 찾아본다.
‘언제라도’ 라는 서점이 있다 해서 차를 몰고 왔는데 도저히 서점으로 보이지 않는 외관에 조금 당황했다.
오전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지 문이 닫혀 있어서 아쉽게도 구경은 못 할 것 같다.
어차피 길을 따라 섭지코지까지 돌아 내려갈 계획이기에 가는 길에 다른 서점이 없나 찾아본다.
이건 무슨 풀이기에 이렇게 가득 자랐는지, 작물인가 싶다 가도 어째 잡초처럼 자란 것 같고, 잡초 라기에는 묘하게 줄이 맞게 심어져 있다.
지미봉 근처에 있는 ‘소심한 책방’.
다행히 여기는 문이 열려 있다. 꽤 소문난 장소인지 벌써부터 사람들이 들락거린다.
아마 평소 같으면 아담하다고 표현하겠지만, 가게 이름 따라 소심하다고 말해보자.
소심한 크기의 서점이지만 그래도 둘러보다 보면 사서 읽고 싶은 책들이 여럿 있다.
예전에 한참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을 때,
‘해변의 카프카’를 못 읽은 게 마음에 걸려 그 책을 찾고 있었는데 ‘프란츠 카프카’의 ‘꿈’이 눈에 들어왔다.
서점에 없을 책도 아니니 신기할 것도 없지만, 마침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만나는 건 꽤 운명이 아닌가 싶어 냉큼 집어 들었다.
가게 뒤로 지미봉이 보인다.
원래는 올라갈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오후부터 비가 온다는 게 영 마음에 걸려
조금이라도 빨리 섭지코지로 가고 싶어 이번 제주행에서는 멀리서 눈으로만 보고 가야 할 것 같다.
서점 근처의 길이 협소해서 주차는 인근의 게스트하우스를 겸하는 카페에 했는데,
마침 차에서 마실 음료도 없고 주차비도 겸 해서 커피나 한 잔 주문해본다.
가게에 일회용 컵이 없는지 포장으로 주문을 하니 뭔가 열심히 찾기 시작하신다.
생각해보니 가방에 텀블러가 있어서 냉큼 드렸다. 이러려고 산 텀블러인데 하마터면 여행 내내 빈 통으로 들고 다닐 뻔했다.
길을 따라 섭지코지에 도착했다.
차를 몰며 보이는 풍경도 충분히 아름다웠는데,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으며 바다를 보니 그 풍경이 한층 더 눈에 찬다.
바위 틈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온 것 같은데, 깊이 때문이겠지만 유독 맑아 보인다.
생각보다 안쪽으로 길이 꽤 길게 나 있다. 바람은 삼다 중 하나 답게 꽤나 불지만 다행히 날이 그다지 춥지 않아 기분 좋게 느껴진다.
말을 타고 길을 둘러볼 수도 있는 모양이다.
멀리 보이던 교회 비슷한 저 건물이 계속 신경 쓰였는데 가까이 가 보니 이제는 영업을 안 하는 모양이다.
문을 걸어 놓고 흉물처럼 방치 하는 것 보다는 안에 의자만 놓더라도 사람 손길이 닿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가까이보다 멀리서 봐야 더 예쁜 장소가 되가는 것 같다.
저 끝까지는 굳이 가고 싶지 않았기에 이쯤에서 사진으로 담아본다.
바닷물의 색도 그렇고, 길의 풍경도 그렇고 예전에 다녀왔던 홋카이도의 슈코탄이 생각나는 풍경이다.
유채에 별 관심이 없어 피는 시기가 언제 인지도 몰랐는데 벌써 한 구석에 잔뜩 꽃이 펴 있다.
혼자 온 여행이지만 그래도 이런 곳에서 사진 한 장은 건지고 싶어 나도 핸드폰을 꺼내 본다.
계획에 없던 라면을 먹어서 시간이 조금 애매하지만, 그래도 점심시간이니 점심은 먹는다.
들어가는 입구에 특별히 추천하는 메뉴로 적혀 있던 ‘겡이죽’을 시켜본다.
바닷게를 겡이라고 한다는데 따로 게살이 씹히지는 않지만 구수하면서도 게 특유의 향이 물씬 풍기는 아주 맛있는 죽이다.
반찬으로 나온 미역도 맛있어서 두 그릇 정도 비운 것 같다.
죽을 절반 정도 먹고 나니 입맛이 돌기 시작한다. 뭐를 먹을까 했는데 메뉴에 해삼 회가 눈에 띈다.
