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들도 제일 많이 피폭된 오우치 히사시가 들어왔을때는 제일 많이 피폭된 팔이 붉게 변한것 빼고는 괜찮다고 생각했었음
실제로 그분이 침착하기도 하고 팔을 제외하고는 멀쩡한데 비닐로 완전 감아져서 들어와서 본사람들도 멀쩡한 사람을 왜 저렇게 데려가나 생각하기도 했다고함.
근데 문제는 베글에 올라왔었던 골수세포의 완전히 파괴된 염색체를 보고난 뒤부터 였음.
그걸 봤던 혈액종양 내과의 히라이 하사마루도 오우치와 같이 온 피폭자들이 고통속에 끝날거란걸 알았다고 함.
이후에 혈액내의 백혈구와 적혈구가 전부 죽어버리고 피부세포는 생성되지 않아서 갈라지고 거즈를 붙였던 테이프와 피부가 같이 떨어지는 수준이었음.
이때도 당연하지만 진통제들은 투여중이었는데 이게 실효과를 발휘했는지는 알려지지않음.
11일차에는 오른쪽 폐가 고장나기 시작해서 의료인들한테 자기는 기니피그가 아니라고 외치기도 하고 어차피 못고치는 거 맞지않냐고 말하기도 했음.
그러다가 원래 구강을 통한 흡수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대장을 통한 흡수를 하고 있었는데 위와 같은 장기들도 완전히 피바다가 되서 그것마저도 실패함.
이후에 팔을 절단해야 할것 같다고 러시아 전문가가 이야기를 했는데 절단면의 회복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절단하진 않았음.
최대한 회복시켜보려고 오우치의 여동생으로부터 조혈모세포 이식도 했고 실제로 백혈구 수치가 정상수치까지 올라오기도 했었음.
하지만 체내에서 발생하는 방사능으로 인해서 이식한 세포들 또한 염색체가 완전히 파괴되고 상황은 다시 나빠지게됨.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인공호흡기를 폐에 부착하고 수혈도하고 수분 공급도 하고 임상실험하던 약물도 투여하고 여동생이 기증한 피부와
다른 대학에서 배양된 피부들을 이식했는데도 체액이 흘러나와서 전부 실패하게 됨.
이후 피폭 83일 3번째 심정지가 왔을때 가족들에게 통보한 후 소생조치를 하지 않았고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함.
첫번째 심정지가 왔을때 의료진중에는 이제 오우치씨가 쉴 수 있는건가 라고 생각한 의료진도 있었다고 하니 당시 상황은 의료진들한테도 악몽이었을거임.
완치의 가능성이 없는 치료행위는 고통의 연속일뿐 의미가 없는것 아닌가 하는 고뇌도 하기도 했었음.
물론 이전에 있었던 로스앨러모스의 핵실험 사고를 발생시킨 루이스 슬로틴같이 의료진이 가망이 없다고 판단해서 고통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안락사에
가까운 방식을 취하기도 했음. 이런 사건을 예로 들어서 의료진들에게 연구자료로써 오우치와 시노하라(오우치와 같이 피폭된 인물, 211일차 사망)를 취급한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음. 이사건을 취재하고 만들어진 책 83일의 저자도 병원측에 분노를 느낀다라고 했고.
의료진들도 치료를 위한 회의를 하면서 가능성이 희박한 대책도 거론하기도 했지만 날이 갈수록 낮아지는 가능성 때문에 자괴감에 빠졋다고 함.
단순히 모르모트 취급한 건 아닌데 단편적으로 보는 애들이 많더라 하긴 본문에 딱히 그에 대한 정보가 없긴 했지만
단순히 모르모트 취급한 건 아닌데 단편적으로 보는 애들이 많더라 하긴 본문에 딱히 그에 대한 정보가 없긴 했지만
의료진들이 생체실험하려고 치료를 하던 것도 아니고 매번 약물 조정하고 방법 바꾸면서 더 나아지겠지 제발 하면서 투여하고 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