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군인이었던 요한 라이히하르트는 1924년 사형 집행관이었던 삼촌에게 가업을 넘겨받았다.
그가 활동했던 당시 사형 집행관은 1건 집행시마다 보수를 받는 일종의 건당 알바였으며
동시에 활동 경비+교통비 정도를 지급받는 일이었다.
따라서 사형수가 많으면 그만큼 돈을 잘 벌고, 아니면 쪼들릴 수 밖에 없었다.
요한 라이히하르트의 사형 집행관 일은 순탄치 않았다.
독일에서 사형 집행이 줄어들면서 그의 일감도 자연스레 줄어들었고,
1928년에는 1년 통틀어 1명만 집행하면서 수입이 줄어들어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그는 다른 사업을 시작했지만, 그냥 사업이 망하거나
혹은 잘 나가다가 전직 사형 집행관이라는 사실이 언론에 폭로되는 바람에 사업이 망하는 등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았다.
그런 요한 라이히하르트의 인생을 구해준 건 나치당이었다.
나치당은 그를 건당 알바로 채용하는 게 아니라
꽤 높은 월급을 꼬박꼬박 지급하는 정규직으로 채용했으며 뿐만 아니라 사형 1건당 보너스도 지급했다.
덕분에 요한은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았고 나치당에 가입하기도 했다.
이후 나치가 미쳐 날뛰면서 사형수의 숫자도 급증했고,
당시 독일 최고의 사형 집행인 자리에 앉았던 요한의 일감도 많아졌다.
유명한 '백장미단' 을 비롯한 반 나치 운동가들처럼 죄 없이 사형 판결을 받은 사람,
그리고 전시에 흉악 범죄를 저지른 사람 등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보내졌고
요한은 죄가 있던 없던 가리지 않고 사형수들을 처형했다.
그의 커리어 기간 동안 죄수들은 대개 단두대로 처형했지만, 가끔은 교수대를 이용한 처형도 집행했다.
그에 의해 사형이 집행된 사람은 3000명이 넘었다고 하며, 대부분 나치 시기의 죄수들이었다.
요한은 사형 집행인으로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단순히 일처리를 많이 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가능한 빠르고, 죄수들이 덜 고통받으며 죽도록 여러가지 방법을 고안했기 때문이다.
단두대와 주변 장치를 개량하고, 조수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는 등
그가 개량한 사형법 덕분에 사형 집행에 걸리는 시간이 크게 단축되었고,
덕분에 보다 덜 고통스럽게, 그리고 보다 많은 죄수들을 처형할 수 있었다
.
이후 나치가 패망하면서 나치의 사형 집행관으로 악명 높았던 요한은 나치 부역자로서 투옥되었다.
하지만 그의 처벌은 가벼웠는데, 일단 요한이 나치당에 가입한 건 사실이지만
정작 나치로서 눈에 띄는 활동은 없는 단순 가담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요한이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한 것도 자기가 죽이고 싶다고 죽이거나
아니면 강제 수용소처럼 간수들이 내키는 대로 아무나 죽이는 게 아니라
어쨌든 법적으로 재판을 받고 사형 판결을 내린 죄수들만 처형한 것이었고
사형 판결을 내리는 데는 1%도 관여한 바 없는 요한에게 큰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다.
결국 연합국 교도소에서 1년 남짓한 수형생활 끝에 풀려난 요한은
이후 연합국 사법부에 협력하여 자신의 고용주였던 나치들을 처형하는 일을 도왔다.
요한을 고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한 나치 전범들이 본인들이 한 그대로 당한 셈이었다.
그렇게 나치와의 인연을 끝낸 이후 요한은 불행한 삶을 보냈다.
연합국이 아닌 독일 정부에 다시 투옥되어 징역 1년 6개월을 살기도 했고
나치에 협력한 대가로 모은 재산도 상당부분 압류되었고,
결혼 생활도 실패했고, 인간관계도 파탄났으며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아들은 결국 자,살했다.
결국 말년에는 정신병원에 갇히는 등 불행하고 가난한 삶을 보내다 78세에 사망했다.
이 사람은 영화에도 나온 적 있는데,
반 나치 운동가 백장미단을 다룬 영화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 에 나오는 사형 집행관이 바로 이 사람이다.
요한은 언제나 연미복 차림을 하고 사형수들에게 마지막까지 예의를 갖춰 보내주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훗날 소피 숄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요한은 '소피 숄은 자기가 본 가장 용감한 사형수였다'고 회고했다.
