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약간 하드SF 로 볼만한 책을 읽었습니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캐릭터의 비중이 약합니다. 따라서 배경설정과
스토리 및 그 중요 반전을 대부분 감상에 포함시킬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야 뭐 스포일러를 꺼리지 않지만 , 그런 쪽에 민감한
분들은 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 이 소설을 접했을 때 인상적인 광고카피가 있었는데 , 사실 그거 때문에 오해를 좀 한 기억이 납니다.
근미래 달에서 한 인간의 사체가 발견되는데 , 조사 결과 그 시체는 5만년 전에 사망한 것으로 밝혀진다. 이 월인 - 이하 찰리 로 부름.
의 존재를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가 이소설 전체의 주된 스토리가 되겠습니다. 전 아마도 시간여행이거나 평행차원 같은 스토리가
될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실은 전혀 아니더군요.
암튼 시간 여행물은 좀 복잡한데다 타임패트롤 시리즈로 약간 식상한 면도 있어서 곧 흥미를 잃고 말았는데 , 엉뚱한 오해를 한 셈이었습니다.
그후 몇년이 지나 얼마전 이글루스에서 우연히 그 소설이 만화화 (일본) 되었고 , 일부가 소개된 걸 봤는데 , 의외로 흥미진진하더군요.
그래서 시간을 내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소설은 여러모로 특이한 편인데 제일 중요한 점은 캐릭터가 굉장히 희미하다는 겁니다. 다 읽은지 하루 정도밖에 안되는 지금도 기억나는
주요 등장인물 이름이 주인공 빅터 헌트와 크리스천 단체커 뿐입니다. 나머지는 간단히 말해 죄 엑스트라 수준을 간신히 넘으면 다행인
조연 들입니다. 그나마 주인공을 스토리로 끌어들이는 콜드웰 이나 갈란드 , 롭그레이 정도가 조금 비중있는데 롭은 초반이후 곧 잊혀지고
린 갈란드는 콜드웰의 비서 , 콜드웰은 조직의 상관으로 주인공에게 이런 저런 임무를 부여하는 정도 입니다.
솔직히 마오유우 같은 소설에서 나오듯 그냥 직업명으로 대체해도 좋을 정돕니다. 사령관 , 엔지니어 , 비서 , 생물학자 , 천체물리학자....
이런 인물들이 모여서 불가해한 달의 시신을 두고 그의 출신을 규명해 나가는 이야기인데 , 얼핏생각하면 아무 재미 없는 무미건조한 이야기가 될거
같지만 , 불가능한 상황을 해명하기 위해 여러가지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하나씩 비논리적인 가능성들을 제거해나가는 과정이 매우
드라마틱하달까? 흡인력을 가지고 사람을 잡아 끌어들입니다. 덕택에 요새 재밌는 소설이라고 해도 며칠씩 걸리면서 겨우 읽었는데 이책은
달랑 이틀만에 독파해 버렸습니다. 최근의 페이스를 생각하면 경이적인 속도라고 해도 좋을 정도....
왜 찰리가 거기서 죽은 체 발견되었는가? 에 대해 밝혀지는 과거는 꽤 충격적이긴 해도 사실 어떻게 보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결국 과거에
무슨일이 있었는가? 에 대한 규명일 뿐이니까요. 학자 양반들에겐 엄청난 흥미를 일으키는 주제이지만 , 그와중에 발명된 가니메데 우주선에 비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과 단테커는 그 월인문제에 집착하는데 , 이것은 사실 소설의 주제와 관련이 깊습니다. 특히 주인공 헌트 보다 단테커 쪽이
더 중요한데 , 그 단테커는 매우 유능한 학자지만 기존의 진화론과 학술지식을 지나치게 교조적으로 받아들이는 인물입니다. 주인공은 그의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 맘에 안든다는 언급과 더해 "평생 한번도 웃어 본적이 없는 인물" 이라는 평가를 내려 버릴 정도로 그에게 거부감을 느끼죠.
그래서 주로 단테커의 반대편 입장에서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규합하고 그중의 헛점을 보완하거나 지적해서 정리해 주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콜드웰 눈에 들어 결국 코디네이터 자리 (말그대로 여러학자들의 의견을 조정하고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결과를 융합하는 일) 에 눌러 앉아
전체 프로젝트를 사실상 지휘하게 되죠. 이또한 말하자면 주인공의 성장이랄수 있는데 , 그는 뛰어난 능력의 학자로 인정받은 인물이지만 조직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프리랜서로 오래 일해온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의견을 조정하며 전체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움직이는
인물로 변하는 성장 드라마 적인 요소가 있죠.
