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간간히 여행기로 생존신고 올리는 바다지기입니다.
사실 다녀온지는 조금 된 여행입니다. 지난 한글날 연휴에 다녀왔으니 벌써 2달 가까이 됐네요.
일기장에 적어둔 기억을 바탕으로 블로그에 여행기를 적어왔습니다만, 이래저래 일이 바빠 2달이나 걸렸습니다.
확실히 시간이 지나고 쓴 여행기는, 그렇지 않은 것 보다 아무래도 깊이가 아쉽네요.
부족한 여행기지만 즐겁게 봐주시는 분들께 미리 감사드리며 글 시작하겠습니다.
회사에서 일도 많아지고, 본격적으로 피곤해지기 전에 연휴를 껴서 연차를 냈다.
조금 갑작스럽게 짠 여행이기에 결국 만만한 일본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오후 반차를 쓰고, 차에 실어놨던 가방과 함께 공항에 도착하니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라운지에서 간단히 시간을 때워본다.
일본 정도 거리는 굳이 항공사 신경 안 쓰고 다니고자 하기에, 제주에어를 이용해본다.
한 시간 정도, 가져온 책도 제대로 읽기 전에 후쿠오카 시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일본도 연휴가 낀 주여서 그런지 숙소가 하나같이 비쌀뿐더러, 방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급하게 잡은 비즈니스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W와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카스 강’에 왔다.
태풍이 올라오는 중이라 그런지 바람도 평소보다 거세고, 빗방울도 날린다.
그래도 지붕 딸린 벤치에 앉아 있다 보니 책 읽으며 쉬기엔 제법 괜찮은 날씨다.
굳은 날씨 덕에 손님이 잘 모이지 않는지, 멀리서 호객하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 중 하나에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있다.
이왕이면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서 책을 가져왔는데, 이럴 때 아니면 읽을 시간도 마땅치 않을 것 같다.
책을 읽기엔 조금 어둡지만 평소에는 어두운 밤눈이 이럴때는 유난히 밝아지는 느낌이다.
책을 읽다보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어느새 도착한 W와 함께 이번 여행 첫 식당인 ‘카즈토미’에 왔다.
지난 여행에는 자리가 없어 옆의 ‘사케이치방’으로 갔는데, 이번엔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미리 컨시어지 서비스로 예약을 하고 왔다.
‘고독한 미식가’에도 소개된 가게인 만큼이나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지 가게 구석에는 한국어로 된 메뉴가 있다.
다녀간 사람들이 손수 수정한 오역이나, 친절하게도 ‘고로상 메뉴’라고 연필로 적혀있는 이 한국어 메뉴판이
그냥 메뉴와 가격만 적혀있는 일본어 메뉴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다.
바늘 가는 곳에 실 가듯이, 맛있는 식사에는 술이 따르기 마련이다.
일본주는 사케나 쇼츄나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식에 곁들일 술이 이 두 종류를 빼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일본주 중에서는 제일 좋아하는 부류인 보리로 만든 쇼츄를 한 병 시켜본다.
기본 찬거리와 얼음이 나온다. 본격적인 식사에 앞서 입을 풀어주자.
시작은 ‘고마사바’로 한다. 냉장고에서 나오는 생선의 질이 범상치 않더니만, 결과물도 기대 이상이다.
평소에 강한 맛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곳의 음식은 여태 일본에서 먹어본 음식 중에서도 유난히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느낌이다.
이렇게 된 이상, 가게에서 파는 생선은 다 먹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아지낫토’, ‘이와시타다끼’를 차례로 시켜본다.
단순히 말하자면 재료가 맛있는 거겠지만 단순히 그 뿐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확실히 질 좋은 재료와 좋은 솜씨가 어우러진 곳이다.
약간 간이 센 음식도 궁금해서 ‘버터구이 닭 간’을 시켜봤다.
닭 간은 평소에도 아주 좋아하는 재료인데, 부드러운 음식들 뒤에 넣으니 그 향이 평소보다 더 강하게 다가온다.
다음은 어디서든 나오지만, 제대로 하는 곳은 흔치 않은 ‘미소시루’, 장국을 시켜봤다.
개인적으론 일본된장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지라 ‘향 좋게 잘 끓였다.’, ‘다른 가게보다 맛있다.’ 정도로만 느꼈는데,
일본에서 수학중인 W의 입맛에는 꽤나 충격적으로 맛있는 국이었나 보다.
국으로 속을 넘겨줬으니 약간은 간식 느낌으로 ‘미조레아게’를 시켜본다.
슬슬 배도 찬 것 같고, 아까 눈여겨 봤던 ‘오챠즈케’를 마지막으로 정리해야겠다.
그냥 ‘오챠즈케’를 시키자니 뭔가 아쉬워, 나름 이곳의 특산물인 명란젓이 올라간 ‘오챠즈케’를 주문했다.
일본에서는 ‘멘타이코’라고 불리는 명란젓은 의외로 한국에서 넘어간 음식이다.
애초에 ‘멘타이’가 ‘명태’의 음차에 가까운 형태이기도 하고, 일본에서도 한국 유래로 소개되기도 한다.