자기 할일만 열심히 했는데 일터가 낙지라서 그만...
저정도면 자기 나름대로 최대한 깔끔하게 보내 준 거네... 근데 일터나 나치 ㅋㅋㅋㅋㅋ
우리나라 친일파들 말로도 저랬으면 좋았을 텐데.
망나니 같은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뭐여 존내 젠틀하네
하필 일터가...
걍 평범한 소시민이였군 아무것도 하지않았지만 또한 아무것도 하지않은
대충 찾아보니까 심지어 8대째 가업으로 사형집행인을 하는 가문이었네. 정장입고 사형집행하는 것도 전통이라 그러고.
투철한 직업정신과 신사적인 성품 그리고 최악의 일터
유럽 사형집행자들 대부분이 엄청 말끔하고 귀족처럼 하고 다님 프랑스에서는 가문이 사형집행 가문인데 귀족 신분 하사함 그리고 보수도 엄청남 다만 휴유증이 대단해서 ■■하거나 알콜중독이 많다고함 이슬람쪽에서 참수하는 사형집행자들도 건당 보수가 엄청나지만 ■■하는 사람이나 그만두는 사람도 많고
사실 우리나라 망나니도 그렇고 저걸 좋아서 하는사람이 없으니까... 감정적인 동기가 있어서 하는게 아니고 생업으로 하는 사람이니.
자기 할일만 열심히 했는데 일터가 낙지라서 그만...
우리나라 친일파들 말로도 저랬으면 좋았을 텐데.
관심종자 프린스리: 내가 친일파라고 해야 친일파임!
근데 저 사람은 나치를 찬양하거나 그런건 아니자나 그렇다고 사형수들을 능욕하거나 그런것도 아니고..
하필 일터가...
저정도면 자기 나름대로 최대한 깔끔하게 보내 준 거네... 근데 일터나 나치 ㅋㅋㅋㅋㅋ
망나니 같은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뭐여 존내 젠틀하네
플라스틱 수저
사실 우리나라 망나니도 그렇고 저걸 좋아서 하는사람이 없으니까... 감정적인 동기가 있어서 하는게 아니고 생업으로 하는 사람이니.
플라스틱 수저
유럽 사형집행자들 대부분이 엄청 말끔하고 귀족처럼 하고 다님 프랑스에서는 가문이 사형집행 가문인데 귀족 신분 하사함 그리고 보수도 엄청남 다만 휴유증이 대단해서 ■■하거나 알콜중독이 많다고함 이슬람쪽에서 참수하는 사형집행자들도 건당 보수가 엄청나지만 ■■하는 사람이나 그만두는 사람도 많고
음... 막 그렇게 까긴 힘들긴 하네
E과
대충 찾아보니까 심지어 8대째 가업으로 사형집행인을 하는 가문이었네. 정장입고 사형집행하는 것도 전통이라 그러고.
그냥 자기 일만 열심히 한 사람인데 일터가 나치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걍 평범한 소시민이였군 아무것도 하지않았지만 또한 아무것도 하지않은
투철한 직업정신과 신사적인 성품 그리고 최악의 일터
자기 직업에 충실했을 뿐이긴 한데....
아니 자기일만 한 사람한테 너무하잖아
야매하네.. 고통을 줄이려고 노력했단걸 보면 최후의 인권을 생각한 사람같은데
사형집행인으로서는 훌륭한 사람이었네...
자기 딴엔 어쨋든 국가가 판결한 범죄자라고만 알았지 어케 알았냐ㅋㅋㅋ 사형장에 서서 단두대 내리는 일만 했는데ㅋㅋㅋ
처형집행인 말고 유태인들을 수용소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사람도 똑같이 '나는 나치 아래서 시키는 일만 했을 뿐이고, 그 일을 안했으면 나는 범법자가 됐을거다' 라고 스스로를 변호했지만 저 사람이랑은 다르게 짤 없이 사형됐다던데 무슨 기준으로 저 사람은 사형이 안된거지
그건 수용소 보내는걸 자기가 관여할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나
전범재판엔 기준이 없음 연합군이 꼴리면 사형이었음 비교적 낮은 죄질이었던 외국인 노동자 착취를 했던 프리츠 자우켈은 사형이고 유대인 학살과 전쟁 수행에 가장 핵심적으로 관여한 알베르트 슈페어는 20년형이었음
사형당한 사람은 죄 없는 사람을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로 보냈기에 처벌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보편적 상식선에서 부당한 명령을 들은건가 거부한건가의 차이인듯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로 보내기 vs 국가의 적법한 과정(?)을 거쳐 사형판결이 난 사형수 형집행하기 물론 나치하의 재판이었으니 그게 적법한가? 는 의문이긴한데 단순 사형집행수가 그 사형수가 무고한지 판단할수있는 여지는 없잖음
수용소는 명백히 나찌가 직접 운영하는 곳이기에 나찌당 가입 안하고선 거기서 일 못했을 거야.. 저 사람은 그저 정부의 하수인이었고, 나찌당에 가입하거나 하는 정치적 행동은 안했으니깐.