아주머니가 오늘따라 해삼 물이 좋다고 호들갑을 떠셨는데, 나온 접시를 보니 허언이 아니다.
어째 혼자, 그것도 술도 없이 먹기에는 양이 좀 되는 것 같지만
해삼만 먹어 속이 허전할 때 겡이죽을 한 숟갈 떠 먹으며 합을 맞추니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한 끼가 된다.
회사 동료가 추천해준 오메기떡 가게로 가기 위해 길을 따라 조금 더 남쪽으로 왔다.
점심 양이 꽤 많긴 했는지 속이 더부룩하고 졸음까지 서서히 오는지라 빨리 커피를 마시고 싶어 진다.
어째 상호도 좀 다르고, 매장도 리모델링 중이라 하는 걸 봐서는 가게가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것 같다.
그나저나 졸릴 때 운전하기는 싫은데 카페도 없으니 막막하다.
마침 텀블러에 담아왔던 커피가 생각나 그걸로 목을 축이고 차에서 잠시 쉬다 움직이기로 한다.
숙소가 협제에 있기에 슬슬 제주시로 돌아간다.
천백고지의 습지를 한 번 가보고 싶어 약간 돌아가는 길을 감수하고 들러 봤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슬슬 빗방울이 굵어지기에 아무래도 습지 쪽을 걷는 건 무리일 것 같아 다시 차를 타고 제주시로 향한다.
시간이 조금 비어 버렸는데, 마침 가는 길에 비가 올 때 생각나는 카페가 하나 있어 그 곳을 목적지로 하고 출발한다.
소림정사 근처에 있는 ‘바람 카페’. 비 덕분에 젖은 풍경이 정말 잘 어울리는 장소다.
일년 전에 봤던 녀석과 무늬가 똑같아서 물어봤더니 아쉽게도 그 녀석은 다른 집에 갔다고 한다.
어째 자리가 조금 추운데, 저기가 제일 따뜻한 장소인 걸까?
일단 으슬으슬 하기도 하니 고대하던 커피를 한 잔 시키고, 책을 꺼내 본다.
주인분하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제주도도 미세먼지 덕분에 꽤나 홍역을 치른 모양이다.
예전 같지 않은 풍경, 날씨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커피를 다 마셔 버렸다. 아직 책장은 한 장도 못 넘겼는데…
그래도 책은 좀 읽고 싶어서 핫초코를 한 잔 더 시켜본다.
주인분은 다시 뜨개질을 하시고 나는 책을 읽던 중 갑자기 비가 쏟아지며 지붕을 힘껏 때린다.
카페 안의 음악 소리마저 묻힐 만큼 큰 빗소리에 다시 책장을 덮고 비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책 읽긴 그른 것 같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다른 손님도 들어오고, 밖도 슬슬 어두워지기에 짧은 휴식을 마치고 가게를 떠난다.
돌아가는 길에 렌터카 회사에 들러 차를 바꾸고 숙소에 도착했다.
오션뷰라고 써져 있긴 했지만 큰 기대는 안 했는데 해변과 비양도가 한 눈에 보이는 꽤나 좋은 풍경이다.
잠시 발도 좀 쉬고 짐도 풀고 쉬면서 저녁 먹을 장소를 찾아본다.
지금도 자주 가는 인천의 바에서 일하던 분이 제주도에 카페를 차렸다는 얘기를 듣고 그 곳으로 향했는데
네비게이션을 잘못 찍었는지 아무리 봐도 근처에 카페가 보이지 않는다.
비도 거세지고 굳이 내려서 찾아보고 싶지는 않았기에 다시 숙소로 돌아가며 식당을 찾아본다.
구글 지도를 켜니 마침 근처에 가고 싶던 식당인 ‘보영’이 있었다.
탕수육이 주력인 것 같지만 혼자서 탕수육 한 접시보단 라조육 한 접시가 더 쉽기에 라조육으로 주문을 해 본다.
물씬 풍기는 후추 향이 물릴 법도 한 양을 계속해서 먹을 수 있게 해준다.
요즘은 중식당에 가도 흔히 시키는 식사 메뉴에 군만두 조합보다는 이렇게 요리 메뉴 하나를 단품으로 시켜 먹는게 더 좋은 것 같다.
아니면 아예 만두만 두 접시를 먹던가.
숙소에 돌아오니 술 한 잔 생각이 나서 옥상에 있다는 루프탑의 바로 갔는데 알고 보니 본인이 술을 사 와서 먹는 구조였다.
