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도시를 찾아서 에서 이어지는 페루 여행기 세 번째입니다.
곡절을 조금 겪긴 했지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지 중 하나인 마추 픽추를 클리어했으니
다음날은 쿠스코에서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야! 이번엔 더 험한 곳이야!!
세간에 무지개 산으로 알려진 비니쿤카(Vinicunca)를 오르기 위해 마추 픽추와는 반대 방향,
즉 남동쪽으로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이쪽은 관광객들에게 알려진 것이 비교적 최근인데다
거리는 상당하고 도로 사정은 좋지 않으므로 사실상 현지 여행사를 통해야만 합니다.
이동 시간에 자면 되겠다 했건만 비포장 도로의 진동에다 창문을 닫아도 들어오는 흙먼지에
조는둥 마는둥~ 새벽에 출발하여 2시간 정도를 달려가 아침을 먹습니다.
구불구불 산길을 한 시간 정도 더 올라가니 입구 게이트 같은걸 지나는군요.
드디어 주차장에 도착! 여기 무슨 벤츠 스프린터 동호회 정모인가요??
차로 가는건 여기까지, 이제부턴 걸어야 하는데.. 설마 뒤에 보이는 살벌한 산은 아니겠죠??
비니쿤카에 이르는 길은 두 갈래가 있어서 동쪽에서 오르는 피투마르카(Pitumarca) 트레일과
서쪽에서 오르는 쿠시파타(Cusipata) 트레일 중 하나를 이용하게 됩니다.
웹에 남겨진 흔적을 찾아보니 피투마르카 트레일 쪽이 먼저 개발되고 알려진 루트로 보이는데
쿠시파타 트레일 쪽이 도보 구간의 거리나 높이 부담이 덜해 요즘은 이쪽을 주로 통하는 듯?
차에서 내려 장대 하나씩을 들고 길을 나서는 순간 온몸으로 느껴지는 희박한 산소 농도!
트레일 출발점이 이미 해발 4,600 미터! 3 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목적지는 해발 5,000 미터!!
그래도 경사가 완만하고 길도 흙길이어서 호흡이 가쁘지 않게 천천히 움직이면 갈 만합니다.
길을 가다보면 말을 끄는 현지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많이 계시므로...
힘들겠다 싶으면 말을 타고 올라도 됩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걸어야지 말은 무슨~
하는 생각에 가격은 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요 그땐 그랬지;;;
사람을 태웠든 말았든,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상관없이 거의 날아다니는 현지인의 위력!
저 멀리서 풀을 뜯는 알파카 무리도 보이고...
양떼는 바로 근처를 지나가네요. 그리고 이제 녹지 않은 눈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춥다고 껴입었던 옷들을 벗기 위해 잠시 멈춰 올라온 길을 돌아보니 산세가 장관이군요.
하늘 위에서 보면 알록달록 사탕 한 알에 몰려든 개미 행렬 같을라나~?
경사가 점점 급해지기 시작하면서 쉬는 주기는 점점 짧아집니다.
머리는 어질어질, 다리는 후들후들, 걸음을 100보는 커녕 50보 옮기는 것도 힘에 부치니...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을 위해 쿠스코에서 가져온 비장의 아이템, 산소 캔을 꺼냈습니다.
이름 그대로 산소를 채워넣은 캔으로 산소 농도 저하에 따른 호흡 곤란을 완화시켜줍니다.
...라는 건 그저 잠깐의 순간 뿐. 금방 도루묵이라 응급용이 아니라면 별 의미 없는 걸로. -_-
드디어 저 위에 목적지가 보이거나 말거나, 머릿 속엔 운동 부족에 대한 후회 뿐.
주위엔 포기하고 주저앉은 사람, 심지어 고통이 심한지 우는 사람도 있더란..;;
마지막 구간은 정말 오기로 올랐던 것 같습니다. 코스 오른쪽의 줄은 잡고 가라는게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뜻이라고. 현지인들에겐 신성한 구역이라는 듯.