뭐 요즘은 정작 한국보다 일본에서 명태가 더 많이 잡힐 것 같지만...
시원하게 ‘오챠즈케’로 마무리를 짓고 나니, 소화가 되 버렸다.
결국 근처의 ‘사케이치방’에 들러 계란말이, 야끼소바,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꼬치요리인 츠쿠네를 시킨다.
여기도 명란젓이 들어가 있는데, 계란말이에 명란젓이라니...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차례로 나온 음식들을 처리해가며, 가득 찬 배와 함께 하루를 마쳐본다.
첫날, 겨우 한 끼 먹었을 뿐인데 만족도가 너무 높아 걱정이다. 내일도 과연 이 정도 먹고 다닐 수 있을까?
어젯밤에 W가 가져다 준 컵라면으로 해장을 하려고 했는데, 비벼먹는 라면이다.
맛은 있다만 해장이 필요한 아침인지라 속이 영 좋지는 않다.
아쉬운 대로 차나 한 잔 끓이며 TV를 켜 본다.
어제 나카스 강가에서 불던 바람이 범상치 않더니, 밤새 태풍이 가까이 왔나보다. TV에서 야단인 것 치고는 창밖은 조용해서 별로 위기감이 들지 않는다.
구마모토로 가기 위해 짐을 찾아 하카타 역으로 향한다. 여전히 밖은 조용하고, 하늘은 잔뜩 흐린데 동네는 고요한 그 느낌이 좋아 사진을 한 장 찍어본다.
그리고, 이 사진을 찍자마자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이미 밖은 태풍 그 자체다.
뭐, 어차피 바로 지하도로 들어갈 거지만 혹시라도 열차가 끊길까 신경 쓰여 찾아보니,
다행히 내가 탈 구마모토까지의 구간은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만, 이미 재래선 일부 구간은 운행이 중단된 모양이다.
지하도에서 라멘 냄새를 맡아서일까, 갑자기 허기가 지기 시작해서 작은 고등어 초밥을 사봤다.
승강장 벤치에 앉아 먹는데, 역시 제대로 된 가게에서 사 먹는 것 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아침을 컵라면으로 때우며 부족했던 무언가가 채워지는 느낌이다.
태풍 때문에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열차가 오고 나서 30분 남짓 달려 구마모토에 도착했다.
역에 있는 커다란 쿠마몬을 보니 구마모토에 왔다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역의 벽면에도 쿠마몬, 곳곳에 쿠마몬이 잔뜩 있다.
뭐 어차피 구마모토에 있는 3일 동안 실컷 볼태니, 일단 숙소에 짐부터 내려놓고 움직여보자.
하카타 만큼이나 라멘으로 유명한 고장에 왔으니, 안 먹고 넘어갈 순 없다. W의 강력한 추천과 타베로그의 평점에 근거해 ‘고쿠테이’에 왔다.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사람이 많진 않았는데, 찍고 줄을 서다 보니 갑자기 밴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 줄을 서기 시작한다.
라멘+교자+맥주 세트를 시켜본다. 국물이 워낙 맛있어 밥도 한 그릇 시켜 국물까지 전부 해치워버렸다.
라멘을 평소에도 굉장히 좋아하긴 하지만, 확실히 유명한 집은 다르긴 하구나 싶다.
이제 배도 든든히 채웠으니, 여행을 시작해보자.
어차피 구입한 북큐슈 레일 패스의 지정석 사용 횟수가 많이 남았기에, 미스미로 가는 특급열차 ‘A열차로가자’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말이 좋아 특급열차지, 원래 이 동네에 다닐만한 동차를 개조한 티가 역력하지만 그래도 서비스를 위해 원맨으로 굴릴 만 한 열차에 승무원까지 태우고 간다.
두 칸짜리 열차에 승객은 얼추 10명 정도 되는 것 같다. 뭐, 어차피 돈이 더 드는 것도 아니고 고즈넉이 구경이나 하면서 가기엔 부족함이 없다.
열차는 시마바라 만 근처를 지나게 되는데, 날이 흐려서 그런지 건너편의 운젠 지방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바다에 잔뜩 박아놓은 말뚝은 어디다 쓰는 건지 궁금해 하던 중, 승무원이 다가와 근처 풍경 사진을 보여준다.
뭐 오늘은 아니지만, 사진을 보니 노을 때 썰물까지 겹치면 꽤나 장관인 지역인 것 같다.
미스미의 옆 동네인 아마쿠사 지방의 소금으로 만들었다는 ‘시오바닐라 아이스크림’이다.
뭐 딱히 맛있는 건 아니고, 그냥 파니까 먹을 정도의 맛이다.
바닷가를 지나, 산 속을 뚫고 나와 미스미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역이 예뻐서 둘러봤다만, 동네는 전형적인 일본의 시골 느낌이다.
딱히 갈 곳도 없고, 멀리 뾰족한 건물이 하나 보이기에 그쪽으로 향해본다.
건물은 다름 아닌 여객선 터미널이었다. 태풍이 근처를 지나가는지라 배가 뜰 일은 만무하고, 저 계단을 올라가봤자 별다르게 보일 것도 없을 것 같다.
멀리 아마쿠사로 가는 육로가 보인다. 괜히 열차 안에서 아마쿠사의 소금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파는 게 아니구나 싶다.
