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 프로젝트 3 독립닌자요원 잇토키 (27)
미션 : FCA - Free Carrier(운송인 인도조건)
d+1(작전 개시 1일 후) 0540
10.008773, 43.163271,
보라마 북북서, 소말리아, 아프리카
복도로 나온 잇토키는
왼쪽 두 번째 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기 전에
이미 한껏 끌어올린 감각으로
이 뒤에 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에는
좌물쇠 대신
철사로 조악하게 만든 시건장치가 걸려있었다.
잇토키는
힘 쓸 것도 없이
손으로 철사를 펴서 문을 열었다.
다시 한번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니,
퀴퀴함을 넘어
악취가 흘러 나왔다.
대소변 악취만으로는
이런 냄새가 날 수가 없다.
피 냄새가 섞여 있어야만 가능하다.
살짝 얼굴을 찡그린
잇토키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3평 정도의 공간에 들어선
잇토키는
더욱 진해진 악취 속에서
자신이 원하던 목표를 찾았다.
얼핏 보면
쓰러져있는 짐승처럼 보이는,
피 묻은 거적때기로 천천히 다가가
조용히 목표를 확인했다.
살아있나?
잇토키는
조심스럽게 목에 손을 가져갔다.
턱 밑에 움푹 들어간 부위,
동맥이 피부에 가깝게 노출된 그 곳.
맥박이 가장 잘 느껴지는
그곳에 손을 가져간
잇토키는
약하지만 확실하게 느껴지는 맥박을 느꼈다.
아직은 살아있다.
살아는 있다.
아직은 말이다.
이런 환경에서
며칠만 더 보내면 죽을 수밖에 없겠지만.
아직은 살아있다.
잇토키는
CIA 요원의 어깨를 흔들었다.
어깨가 흔들리자
목표는
무조건 반사처럼 눈을 떴다.
그 눈에 공포가 떠올랐다.
잇토키는
재빨리 목표의 입을 막았다.
어느 정도 소리가 나도 상관없다.
이미 이 주위에서
둘의 대화를 듣거나 느낄 수 있는 생명체는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잇토키는 목표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말했다.
“에이전트 노이스?”
목표의 눈이 흔들린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는다.
훈련된 요원이다.
아주 잘 훈련된 요원이다.
“에이전트 노이스,
지금부터 코드를 말하겠습니다.
에코나인, 포트 엘리스, 노벰버(N), 골프(G), 유니폼(U), 위스키(W), 탱고(T), 양키(Y), 브라보(B), 호텔(H).”
잇토키가 코드를 말했다.
CIA 공식 구출 코드,
Never Give Up. We'll Take You Back to Home.
(절대 포기하지 마라. 우리가 당신을 집으로 이끌 것이다.)
목표의 눈이 더 크게 흔들린다.
동공이 커지면서
눈에 담긴 감정이 바뀌는 것이 보인다.
공포에서 희망으로.
다시 한 번 물어본다.
“에이전트 에녹?”
목표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제야
입을 막은 손을 치운 잇토키는
귀에 대고 말한다.
“미 합중국 정부가 당신을 모셔오라고 저를 보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미 중앙정보국(CIA)
핵확산방지센터 소속의 에녹 노이스(Enoch Noyce) 요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잇토키가 다시 말했다.
“육성으로 말씀해주십시오. 탈출에 동의하십니까?”
“Yes, I agree. please take me home. sir.”
(예. 동의합니다. 선생님, 저를 집에 데려가 주세요.)
가늘고 떨리지만
의지가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탈출에 동의를 얻는다.
그리고
기록한다.
필수 절차이다.
“오케이. 집에 갑시다.”
잇토키는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그 미소를 보며
에녹 노이스 요원은 생각했다.
믿을 수 있는 미소라고 말이다.
“걸을 수 있습니까?”
잇토키가 물었다.
노이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자신의 하체를 덮고 있던
피 묻은 거적때기를 걷었다.
잇토키의 눈에
에녹 노이스의 발이 보였다.
피투성이의 발,
정확히는
발가락이 있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살점과
엉겨붙은 피가 눈에 들어왔다.
“흠.”
잇토키가 예상한 결과 중 하나였다.
발가락은
매우 효율적인 고문위치이다.