땅과 발만 보며 악으로 오르다보니 어느 순간 갑자기 무척 많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뒤를 돌아보니...
다 왔군요. 무지개의 산 비니쿤카.
험악한 산들 사이에 끼어서 그저 예쁘장한 언덕으로 보이지만 자체로 해발 5,200 미터인 산.
특유의 색상은 다양한 광물 성분 때문인데, 광물을 다량 함유한 지층이 수직으로 세워져
지표까지 드러나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네요.
이를테면 흰색은 석영, 붉은색은 철, 녹색은 마그네슘, 노란색은 황, 기타등등... 같은 거죠.
산 위에는 콘도르 무리가 앉아있었는데 날아오르거나 내려앉는걸 찍고 싶어도 손가락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아 무리무리. 능선 위라서 그런지 바람과 추위가 어마어마~
일전에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사진들을 보며 뽀샵질이나 후보정 꽤나 한 걸로 생각했구만
정말 이 광경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지니 적잖이 당황스럽습니다. 올라온 보람이 있어! ㅠㅠ
알고 맞춰서 온 건 아닌데 선명한 색상을 보려면 겨울에 건기인 8월이 가장 좋다네요.
그 와중에도 얼은 손가락을 가지고 패닝 한 바퀴!
좀 쉬면서 숨을 고르고 나자 이제야 주위가 좀 보이기 시작합니다.
올라온 반대편 등성이의 오솔길은 아마도 피투마르카 트레일이겠죠?
그 뒤로 멀리 또 높이 보이는 순백의 봉우리는 해발 6,385 미터의 아우산가테(Ausangate).
5천 미터도 숨이 깔딱깔딱 하구만, 저기가 대체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곳이야??
코스코 부근 일대의 최고봉으로 잉카 신화에도 등장한다 캅니다.
줄을 따라 저 멀리 산을 타고넘는 트레일 코스도 있는 모양이지만 저에겐 무리무리.
분명 올라온 길이구만 전혀 다르게 보이네요. 내가 이런 곳을, 이런 산을 올랐단 말이냐~
히말라야 트레킹이라도 가지 않는 이상 제가 해발 5천 미터를 찍을 일은 다시 없겠죠.
아시아의 관광객이 그러거나 말거나 풀 뜯기에 여념이 없는 알파카들.
눈 쌓인 높은 벽을 배경으로 자연 그대로의 초지에서 말을 끄는 현지인이라니,
마치 무슨 오지 탐사 프로그램의 카메라맨이라도 된 기분이네요.
잠깐(?)의 산행을 위해 귀중한 하루를 보람있게 쓰고, 다음은 정말(!) 쿠스코입니다.
쿠스코(Cuzco 또는 Cusco, 케 Qusqu)라는 이름은 왕왕 '배꼽'을 뜻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것은 과거 잉카 사람들이 쿠스코를 세상의 중심(배꼽)으로 여겼다는게 잘못 전해진 것이고
케추아어, 아니 아이마라어의 기원은 도시 신화에 나오는 'qusqu wanka(올빼미의 바위)'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잉카 이전 킬케(Killke) 문명의 도시가 10~12세기 경까지 존속되었고
13세기 잉카의 영향권에 들어간 이후 스페인에게 점령되기까지 제국 수도의 영광을 누렸죠.
남미의 여느 고지대 도시들처럼 고원 지대로 둘러싸인 분지에 건설되었기에 도시의 확장이
골짜기를 따라 진행되다보니 동서로 길쭉한 모양이 되었습니다.
시는 해발 3,400 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므로 고산 지대가 처음이라면 미리 준비하는게 좋겠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빠오고 맥박이 올라가며 약간 어지러운, 어제 술이 덜 깬 느낌??
엄.. 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술 안먹고도 헤롱헤롱한 기분이니 오히려 좋을... 리는 없겠지???
인구는 2017년 기준으로 43만 명 가량이지만 연간 방문하는 관광객이 2백만 명쯤 됩니다.
거기에 저도 머릿수 하나 보탠 셈이네요.