한국에서도 시골마다 느낌이 다르듯이, 일본에서도 몇 번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데 괜히 저 동네는 또 어떤 곳인지 궁금해진다.
저 곳을 가려고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근처에 마땅히 끼니를 해결할 곳도, 볼 곳도 없어보이기에 바로 다음 열차를 타고 구마모토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도 쿠마몬이 그려져 있다.
여느 시골에 가면 흔히 오던 그 열차가 온다.
구마모토까지 단번에 돌아가려 했는데, 갑자기 차창 밖으로 하늘이 맑게 게이기 시작한다.
마침 바닷가 근처를 달리던 참이라 앞뒤 생각하지 않고 바로 다음역인 ‘히고나가하마 역’에 내렸다.
다음 열차 시간을 보기 위해 핸드폰을 봤다가 외장 베터리를 숙소에 두고 왔다는 걸 알게 됐다.
구글맵 없이 이 동네를 돌아다닐 용기는 도저히 생기지 않아, 근처의 세븐일레븐을 향해 걸어본다.
뭔가, 멀리 보이는 풍경이 쓸데없이 장엄하다.
미스미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푸딩과 밀크티로 적당히 끼니를 때운다
편의점을 다녀온 사이에 다시 하늘이 잔뜩 흐려졌다.
조금 기다리면 나아질까 싶어 바닷가를 서성였지만, 이내 빗방울까지 떨어지는걸 보고 멀리 보이는 하늘에 만족하며 돌아가기로 한다.
흔한 간이역의 모습, 열차 맨 뒤에서 지나간 선로를 다시 보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다.
구마모토에 다가갈수록 점점 거뭇거뭇 해지더니, 이내 사진을 찍기 힘들 정도로 밖이 어두워졌다.
그럭저럭 오늘 오후도 잘 다녀왔으니, 이제 오늘의 하루를 마칠 식당에 찾아가보자. 전차를 타고 ‘다사키바시’에 내려 ‘텐고쿠’를 향한다.
구마모토를 상징하는 요리 중 하나인 말고기 요리를 먹기 위해 왔는데, 어째 가게 밖 분위기가 편한 차림으로 가도 되는 건지 조금 망설여진다.
예약을 했어야했나 싶었는데, 다행히 가게 안에는 자리가 제법 있다.
어느 부위가 맛있는지 모를 때엔, 세트메뉴를 시켜서 먹어보면 된다. 첫 시작은 간이다.
아직까진 다른 고기와 별다른 차이를 못 느끼겠지만, 평소에 간을 좋아하는지라 꽤나 기분 좋은 시작이다.
이번엔 조금 더 ‘말고기 회’ 같은 요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가게에 비치된 소스와 먹으니, 확실히 다른 고기에 비해 맛은 연한데 식감이 참 특이하다.
맛 자체는 소나 돼지에 비해서는 연한 편, 향이 역하다는 사람도 있던데 그건 잘 모르겠다.
낫토와 함께 버무린 말고기.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낫토의 미끈한 식감과 어울려 제법 괜찮은 느낌이다.
낫토 향도 잘 잡힌 편이고, 별 부담 없이 후루룩 먹을 수 있겠다.
타다끼도 나왔는데, 살짝 훈연을 하니 확실히 향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다지 기억에 남는 향은 아니었고, 역시 식감만 기억에 남는다.
왠 냄비가 나오나 싶더니 ‘호루몬야끼’는 이런 곳에 해주는 모양이다.
네발 달린 짐승의 내장이 맛이 없을 리가 없으니 이건 의심 없이 털어 넣는다.
다음은 ‘말 혀’이다. 소 혀인 ‘규탕’은 많이 먹어봤는데, 확실히 이건 처음이다.
개인적으로 혀 요리는 두껍게 저민 고기를 좋아하는데, 이건 너무 얇아서 좋아하는 느낌의 혀 요리는 아니었다.
뭔가 안 구워서 그런지 느낌이 한층 더 이상하기도 했고, 딱 경험상 먹어볼만 한 요리다.
이렇게 말했지만, 또 가게 되면 또 먹겠지 싶다. 그 특유의 미끈하면서도 탄력 있는 씹는 맛은 꽤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갑자기 초밥이 나온다. 사실 생고기만 계속 먹어댔더니 밥이 그리웠기에 두 점 남짓한 쌀밥이 꽤나 반갑기도 했다.
뭔가, 입속에 남은 핏기를 싹 씻어주는 느낌의 요리다.
마지막으로 말고기를 넣어 끓인 장국을 내주며 세트 요리가 끝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번에 구입한 JR Kyushu Pass로 이 식당에서 ‘말 갈기살 요리’를 공짜로 먹을 수 있었다는데,
이미 구마모토에서 하카타로 돌아가는 신칸센에서 알게 된 소식인지라 소용이 없었다.
하필이면 딱 하나 못 먹은 요리가 특전이었다니...
뭐 하나를 놓치긴 했지만 대식가를 자처하는 나도 이 정도로 먹고 나니 도저히 뭘 할 여력이 없어
바로 숙소로 돌아가 숙소의 라운지 바에서 노미호다이로 한껏 마신 뒤 하루를 마쳐본다.