책에 나오는 대로 만들어줘도 좋으니 상쾌한 칵테일 한 잔을 꼭 먹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다.
아쉬운 대로 일층의 카페에 가서 한라봉 에이드를 한 잔 사와 이걸로 하루를 마쳐 본다.
평소에 켜 놓는 알람 덕에 새벽에 한 번 일어나긴 했지만, 평소보다 세 시간은 더 자고 일어나니 몸이 너무도 가볍다.
밖의 풍경은 나무가 통째로 흔들리는 걸 보니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부는 모양이지만,
실내에서 보기에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날씨다.
비 오기 전의, 약간은 차고 습하고 평소보다 어두운, 그런 날씨.
어제 들어오며 사온 핫초코나 한 잔 하면서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여행지의 오전은 여유로워야 돌아가서 후회가 남지 않는 법이다.
창밖으로 같은 숙소에서 묵은 것 같은 세 명이 해변으로 머리를 휘날리며 가는데 여러 의미로 존경스럽다.
나는 그냥 안에서 봐야지…
어제 실패했던 카페로 다시 가보고자 체크아웃을 하고 차로 향하는데 아까 해변으로 가던 그 세명이 숙소 앞에서 난처한 듯 핸드폰을 보고 있다.
보아 하니 공항을 가야 하는데 택시가 오지 않아 곤란한 모양이다.
대학생 때 나도 여행가서 대중교통 덕에 고생했던 게 떠올라 어차피 제주시로 가니 태워주겠다 하니 선뜻 따라온다.
괜히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 싶어 일행 중 한 명한테 명함을 주고 공항에 일행을 내려준 뒤 다시 내 목적지로 향한다.
마침 운전하며 간식거리가 없었는데 공항에서 내리며 고맙다고 한라봉 크런치를 한 박스 건내준다.
제법 훈훈한 하루의 시작인지라 기분이 좋았지만, 아쉽게도 가고자 했던 카페는 오늘도 문이 닫혀 있다.
바람은 꽤 건장한 체격인 나도 정면으로 못 받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불고,
신창까지 내려오니 그나마 빗방울이라도 안 떨어져서 차에서 나올 수 있었다.
신창, 고산일과해안도로를 거쳐 모슬포에 들어왔다.
보말칼국수로 유명한 옥돔식당에 왔는데 남들보다 조금 빨리 온 덕분인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2인분 이상만 주문된다고 써져 있어서 예전에 포항에서 모리국수를 커플 테이블에 껴서 먹었던 슬픈 기억이 재현되나 싶었는데
사람이 많을 땐 혼자 오는 손님들 주문을 다른 테이블 주문과 같이 끓인 뒤 1인분만 내줄 수 있다고 한다.
미역국과는 또 다른 느낌의 맛.
요즘 집에서 오뚜기의 미역국 라면을 간간히 먹는데, 그 라면이 지향해야 할 맛이 바로 이 맛이 아닐까 싶다.
시원하고 고소한, 꼭 집에서 할머니가 끓여 주신 것 같은 미역국 국물을 먹다 보니 왠지 생일상에 앉은 느낌이다.
그런데 아침부터 국물로 배를 채우니 뭔가 허전하다. 바로 옆에 산방식당이 있다는 게 생각나 냉큼 달려가서 수육을 한 접시 시킨다.
고기를 먹으면 왠만한 고민은 해결된다.
그리고 고기는 면하고 먹으면 더 맛있으니까 비빔밀면도 시켜본다.
지난번에 멋 모르고 시켰다가 진지하게 양에 괴로웠던 기억이 나서 이번에는 소 사이즈로 시킨다.
수육 한 점에, 밀면 한 젓가락. 속이 좀 차면 육수 한 모금. 완벽하다.
가는 길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운전하기에 위험하다 싶어 길가의 카페에서 잠시 쉬기로 한다.
신기하게 실내로 들어오면 비가 잦아들고, 차 시동만 걸면 비가 쏟아진다.
오늘은 실내 활동에 집중하는게 낫겠다 싶어 미술관을 찾던 중 왈종 미술관을 알게 되어 이곳으로 향하기로 한다.
보다가 날이 좋아지면 정방폭포도 갈 수 있겠지 싶다.
게슴츠레하게 쳐다보던 녀석.
아쉽게도 먹을 건 없기도 하고 길고양이한테 먹을 걸 주지도 않는지라 가만히 앉아 사진을 찍는데, 이 녀석 셔터만 누르면 고개를 돌린다.