관광객들이 주로 머무르는 역사 지구(Centro Histórico)의 경우 시가지의 역사가 깊다보니
좁은 골목과 같은 길들과 돌로 포장된 바닥 등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콕 집어 말하자면 스페인의 구 수도이자 요새 도시인 톨레도(Toledo)와 매우 닮은 인상이죠.
호텔들이 밀집한 넓은 도로가 이 정도이고 대부분의 골목은 차 한대가 겨우 빠져나갈 정도여서
오가는 자동차들의 대부분은 소형차 내지 경차들입니다. 이렇게 출근 시간이면 아주 난리;;;
지금은 매끈한 기아 차들이 많지만 왕년에는 중고로 넘어온 티코가 그렇게 많았다는데,
그 티코들은 이제 지방으로 돌려져 먼저 들린 이카(나스카)에서 정말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별별 마개조를 한 골때리는 티코(혹은 스즈키 알토)들이 많았구만 사진찍을 틈이 없었..ㅠㅠ
이제 역사 지구를 중심으로 쿠스코 시내를 돌아보기로 합니다.
스페인의 여느 도시들처럼 시가지의 중심에는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이 있습니다.
잉카 시대부터 이어져온 광장이라지만 광경은 물론 많이 바뀌었겠죠.
광장 중앙의 분수대 위에 서있는 상은 9대 황제인 파차쿠티(Pachacuti Inca Yupanqui).
마추 픽추를 찾아갈 때 무척 많이 언급되었던 이름이죠? 사실상 도시 국가의 하나였던 잉카를
정복 전쟁을 통해 끌어올려 우리가 알고있는 '잉카 제국'의 형태로 만든 장본인입니다.
게임 문명 시리즈에서도 잉카의 지도자로 나온다는데 그건 제가 해보질 않아서 잘 모르겠고,
어쨌거나 잉카 역사에서의 위치는 우리나라 조선의 태종 + 세종 쯤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파차쿠티는 확장된 영토를 네 지방(친차수유, 쿤티수유, 코야수유, 안티수유)으로 나누고
확립된 자신의 제국을 네 개의 땅이라는 뜻의 타완틴수유(Tawantinsuyu)라 칭했습니다.
스페인을 통해 알려진 '잉카'는 사실 귀족 계급(황제는 '사파 잉카')을 뜻하는 말이었죠.
광장 동쪽에는 잉카의 창조신 위라코차(Huiracocha)의 사원 키스와르칸차(Kiswarkancha)
를 허물고 세워진 쿠스코 대성당(Catedral del Cuzco)가 있고...
광장 남쪽에는 파차쿠티의 손자이자 잉카 전성기를 통치했던 우아이나 카팍(Huayna Capac)
의 궁전을 허물고 세워진 예수회 성당(Iglesia de la Compañía de Jesús)이 있습니다.
이 성당들에 대해 더 알고싶으시다면 제 블로그의 포스트를 참고하세요. ^^;
광장 뒤로 언덕 위까지 빼곡하게 집들이 들어차있는걸 보면 아 여기가 남미로구나~ 싶죠.
광장에서 태양 거리(Av El Sol)를 따라 500 미터쯤 내려오면 도로변에 너른 풀밭이 있는데
그 뒤로 우뚝 서있는 건물은 산토 도밍고 성당(Convento de Santo Domingo) 입니다.
그런데 성당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부분이 뭔가 좀 심상치 않죠?
윗쪽 성당 본 건물의 전형적인 유럽식 벽돌 축조와 달리 벽돌이라기보다 큰 덩어리의 돌에다
금을 그어놓은 듯 빈 틈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이것은 잉카 시대의 건축물입니다.
철기 도구를 제조할 수 없었던 잉카는 돌의 갈라진 틈에 쐐기를 박아넣고 물을 통한 수축과
불을 통한 팽창을 반복하며 쪼갠 뒤 벽돌이 들어갈 자리에 딱 맞도록 모래로 연마함으로써
벽돌 사이에 접착제(모르타르)가 필요없는, 벽돌만으로 이루어지는 건축을 추구했습니다.