뭔가, 옆에 앉은 아저씨와 사뭇 진지한 이야기를 한 것 같기도 한데 이런 것도 재미라면 재미겠지.
숙취와 함께 오전의 반을 날린 뒤, 구마모토 역으로 나왔다.
늦잠을 잤더니 아직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해 속이 영 허전하다.
오늘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중 하나인 ‘풀베개, 쿠사마쿠라’의 배경인 오아마 온천에 가는 날이다.
버스가 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막간을 이용해 삼각 김밥 두 개를 사다가 역 근처 벤치에서 배를 채운다.
가는 동안 바다 건너 나가사키 현의 ‘시마바라 시’가 보인다. 뒤편의 높은 산은 아마 예전에 나가사키 여행을 갔을 때 봤던 ‘운젠 산’이겠지 싶다.
버스 안에는 ‘오아마 온천’에 가는 사람들인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풀베개’, ‘온천’ 따위의 얘기를 하는걸 봐서는 비슷한 목적으로 가는 것 같다.
잠깐 졸다가 한 정류장을 더 왔다. 시골이라 그런지, 한 정거장만 더 가도 꽤나 멀리 온 느낌이다.
다행히 표지판에 목적지인 ‘마에다 가 별저’가 보인다.
조금은 시원해진 줄 알았는데, 볕이 들고 그늘 없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꽤나 더워지기 시작한다.
원래 묵고 싶었지만 혼자서 묵을 수 없다는 이유로 방문에 실패한 ‘나쓰메 소세키’가 묵었다는 여관을 지나쳐 ‘마에다 가 별저’로 향한다.
어째 관광지 치곤 몹시 조용한 입구. 안에도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안에는 사람은커녕, 둘러보러 온 사람도 없었다. 덕분에 안 그래도 조용한 마을에서 가장 조용한 장소로 온 느낌이 들어 여러모로 기분이 좋아진다.
내내 볕을 쬐며 걷다가 그늘에 오니 한층 더 시원하기도 하고, 조금은 기분 나빴던 축축한 등도 말끔히 말라간다.
안에는 욕탕도 있었는데, 아쉽게도 들어갈 수는 없고 멀리서 내려다 볼 수 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별로 화려할 것도 없다만, 설명을 읽다 보면 그때 기준으로는 꽤나 잘 꾸며진 욕탕이었나 보다.
넓은 욕탕을 보니 괜히 나도 씻고 싶어진다.
걸터앉아 바람이라도 쐬고 싶게 만드는 장소다.
출입금지 표지가 없어서 들어가도 되지 않을까 꽤 고민했지만, 왠지 이건 아닌 것 같아 그냥 지나친다.
지금 생각해보면 잠깐 쉬었다 가는 정도는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별저를 지나 점점 위로 향한다. 생각보다 가파른 길에 그늘에서 말렸던 땀이 다시금 옷을 적신다.
그래도 위까지 올라와 보는 풍경은 꽤나 탁 트여있어서 제법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마을 곳곳엔 귤나무가 잔뜩 심어져 있었는데, 꽤나 탐스럽게 열렸다.
그러고 보니 이 동네도 귤로 제법 유명하다 들었는데, 어째 귤을 한 번도 못 먹어봤다.
구마모토에서도 파는 걸 못 본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제철이 아닌걸까?
표지판을 보니 온천이 근처에 있어 다시 등산 중이다.
지도에서 보면 지척인데, 자세히 보니 등고선이 빽빽한 게 어째 쉽게 가지 못할 것 같더라니, 아니나 다를까 돌고 돌아가는 길이다.
조금 덥기도 하고, 옆으로 보이는 풍경이 꽤나 이질적이기에 한 컷 담고 다시 갈 길을 재촉한다.
온천은 노천탕이었고, 직전에 봤던 그 탁 트인 풍경을 온천을 하며 볼 수 있게 꾸며놨다.
뭔가 육안으로도 근처의 민가가 보이는 게, 어째 이 정도로 탁 트여도 괜찮은 걸까 싶긴 하지만 덕분에 뜨뜻한 탕 속에서 절경을 봤으니 불평할 건 없겠지.
만원도 안 하는 가격으로 이 정도로 호강을 하게 되니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짧게 온천욕을 마치고 온몸의 긴장도, 찝찝함도 푼 채 맥주 한 잔과 감자튀김을 먹어본다.
별거 아닌 감자가 왜 이렇게 맛있는지, 역시 음식도 기분따라 맛이 갈리나보다.
괜히 식욕이 생겨 ‘가츠동’을 하나 시켜 먹고 식당에서 일어난다.
안에서 근처 역과 이어주는 셔틀을 운행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애매해 그냥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 버스를 타기로 한다.
올라오면서 보는 풍경과, 내려가면서 보는 풍경이 다르다는 건 몹시 당연하지만 여행을 하며 놓치기 쉬운 일이다.
올라오면서는 사진으로 담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내려갈 땐 카메라를 잠시 끄고 천천히 둘러보며 내려가 보자.
온천욕까지 하고 왔는데도 아직 해가 중천이다. 묘하게 몸이 나른했기에, 일단 숙소에서 눈을 좀 붙이고 움직여야겠다.
