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 프로젝트 외전 퍼스트 컨텍트 (222)
그렇게 투털거리던 신이치가
그 곳에 있던 쓰레기들을 모아서
쓰레기통에 넣은 뒤
그를 기다리던
모리 코고로와 그의 사촌형이 대기하던 차량으로
걸어가자
차량에서
그의 사촌형과 함께 기다리던
모리 코고로는 말없이 전화기를 건넸고
곧바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 야!
너 이러려고 대마도에 내려간 거야?
안식년이다
나 땜에 있겠다 뭐다 다 핑계였네?”
“ 남자가 큰일을 하려면 집안단속부터 잘해야 되는 거에요.
신지로 형은?
어떻게 됐어요?”
“ 잡았지.
잡자마자 러시아대사한테 전화오더라.”
“ 주일러시아대사면... 비탈리?”
“ 왜?
친분이라도 있어?”
비탈리의 엉덩이를 향해 총알을 먹여준 인연이지만
그것도......
친분이라면 친분일 것이다.
“ 그는 구 KGB 출신이에요.”
“ 그래?”
“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나오면...”
“ 나오면?”
쿠도 신이치는
오늘 중에 가장 짙은 미소를 지었다.
“ 재밌겠는데?”
‘ 비탈리 안드로포프.’
주일러시아대사이자
전 KGB요원이며
전 국가혁명회의 핵심당원이다.
개혁과 개방을 외치던 고르바초프에 반대해
붉은혁명전선을 조직했고
반역혐의로 체포됐지만
권력을 쥔 실권자가 여러 차례 바뀌는 진통 끝에 슬그머니 복권됐다.
‘ 재미있겠어.’
비탈리의 성격은
딱 순도 높은 보드카를 연상케 했다.
그는 KGB요원 출신이지만
음모나 공작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큰 덩치 때문에 곰이 미련하다고 착각했지만
곰은
육상의 어떤 포식자보다 똑똑하고 민첩했다.
‘ 정직한 불곰.’
다음날
쿠도 신이치는
예상대로
주일러시아대사의 방문을 받았다.
이는
스즈키 그룹 계열이기 전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인
스즈키 소노코의 이름을 딴
소노코 호텔 입장에서도 대단한 영광이었는데
아직도
국제사회에서 거물로 통하는
러시아의 대사급 귀빈을 접대하는 건
이쪽 업계에선 곧 실적이나 마찬가지다.
이유야 어쨌든
쿠도 신이치를 방문한 것이니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고등학생 명탐정이기는 해도
스즈키 그룹의 아가씨인
소노코 양의 친구에 불과하다는
그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은
눈에 띄게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 오랜만이군.
미스터 가디언.”
“ 낯부끄러운 호칭은 제발 그만두라고.”
“ 가디언엔젤이라고 부르지 않은 게 어딘가?”
“ 으웩!”
배불뚝이 백인코쟁이의 수호천사가 되고 싶진 않았다.
비탈리 안드로포프도
나잇살을 먹었는지
예전의 그 날카로운 칼날은 많이 무뎌졌고
어느새
모스크바술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술 취한 동네아저씨로 전락했다.
“ 스즈키 그룹 아니
겉으로는......
스즈키 그룹과 모미지 콘체른이지만
실제로는 고이즈미 가문과 계약했다지?”
“ 이놈이고 저놈이고
정식계약이 아니라고 말해도 들어먹질 않네.”
“ 사람들은 의심 많은 존재니까.”
“ 그래서 어쩔 거야?”
“ 뭐 말인가?”
“ 오! 간을 보시겠다고요?”
보드카를
무슨 식은 커피처럼 들이켠 비탈리는
웃는 건지 찡그린 건지 모를
이상한 얼굴이었다.
“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만.....
우린 공식적으로 아무것도 확인해줄 수 없네.”
“ 비공식적으론?”
“ 음.”
“ 내 입은 무겁다고, 친구.”
“ 미스터 고이즈미와 공유하지 않는다면 얘기하지.”
“ 어느 쪽을 말하는 거야?
늙은 쪽? 젊은 쪽?”
“ 둘 다.”
고이즈미 신지로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둘이 알면
안 되는 일이란 뭘까?
쿠도 신이치는 턱을 쓰다듬다 고개를 저었다.
“ 흠.......
그들과 정식계약을 맺은 건 아니지만...
그냥 안 듣는 게 낫겠어.”
“ 그러지 말고,
일단 혼자서만 알고 있게.”
예상 밖의 대답이었을까?
비탈리는 타협점을 제시했고
쿠도 신이치가 답하기도 전에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 납치사건은 들었나?
괜한 걸 물었군.
뭐 자네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
“ 엠파이어 쪽 얘기라면 들었어.”
“ 거기만 그런 게 아니야.
미국도 우리도 일본도 중국도 프랑스도 영국도 독일도
아니,
국제무대에서 행세깨나 하는 나라는 다 끌려들어갔어.
기억하나?
삼 년 전
국제사면위원회는
중남미를 포함한 제삼세계 국가들에 대한 정부의 권력남용과
인권실태조사보고를 발표한 적이 있네.”
“ 오라이온리포트 말이군?”
“ 맞아.
당시 베네수엘라대통령은
국제사면위원회와
국제인권감시단체
또 수많은 비정부국제기구가 극심한 편견을 갖고 활동한다고 주장했어.