즉 어느정도 규격화된 벽돌을 요령껏 쌓는게 아니라 벽돌 하나하나가 전부 맞춤 제작인 거죠.
그러니 당연하게도 이런 건축물을 만드는 데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동력, 자금이 요구되었고
그를 통해 만들어진 칼같은 결과물은 만든 이(주로 황제)의 권력과 재력의 상징이었습니다.
물론 서민들까지 이런 방식을 고수할 수는 없으므로 건물의 주인이나 용도에 따라 건축물의
완성도가 달라지는건 마추 픽추에서 이미 보아온 바이나, 역시 수도의 것은 확실히 다르네요.
그 중에서도 태양의 신 인티에게 바쳐진 코리칸차(Coricancha, 케추아어로 황금의 사원)에는
그 중요성과 상징성으로 미루어 당시 가능한 최고의 기술과 노력을 쏟아부었음이 확실합니다.
벽돌을 쌓아 만들었지만 석재들이 서로 맞물려 하나의 커다란 바위처럼 조직된 코리칸차는
1650년과 1950년의 큰 지진에서 위에 지어진 산토 도밍고 성당이 일부 무너지는 와중에도
별다른 피해 없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피사로를 비롯한 콩키스타도르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황금의 사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원의 곳곳은, 심지어 외벽 위까지도, 다량의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잉카의 많은 건물들이 파괴된 뒤 새 건물이 세워지거나 잔해가 되어 세월 속에 흩어지는 동안
코리칸차는 산토 도밍고 성당 및 수도원의 토대 및 중정이 됨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방과 벽들을 보면... 너무나 매끈한 나머지 나무 합판에 그린 그림이 아닐까
싶을 정도죠. 건물 모형을 이렇게 만들면 현실성이 없다고, 무성의하다고 욕을 먹을텐데~
이 방도 원래는 이렇게 황금으로 덮이다시피 했을 걸로 추측됩니다.
스페인 세력과 처음 조우하여 해프닝 끝에 사로잡혀버린 13대 황제 아타우알파(Atahualpa)가
해방을 위한 몸값으로 자신이 잡혀있던 방을 모두 채울 만큼의 엄청난 황금을 제안했을 때
그 황금의 대부분은 코리칸차에서 수집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피사로는 그걸 모두 녹여버렸죠.
코리칸차는 또한 하늘의 별을 보며 점을 치는 천문 관측의 장소이기도 했는데
내부 한 켠에는 당시 잉카 사람들이 보았던 밤하늘의 은하수를 나타낸 그림이 걸려있습니다.
밝은 별들을 이어 별자리로 만들었던 서구와는 반대로 은하수 속의 어두운 부분을 사람이나
동물로 보았다는게 재미있네요. 이 때는 이걸 그냥 가볍게 보았구만... 며칠 뒤 그럴 줄은..;;
파차쿠티, 투팍 잉카 유판키, 우아이나 카팍 3대에 100년이 채 안되는 전성기가 끝나자마자
황위 계승을 놓고 다툰 내전과 스페인의 침략이 겹쳐 잉카 제국은 순식간에 몰락하였습니다.
아타우알파의 처형 이후 괴뢰 황제로 세워진 망코 잉카 유판키(Manco Inca Yupanqui)가
쿠스코를 탈출하면서 입장을 뒤집어 스페인에 대한 결사 항전을 외치게 되는데~
망코 잉카 유판키의 이야기는 조금 뒤에 다시 이어가기로 하고,
쿠스코 시내에는 지금도 잉카 시대의 돌담이나 도로가 남아 그대로 사용하는 곳이 많습니다.
한 골목에는 잉카의 변태(...)에 가까운 돌 끼워맞추기를 보여주기로 유명한 12각 돌이 있죠.
저렇게 톱니처럼 물려놨으니 어지간한 지진이 닥친들 꿈쩍할 리가. -,.-
자 이제 쿠스코 북쪽으로 올라가보기로 합니다.
계단과 경사로를 따라 계속 계속 올라갑니다.