신경말단이 몰려 있어
충격을 가할 시
그 고통이 상당하다.
무엇보다
발가락을 짓뭉개놓으면
포로는 도망을 칠 수가 없다.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잇토키는
에녹 노이스의 손도 살펴보았다.
손가락이 잘리지는 않았지만,
손 끝은
전부 뭉개져 있었다.
“알겠습니다.
우선 응급처치부터 해야 겠네요.”
적어도 3~4일은 되어 보이는 상처다.
이미 곪기 시작했을 것이다.
환경은 둘째치고,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파상풍은 100%이다.
“조금 아플껍니다.”
잇토키는
가방에서 소독용 알콜을 꺼냈다.
그리고
조금씩 상처에 부었다.
본래대로라면
거즈로 조심스럽게 소독해야 하겠지만,
그 둘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흠!”
에녹 노이스는
손과 발 끝에서 시작된 고통이
그의 척추를 타고 빠르게
그의 뇌를 찔러오는 것을 느꼈다.
고문 당할 때,
알샤바브의 고문 담당이
장도리를 들고
그의 손과 발을 찍을 때 느껴지는 고통과 같았다.
잇토키는 신기했다.
도대체 CIA 놈들은
어떻게 요원을 교육시키기에
이 고통을 참아낼까?
아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지금 이 사람의 온몸을 휘젓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작 흡 하고 숨 한번 내쉰 것이 전부라고?
그런 생각을 하며
빠르게 소독을 마친 후,
응급키트에서 준비한
손발용 보호장갑을 꺼냈다.
이런 것들이 준비되어있는 것을 보니
이미 CIA에서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한 것 같았다.
“구출 직후
바로 수술 준비도 해놓았으면 좋겠는데.”
잇토키가 일본말로 중얼거렸다.
소독이 끝났음에도
에녹 노이스는 고통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귀에
잇토키의 중얼거림은 들리지도 않았다.
“이걸 먼저.”
조악한 응급처치를 마친 잇토키는
가방에서
에너지젤을 꺼내
뚜껑을 열어
에녹에게 내밀었다.
젤 행태로 되어 있는
응급구조용 식료품이다.
에녹은
그 젤을 받아 입에 가져갔다.
그러나
약해진 체력 때문에
빠르게 빨아들일 수가 없었다.
잇토키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보채지 않았다.
어차피 나가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가 없었다면,
그가 이 공간에 없었다면 골치가 아팠겠지만,
이렇게 발견했으니,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이동 중에 그가 죽을까봐
그게 걱정이었다.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지만
신체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나마 준비를 해야
움직일 수 있다.
에너지 젤을 다 먹은
에녹 노이스는
순간 활력이 도는 것을 느꼈다.
정제된 포도당이 들어가자
그의 몸이
바로 반응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걸을 수 없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자. 이제 집에 갑시다.”
잇토키는 에녹을 안으며 말했다.
어떻게 보면
술에 취해서 길바닥에 누워 자는
아버지를 부축하는
아들같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좀 전에
아직 어린애 티를 벗지 못한
소말리아 소년병에게 한 것처럼
에녹에게 내기를 불어 놓았다.
에녹은
순식간에 정신을 놓았다.
잇토키는
정신을 잃고 축 늘어진
에녹 노이스를 부축했다.
그리고
부상이 심한 양손과 양발을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킨 상태로 업었다.
며칠간의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체중이 많이 줄었지만
에녹 노이스의 무게는 묵직하게 느껴졌다.
“골치 아프군.
이렇게 될 것 같기는 했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걸을 수 있는 사람을 데리고
구출하긴 힘들 거라고.
설사 운신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한시가 급박한 지금 상황이라면
그냥 재워서
들고 뛰었을 것이었다.
“슬슬 가 볼까?”
문을 열고 나오자
지평선에
태양이 끄트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일출이 다가온 것이다.
응급처치를 하느라
시간을 좀 더 보냈는데,
벌써 태양의 끄트머리가 지평선에 걸려버린 것이다.
“우선 뛰어야되겠군.”
잇토키는 코드를 보냈다.
“수출품 선적 완료. 이제 항구로 가겠다.”
그리고서는
에녹을 고정한 벨트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기지를 뒤로 한 채
태양 쪽으로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