안에 단체 관광이 와 있어서 일단 옥상에 올라왔다. 저 멀리 산에 구름이 신기하게도 걸려있다.
멀리 서귀포 앞 바다가 보인다. 빗발도 많이 약해졌고, 서서히 비가 그쳐가는가 싶다.
이제 내려가면서 미술관을 구경해보자.
아이가 그린 것 같은 느낌의 작품들, 보다 보면 왠지 초등학교 때 소풍 나가서 그린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아이가 아이의 눈으로 순수하게 그리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걸 수도 있지만,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겪은 사람이 이런 시선과 그림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꽤나 놀랍다.
난 미성년자가 아니니까.
미성년자가 들어가도 될 것 같은 구역을 관람한 뒤 미술관 밖의 길을 조금 걸어본다.
마침 비도 거의 그쳤고, 어차피 주차도 했으니 정방폭포에 한 번 가보기로 한다.
예전에 천지연 폭포는 그 수량에 몹시 실망했던 기억이 있는데, 여긴 비가 와서 그런지 멀리서 봐도 제법 폭포다운 모습이다.
가까이에서 보니 더 크게 느껴지는 폭포의 모습. 세찬 물 소리를 듣다 보니 가슴 한 켠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어디서 타는 냄새가 솔솔 나서 보니 왠지 소주 한 잔을 해야 할 것 같은 천막이 있다.
바다를 보며 적당한 횟감 하나 접시에 썰어 놓은 뒤 한 잔 하면 얼마나 시원할까.
아쉽게도 차도 있고 지갑에 현금도 없어서 상상만 하고 지나간다.
괜히 배가 고파졌기에 횟집을 찾아가기로 한다.
원래 해궁미락에 가려고 했는데 가게 공사로 쉬는 중이라 그 옆의 동해미락에 왔다. 당연히 주문은 갈치회다.
딱새우를 손질할 줄 몰라 물어보니 싹 손질을 해서 다시 내어 주신다.
그리고 나온 갈치회. 의외로 맛은 심심했다. 회보단 구이나 조림이 훨씬 맛있는 느낌.
간장에 찍어 먹기에는 너무 맛이 옅어서 아쉽다.
장을 하나 내주셨는데, 여기에 찍어 먹으면 된다고 하셔서 찍어 먹어 보니 맛이 한 결 나아진다.
그런데 이건 장이 맛있는 것 같은데… 갈치는 조림이나 구이로 먹고 다음에는 고등어를 회로 먹어보자.
이번 여행의 마지막으로 어디를 갈까 하다가 어제 못 가본 천백고지 습지가 마음에 걸려 조금 돌아가는 길을 골라본다.
산길을 따라 가던 중, 반대편 차가 갓길에 멈추고 사람들이 내리고 있길래 궁금해서 옆을 봤더니
오전의 날씨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쾌청한 하늘이 보인다.
나도 잠시 차를 멈추고 바람도 쐴 겸 사진을 찍어본다.
뭔가 안개가 왜 공포영화에 자주 끼는지 알 것 같다. 분명 10분 전만 해도 푸른 하늘을 보고 있었는데 여기는 안개가 잔뜩 꼈다.
고산 특유의 서늘함에 인적 없는 산책로, 거기에 안개까지 겹치니 제법 으스스하다.
습지는 왠지 초록색으로 가득 찬 이미지를 상상하게 되는데, 여기는 아직 한참 서늘할 때라 그런지 마치 갈대밭같은 느낌을 준다.
이런 곳에도 오리가 사는구나 싶다. 소리 하나 안 내고 물에 둥둥 떠있는데, 맨 처음에는 조형물인 줄 알았다.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안개가 엄청나게 짙게 꼈다.
차를 몰고 공항으로 향하는데 바로 앞의 차가 겨우 보일 정도였으니, 덕분에 막판에 긴장 잔뜩 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무사히 산을 내려온 뒤 차를 반납하고 공항에 도착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일상에 지쳤던 몸과 마음을 내려 놓기엔 충분한 일정이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래야 또 내려놓을 수 있으니까.
- Epilogue -
요즘 국내 여행에 집중 중입니다.
강릉과 제주는 한 해에 한 번은 꼭 가겠다고 마음 먹은 장소인지라 5월에는 강릉에 다녀올 것 같네요.
국내는 바가지다, 외국나가는 것과 별 반 차이 없다라고 혹평을 받는 국내 여행지들입니다만,
사실 외국 나가서 쓰는 돈 만큼 국내에 쓰니 제법 융숭하게 돌아 다니네요.
