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이대은. KT 위즈 제공
‘그루밍족(grooming)’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마부(groom)가 말을 빗질하고 목욕을 시키는데서 유래한 말로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자들을 일컫는다.
머리카락은 자기 표현의 시작이다. 모자를 쓰고 경기하는 적잖은 야구 선수들도 헤어스타일에 욕심을 내곤 한다. 과거와 달리 헤어스타일의 자유를 인정하고 리그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LG 외야수 이형종(30)은 장발의 ‘대명사’다. 머리카락를 기르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 이형종은 어릴 적부터 이상훈 전 LG 코치를 보면서 머리를 기르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다. 이상훈은 현역 시절 대표적인 ‘장발’ 선수였다. 마운드에서 나풀거리는 머리칼을 흩날리며 피칭하는 모습은 ‘야생마’를 연상케했다.
LG 이형종.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이형종은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서 길러보고 싶었다”고 했다. 긴 머리를 해도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을 자신감으로 타석에서 서겠다는 의지 표현이었다. 어쨌든 결과는 좋았다. 지난해 이형종은 타율 0.316으로 데뷔 처음으로 3할 타율을 달성했다. 이형종은 올해도 긴 머리를 휘날리며 LG의 3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힘을 보탰다.
KT 이대은(30)도 머리카락을 기른다.
이대은은 어렵게 KBO리그 무대를 밟았다. 미국, 일본을 거치다 해외 생활을 접은 이대은은 경찰청에 입단했고 해외파 트라이아웃을 거쳐 2019 신인지명에서 KT의 선택을 받았다. 우여곡절을 거쳐 KBO리그 첫 해를 치르고 있는 이대은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머리를 길러 보는 것이었다. 시즌 초반 선발로 던지며 시행착오를 겪었고 시즌 후반부 마무리 보직으로 굳혀지는 과정에서 머리카락도 함께 길게 자랐다.
NC 투수 배재환(24)도 머리카락을 어깨 라인에 닿을 정도로 길렀다. 지난해 스스로 변화를 주고 싶어서 기르기 시작했는데 야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난시즌 프로 데뷔 후 가장 많은 31경기에 등판하며 불펜에서 자리를 잡은 그는 올 시즌에도 필승조로 활약 중이다. 16일 현재 58경기에서 20홀드를 쌓았다.
시즌 중반 트레이드로 LG로 팀을 옮긴 송은범(35)도 모자 속에는 긴 머리를 감추고 있다. 그는 “지난해 한화에서 (안)영명이와 함께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성적이 나쁘지 않아 계속 기르게 됐다. LG로 트레이드 된 뒤 새 팀에서 새 분위기로 뛰기 위해 옆을 깨끗하게 밀었는데 그래도 윗 머리는 남겨뒀다. 야구를 잘 하고 싶은 나의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NC 배재환. NC 다이노스 제공
자율성을 존중하는 메이저리그에서는 개성 있는 헤어스타일의 선수가 꽤 있다. ‘괴짜’로 불렸던 팀 린스컴이 대표적인 선수 중 하나였다.
류현진(LA다저스)도 최근 회색으로 염색을 하며 분위기 전환을 했고 15일 메츠전에서 호투하며 슬럼프를 탈출했다. 반면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는 입단할 때부터 선수들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을 철저히 규제한다.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도 비슷한 구단 문화를 갖고 있다.
프로야구단 심리 상담을 맡고있는 한덕현 중앙대 정신의학건강과 교수는 “머리를 기르는 것이 심리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증명된 것은 없다.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삼손과 같이 하나를 끝까지 유지한다는 심리적 믿음처럼 좋은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선수의 마음이 투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