그리고
유엔과 나토야말로
백인우선주의집단이라고 비난했지.”
“ 그래서?”
“ 다른 관점이긴 한데
국제형사재판소는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집단범죄혐의에 대한 공소권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무작위출연기금을 원했지만...
실패했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언뜻 보면
거창해 뵈지만
실속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지난 한 해
가장 많은 고발이 이뤄진 나라는
다름 아닌 미국이니까.
민사와 비슷한
국제사법재판소와 달리
형사소환에 응한
미국인 관료나 시민은 한 명도 없었다.
국제무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ICC를 반대했고
형사재판소 검찰국과
인터폴이
뭐 대단한 것 같아 뵈도
국제수배로 잡아들인 범죄자 대다수는 잔챙이다.
진짜 거물은 그들도 손쓰지 못했다.
“ 아이러니하게도
ICC의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각 나라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모두 예비범죄자로 판단할 수 있어.”
미국의 어느 관료가
아프리카에
에이즈치료제를 인도적으로 지원하는 자국회사를 제재하면
그건 대량살인일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원치 않은 실수를 저지른 미군을
전쟁범죄혐의로 잡아들여야 할까?
미국이
ICC를 반대하는 이유는
그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정의는 완벽해야만 했다.
“ 미국만이 완벽하길 바라는 게 아닐세.
우리도 중국도 프랑스도 국가적 사안에 오류가 발생하는 걸 원치 않아.”
“ 사람은... 실수할 수밖에 없어.”
실수가 없다면
그건 기계지 사람이 아니었다.
“ 솔직히 말하면
우리 치부를 남이 들추길 원하지 않네.”
“ 이익은 글로벌하길 원하지만 손해는 각자 알아서 해결해라?
그야말로 개소린데?”
“ 인정해.
영락없는 개소리지.”
개소린 걸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정말 무서운 것이다.
“ 스즈키 그룹과 모미지 콘체른을 압박하는 이유는......
그럼?”
“ 그들이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지에 뿌린 자산을 이용하기 위해서야.”
“ 외무성 남미총괄책임자까지 매수했으니
대충 물밑작업은 끝났겠네?”
“ 맞아.
하지만 그 작자가 설마 일본회의
아니
스펙터의 조직원이었다는 것은 진짜 몰랐네.
거기에
지금 벌어지는 인질극도
블로펠트를 다시 빼내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다는 것도 말이야.”
" 그럼 엠파이어 콘체른 쪽이
오오카 모미지를 이용해서 내 뒷조사를 한 이유가.....? "
" 그........
스펙터 쪽이
이번 인질사건에 너가 개입하려는 요소를 차단하기 위한 시도라고 해야 하나......
너는
누가 너의 뒷조사를 하는 것에 대해서
병적으로 싫어하니
너의 관심을 오오카 모미지에게 쏠리게 하는 동안
지금 그들이 주도하는 인질극을 최대한 진행할 계획이었겠지......"
너무 늦었나?
그렇다면 근시일 내로 언론에서 터질 일만 남았다.
“ 조만간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은 이렇게 장식될 걸세.”
강대국 지도자라고 해봐야
임기제 선출직이지만
중남미와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 등지는 독재자가 판을 쳤다.
이걸 어떻게 손봐줄까?
미국은 전쟁을 몇 번이나 일으켰고
압도적인 경제로 눌러봤으며 암살자를 수차례나 보냈다.
문제는
한 놈이 죽으면
또 다른 놈이 나타나
독재의 왕좌에 앉아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소위 강대국을 조롱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스펙터가 강대국들을 상대로 한 방법이기도 했고.....
그래서
강대국들은 방법을 바꾸기로 합의한 것이다.
“ 남미 최대의 인질극의 이유는
일본 대기업의 무리한 해외사업 확장?
베네수엘라대통령에게 천문학적인 뇌물을 건넨
스즈키 그룹.
혹은 탄자니아대통령에게 불법매춘을 제공한
모미지 콘체른 임원?
거기에
밀수, 불법무기매매, 비자금세탁은 덤이지.”
베네수엘라대통령이나
탄자니아대통령을 탈탈 털면
많은 불법행위를 찾을 수 있겠지만
국제형사재판소로 끌고 올 결정적인 한 방은 부족했다.
“ 왜 하필 스즈키 그룹과 모미지 콘체른이야?”
“ 그야 세계적인 인지도가 있으면서도
우리 입맛대로 조종이 가능한...”
비탈리가 말끝을 흐리자
쿠도 신이치는 화를 냈다.
“ 조종이 가능한 뭐?”
“ 나라 중에 제일 쓸 만한 곳이 일본이니까.”
다시 말하지만
쿠도 신이치 자신은
자신의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세계를 관리하고 책임지는
삼인위의 좌장을 맡을때부터
한 나라만을 생각하는 애국자는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왠지 열 받는 말이다.
“ 비탈리.”
결코 애국자가 될 맘은 없었다.
“ 나도 이번 판에 끼어야겠어.”
“ 흠. 안식년 아니었나?”
손목시계를 봤다.
휴가를 계획한지 나흘쯤 지났을까?
채 100시간이 안 된다.
그래도
이 일을 시작한 뒤에 만끽한 제일 긴 휴가였다.
쿠도 신이치는 쓰게 웃었다.
“ 빌어먹게도
방금 내 휴가가 끝난 것 같거든.”
분명한 건
짜증나기도 했지만 재미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