이 풍경도 누군가에겐 외국의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다니니 평범한 풍경도 조금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일본의 홋카이도를 여행지로써 굉장히 좋아합니다만,
이번 제주도 여행을 다니면서 홋카이도에서 느꼈던 특유의 편안함과 탈출감을 느껴서 재밌는 여행이었습니다.
의외로 장소보다는 제가 갖는 생각이 훨씬 중요하지 않나 싶은 경험이었네요.
다만 여름에는 아무래도 시원한 곳을 찾게 되는데, 여름 제주는 여러모로 꺼려지네요. 바다는 보는 것만 좋아하는지라...
7월에는 러시아 이르쿠츠크, 9월에는 광주, 11월에 일본 시코쿠 지방을 생각 중입니다.
두달 뒤에 커피향 물씬 풍기는 강릉 여행기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p.s -
쓴 지 조금 지난 글에 댓글이 많이 달려 보니 오른쪽에 갔군요.
많은 분들이 좋게 읽어주셔서 영광입니다.
다들 좋은 주말 되세요.
여행기 잘봤습니다 이말을 빼먹었네요
잘봤습니다. 역시 제주는 여행기를 볼때마다 처음보는 장소들이 많아 새롭네요.
와..사진도 잘찍으시고 글도 잘쓰시고... 같이 여행다녀온 기분이네요. 잘읽었습니다. 강릉편도 기대할께요 !
고등어회가 비싸긴 하지만 비리지않고 아주 맛있었습니다
혼자 여행준비하는 입장이라 그런지 몰입해서 잘봤습니다. 좋은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고등어회가 비싸긴 하지만 비리지않고 아주 맛있었습니다
yuchasns
여행기 잘봤습니다 이말을 빼먹었네요
감사합니다 ㅎㅎ. 고등어는 초밥으로도 정말 좋아하는데, 회로도 꼭 먹어보고 싶네요. 다음 제주 여행까지 기다릴 수 있으려나요~
요새 고등어회는 비싼가 보네요. 몇년전에 모슬포항에서 먹었을땐 꽤 저렴했는데...
작년 9월에 포장해서 먹었는데 4만원에 한마리였네요
재작년 12월에 동문시장에서 한접시에 2만원에 팔았던 것 같네요. 다른 방법으론 차귀도 같은데 가서 낚시배 한시간 정도 타면 고등어 왕창잡고 회도 먹을 수 있습니다.
3~4년 전 모슬포 항에 작은 어선들 정박해 있는 곳에 있는 횟집에서 먹었는데... 2~3인분 정도 되는 고등어회가 2만원대였던걸로 기억나네요.(고향이 제주도이고 누나가 아직 살고 있어서 누나가 알고 있는 맛집이었거든요, 그 근방 가격이 다 비슷했었는데.. 1마리에 4만원이라면 이제는 오른듯 하네요)
하도리(?) 근처 농협앞 횟집이었는데 나름 유명한 곳이더군요 저도 주문해놓고 어디 갔다와 제대로 못봤는데 물어보니 한마리더군요 뭐 매번 먹는 것도 아니고 해서 가성비는 떨어지지만 맛있어서 좋았습니다
회를 엄청 좋아하진 않지만 재작년 12월의 님이 부럽네요
잘봤습니다. 역시 제주는 여행기를 볼때마다 처음보는 장소들이 많아 새롭네요.
여러모로 전같지 않다는 제주지만, 저한테는 아직 충분히 아름답고 새로운 장소였습니다. 다른 분들의 여행기도 보고 싶네요.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이 먼가 차분하고 안정적인것 같아 너무 좋네요~!!! 다른 여행지에 대한 글도 얼른 보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째 요즘 차를 사게 될 것 같아 저대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ㅠ.
여유를 가지시고 여행한 느낌이 물씬 느껴지네요, 시간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일상에 부족한 여유를 찾아 떠난 셈이니, 성공했네요 ㅎㅎ.
마음이 편안해지는 글 이네요.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횟집에 혼자가도 괜찮나 보군여.. 전 예전에 해변가 할머니들 장사하는집에 혼자 갔다가 앞에서 대놓고 혼자 와서는 술도 안마신다고 궁시렁 거리는 소리만..들었는데..
어차피 가게에 남는게 빈 자리라서요 ㅎㅎ. 전 궁시렁거리면 그냥 뜨는 주의라 아직까진 못 겪어본 일이네요. 저도 돈 쓰는데, 이왕이면 반기는 곳으로 가야죠~.
