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諸葛亮)이 비록(雖) 영패(英霸)의 재능을 갖췄으나(資), 주인(主-유선)이 중흥(中興)의 그릇(器)이 아니였고(非), 변변찮은(區區之) 촉(蜀)으로 이미(已) 폐기된 (천)명(廢之命)을 따라 강한 위(強魏)를 북탄(北吞)하고자 하였으며, 상국(上國-위)과 항형(抗衡-맞먹다, 필적하다)하였으니, 또한(亦) 어렵지(難) 아니하였던가(不). 송양(宋襄-송양공)이 패자(霸者)를 탐했던(求) 것과 닮았도다(似)! 틀림없이(然) 제갈량은(亮) 정사를 수행하여(政脩) 백성을 다스렸고(民理), 밖(外)으로는 위무(威武)를 떨쳤다(振). 곧(爰) 장완(琬)과 비의(禕)에 이르어서는(迄), 수(脩)를 좇을 뿐 바꾸려 하지 아니하고(弗革), 대국(大國)들 사이에서(之間) 다스림으로써(攝乎) 약한 것(以弱)을 강하게 만들었으니(為強), 오히려(猶) 스스로를 지키는 것(自保)이 옳았다(可). 강유(姜維)는 재능(才)이 제갈량(亮)의 짝(匹)이 아니였으나(非), 그 넓은 법도(洪軌)를 계승하였으니(志繼), 백성들은 그의 공로(其勞)를 싫어하였으며(嫌), 집안과 나라(家國) 역시(亦) 잃어버렸도다-유후주지
지금 우리 나라와 조건국은 모두 새 군주에게 나라를 인도했고 시대는 바뀌어 진나라 말기 같은 혼란한 시대가 아니라 실로 육국이 동시에 할거하는 형세가 있습니다.
때문에 문왕은 될 수 있지만, 한고조는 되기 어렵습니다.-구국론
「한진춘추漢晉春秋」에서「비의(費禕)가 (강)유에게 말했다, “우리는 승상(丞相)(→제갈량) 만 못하거니와 또한 많이 뒤떨어지오. 승상께서도 중하(中夏,중국,중원)를 능히 평정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우리들이겠소! 나라를 보전하고 백성들을 다스리며 신중하게 사직(社稷)을 지키느니만 못하오. 공업(功業)을 세우는 것은 능력있는 자를 기다려야 할 것이며, 요행(徼倖)을 바라며 일거에 성패(成敗)를 결정하려 해서는 안되오. (그렇게 하다가) 만약 뜻대로 되지 못한다면 후회해도 다시 어쩔 수 없을 것이오.”
유방은 했는데!
유방은 거병부터 진나라 멸망까지 전공만해도 촉나라 애들 전공 합친거 넉넉하게 이김
유방은 거의바로나가서 성공함 반년도안되서나감
뭐 실제 촉망할때 딱 비의말대로 됐잖아. 한타대박노리고 작계변경했다가 한중먹히고 그대로 멸망
라흐바
만명 이상 안주는데 적당히 이득보라는 소리지 북벌할 의지가 있는 걸로 해석하기 힘듬
삭제된 댓글입니다.
라흐바
정권 잡고 있는 사람이 우리는 승상보다 못해서 지키는 것보다 못하다 이러는데 뭘
가만히 있으면 유장마냥 이럇샤이맛세 했을거라... 북벌 자체는 문제없는데 강유의 북벌이 국력소모가 커서 문제라고 봄
그냥 적도에서 개털렸으면 한탕정신이 안생겼을텐데
촉조정이 제갈량 사후 우리는 안되니깐 기회보면서 지키자인데 북벌 자체가 문제가 없다는게 동의하기 힘듬 결국 촉조정이 맞는 평가한거고
촉 내부 조정에 계파들이 한맘 한뜻이었다면 말이야... 강유에 포커스가 가있어서 놓치는건데 조정도 황호때문에 그닥 정상은 아니었음
비의가 직접 우리 능력이 승상보다 못한대 승상도 못한거 우리가 할 수 없으니 지키면서 기회보자 이런식으로 말해서 적어도 비의시점때 가면 현실론이 우새함
난 시대가 그걸 기다려 준다고 생각하진 않음, 오나라라면 모를까 이데올로기가 정해져있는 촉은...
비의가 그렇게 생각하고 비의 암실이후에도 강유외에는 딱히 북벌에 집착하는 분위기도 아니고 촉내부에서는 이미 현실론이 대세인데 그걸 역전시킬 역량도 아니면서 북벌한다는게 옳은걸까? 이미 강유제외하고는 역량차이 인정하는데
화양국지 보면 막상 또 그렇지 않음, 이것도 결국 시선의 차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