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에서 177석의 ‘거대 여당’으로 재탄생한 더불어민주당은 공천 과정에서 비(非)문재인계 인사들이 대거 배제되거나 경선 탈락하면서 친(親)문재인계 의원들로 재편됐다. 이는 지난 7일 치러진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 투영됐다. 친문계인 김태년 의원과 전해철 의원이 각각 82표, 72표를 얻었고 비문계인 정성호 의원은 9표를 얻는 데 그쳤다. 친문 일색의 당내 지형은 당·청 갈등으로 인한 국정 혼선을 막고 임기 말 대통령의 국정추진 동력이 끝까지 유지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순혈주의에 따른 여권 내 자체검증 기능이 약화되는 문제도 있다. 청와대가 정한 의제를 여당과 정부가 받아서 실행하는 수준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친문’ 주류… 전대 등 앞두고 친문 분화 불가피
민주당 내에서는 총선 이후 친문, 비문의 분류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만큼 비문은 존재감이 없어졌다는 얘기다. 전체 의원의 절반(46.9%)에 육박하는 21대 초선의원 83명(지역구 68명, 비례 15명)도 친문계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초선 중 문재인정부 청와대 출신으로 당선된 인사는 19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비롯해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 한병도 전 정무수석, 정태호 전 일자리수석, 이용선 전 시민사회수석, 고민정 전 대변인, 김영배 전 민정비서관, 진성준 전 정무기획비서관, 민형배 전 사회정책비서관, 신정훈 전 농어업비서관 등이다.
당내 잠룡들과 가깝거나 인연을 맺은 인물들도 이번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당내 입지는 크지 않은 실정이다. 차기 대선주자들은 ‘떠오르는 태양’으로 향후 전당대회, 대선 후보 경선 등을 거치면서 친문계에 맞설 만한 세력으로 커질 수 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대책위원장과 가까운 당선인으로는 이 위원장의 옛 지역구를 이어받은 이개호 의원(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이 3선에 성공했고, 오영훈 의원이 제주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이 위원장이 총선에서 지원한 후보들과 호남 지역 후보들도 향후 ‘이낙연계’를 형성할 수 있다. 이 위원장은 이번 총선에서 38명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았고, 이 중 22명이 배지를 달았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인연을 맺은 인사들도 이번 총선에서 약진했다. 천준호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 윤준병 전 서울시 행정부시장, 김원이·진성준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허영 전 서울시 정무수석 등이다. 현역 의원 중에는 박홍근·기동민·남인순 의원이 박원순계로 분류된다. 진성준·박상혁 당선인은 청와대와 서울시를 모두 거쳤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가까운 인사로는 정성호·김병욱·김영진 의원이 당선됐다. 초선 중에는 이규민 전 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 사무총장이 있다. 이런 가운데 또 다른 잠룡인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이사장을 맡은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에 현역인 홍익표·송갑석 의원과 윤영찬 당선인이 이사진으로 들어가면서 ‘임종석계’를 형성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당내 각종 모임들은 외연 확장에 나서고 있다.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 주축의 개혁 성향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는 최근 최기상·김용민·민병덕·오기형·이해식·권인숙·이동주 등 초선 의원 20여명을 신입 회원으로 들였다. 고 김근태 전 의원계 재야 운동권 출신이 주축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와 경제 공부 모임인 ‘경국지모’(경제를 공부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임)도 몸집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임성학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과거처럼 레임덕(대통령 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이 일어나고 당내에서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자기 세력을 구축하는 일들은 문 대통령의 임기 말까지 없을 것 같다”며 “계파 갈등보다는 기본소득이라든지 코로나19 이후 한국의 먹거리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지 등을 놓고 개혁 경쟁이 예상된다”고 관측했다.
◆각 분야 전문가 수혈… 현안 놓고 독자 목소리 관측
21대 총선 민주당 당선인 177명을 직업 또는 출신별로 분류한 결과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법조인, 기업인, 학계, 관료, 언론인 등 특정 분야 출신이 85명으로 집계됐다. 그 외에는 학생운동,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 정계에 입문하거나, 보좌진, 지자체 의원 등 정당인이다.
과거 학생, 노동, 시민단체 등 운동권 색채가 강했던 민주당에 법조인, 기업인, 의사 등 전문가 집단이 수혈되면서 사안에 따라 독자적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전문직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당선인은 판사, 변호사 등 법조인이다. 20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법조인 출신 의원은 20명이었지만, 21대 국회에서 29명으로 1.5배 가까이 늘었다.
이수진·이탄희·최기상 등 판사 출신과 김용민·김남국 등 변호사 출신 법조인들은 당내에서 법원 및 검찰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
경영·경제계 출신 인사들도 눈에 띈다. 금융·벤처·중소상공인 등 전문 분야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입성했다. 이용우 당선인은 카카오뱅크 대표, 홍성국 당선인은 미래에셋대우 사장 등을 역임한 대표적인 금융 전문가다. 양향자 당선인 역시 삼성전자 임원 출신이다. 비례의원인 김경만, 이동주 당선인 등 중소상공인을 대표하는 인물들도 국회에 입성했다. 이들은 기획재정부 등 관료 출신 전문가와 달리 현장의 목소리를 당에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종 경제 정책에 규제 완화 등 기존보다 기업 친화적인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관심이 높은 의료 분야로는 의사 출신이 재선의 신동근 의원을 비롯해 이용빈, 신현영 당선인 등 3명이다. 신 당선인은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로 코로나19 최전선에서 대응했다는 점이 부각돼 비례대표 1번을 받았다. 약사 출신은 김상희, 전혜숙, 서영석 의원 등 3명, 간호사 출신으로 이수진 비례의원이 배지를 달았다.
대표적인 전문가 집단인 관료 출신은 17명으로 이 중 고시 출신이 10명이다. 김진표, 이개호 의원 등 다선 의원 외에 윤준병, 정일영, 이성만 당선인 등이 국회에 입성했다. 김수흥 당선인은 첫 국회 입법고시 출신이다. 경찰 출신으로는 임호선·황운하 당선인, 군인 출신은 김병주·윤재갑 당선인, 소방관 출신 오영환 당선인 등이 관련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회 이슈들이 매우 복잡하고 전문화돼가는데, 전문가들이 해당 상임위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면 국회 심의가 공론을 찾아가는 데 더 용이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전문가들이 국민 눈높이에서 답을 찾아야지, 진영 논리를 대변하면 정치를 더 교착상태로 빠지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귀전·최형창·곽은산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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