이렇게 높은 곳에도 숙박 시설이 많네요. 사이사이 차 한대 지나는 골목도 섞여 완전히 미로~
주거 지역을 모두 통과하여 산 크리스토발 광장(Plaza San Cristobal)에 이르렀습니다.
기념품을 파는 저 원주민 아주머니(할머니?)는 간이 베틀(?)로 직접 천을 짜고 계시더란;;;;
여기도 충분히 전망이 좋지만 우리는 더 올라가야 합니다.
여기가 해발 3,700 미터였던가, 쿠스코에 도착한 첫날을 생각하면 결코 쉬운 높이는 아니구만
그래도 며칠동안 적응하고 비니쿤카에서 5천 미터도 찍고오고 해서 그렇게 어렵지는 않게...
목적지인 삭사이와망에 도착했습니다.
쿠스코에서 왕왕 보이는, 사진에서처럼 색동 실로 치장한 라마나 알파카를 데리고있는 사람은
촬영 행상(?)을 하는 분들입니다. 같이 사진 찍으면 돈을 내야 하죠. ^^
화물 운반과 고기를 위한 라마와 털을 얻기위해 기르는 알파카는 모두 낙타의 친척 뻘인데
상대적으로 덩치가 크고 낙타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털이 억세보이면 라마,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고 머리와 얼굴까지 북실북실한 털에 덮여있으면 알파카로 보면 됩니다.
쿠스코의 북쪽 언덕 위에 세워진 요새이자 사원인 삭사이와망(Sacsayhuamán)은
케추아어로 만족한(배부른?) 매, 혹은 매의 둥지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잉카의 전설에는 투팍 잉카 대에 퓨마의 모양을 본뜬 쿠스코의 머리로 지었다고 전해오지만
고고학적 조사 결과 인간이 손댄 흔적은 기원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지금 남아있는 부분도
11세기 킬케 문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13세기 잉카가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는군요.
쿠스코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는 커다란 십자가가 세워져 있습니다. 아 스페인 쫌~
수도에 인접한 대형 성채라는 점에서 우리나라로 치면 남한산성과 비슷할 수도 있겠네요.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이었다는 것까지 포함해서.
서쪽 끝에는 무유크마르카(Muyucmarca)라는 거대한 탑의 기단만이 남아있습니다.
삭사이와망에는 신전과 세 개의 탑이 있었다지만 모두 파괴되어 현존하는 것은 없습니다.
앞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스페인 세력에 온갖 굴욕을 당하다 쿠스코를 탈출한 망코 잉카는
단시간 내에 최대 20만 명에 이르는 병력을 소집하고 쿠스코를 포위하기 시작합니다.
포위망의 핵심은 당연히 이 삭사이와망이었으나 이곳이 중요하기는 스페인도 마찬가지여서
결국 이곳을 두고 양측이 정면으로 격돌하게 되었죠. 처절한 전투 끝에 수많은 잉카인들의
시신을 남기고 요새는 결국 넘어갔으며 쿠스코를 둘러싼 전쟁은 장기전으로 변화합니다.
일단 정상에서 패닝 한 바퀴 돌리고~
지리적 위치상 쿠스코를 향한 남쪽은 절벽이므로 성채로서의 벽은 북쪽으로 늘어서 있습니다.
스페인 세력에게 점령된 후 파괴되어 이렇게 보면 을씨년스러운 폐허같지만...
이 돌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거죠. 저 뒤에 사람과 옆의 돌을 비교해보면 크기가 대충?
완전히 스페인의 식민지로 떨어진 뒤 삭사이와망의 건물과 탑, 벽 등의 건축물은 해체되어
쿠스코에 세운 새로운 성당과 건물들의 자재로 사용되었습니다.
성채의 기반을 이루었던, 너무 크고 무거워서 차마 옮기지 못한 거석들만이 지금까지 남았죠.
맞은편의 바위 언덕에 오르면 톱니같은 돌기 구조가 3층으로 쌓인 성벽이 잘 보입니다.