시간이 되면 ‘스이젠지’에 가볼까 해서 ‘신스이젠지 역’에 내렸지만, 잠을 너무 길게 잤는지 도착했을 땐 벌써 폐장 시간이 가까워졌다.
조금은 시간이 아깝지만 그래도 여행의 본 목적은 휴식이니 크게 아쉬워하진 않으려 한다.
미리 알아봐 놓은 꼬치구이 가게로 향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시덴을 탄다.
간판이 작아 근처를 한 바퀴 돌았지만, 어쨌든 도착한 오늘의 저녁 식사 장소 ‘토라마루’에 도착했다.
시작은 참치와 감자를 버무린 샐러드로, 약간은 허기가 져서 그런지 이것마저도 술안주로 술술 넘어간다.
세트로 시키니 이래저래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참 편하다.
다만 언제나 일본에 와서 하듯이 쓰쿠네를 한 점 더 먹고 싶기에 따로 주문을 해 본다.
조금 이른 시간에 와서인지 다른 손님이 없어서 먹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구글맵에서 치니 점수가 아주 높다고 말씀드리니 꽤나 놀라며 기뻐하신다.
마무리로 나온 쓰쿠네 한 점. 안에 마가 들어간 녀석인데, 그 특유의 식감이 여태까지 먹어본 쓰쿠네와 굉장히 다른 느낌이라 재밌었다.
이걸 중간에 껴서 먹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지만,
잘 짜인 세트 사이에 내 마음대로 뭔가를 추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니 그냥 이렇게 먹어야지.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덧 한밤중이다.
어제 과음을 한 지라 오늘은 그냥 바로 들어가 잘 생각이었다만, 꼬치구이를 먹었더니 술 생각이 간절해진다.
오늘도 아마 숙소에 딸린 바에서 노미호다이로 한 시간 정도 마시고 들어갈 것 같다.
그제와 달리 과음을 하진 않았기에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는 중이다.
구마모토 대지진으로 무너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들르지도 않기는 아쉬워서 구마모토 성을 찾았다.
입구에는 우리나라에도 여러모로 유명한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의 동상이 서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의 선봉장으로 유명한 ‘가토’지만 일본에서는 장수 뿐 아니라 건축가로서도 유명하다.
나고야, 오사카 성의 건축에도 깊게 관여했으니 일본에서 유명한 성 중에 이사람 손을 탄 곳만 벌써 세 곳이다.
나고야에서도 저 특유의 고깔 모양의 투구가 기억에 남았는데 여기서도 똑같은 걸 보게 된다.
참고로 가토는 의외로 신장이 작은 편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저런 기다란 투구를 썼다고 한다.
해자를 얼마나 깊게 파놨는지, 거의 강처럼 보일 지경이다. 아니면 원래 강이었던 곳을 정비해 놓은 걸까?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성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기에, 주변 길을 따라 크게 돌아보려 한다.
이쯤이면 몇 곳은 개방 됐을 것 같기도 했는데, 못내 아쉽다.
군데군데 지진의 상흔이 보인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구마모토 성 천수각에 타워크레인이 설치된 사진을 찍을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든다.
뭔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기대치 않게 재밌는 사진을 건진 느낌이다.
근대까지도 공략되지 않은 철옹성으로 유명한 구마모토성이지만,
이렇듯 지진에 무너진 모습을 보니 새삼 재해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고 지난 지진이 얼마나 큰 지진이었는지 실감이 난다.
성 안에는 ‘가토 기요마사’를 모신 신사가 있지만, 나로서는 그다지 존경할 위인은 아니기에 굳이 문턱을 넘으려 하지 않는다.
토리이 근처에서 발길을 돌리니, 어느덧 처음 성에 들어올 때 봤던 강이 보인다.
구마모토 성을 제대로 보지 못 한 것은 아쉽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구경은 이 정도로 겉만 핥고 다음 장소로 넘어가 보자.
들어왔던 입구를 지나쳐 강가를 따라 걷다 보니 성 외에도 여러 유적들이 보인다.
옛 성터라는데, 듣고 보니 그냥 언덕치고는 뭔가 부자연스럽다.
이 근방 가도의 시발점이 됐다는 곳을 지나 ‘우루산마치’로 향한다.
‘우루산마치’, 한국어로 표시된 역명판에 ‘울산마치’라고 돼있는 이 곳은 정말 우리나라의 ‘울산’과 관계가 있는 곳이다.
왜란 말 가토가 농성을 하던 울산 일대에서 잡아온 포로들이 이 근방에서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흔적이 마을 이름으로 남은 것이다.
지금이야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오는 곳이지만,
당시로서는 이역만리였을 이 곳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마을 이름이라도 익숙한 이름을 붙였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심 먹먹해진다.
이제는 울산과 구마모토가 자매결연까지 맺을 정도로 사이가 가까워진 것을 생각해보면, 사람 사이의 관계만큼이나 모를 일이다.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히 배를 채운다. 어차피 밥을 먹으러 가는 길이긴 하다만, 공복에 계속해서 발품을 팔다보니 보통 배가 고픈 게 아니다.
