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으레 씨부릴때마다 꼭 언급하는게 '노동자', '농민'이 어쩌구 하는건데
여기서 노동자는 어찌보면 북한에서 무언가 일을 하는 국민(인민)을 통칭하는 또 다른 단어처럼 쓰인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도 노동자고
얘도 노동자임.
그니까 일단 노동자로 통칭은 해도
노동자라고 다 같은 노동자는 아닌 셈이지....
진짜 동물농장의 위의 명대사가 그대로 적용되는 단어가 바로 '노동자'인 셈이다.
모든 동물은 평등해도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한거처럼
모든 노동자는 평등해도 '어떤' 노동자는 더 평등한셈이다.
그래도 노동자가 저렇게 스펙트럼이 넓은 만큼 의외로 노동자 내에서의 신분 이동은 좀 있는 편이지...
뭐 여기까진 다들 이해하고는 있을거임.
그런데 여기서 더 골 때리는건 바로 '농민' 임. 우리들 상식으론 농민도 노동자 아니냐고 생각하기 쉬운데
북한에선 은근히 노동자, 농민 구분해서 부른단 말이지.
그도 그럴 것이 상대적으로 노동의 범주가 넒은 노동자는
스펙트럼도 넒어서 신분이나 생활환경의 변화가 좀 있는거에 비해
거주이전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 협동농장에 메어있는 농민은 더더욱 이동의 자유가 없지.
그야말로 북한체제 특성 상 농민으로 태어나면 그 자식도 손주도 모두 고향의 협동 농장 소속에서 벗어나기 힘든 거.
도시의 노동자들이야 실적이 좋거나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가거나, 입당을 잘하거나 뭐 잘~풀리면
(가능성은 낮아도)간부급 노동자가 되어 고위직이 될 수도 있고, 적어도 더 나은 직업을 구할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농민은 그런 거 없어 이미 땅에 메어있어서. 암만 개천에서 용나듯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간다 해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야 하고 당연히 거기선 잘해봐야 학교선생정도가 고작임.
그니까... 북한에서 농민은 고려시대 향, 소, 부곡민 마냥 신량역천인 같은거지.
어쩌다 농민이 이따위 대접이 되었는지는 정확한 사유는 모르지만.....
한국전쟁 이전 김일성이 토지개혁을 하면서 경자유전의 원칙으로 농민들에게 땅을 나눠줬고
(다들 알고 있듯이 여기에 자극받고 체제경쟁 들가면서 남한도 토지개혁을 하 게된다)
여기에 농민들의 지지를 받아 북한이 공산화되고 김일성독재를 하는데 도움이 되는데...
문젠 그 이후에 스탈린주의 영향으로 협동농장 체제로 전환되면서
농민들에게서 다시 땅을 몰수하게 되었다.
당연히 사람심리란게 아예 안 줬으면 모를까 줬다 뺏으면 더 빡치는거처럼
농민들의 반발은 상상이상이었고. 이 반발을 진압, 무마하는 과정에서 농민계층은 김일성 눈 밖에 나면서
알게 모르게 여러 불이익을 받았다고 한다고 하는 카더라가 있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일반인인 핵심~동요계층에게 적용되는거고
그보다 아래인 적대계층(국군포로후손, 과거지주후손 등등)은 진짜로 천민취급이다.
진짜 알면 알수록 사회 꼬라지가 완전 중세나 마찬가지인 놈들이야....
그건 실제로 세습군주정 이니까 대권을 세습하는데, 천민도 세습하겠지 신분제 국가가 존속 가능한 건 천민이 있기에 존속 가능함 착취 당하는 평민도 지들이 차별할 대상인 천민이 있으면 체제가 유지됨
오호... 이게 맞는듯.
그건 실제로 세습군주정 이니까 대권을 세습하는데, 천민도 세습하겠지 신분제 국가가 존속 가능한 건 천민이 있기에 존속 가능함 착취 당하는 평민도 지들이 차별할 대상인 천민이 있으면 체제가 유지됨
오호... 이게 맞는듯.
북한이 1946년에 3월 5일에 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을 만들었는데, 1953년 8월 농업협동화 방침으로 돌아섰으니, 농민이 자기 토지를 가진건 겨우 7년 정도네요.
실제로 딱 그시기가 스탈린주의 광풍이 불던 시기이기도 하고...
한국은 1946년 2월 과도정부 당면 정책 33항에서 5. 일인(日人)[4]이나 반역자에게 속한 재산은 공사(公私)를 물론하고 전부 몰수해 국유로 할 것입니다. 9. 모든 몰수한 토지는 다시 나누어 민간에 이익을 증진시키되 토지 소재지에 있는 농민에게 부쳐서 경작하게 할 것이고 먼 데 있는 지주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농민이 자기 땅을 경작하면 소출을 많이 늘일 수 있는 연고입니다. 10. 큰 농장은 나누어 여러 사람이 경작하게 하되 소유지 농민에게 맡겨서 소출이 늘게 하게 장려하며 그 토지의 가격을 상당하게 마련하여 매년 얼마씩 분배하여서 여러 해를 두고 지주에게 갚기로 계획을 정하려 합니다. 11. 다만 적몰(籍沒)한 땅을 농민에게 분배할 때에는 그 보수를 정부에 변납해 국민 공용에 보충하리니 이는 새 국가 건설에 많은 경비를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서울 중앙방송을 통해 이승만이 발표한 내용.
정작 저거 한 조봉암은,....
이승만이 한민당을 다 쳐내고 조봉암을 뽑았으니 조봉암이 토지 개혁을 하게 되었죠. 아이러니함. 광복 이후 돈 많은 친일파, 지주 출신들이 한민당에 들어가면서, 예를 들면 김순흥(한국민주당 발기인), 친일 세탁을 하고 토지 개혁을 끝까지 반대했었죠.
김순흥은 81년에 늙어 죽었는데, 장례를 이화학원장으로 치름. 왜냐면, 친일파들이 자리잡은 이화여대 이사였기 때문.
그 정도로 당시 한국은 적화에 대한 경계가 장난아녔음. 물론 결과적으로 사회주의자인 조봉암이 현대사 통틀어 대한민국의 적화를 막아낸 1등공신이 되었지만.
김구는 48년에 척결해야 할 친일 인사 1순위에 김순응을 올려 놨었음. 한민당 입장에서는 김구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었을 것임.
저게 아마 스탈린주의 논리 때문에 농민을 경시하는 것도 있음 스탈린 방식으로 고속 산업화를 하려면 농민 노동력을 도시로 끌고와야 하고, 그 도시 노동자들을 위해서 식량을 최대한 쥐어짜야 함. 그런데 러시아 혁명 때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자작농들은 부르주아와 함께 사회주의의 적임. 농민은 자기 땅에 대한 애착이 심할 수밖에 없거든. 여기에 농업 기술도 낙후되어 있으니 결국 소련이 선택한 게 농업집단화임. 농민이 죽든말든(홀로도모르) 어떻게든 생산력을 끌어올려서 산업화를 이루겠다는 거지. 그런데 소련도 결국 집단농장이 실패하니까 어쩔 수 없이 서구권이나 동구권(폴란드, 불가리아)에서 식량을 들여왔지만, 북한이나 알바니아처럼 독자 노선을 걸은 나라들은 스탈린주의적 경제를 고수한 나라들은 농민들이 계속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음... 북한은 그 한계가 70년대 초반부터 나타났고(5ㅁㅁ계획 목표치 미달), 그나마 우호 무역으로 북한에 물자를 퍼주던 소련까지 망하니 고난의 행군이 터진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