이런 지리적 잇점과 수십 배 이상의 숫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고작 수 백의 콩키스타도르에게
패퇴한걸 보면 당시 양쪽 세력 병장기의 격차는 대체 얼마나 컸던 것인지..;;
쿠스코를 포위하고 대치한지 10개월, 망코 잉카는 갈수록 불리하게 전개되는 전황 속에
승산이 없다 판단하고 군대를 해산한 뒤 안데스 산맥 깊숙한 빌카밤바(Vilcabamba)로 이주,
(왕왕 에콰도르의 동명지로 오인되지만, 쿠스코에서 북서쪽으로 150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
네오 잉카를 세우지만 1572년 손자인 투팍 아마루(Túpac Amaru)가 결국 잡혀 처형되면서
잉카 제국은 완전히 멸망하였습니다.
눈을 왼쪽으로 돌리니 아까 걸어올라온 요새의 동쪽 끝 옆으로 언덕이 하나 있고...
그 위에는 크고 하얀 예수의 상이 서있습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유명한 거상도 있지만 남미의 여느 도시들은 이런걸 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듯하더군요. 당신의 이름 아래 뿌려진 수많은 피들을 대체 어떻게 보셨을런지.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러흘러 이젠 남미 출신의 교황을 맞게 되었으니 역사의 순환이란 참~
예수상의 앞에서 내려다본 쿠스코 시내. 아르마스 광장과 두 성당이 잘 보이네요.
이제 다시 내려갑니다. 올라갈 때는 구불구불해서 몰랐구만 빠른 길로 가로질러 왔더니
정말 가파른 계단을 끝도 없이 내려왔..;;
여기가 무슨 성당이었더라 기억이 안나네요. 작은 성당인데 별다른 건 아니고...
옆에 세워진 성모자상이 원주민을 본뜬 모습이라 인상적이었거든요.
국내의 성당들을 돌아다니면서 한국적인 모습을 표현한걸 많이 보았기에 더욱 반갑습니다.
여기는 잉카 박물관...이었으나 시간 관계상 들어가보지 못하고 패스. ㅠㅠ
잉카의 보물들을 전시한 박물관도 있나 싶어 봤더니 귀금속 공예품 판매점. -ㅁ-
파차쿠티의 궁전터인 쿠시칸차(Cusicancha)는 유리벽을 둘러치고 공사중인 듯?
산 프란시스코 광장(Plaza San Francisco)을 지날 즈음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산 페드로 시장(Mercado Central de San Pedro)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현지인보다는 관광객 상대이긴 하지만 기념품부터 먹거리까지 어지간한건 다 있더라구요.
같은 물건이라도 리마보다는 훨씬 저렴하니 구입할 게 있다면 이쪽에서 찾아보는게~
잔돈이 안되어 즉석에서 갈아주는 과일 주스를 한 잔만 시켰는데 두 잔을 줍니다.
얼마 안 되는 동전이라도 마저 건넸더니 한사코 받지 않던.
여기 뿐만이 아니고, 이번 여행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십중팔구 무척 친절한 편이었네요.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최대한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기색이 역력했거든요.
쿠스코에서 먹은 현지식이라면... 먼저 치차론(Chicharrón).
쉽게 말해 돼지고기(물론 다른 고기도 가능) 튀김인데, 물론 튀겨서 맛없는건 없지요!
다만 간이 좀 강했는지 먹으면서 잉카 콜라를 엄청 들이켰던~
다음으로 먹었던건 로모 살타도(Lomo Saltado) 입니다.
쇠고기(등심)와 감자, 양파, 토마토 등등을 양념에 넣고 볶은 요리인데, 꽤나 맛이 좋지요~
물론 여기서도 잉카 콜라는 필수! 정말 페루에 있는 동안 물보다 잉카 콜라를 더 마신 듯?
페루의 술이라면 단연 피스코(Pisco)가 가장 유명합니다.