성장드라마로 치면 단테커 역시 또다른 주인공이라고 할만합니다. 처음에 다른 과학자들의 견해를 비웃다시피 하며 독선적인 , 기존 이론에 기초한
견해를 피력하던 모습에서 점차 밝혀지는 사실들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해명가능한 가설들을 하나씩 세워나가고 자신의 이전 견해들을 수정하고 또
수정합니다. 결국 마지막에 월인이 누구인가?! 를 밝혀 내는 최대의 수훈을 세우기도 하고요. 물론 주인공 역시 그 못지 않은 활약을 하지만, 오히려
라이벌 포지션이던 단테커가 마지막 문장을 장식할 줄은...^^; 작중에서 작지만 의미 심장한 단테커의 변화들이 포착되는데 , 그중 하나가 지구를 떠나
달에 도달했을 때 , 그가 주인공에게 농담을 한 사건이죠. 실로 별거아닌 사소한 일이었지만 , 지구라는 환경을 벗어나 인간이 격는 여러가지 감정적
변화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목성에서 주인공이 격는 일종의 깨달음? 이벤트에 비길만하다고 생각됩니다.
주인공이 목성의 위성 가니메데에서 월인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고민하다가 갑자기 일종의 영감을 얻는 장면은 솔직히 좀 비논리적? 이긴 했지만
여러 천재들이 난제와 싸우다가 어느날 갑자기 떠오른 영감으로 문제를 해결한 사례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의외로 현실성있는 전개 일수도 있는 거
같네요. 다만 이장면이 끼친 영향은 의외로 건담등에서 "목성귀환자" 라는 형태로 오마주 된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
주인공과 여러학자들이 격는 머리싸움의 과정을 풀어내는 솜씨나 , 그결과 드러나는 드라마틱한 월인 찰리의 최후에 관한 모습은 여러가지로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결국 작중의 월인은 우리인류의 또다른 모습에 지나지 않거든요. 이책이 쓰여진 연도를 생각하면 당연합니다. 동서냉전으로 미국과
소련을 필두로한 양 진영은 서로 수만개의 핵무기를 가지고 인류 멸망을 건 대전쟁을 대비하고 있었고 , 2010년대를 사는 우리는 단지 운이 좋게
멸망이라는 선택지를 피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월인은? 어리석은 선택을 한거죠. 다만 그들의 환경에선 불가항력이었다고도 할수 있었지만요.
결국 이소설의 또다른 주제는 인류멸망을 부를지도 모르는 대치를 거듭하고 있는 어리석인 현 인류에 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떨어져가는 산소에
의존해 쓸쓸하게 고향이 핵으로 불타 버리는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며 오로지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기 밖에 할수 없는 입장이 된다면 ? 그것은
어쩌면 1977년 기준에서 우리 인류의 미래 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월인의 그 고난의 삶 또한 무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미네르바에서 단련된 그들의 강인한 생존의지와 꺽이지 않는 생명력은 결국 멸망의 재앙을
돌파해 새로운 신촌■를 개척했으니까요. 결국 별의 계승자란 제목의 의미는 그런 것입니다.
다만 아무래도 오래전에 씌여진 소설이다 보니 헛점도 꽤 보입니다. 작중시점은 2029년 정도로 이미 이시점에 경제발전과 저출산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어 , 각국이 군비경쟁을 포기하고 유엔 우주군이 실질적으로 마지막 군대가 되고 , 그들도 전쟁보다는 우주개척에 매진하는 집단이 됩니다.
현재 2013년 시점에서 불과 10년 좀 넘는 미래에 저렇게 된다고 보기는... ^^; 더불어 인터넷도 상당히 초보적인 수준으로 묘사되어 넷을 활용한다는게
고작 렌트카 와 여객기 예약정도?
로봇이 조종하는 광자 추진 우주선이 항성간 여행을 준비하며 개발중인데 전장이 무려 11킬로 짜립니다. ^^
그런데 작중에 발견하는 충격적인 외계의 유산은 그런것 조차 구시대 유물로 만들 잠재력이 있다고 나옵니다. 이건뭐 갑자기 "나이트워치" 시대로
점프하는 느낌이 들 정돕니다.
다 읽은 지금은 작가의 후속작들을 읽고 싶다는 건데... 안타깝게도 뒷이야기는 번역출간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꼭 후속작이 나와서 재밌게 볼수 있게 되길
랍니다.
명작이죠. 처음 샀을 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려고 다시 찾아봤더니 절판이라서 아쉬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