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말 잉글랜드 군사학계에서 최대 논쟁은 장궁 대 총의 싸움이었다.
당시의 실전을 맛본 로저 윌리엄스 경, 바나비 리치, 윌리엄 개러드 같은 자들은 장궁을 “민병대의 무장 정도에나 쓸모 있을” 기물로 취급하거나 “화승총의 수효가 부족할 때에만” 같이 운용할 보조 무기로 보았다.
장궁 폐지론자들은 머스킷 총이 가장 뛰어난 궁수보다 몇 배는 긴 사거리를 가지며, 엄폐물 뒤에서도 보다 쉬이 사격할 수 있고, “어림짐작이 아니라 제대로 된 산술을 통하여” 겨냥하고, 보다 맞으면 초래하는 피해가 컸으며, “비록 장궁이 더 빠른 사격이 가능한 건 사실이지만 머스킷에도 파편탄이나 한 번에 많은 탄환을 장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총기 옹호론자들의 주장은 당대에도 “더 숫자도 많았고, 더 설득력 있었다.”
극렬 총 옹호론자 바윅의 예시를 들자면, 자신 또한 활을 어릴 적부터 배웠음에도 총을 쥐어 주니 고작 4주 만에 화승총 사용법을 터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식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때의 장궁 옹호론자들 중 가장 극성인 이들도 화승총 “대신” 활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위와 같은 논쟁에서 총기 옹호론자들이 결국 승리해서 1595년에 공식적으로 장궁이 영국군에서 퇴출됨
배우는게 쉽다는게 너무 치명적인 차이인듯
움직이는거 맞추려면 최소 5년은 꼬라박아야 하는 활......
화력 자체가 명백히 차이나고, 받침대를 쓰는 대형 머스킷이라면 사거리도 어마무지하니...
요약하자면 더 쉽고 더 멀리 가고 더 아프다는 거지?
이후 식민지에서 박박긁어와서 귀중한 화약 한발이라도 더 쏴볼수있는 영국 뎃프픙 엘랑은 항복이나 하는데스
총쏘는게 늦어졌다고 하기에는 임진왜란 때 총이 들어오고 30년도 지나지 않아서 군대의 대부분이 화승총병으로 바뀔 정도였음.
당징 우리나라도 활의 민족이라 할정도로 활 못 쏘는 사람이 없는 수준이었지만 총병(포수)를 대량으로 우용함
영국과는 완전히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조선에서는 염초 광산 없이 뒷간 흙을 닥닥 긁어모아 화약을 제조했기 때문에 화약 제조단가도 높고 비축량이 많지 않았는데도 전투원의 대다수를 화승총병으로 전환시켰음. 화약이 비싸더라도 대량 도입해야할만큼 매력이 있는 무기였다고 할 수 있음.
어린 애가 항우장사를 쓰러뜨릴 힘을 주는 총
그거 사실인가 실험해본 기록들 보면 다 명중률 높았더라 명중률이 낮았던 이유는 대부분 신병들이라서 그랬데
배우는게 쉽다는게 너무 치명적인 차이인듯
거기다 화력 차이 자체가;;;
ㅇㅇ 손에 쥐어주기만 하면 꼬맹이도 1~2부만에 명사수 됨
화력 자체가 명백히 차이나고, 받침대를 쓰는 대형 머스킷이라면 사거리도 어마무지하니...
움직이는거 맞추려면 최소 5년은 꼬라박아야 하는 활......
그건 활로 스나핑을 하는 수준이야기고 일제사로 화망 만드는 수준이면 난이도가 내려가기는 함... 물론 지정된 구역안에 활을 쏴넣는 수준에 도달하는것도 상당한 양의 훈련이 필요하지만
이후 식민지에서 박박긁어와서 귀중한 화약 한발이라도 더 쏴볼수있는 영국 뎃프픙 엘랑은 항복이나 하는데스
요약하자면 더 쉽고 더 멀리 가고 더 아프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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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웹-8412768129
영국과는 완전히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조선에서는 염초 광산 없이 뒷간 흙을 닥닥 긁어모아 화약을 제조했기 때문에 화약 제조단가도 높고 비축량이 많지 않았는데도 전투원의 대다수를 화승총병으로 전환시켰음. 화약이 비싸더라도 대량 도입해야할만큼 매력이 있는 무기였다고 할 수 있음.