이카 지방을 오갈때 스쳐지났던 피스코 시(파라카스 바로 위)가 주산지였기에 붙은 이름으로
일단은 포도주를 증류한 브랜디인데 처음 만들 때 오크통 대신 원주민의 항아리를 사용했기에
통의 향이나 색이 배어들지 않아 무색 무취...는 아니구나, 종류에 따라 포도향이 나긴 합니다.
주로 과즙과 설탕, 계란 흰자 등을 섞어 피스코 사워라는 칵테일로 만들어 먹는데
맛이 아주 좋더라구요. 게다가 만든 사람이 피스코를 듬뿍 넣었는지 한 잔에 취해버렸~~
마시고 나오다 벽에 재미있는 그림이 있길래 찍었습니다.
킹(마이클 잭슨) - 퀸(프레디 머큐리) - 잭(프린스) 이라니, 센스가 좋네요.
이렇게 마지막 밤이 오고, 페루 여행도 이렇게 끝났습니다.
끝났다구요.
...에에이, 또 이어집니닷!!
멋진 수기 잘 보았습니다. 남미는 직장인인 제가 가기에 거의 불가능한 지역이긴 한데요. 덕분에 좋은 사진 많이 보고 갑니다~~
저도 5년 존버한 끝에 장기 휴가 잡을 수 있었습니다. 기다리면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정말 멋지네요~ 부러워요 ㅠㅠ 근데 남미는 항상 치안이 문제인데 페루는 치안 괜찮나요?
남미 국가들 중에서는 가장 좋은 편입니다. 관광지 위주로 다닌다면 거~의 문제될게 없습니다. ^^
게시판 들어와서 썸네일보고 이게 뭐지?????????하면서 들어왔네요 넘 이쁜 풍경입니다 좋은 사진 감사해요ㅎㅎㅎ
저도 설마~ 사진빨이겠지~ 했더니 정말 눈앞에 저런 풍경이~~!!
와 저도 쿠스코 갔었는데 저런 곳이 있는 줄....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관광지화 된게 비교적 최근인데다 왕복하는데 하루를 거의 다 쓰다보니 일정이 빡빡한 분이나 패키지 상품에는 넣기가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
나중에 기회가 되면 남미여행 이나 아프리카여행 한달정도 갔다고오싶네요 아프리카사파리 빅토리아폭포 나미브사막 남미 마추픽추 우유니 아과수폭포 파타고니아 가고싶네요
페루 - 볼리비아 - 칠레 - 아르헨티나 - 브라질로 돈다 치면... 한 달이면 중요한 곳들은 대충 다 찍을 수 있겠네요. 전 다음에 칠레 - 아르헨티나로 다시 가보려구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
사진으로도 너무 기분 좋네요. 감사합니다
기분 좋으셨다니 제가 감사합니다 ^^
저 변태같은 12각돌도 알고 보면 공밀레에 불과할 뿐...
당시 돌 연마공은 정말 도 닦는 기분이었을 듯;;;
지금 처럼 연장이 좋은 것도 아니고, 모래와 물에 적신 베로 접합부를 열 나게 문 질렀다죠.(...)
나무 쐐기로 돌 쪼개는거라면, 물을 부을 때가 팽창입니다. 마르면 다시 수축...
아하 열팽창이 아니라 부피팽창이로군요! 저도 주워들으며 긴가민가 했었는데 감사합니다 ^^
와.. 잘보고갑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아앗 시계 이야기 매번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봤습니다. 경치 정말 좋네요. 매일 톱니바퀴 생활 탓에 몰라서 그렇지 세상은 상상이상으로 넓은 듯.
나름 조금은 돌아다녔다 생각했구만 남반구는 또 다른 세상이네요. 분발해야겠습니다!?
저는 가서 맛있는거 사먹고 가는데마다 가이드 고용해서 다녔는데..ㅋㅋㅋㅋ 정말 엄청난 글이군요. 스페인어 전공에 석사까지 하면서 배운 지식보다 더 깊은 지식이 이 글 하나에 들어있네요.. 많이 배우고 감탄하면서 봤습니다. 대단한 글 잘봤습니다.