시덴의 종점인 ‘다사키바시’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호텔에 딸린 바에서 본 책자에 맛집으로 소개된 가게에 가기 위해 왔다.
휴일이라 그런가, 사람은커녕 열려있는 가게도 몇 없어 보이는데 설마 그 가게도 닫은 건 아니겠지.
다행히 가게는 열려있었고, ‘쵸보야끼’와 ‘야끼소바’를 주문하고 잠시 근처를 둘러본다.
굉장히 큰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있는데, 이 동네 대장이라도 되는지 사람이 오건말건 잠자기 바쁘다.
음식을 포장한 뒤, 근처의 공원에 가서 먹고자 앉았는데 생각보다 햇살이 따갑다.
따로 마땅한 장소도 없고 아무래도 다시 가게로 가서 먹어야 될 것 같다.
다시 돌아온 가게에서 식사를 시작해본다.
뭔가 일본 아저씨들이 좋아할 법한 맛과 향의 음식들인데, 왜 책자에 맛집으로 실려 있는지 알 것 같다.
내 입에는 조금 많이 짠 편이라, 맥주 생각이 간절해진다.
아직 해가 중천이기에 술은 겨우 참고, 아쉬운 대로 물만 들이킨다.
‘쵸보야끼’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가 참기 힘든 지 냉장고 위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계속해서 야옹거리는데, 사람 입에도 짠 걸 먹일 수는 없지.
배도 채웠겠다, 어제 못 본 ‘스이젠지’를 보기 위해 다시 시덴을 타고 ‘스이젠지코엔 역’에 내렸다.
입구부터 쿠마몬이 반겨주는데, 확실히 어제보단 길가에 활기가 있다.
옆으로 기념품 상점이 보인다. 쿠마몬 앞치마가 있으면 꼭 사고 싶은데, 조금 이따 한 번 들러봐야겠다.
전형적인 일본 정원의 모습이지만, 규모가 여태 가 본 정원 중에 제일 큰 것 같다.
걸어 다니기엔 조금 덥지만, 그늘에 있으면 생각보다 시원하니 정원을 둘러보기엔 최고의 날씨다.
원래 이런 곳의 물은 마시는 용도가 아니고 손 씻는 용도라고 배웠는데, 옆에 안내를 보니 마시면 장수를 하는 물이라고 한다.
나름 인생 목표가 불로불사인지라 한 모금 마시고 싶어지는데,
괜히 마시면 안 되는 물일까 해서 지나가던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흔쾌히 마셔도 좋다고 한다.
잔뜩 기대하고 한 모금 마셔봤다만, 그냥 수돗물 느낌이다.
여기도 ‘나쓰메 소세키’의 시비가 있다. 하이쿠 같은데, 평범하게 써져있는 일본어도 버겁게 읽는지라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멀리 보이는 다도 교실의 모습이 요즘 세상 같지 않아 한 장 남겨본다.
여행 중에 저런 체험 활동은 지양하는 편인데, 요즘엔 조금 욕심이 난다. 맛있는 차 한 잔 하고 싶은 게 본심이긴 하지만 말이다.
얼추 공원은 크게 돌아본 것 같으니, 적당히 평상에서 가방에 담아온 ‘나마챠’나 마시면서 쉬다가 후쿠오카로 돌아가야겠다.
아쉽게도 쿠마몬 앞치마는 없어서 빈손으로 후쿠오카로 돌아가게 됐다.
그래도 이래저래 맛있게 지낸 나날이었으니, 다음에 쿠마모토 성이 복원되면 그걸 핑계 삼아 다시 한 번 와야겠다.
일단 이번 여행에서 쿠마모토는 여기까지다.
일단 숙소에 짐을 맡기고, 조금 쉬어야겠다. 어차피 저녁에 W를 만나기로 했고, 마땅히 가고 싶은 곳도 없으니 저녁을 위해 체력을 보충하자.
약속시간이 되어 ‘아카사카’로 나가 보니 W가 미스터도넛을 잔뜩 사왔다.
설마 이게 저녁은 아니겠지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니었다. 에피타이저 치고 참 푸짐한 차림이다.
적당히 배를 채운 뒤 W의 친구인 U와 만나 끼니를 해결하러 간다.
낮에는 줄이 길고, 재료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 먹기도 힘들다는 ‘하나모코시’. 확실히 아무것도 모르고 점심에 왔다간 먹지도 못 할 뻔 했다.
다행히 저녁이기도 하고, 조금 일찍 와서 그런지 우리 앞에 아무도 없다.
조금 기다리다 보니 가게 불이 켜지고 이내 자리로 안내를 해준다.
여태 먹어본 닭 베이스의 국물 중에 이렇게 직관적으로 닭을 우렸다는 느낌이 나는 국물은 처음이다.
면도 면이지만, 국물의 진함이 혀에 박혀서 빠지질 않는다.
이 정도면 기다려서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W의 말로는 이것저것 재밌는 시도를 많이 하는 가게라 한다.
주인분이 젊어서 그런가, 평범한 라멘만 하시는 건 아닌 모양이다.
무튼 대만족. 다음에 후쿠오카에 와서 다시 가야 할 가게가 하나 더 생긴 것 같다.