물소 뿔+힘줄 구하기 vs 염초 구하기ㅋㅋ
활은 정말 만들기도 어렵고 유지보수도 까다롭고 숙련병 양성도 힘들엉
심지어 전열보병 시기 전인 근세의 화승총은 탄알과 총열 사이의 유격도 적어서 장전하기에는 뻑뻑해서 느렸지만 명중률은 더 보장 되었다더군. 그래서 명과 조선이 새를 맞힐 수 있을 정도라고 '조총'이라고 불렀던 거고
고도로 훈련된 궁병대는 안그래도 유지가 힘든 상비군 중에서도 최정예인데 총은... 배우기 쉬우면서 동시에 정예병을 육성했을때 포텐셜도 뒤지지 않으니 자연스레 도태될 수 밖에 없었을듯
서양 유럽쪽은 활이 훨씬 일찍 도태되었네...
당징 우리나라도 활의 민족이라 할정도로 활 못 쏘는 사람이 없는 수준이었지만 총병(포수)를 대량으로 우용함
대충 임란 초기때 총맛을 뼈져리게 겪어봐서 그럴걸?
그러니까 꼭 고인물들이 신규컨텐츠 찾아가는 거 같다
걍 원거리 특화라...
그런데 전열보병이 대세가 된 게 머스킷의 명중률이 보장되는 사거리가 안나와서 최대한 가까이 쏘려고 기싸움한 거 아니었음? 오히려 장궁을 조진건 대포들 아니었나
야자와 니코니코
그거 사실인가 실험해본 기록들 보면 다 명중률 높았더라 명중률이 낮았던 이유는 대부분 신병들이라서 그랬데
위력을 극대화 하기 위해 열을 맞춤
그 명중률도 장인인 깍던걸 공장으로 대체된후 많이 나아졌고 애초에 총알은 전방으로 날라가다보니까 유효 사거리 내에서는 그리 나쁜명중률도 아니였다함
건들건들이라는 밀덕튜브 보니까 강선 머스킷으로 무장한 정예병들은 산병전했다고도 하던데
전열보병이 나오면서는 장전 편의성을 더 중시해서 탄과 총열 간의 유격이 커져서 장전은 더 빨라졌는데 탄이 총열에 밀착이 되지 않아서 탄도가 불규칙했음.
그랬대
라이플은 궁병이 완전히 사라진 18세기 이후의 이야기지
근데 라인전시대에 있었던 정예 산개전연대였으니까 ㅇㅇ 정예병은 별도로 라인배틀말고도 다른걸했다고말하려는거
저것때문에 우리나라는 진짜 누구나 활을 잘쏴서 총쏘는게 많이 늦어짐 나중에 총을 보급하고도 다들 아니 활이 쏘기 더 쉽고 맞추기도 쉬운데 왜 자꾸 총으로 바꿀려고하지? 할정도
멍멍왈왈
총쏘는게 늦어졌다고 하기에는 임진왜란 때 총이 들어오고 30년도 지나지 않아서 군대의 대부분이 화승총병으로 바뀔 정도였음.
그게 까라니깐 깐 레벨 정작 병사들은 아 활이 더 좋은데.. 총쏘라니깐 총쏴야지 뭐 이런 기록들이 있음
어느 기록? 시비거는게 아니라 참고하려고 물어봄.
기다려봥 옛날에 본거라 찾아볼께
그대신에 총에 익숙해진 이후부턴 총으로도 터무니 없는걸 맞추는 사람들이 등장했지...
임란 이후 살수, 사수, 포수중 포수가 가장 비율이 높음
옛날에 본거라 찾기 힘들다 대충 내용보면 특히 기록에선 기병들이 많이 그랬다고 하더라 서양에서도 총기병은 명중률이 그지같아서 서양에서도 총기병은 제대로 운용못했었으니 조선이면 더 심하긴 했을듯
화승총 한자루로 호랑이 잡는 포수는 서양사람들도 경악했다던가...
왜란 이후로 화기 비중이 높아지기는 했어. 그런데 조선 특성상 기병을 포함한 직업군인 대부분이 활잡이다시피 하니까 그쪽에서는 이미 활이 익숙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늦었음 ; 잡병들 새로 키우는데는 총이 수월했지.
그때부턴 시장에서 총을 팔았다고함 그래서 호랑이나 늑대때문에 우리나라도 그때는 총기가진 사람이 은근히 많았다고하더라
1600년대 속오군 75프로가 조총으로 무장했다는데 그정도면 상당히 빠른거지
솔직히 군인은 까라면 까야지
기병이라면 확실히 납득할 수 있겠다. 결국 기병은 끝까지 궁기병 중심으로 남았던 것을 보면 결국 기병에게 총을 들려주는건 실패했다고 봐도 될듯. 평안도/함경도 기병에 대한 시험에서 화승총이 과목에 있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농성할 경우"를 대비한다는 조건이 있었으니.