제 추천을 받으소서
무슨 말씀을. 그저 어깨너머로 주워듣거나 웹에서 수집한 이야기들일 뿐입니다. ^^
하늘과 산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사진을 보니 기분이 상쾌해지고 좋네요 ㅎㅎ
실제로 보면 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입니다. 아무래도 초현실적인 광경이라..^^;
보면서 혼자 계속 우와~ 우와~ 하면서 봤네요.
부족하나마 어느정도 전달이 되었을까요? 저도 현지에서 그렇게 감탄사만 나왔더랬..^^
멋있네요. 저도 십년전에 대학원때 아내와 함께 쿠스코와 마추픽추에 다녀왔어요. 그때는 사진에서와 같은곳은 잘 몰라서 바로 티티카카호수로 갔었죠. 티티카카만 가도 어질하던데 해발 5000m면 정말 힘드셨겠네요.
현지인들만 아는 정도였다가 아우산가테 등반가들에게 재발견되어 관광지가 된 건 최근이라고 합니다. 5천미터 백신을 세개 맞았더니 이후 다른 지역에서는 고산증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효과가~
색다르네요.. 잘 봤습니다!
사람 사는데 다 비슷하지 뭐 얼마나 다르겠어 했구만, 확실히 색달랐습니다. *ㅁ*
등산객은 많은데 깔끔해 보이는군요.
원주민들이 계속 관리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삶의 터전이면서 성역이기도 하고, 관광객 상대로 수입도 얻고?
사진과 글 정말 시간가는줄 모르고 재밌게 보고 갑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
감사합니다. 조만간 꼭 가보게 되실거에요~
무지개떡 같이 생겼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게요ㅋㅋㅋ 제가 페루 갔을 때는 비니쿤카(Vinicunca) 목록에 다들 열일했나봄 ㅋ 페루 너무 좋아하는데 꼭 다시 가야할 이유 주셔서 고마워요. 사진도, 글도 너무 좋아서 추천 하나만 할 수 있다는 게 아쉬워요 ㅋ
제가 페루 갔을 때는 비니쿤카(Vinicunca) 여행 목록에 아예 없었다구요 ㅋ
으악~ 정말 색상도 배치도 똑같네요~!!
전 예전에 한 번 기회를 놓쳐서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는데 최소한 비니쿤카에서만은 그게 역전된 셈이었네요. 언젠가 꼭 재방문 성사되길 기원합니다. ^^
유럽, 북미 위주의 여행만 다니다 이런 멋진 글을 보면 저도 한번쯤은 아프리카나 남미 같은 곳으로 여행을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듭니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생각만으로 끝나지만.. 멋진 풍경이네요!
저도 유라시아 위주로 다니다 두번 갈 거 한번에 묶은 셈 치고 남미 시도해봤는데... 충분히 보람 있었습니다. 이제 다음번은 칠레-아르헨티나냐 아니면 아프리카로 넘어가냐 망상만 돌리고 있네요. 물론 언제 구체화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서도..--;;
페루는 정말 한국이랑은 다른 비주얼이라 눈이 확 끌리네요 ㅋㅋㅋ 비니쿤카는 왠지 팔레트에 물감 여러개 풀어서 섞인듯한 느낌이네요! 예뻐요 ㅋㅋㅋㅋ
중국에도 칠채산이라고 비슷한 지형이 있다고 하는군요. 거긴 물감을 던져버린 걸지도..^^
저도 한 20일 남미여행 마치고 3일전에 귀국했습니다. 페루 여행이 이 포스팅보니 또 생생히 떠오르네요. 비니쿤카는 다른곳 고산 적응하기도 전에 가장 먼저 갔던 곳이라 유난히 더 힘들었어요. 쿠스코 3천미터 언저리에서 바로 5200미터 로 점프해버리니 ㅋㅋㅋ 그래도 올라가는 코스의 풍광이 너무 좋아서 만족했던 기억이 났네요. 놀랐던것 비니쿤카나 관광지로 개발된게 불과 5~6년전이라고 하더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