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갯빛 광석
rainbow stone
오늘 밤 누군가는 오함마를 닮은 어느 영혼에
대하여 상상해야 한다
오함마를 들어올리는 상상력으로 맨홀 뚜껑을
들어올린 한 사나이에 대해서
그 어깨 위에 얹힌 오함마에 대해서 오늘 밤
누군가는 상상력으로
그 노동을 상상해야 한다
*
그가 맨홀 속에서 몇 해를 살았는지 알 수 없다 그가 지하
배관 속에서 붉은눈쥐를 잡아먹으며 생존했는지 방진마스
크를 썼는지 축축한 양서류 같은 우비를 걸쳤는지 오함마를
어깨에 짊어졌는지 알 수 없다 낮은 포복으로 좁은 파이프
속을 통과하는 지하인에 대해서 국회의사당의 속기사가 어
떤 기록을 남겼는지 알 수 없다
*
백색증(白色症)에 걸린 사나이가 온몸에 붉은 페인트를
끼얹고 맨홀 속으로 투신했는지 알 수 없다 오함마를 짊어
진 그가 어느 파이프 속에 꾸역꾸역 처박힌 돼지 한 마리를
발견했는지 알 수 없다 그 순간 돼지에겐 오함마가 필요하
고 그의 손엔 오함마가 들려 있었을 뿐
붉은 정수리 위로
오, 침묵 같은 오함마
한 대 내리친 후
오함마를 어깨에 짊어진 채
그는 돼지로부터 떠난다
*
시장 좌판 뾰족한 생선 머리가 어느 쪽을 향해 누웠는지
알 수 없다 어느 파이프 속에서 삐라 한 장 해파리처럼 휘적
휘적 떠내려왔는지 알 수 없다 어느 파이프 끝에서 그가 밀
봉된 콘크리트 벽과 맞닥뜨렸는지 알 수 없다 그 순간 오함
마를 투석기처럼 휘두르던 그를 상상할수록
강력하게 벽화가 그려진다
습기 찬 콘크리트 밖으로
쩍쩍 갈라져나오던 금
그 수천의 나뭇가지 사이로
무지갯빛 광석이
그 천연의 빗살을 드러낸다
*
이윽고 달이 지구의 그림자를 벗어났는지 알 수 없다 콘
크리트 벽이 뚫리자 그가 땅굴을 파고 비무장지대를 통과
했는지 알 수 없다 붉은 흑벽을 타고 그가 지상으로 기어올
라갔는지 알 수 없다 우라늄 같은 그의 눈동자가 어떤 풍경
에 노출됐는지 알 수 없다 지평선 멀리 떨어지던 붉고 거대
한 오함마여,
오, 오함마를 생각하는 밤
지하실 식탁에 홀로 앉아
누군가 녹슨 통조림 뚜껑을 따고 있다
전구알이 깜빡거린다
*
유리구 안에는 하늘도 땅도 언덕도 벽도 집도 없었다
방독면
조인호, 문학동네시인선 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