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으로 물러난 박 전 대통령이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기사만 대충 읽었으나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중앙일보가 이 인터뷰 대가로 얼마나 지불을 했는지가 궁금하다. (설마하니 무료로 인터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여파로 사퇴한 리차드 닉슨은 백악관을 나온 후 4년이 되어가는 1977년 봄, 영국의 유명한 인터뷰 진행자인 데이비드 프로스트(David Frost 1930~2013)와 인터뷰를 했다. 미국과 여러 나라에 방송이 된 이 인터뷰는 4,500만 명이 시청을 해서 정치 인터뷰 시청자 최다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이 인터뷰는 닉슨에게 매우 곤란한 것이었다. 사전에 아무런 질문지도 없이 그 해 3월 4주간에 걸쳐 캘리포니아에 있는 닉슨의 자택 부근에 있는 저택을 빌려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주제는 워터게이트와 국제 정치 등에 관한 질문이었으나 초점은 물론 워터게이트였다. 총 26시간 녹화를 해서 편집을 거쳐 네 차례에 걸쳐 그해 5월 4일부터 26일까지 방송이 됐고 나중에 간추린 것이 한 번 더 전파를 탔다.
프로스트는 닉슨을 피고인 심문을 하듯이 몰아 붙였다. 닉슨은 예상보다 공격적인 질문에 당황했다고 나중에 술회했다. 프로스트는 닉슨이 사법방해를 범했다고 공격했지만 닉슨은 이에 대해 우회적으로 답변하고 넘어 갔다. 닉슨은 워터게이트에 대해 명시적으로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닉슨은 자신이 미국민들을 실추시켰으며, 자신이 남은 생애 동안 지고 갈 부담이라고 말했다. (“I let down the American people. I have to carry that burden for the rest of my life.")
이 인터뷰가 나간 후 행한 여론조사는 닉슨을 보는 미국민의 태도는 여전히 압도적으로 부정적이며 이러한 태도에 인터뷰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을 보여 주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 상원과 하원의 민주당 의원들은 닉슨이 아직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프로스트-닉슨 인터뷰라고 부르는 이 유명한 대담은 프로스트가 기획해서 상업적으로 성공시킨 것이다. 미국 방송은 인터뷰 상대에게 보수를 주는 것을 금지하지만 영국인이고 개인 사업자인 데이비드 프로스트는 그것이 가능했다. 프로스트는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자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질문을 했고, 닉슨은 곤란한 질문에 답을 하느냐고 곤욕을 치렀다. 닉슨은 이 인터뷰를 하면서 60만 달러와 이익의 20%를 받기로 계약을 했다. 닉슨을 저주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닉슨을 또 비난했다.
닉슨은 그가 1990년에 펴낸 마지막 회고록 에서 이 인터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닉슨은 이 인터뷰를 선택이 아닌 필요에 의해 했으며, 질문은 물론이고 편집도 모두 편향(biased)적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닉슨은 당시 재정상태가 파산 직전이어서 돈이 필요했다고 고백했다. 세금을 공제하고 난 후 닉슨은 이 인터뷰로 54만 달러를 받았는데, 밀려있는 변호사 비용에 몽땅 들어가고 말았다. 닉슨은 이 인터뷰가 자신에 대해 부정적일 것임은 예상했다고 술회했다. ('In the Arena' 43쪽)
닉슨은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변호사 비용, 그리고 백악관을 나온 후 여러 가지 민사소송과 법적 절차 대응으로 총 180만 달러를 변호사 비용으로 지불해야만 했다. 닉슨은 원래 한쪽 다리에 문제가 있었는데, 백악관을 나와서 캘리포니아 샌 클레멘츠 자택으로 돌아온 후 상태가 악화돼서 입원해야 하는 등 의료비용 부담도 컸다. 닉슨은 심신을 회복한 후 회고록을 쓰기로 하고 나중에 유명한 앵커가 되는 다이앤 소여(Diane Sawyer) 등을 고용해서 자료를 모으고 집필을 해 나갔다. 닉슨은 1978년에 나온 자신의 회고록 출판을 매우 기뻐했다.
1120쪽이나 되는 닉슨의 회고록은 그 시대의 미국 정치사 기록으로도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방대한 회고록이 베스트셀러가 돼서 닉슨은 빚을 청산할 수 있었고, 뉴욕으로 이사한 후 변호사 업무에 복귀했다. 닉슨은 그 후 여러 권의 책을 썼고 중요한 사안이 생기면 신문에 칼럼을 기고했다. 뉴욕으로 돌아 온 후 닉슨은 전직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경호 혜택을 사양하고 맨해튼에서 지하철과 택시로 출근하고 거리를 걷기를 좋아했으며, 커피 카운터에서 신문을 보면서 커피를 즐겼다. 닉슨은 1994년 4월, 81세로 사망했다. 평생을 같이 한 부인 패트 여사는 한해 전에 앞서 사망했다. 닉슨과 달리 패트 여사는 백악관을 나온 후 매우 우울하게 살아서 닉슨은 이를 안타깝게 생각했다.
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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