평소 서울에서 자주 다니던 바에서 추천을 받은 ‘바 모모타’에 가봤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쉬는 날이었다.
인근의 ‘바 오스카’를 가봤지만 마찬가지로 쉬는 날이었기에 ‘바 오스카’ 문에 붙어 있던 ‘바 파루무도루, Palme d’or‘에 왔다.
흰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바텐더의 모습에 묘하게 신뢰가 간다. 시작은 ‘보모어’로 만든 ‘러스티 네일’로 해보자.
빌드 다음은 쉐이크, ‘마가리타’를 주문해본다. 군더더기 없는 맛이 참 깔끔하니 좋다.
그럼 다음엔 믹스, ‘핸드릭스 진’으로 만든 ‘드라이 마티니’를 주문해봤다.
개인적으로 마티니는 차갑게 식힌 잔이 다시 데워지기 전에 털어 넣는 주의인데, 딱 털어 마시기 좋은 모습의 마티니다.
예전에 바에 갔을 때 들어온 지 얼마 안됐다던 아드벡의 AN OA가 보이기에 한 잔 시켜본다.
우유로 살살 달래며 마시는데 찬장에 처음 보는 아드벡이 보여 그것도 한 잔 달라고 부탁드려본다.
이날 마신 술값의 반을 차지한 녀석이지만, 꽤나 신선하게 다가온 아드벡 23yr.
확실히 아일레이 위스키 중에서도 가장 튀는 아드벡도 나이를 먹으면 순해지는가 싶었다만,
그래도 특유의 향이 물씬 풍겨 오는 게 다른 나이든 위스키마냥 순순히 넘어오진 않는다.
한국에선 쉽게 만날 수 없던 빈티지기에 오늘은 이 한 잔만으로도 온 보람이 있는 것 같다.
평소에 끝맺음으로 즐겨 마시는 B&B를 주문했다.
스니프터 잔에 스타아니스를 띄우고, 따스하게 마시는 B&B를 좋아하는데, 여긴 적당히 음영을 준 채 바로 플로팅해서 내어준다.
W와 U가 마신 술까지 모이다보니 바 한 쪽에 길게 찬장이 생겨버렸다.
마지막 잔은 서비스로 받은 샤르뜨뢰즈 V.E.P. 마찬가지로 처음 마셔보는 녀석이다.
샤르뜨뢰즈 마니아인 W는 이 한 잔이 아마 내가 마셨던 아드벡 23yr과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좋은 술로 몸을 가득 채우고, 기쁜 마음으로 친구들과 헤어진 뒤 숙소로 향한다.
일본에서 몰트 바를 찾아간 건 처음인데, 아무래도 한동안 일본에 갈 때 필수 코스가 될 것 같다.
어느덧 사실상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됐다.
원래는 지난번에 못 가본 후쿠오카의 북부를 다녀올 생각이었지만, 문득 다자이후를 다시 한 번 가고 싶어져서 패스를 끊고 역에 왔다.
꽤 낡아 보이는 열차를 타고 도작한 ‘다자이후 역’. 날은 꽤 무덥지만, 걷기 힘들 정도는 아니기에 ‘관음사, 간제온지’까지 걸어 가보고자 한다.
여느 한적한 시골 모습의 길. 동네에는 사람 소리 하나 없이 새소리, 풀벌레소리만 울린다.
절은 대충 봐도 꽤나 고찰이라는 느낌이 든다.
저 범종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데, 아무래도 울리는 걸 듣기는 힘들 것 같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인 ‘만요슈’와, 한국에도 꽤 많이 알려진 ‘겐지모노가타리’의 무대이기도 하다니 인파나 분위기에 비하면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는 장소다.
경내는 생각보다 좁아서 한바퀴 도는데 그리 긴 시간이 들지 않았다. 남쪽을 향해 곧게 뻗은 길을 따라 큰 길로 나선다.
버스가 오기까진 약간 시간이 있어서 들른 ‘계단원, 가이단인’.
절의 이름이 한자로 써져있어 오해할 일은 없지만, 여기서 말하는 계단은 당연히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그 계단이 아닌 계율에 가까운 의미이다.
천하의 세 개의 계단 중 하나라는데, 아쉽게도 시간이 촉박해서 제대로 살펴보진 못했다. 벌써부터 다음을 기약하면 안 되는데...
그렇게 관광도 줄여가며 버스를 타기위해 정류장에 왔건만, 바로 앞으로 버스가 지나간다.
왠지 갑자기 더위도 심해진 것 같고, 시원한 음료와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바로 옆에 있던 작은 카페에 들렀다.
별 기대 안하고 시킨 새우볶음밥인데, 생각보다 맛있다.
다음 버스를 타고 다시 역 근처로 왔다.
지난번에 왔을 때엔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 맑은 날에 보는 분위기는 또 사뭇 다른 것이 재밌다.
확실히 우산이 없으니 조금 덜 차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이왕 다시 온 거, 지난번에는 못 가본 보물관에 들러본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촬영에 있어 조금 더 엄격하다는 느낌이었는데, 여긴 웬일로 사진 촬영을 허락해준다.
끝부분에 있던 그림들은 참 마음에 들었는데, 생각보다 최근에 그린 작품들이라 놀랐다.