수용소로 보낸놈은 보낼때... 피해자를 대하는 행실이 않좋았겠지..., 글대로라면 저 양반은 사형수 한테 끝까지 예의를 지켰다고 했잖어..., 이 차이가 클거 같다.
단순히 보낸게 아니라 보내는 과정에서 모종의 행위가 있었다던가?
저 사람이 일종의 하청직 이었다고 함. 아무래도 나치당 산하에 고용된 하청직이라서, 직접 처분하기는 좀 애매했던거 같음
사형 집행인중애서도 사형 당한 사람은 많은 다만 저사람은 재판을 받아 형이 확정된 사람만 집행한거랑 고통을 줄이려 노력 했단걸 인정 한거임, 그리고 사형집행이 가업이었단것도 봐야하고. 사형당한 아우슈비츠 운송 한 사람은 내가ㅜ알기로 일부러 식량 공급도 안하고 여아 ㅁㅁ 매춘도 시킨걸로 알고 있음
그건 그렇지 않음 저 사람 소개할 때 나치 아래서 시키는 일만 했던 사람이라고 했고 어떤 학대 행위나 모멸감을 주는 행동 같은건 안했다고 함 전범 재판할 때 저사람 정신 감정에 들어갔던 의사도 내가 살면서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멀쩡한 인물이라고 할 정도로 살인귀라거나 싸이코패스 적인 성향도 없었다고 함
수용소 보낸 사람이 과정중에 학대행위나 모멸감을 주는 행동 같은 건 안했다고....?
저 사람이 하는건 서류를 분류하고 도장 찍어주는 작업 수준이라 그런 행위를 할 필요가 없기도 함
도장 찍는 행위가 있다는건 주관적 판단이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네.... 흠... 잘 알았음.
결국 그 등급도장을 찍는거 자체를 본인이 관여했다는 거니까 마음만 먹으면 안 보낼수 있었다는거 아녀
저 사람은 나치 생기기전부터 자기가 하단일응 쭉 해온셈이라. 정부하청하던 집안이 정부가 바뀌고도 계속 하던일 한거고.. 다른일은 그 하던일 이력 때문에 다 실패했다고 하니 다른일 했어야지..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러면 그 사람 대신 자신이 그 자리에 섰을지도 모르지.
나쁜사람은 아닌데 운이 없었네
자기 직업인데... 운이 없었던 것이지
역시 사람은 기술배워야해
애당초 사업이고 뭐고 사형집행한놈이라고 낙인 찍어버리고 언론에서 ㅈㄹ 거려서 앞길 막아버렸으면 저거 외에는 길이 없지않나 ㅋㅋㅋㅋ
정상참작은 저런 경우에 적용시키는게 맞다 봅니다. 자신이 맡은 일을 했을뿐인데 그게 나치당이라서 문제인거니까;;
저건 좀 많이 억울해 보인다... 진짜 저런게 직업인 시절에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불행한 개인사 라고나 할까...ㅎ
광신도가 아니라 성실한것 뿐이었네
좀... 안타깝...
몸 담을 곳을 잘못 선택한거지. 안타까울수도 있지만 결국 본인 책임.
전란에 휩싸인 나라에서 자기 일에 충실했던 사람들은, 시대의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이거 완전 이노센트 나찌판
이건 까기 힘든게 아에 가문자체가 사형전문 가문이네 ㄷㄷ 심지어 젠틀맨이고 ㅋ. 진짜 사형인 이라는 직업맨 바꾸면 그냥 평범한 노동자수준임
흑백사진 한 두장으로 뭔 눈빛을 감별하나
전에 어그로끌다 글삭튀한 공백 닉네임이 떠오르는걸
이런 직업은 싸이코패스가 해야 정신적타격이 없을려나..
근데 유럽의 사형집행인은 그들이 받은 멸시와 편견과 별개로 지엄한 국법의 최종 집행인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인간말종들에게 쥐어줄 직업은 또 아니었다고 들음
우리나라 친일파는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