수백이 아니라 천년단위로 쌓아온 이미지니까 쉽게 사라지진않지. 그런 밑 병사들의 이미지도 병자호란 가기도 전에 사라짐
거기다가 기병들이면 일반 보병이랑 취급도 달라서 발언권도 더 좋았을 듯
화약이 문제였음. 임란때는 전술교리가 대포중점이라 총이 당장 끼어들수가 없었고. 임란 후에는 총이 화약 덜먹는거 보고 바로 갈아타버렸지.
조선이 개인 화약무기를 안쓴것도 아닌데 그럴리가
그게 총이란게 기마에서 쏘긴 별루다보니 기병용총 카빈이 별도로 만들어질 정도인데 기병이면 다들 직업 군이니 활 숙련도들이야 다들 만렙이다보니 총 도입이 늦어진거긴한데 대부분 일반 보병직군가면 포수 직군 비율이 높아짐
보병은 뭐 까라면 까야지
뉴비님 이번엔 이걸로 눈을 노려서 쏴볼게요.
어린 애가 항우장사를 쓰러뜨릴 힘을 주는 총
울나라 국궁은 익숙해지는데 몇년이 걸리고, 보통재능이 명궁 소리 들으려면 10년이상 수련해야한다고 했는데 국궁이랑 똑같진 않겠지만 영국장궁이나 다른나라 활도 익숙해지는데 시간 많이 걸렸겠지 근데 머스킷은 본문말대로 4주만에 익숙해지는거면 그것만으로도 경쟁력 차이가 엄청나겠네
우리 기록에도 조총은 숙달되는게 굉장히 쉽다는 평가가 여러차례 나오더라.
활 직접 쏴보면 알겠지만 레저용 중에서도 상당히 쌘편인 60파운드 정도 당기려면 엄청난 근력이 필요하고 그마저도 힘들어서 몇발 못쏴 영국 롱보우의 경우에는 장력이 최대 100파운드도 됐다니까 쏘기만하려해도 숙련되기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도 안오지
나의 66파운드 롱보우. 60파운드 보급기 컴파운드보우 보다 더 우수한 관통력을 보여줬지. 라이져를 21인치에서 15인치로 대폭 줄였더니 장력이 72피운드로 급상승. 백대 쏘면 몸살 오더라구.
조선은 임진왜란+정유재란 끝나고 바로 강하게 도입했나?
도입했다기보단 도입할려고 노력함 사람들이 다들 활을 잘쏴서 잘 안바꿀려고 했거든 까라니깐 까는 정도?
사람들이 다들 활 잘 쐈다면 왜 총으로 바꾸려했음?
바로 도입함. 이미 임진왜란 때부터 선조가 직접 새로운 조총 설계에 개입할 정도로 조정 전체가 조총 도입에 적극적이었어. 전쟁 이후에도 그러한 태세는 계속 이어져서 정묘/병자호란 때 되면 다수의 전투원이 화승총으로 무장하게 되었고 17세기 말에 이르면 군사의 80프로가 총병이 되는 수준까지 올라감.
총이 화력이 더 좋고 결국 새로운 병사들도 훈련시켜야하는데다가 총은 점점 더 좋은 총이 나왔거든
좋은 답변 고마워요~ 화승총맨~
활 땡기랴면 엄청난 근력 필요한데 총은 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으면 되니 병사 양성하는 시간이 확 줄었겠지
걍 화력때문에 바뀌었군
임란도 15세기 말이었을텐데 일본이 쓰는 총은 구리긴 했었나보네 그건 명중률이 활보다 낮았다고 기록된걸로 아는데
일본이 쓰던 총은 서양식 화승총 중에서도 사냥용 총이 들어왔기 때문에 오히려 정밀한 편이었음. 대신 동시기 유럽의 머스킷에 비해서 터프함이 떨어짐.
그럼 명중률과 사거리가 대체로 활보다 낮다며 까인건 그냥 당대 조명 학자들이 일본을 까기 위해 그런걸까요
그건 일본총이 구린게 아니라 우리나라 활쏘는 애들 명중률이 미친듯이 높은게 아닐까
기록마다 달라. 애초에 지금처럼 균일한 품질로 대량생산하던 시기도 아니니만큼 물건 자체가 달랐을 수도 있지 않을까. 도리어 17세기 조선 군관 일기인 <부북일기>에서는 왜조총을 상당한 고급품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기록이 나옴.