흘린 땀은 시원한 보물관에서 잘 식혔으니, 이제 당분을 보충할 시간이다.
달달한 일본식 팥죽과 팥, 떡, 다과를 곁들인 녹차 맛 아이스크림과 함께 잠깐 자리에 앉아 쉬다 보니 슬슬 다시 걷고 싶어진다.
들어왔던 길과는 조금 다른 길로 역으로 돌아간다.
사실 유명한 관광지의 풍경 보다는 조금은 뜬금없이 만나는 이런 곳의 풍경을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시간이 더 제대로 된 관광일지도 모른다.
다자이후에서 만족스럽게 반나절을 보내고, 이제 다시 후쿠오카로 돌아간다.
다시 도착한 하카타 역, 부지런히 짐을 마지막 숙소로 옮기고 전에 왔던 즐거운 경험을 되새기며 간단히 우동이나 한 그릇 하러 ‘미야케 우동’에 왔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셨는지, 평소의 할아버지는 안 계시고 할머니 혼자 계시던 가게.
아무래도 너무 폐점 시간 가까이 왔나보다. 다행히 육수도, 면도 남아 있어서 한 그릇 먹고 갈 수 있었다.
요리해주는 사람은 다르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 맛이니 불만의 여지가 없다.
‘빅 카메라’에 들러 남은 돈으로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며 W를 기다린다.
이내 저녁 시간 즘 W가 오고, 당연하게도 먼저 라멘부터 한 그릇 하러 ‘타이호 라멘’에 들른다.
라멘만으로는 조금 부족하기에 챠항(볶음밥)도 한 그릇 시켜본다.
그나저나, 일본 라멘집 자판기는 이상하게 어렵다.
못 읽는 것도 아닌데 사용할 때마다 헤매게 되네.
마침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O도 후쿠오카에 와 있다고 하길래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분명 방금 라멘에 밥까지 먹은 것 같긴 하지만, 이미 위장에선 잊은 지 오래.
O가 아직 일본에서 제대로 먹질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모쯔나베’는 먹고 가는 것이 맞는 것 같아 지난 번에 들렀던 ‘오오야마’에 왔다.
언제나 후회스럽지 않은 수준의 음식을 보여주는 ‘오오야마’.
사실 이번 여행에 개인적으로 ‘모츠코우’를 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가게 개장으로 또 쉰다고 한다.
지난번에는 오봉 연휴로 못 가고, 이번에는 개장이라니... 어지간히도 가게와 연이 닿지 않는다.
여행의 마지막 밤에 물만 마시고 잘 수는 없는 일, 시간이 늦어 바는 못 갔다만 들어오며 편의점에서 맥주와 같이 먹을 안주거리를 사들고 와 밤을 보낸다.
맥주 한 캔 정도는 괜찮겠지 싶어 짤막히 온천욕과 마사지도 받아보고,
30분 정도의 마사지로는 여독이 풀리지 않아 안마의자에 앉아 시간도 보내본다.
전날 피로회복에 집중한 덕인지 묘하게 몸이 가볍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을 살짝 피해 공항에 도착했다.
어설픈 먹거리보단 차라리 ‘요시노야’에서 덮밥을 먹는 게 답일 것 같아 규동을 한 그릇 시킨다.
뭔가 정신없이, 그래도 이것저것 먹고 간 이번 여행.
뭔가 몸이 정말 무거워진 것 같은데 제발 기분 탓이길 바라며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조금 정신없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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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볍게 읽은 여행에세이 같아요. 잘 봤습니다.^^
즐겁게 잘봤습니다 역시나 멋진 사진들 ^^
감사합니다 ㅎㅎ. 아무래도 50.8 하나만 들고 다니니 아쉬움이 크네요. 이번에 새로 카메라를 장만했는데 다음 여행이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잘봤습니다 ~ 사진 좋네요
감사합니다~
가볍게 읽은 여행에세이 같아요. 잘 봤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여행가고싶게 만들게 해주는 여행기는 참 사람 마음을 흔드는거같아요 성수기인 1월2월달 스카이스캐너 열심히 다시고침 하며 만원이라도 싼가격에 던 소인배를 30만원짜리라도결제 하게 하는 매력적인 글이었습니다
여러모로 칭찬 감사합니다. 이젠 여행에서는 돈을 안 아끼게 되네요. 갈 수 있을 때 안 가면 의외로 가고 싶을 때 못 가게 되더라구요.
매 사진마다 생생하게 기록해두신 글이 읽기편안하고 순간의 느낌까지 재현해주셔서 저도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었네요. 사진실력도 좋으신데 단렌즈(겠죠?) 특유의 아웃포커싱 느낌이 좋아요~
감사합니다 ㅎㅎ. 이번에 50.8 렌즈 하나를 가져 갔습니다만, 아무래도 고화소 바디에서 구형 렌즈는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새로 소니의 RX1R을 영입했는데, 다음 여행이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좋은사진과 좋은여행기 잘 보고 갑니다 양주는 잘 모르지만 좋아보이네요~
감사합니다. 한국에서도 좋은 바가 많지만 일본은 확실히 다른 경험을 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