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메의 문단속,
그럼에도 내일이 오리라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올바름 그 너머에서 너와 살아가고 싶어"
-스즈메의 문단속 op-
얼굴만 반반하면 따라가는 금사빠 소녀 스즈메. 등교길에 마주친 의문의 남성과 눈이 마주친다.
닫치지 않은 문을 본 적 있냐는 말에 의야해 하지만 스토킹 끝에 폐허 속 덩그러니 있는 문을 발견하고 냅다 열어버리고 이상한 조각상까지 뽑아버린다.
아무리 봐도 열면 큰 일 날 거 같은 문을 연 스즈메는 자신의 실수를 바로 잡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스즈메의 문단속은 현재 가장 주목받는 감독 중 한 명인 신카이 마코토의 최신작입니다.
이제까지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에서 다뤘던 재난이라는 소재를 더 직접적으로 표현한 작품이기도 하죠.
이번 리뷰에서는 감상을 조금 미뤄두고 막을 수 없는 재난과 남겨진 이에 대한 영화의 시선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 전세계적으로 봐도 손에 꼽을만한 재난이었고 그 상흔이 아직까지도 남아있죠. 재난하면 어떤 것들이 떠오르나요?
파괴된 마을? 터를 잃은 사람들? 무력한 정부나 무법지대에서 들어나는 본성 등을 떠올릴 수도 있겠습니다.
재해라는 건 결국 막을 수 없기에 그저 대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자연재해이든 인재이든 준비를 할 수 있을 뿐 원천차단 할 수는 없죠.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일본은 예로부터 지진에 대한 대비가 잘 되어있는 편이지만 동일본 대지진은 전 세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재난이었고 그걸로 수많은 사람과 터전을 잃었습니다.
대한민국이라고 크게 다를까요? 지진이야 비교적 덜 일어나는 편이지만 태풍이나 산사태에 의한 피해는 잊을만하면 들을 수 있는 소식입니다.
꼭 자연재해가 아니더라도 안일한 안전대책이나 책임감 없는 어른들에 의한 인재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또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을 앗아갑니다.
작중에서 스즈메는 동일본 대지진에 의해 어머니를 잃은 소녀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기에 일상을 회복해 평범하게 살아가지만 그 상처가 없어진 것은 아니죠.
스즈메를 이모인 타마키가 거두어주었지만 그렇다고 어머니의 자리를 전부 대체할 수는 없었습니다.
상처를 가진 스즈메는 자신이 친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소타와 모험을 떠납니다. 그리고 일본 열도를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죠.
스즈메는 낯선 곳에서 친구들 만들기도 하고 따뜻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일상을 위협하는 미미즈와 마주하죠.
미미즈는 지진을 일으키는 괴물입니다.
‘너의 이름은’은 유성, ‘날씨의 아이’는 끝없는 비로 표현되었던 재난이 여기선 아예 대놓고 지진으로 등장합니다.
신카이 마코토가 인터뷰에서 항상 언급하던 것이 바로 동일본 대지진입니다. 이전 작들의 재난도 결국 동일본 대지진에 뿌리를 두고 있는 거죠.
미미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이걸 단순하게 일상을 위협하는 재난으로 본다면 과거 미미즈에 의해 일상을 빼앗긴 스즈메가 다른 이들의 일상을 지키키 위해 싸운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어느 새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된 소타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많은 이들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달리던 스즈메가 마지막에 마주하는 것은 과거의 자신입니다.
12년 전 대지진으로 혼자가 된 어린 스즈메, 현재의 스즈메는 시간을 넘어 대지진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과거의 자신에게 손을 내밀 수는 있었습니다.
지금은 집도, 엄마도 잃어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아침이 돌아올 것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현재의 스즈메는 어린 자신에게 전합니다.
현실에서도 재난을 미리 막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재난에게 실체가 있다면, 막을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재난을 미리 예측하고 경고하며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리고 재난의 피해를 최소화 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피해가 지나간 후의 회복일 것입니다.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깊은 상처를 남겼을지라도 내일로 발을 내딛어야 합니다.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많은 일을 겪을 것입니다. 그러다 피할 수 없는 재난에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살아남았다면 깊게 남은 상처를 회피하지 말고 마주해야 합니다.
스즈메가 여정 끝에 도달한 곳이 상처 입은 어린 자신이었듯 덮어놓는 것이 아닌 마주하고 보듬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결국 아침이 오고, 다시 밤이 오고 시간은 흘러 회복할 것이라고, 스즈메는 과거의 자신에게 또 재난을 겪은 모두에게 말하고 있으니까요.
상처 입고 주저앉은, 그럼에도 재난 끝에 결국 살아남은 모든 이들에게 스즈메의 문단속이 말합니다.
"누구도 방해할 수 없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누구도, 스즈메를 방해할 수 없을 거야.
너는 빛 속에서 어른이 되어갈 거야."
-현재의 스즈메가 어린 스즈메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노토 지방 지진에 대해 조금 나쁜 스탠스를 취하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보도자료나 일본 정부에서 명백히 대한민국의 영토인 독도를 본인들 영토로 표기한 것 때문이었죠. 뭐 의도는 알겠는데 지진에 피해를 입은 일반인들이 한 일도 아니고 재난이라는 건 순식간에 모든 일상을 앗아가는 안타까운 비극인만큼 재난과 관련 없는 일본 정부의 헛짓거리에 눈 돌아가서 관련 없는 사람들까지 삐뚤게 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