오... 좋은 정보이며 관점이네요. 덕분에 또 알아갑니다.
병사 숙련도 차이일걸. 일본 내에서도 항구쪽이랑 내륙쪽이랑 조총에 대한 병사숙련도가 다름
당장 본문의 잉글랜드와 비교하자면 국궁이 영국 장궁보다는 사거리가 길고 위력적임. 터키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변태적인 합성궁이라서. 그런데 총은 유럽에서 쓰던 개머리판 달린 대형 머스켓 보다 약함. 동아시아에 전래된 조총은 포르투갈 선원들이 선상에서 사용하던 작은 총이었거든. 요즘으로 치면 케이투가 아니라 케이원이나 그거보다 더 약한 m1 카빈 같은 느낌으로다가.
그건 시대가 시대인지라.. 조총은 주형에따라 명중률 개판나는 물건이 나온다는게 고질적인 문제였는데 특히나 초창기때는 품질이 매우 들쑥날쑥했던 점도 컸음.. 그리고 운 좀 더 안좋우 사병들은 총열터져서 한쪽 눈, 귀 나가는거고..
일본의 '소통' 정도 철포에서는 확실히 유럽의 머스켓에 비해 가벼웠지만, 일본에서는 대통이나 포대통 같은 대구경 철포를 만들어서 방패나 성벽 뒤의 적을 쏴죽이거나 성문을 부수는 짓도 저지르기도 했지. 위력에 대해서도 일본이 쓰던 건 아르퀘부스고 유럽에서는 이미 머스켓을 쓰기 시작했다며 급 나누던 것은 나도 예전에 봤는데, 나중에 또 이런 주장도 있더라고, 일본에서도 탄알 무게가 유럽 머스켓과 다를 바 없는 규격이 나와서 쓰였기 때문에 일본 것이 아르퀘부스여서 화력이 딸린다는 주장 자체는 맞지 않다고 하는 주장인데 (내가 봤던 일본의 무기와 갑옷 책에서도 보면 일본 내에서 코즈쓰(소통), 나카즈쓰(중통), 오오즈쓰(대통) 가카에노오오즈쓰(포대통)등으로 나누고 탄알 무게도 규격이 다양하더라고, 대통 및 포대통은 이미 그냥 총이 아니고 휴대용 화포 내지는 대물저격총 수준) 중통 정도면 개머리판이 없고 총 자체는 받침대를 필요했던 당대 유럽의 머스켓에 비해 가볍기는 했지만 탄알 무게는 대등한 것 같더라고
검이나 활은 평생을 수련해야 하지만, 총은 군대랑 별 관련없이 살던 사람들도 며칠 배우면 밥값은 하는 병사로 만들 수 있게 하지.
훈련소 가서 4주 만에 사격까지 다 배우는 것만 생각해 봐도 총이 얼마나 쓰기 쉬운 무기인지 드러나지 군대에서 총 대신 활로 배운다고 생각하면 평생 훈련해야 될 듯 활 쓰는 사람들 중에서 명궁이 나온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총 역시 명사수가 나올 수 있고 숫자도 훨씬 더 많이 나옴
다른 유럽국가들은 1595년 이전에 이미 국가 제식병기가 총이었다. 가난한 영국놈들. ㅋㅋㅋ
이성계의 능력이면 활이 더 강력한 건 맞음. 근데 최소 5년이상의 훈련이 필요한데. = 활 좀 쏘네. 머스킷은 본문에도 있듯 4주의 훈련에도 충분한 성과가 나옴. 징집병=돈=전쟁의 승패라는 경제 논리에서 보면 이건 가성비에서 이미 탈락.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임진왜란에서 머스킷은 그 특성을 충분히 보여줌.
화살은 날이갈때도 원형으로 흔들리면서 날아가던데 결국 사거리는 물론 관통력과 정확도도 큰 차이가 났구나
임란때 왜군이 조총병 대량 운영할수 있던게 빠른습득이 가능해서지
사거리, 화력, 훈련 난이도 전부 화승총>>>장궁이었으니
아니 근데 왜 서양의 예시만 드는지 모르겠음 당장 우리나라 사냥꾼들이 임진왜란 이후로 도입된 조총에 맛들여서 화약값과 화승총값을 감수하면서 포수가 된 걸 생각하면
쏴보면 활보단 총이 손맛이 쥑임 활보다 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