저도 1년에 한번씩은 꼭 제주도를 갑니다 벌써 한 10년쨰 그러고 있는거 같네요 잘 봤습니다
아직까지 제주는 내륙과 분명 다른 멋이 있습니다. 그게 자꾸 제주로 향하게 하는 것 같아요.
혼자 여행준비하는 입장이라 그런지 몰입해서 잘봤습니다. 좋은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좋은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제주도 안개 무섭죠 비오고 난 뒤 아무생각 없이 산기슭을 지나가는 길로 목적지를 향하는데 정말 2m앞이나 겨우 보일 정도로 안개가 심해서 어머니랑 둘이 벌벌 떨면서 갔던 기억이 나네요
특히 산에 더 안개가 끼는 것 같더군요. 올라가는 길만 해도 청명했는데 말이죠...
와..사진도 잘찍으시고 글도 잘쓰시고... 같이 여행다녀온 기분이네요. 잘읽었습니다. 강릉편도 기대할께요 !
이제 차 사게 되면 국내로만 다닐 것 같네요. 그래도 강릉은 갈 수 있겠죠? ㅎㅎ
한편의 잘 정리된 책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잘봤습니다!
책을 쓰는게 인생의 목표인데, 여러모로 기쁜 댓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수필 한 편 읽은 느낌입니다^^ 잘봤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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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야
작은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직 사회초년생 언저리인지라 지금 열심히 다녀 놓을 생각이에요 ㅎㅎ.
우리동네 지나가셨네 ㅋㅋ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을떄 오셔서 다행이네요. 몇일전에 미세먼지 심할떈 놀러온 관광객들 보면 마음이 짠했죠. 힘들게 시간내서 왔는데 풍경이 제대로 안보여버리니 ㅠㅠ
다행히 며칠 차이로 지나갔습니다. 카페에서도 미세먼지가 꽤 화두였죠.
감성돋네요 !
감사합니다 ㅎㅎ.
정말잘봤습니다. 다녀오고싶어지내요. 사진 잘찍으시내요. 카메라 어떤거쓰셨나요
소니의 RX1R을 쓰고 있습니다 ㅎㅎ.
사진하나하나가 정말 느낌있게 예쁘고 저도모르게 천천히 글을 다읽어버렸네요. 읽는 저까지 마음이 동해버립니다. 제주에 가야겟어요
확실히 비도, 맑은 날도 쉬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가까운 곳인 만큼이나 풍경에 대해 집착도 안 생기구요 ㅎㅎ, 어떤 의미로는 가장 편한 여행지네요.
기품이 묻어나오는 글입니다. 글 자주올려주세요^^
과찬이십니다, 감사합니다 ^^.
여행기도 잔잔하니 좋고, 글 내용에 품격이 묻어나오는 것은 오랜만이네요
잔잔한 여행이었다보니 글도 잔잔해지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담담하고 좋은글 같아요 편안한 느낌?
여행 내내 느낀 대로 써진 것 같아 뿌듯하네요. 감사합니다.
엌 저기 섭지코지에 올인에 나온교회가 과자집으로 바뀌었군요.. 세월빠르넹 ㅠㅠ
지금은 사실상 영업을 안 한 채 그냥 멀리서 보는 용도가 된 것 같네요...
이번 여름에 제주여행갈건데 참고하겠습니다. 여행기 감사합니다
좋은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내가 마치 주말 여행을 다녀온듯 합니다. 제주를 직접 보고 느끼는 것 처럼 착각하는 글귀와 사진 잘 보고 갑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여행기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올해 제주도 한번 갈 예정이였는데 덕분에 좋은곳 알아갑니다 눈 정화는 덤~~!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여름 제주는 너무 더울 것 같아 항상 피했는데 요즘은 조금 궁금하네요.
좋네요. 전 운전을 못해서 제주도 가서 내내 자전거 타고 돌아다녔습니다. 죽을 뻔했어요... 요새는 운전 배우는 중입니다. 그런데 아는 분이 차렸다는 카페가 내내 궁금했는데 결국 안 가셨군요 ㅎㅎ 마음이 동하는 여행 잘 봤습니다.
저도 너무 궁금한데, 여러모로 여건이 안 되네요. 뭐 내년에 가보죠 ㅎㅎ.
제주도 여행기 잘 봤습니다. 저도 작년 12월에 다녀왔었는대 정말 좋더군요 :D
겨울 제주는 여러모로 매력이 있죠. 확실히 내륙보단 따스하기도 하구요.
여행 책자를 본 기분입니다. 잘 보고, 읽고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