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하랄트 얘너
역자 - 박종대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쪽수 - 540쪽
가격 - 28,000원 (정가)
‘전후 독일인의 심리’를 해부한 최초의 역사서
전후 독일인은 무엇을 망각하고 어떻게 회복했는가?
가장 중대한 변화는 일상에서 시작되었다. 먹을 것을 조달하는 일에서, 약탈에서, 교환에서, 구매에서 일어났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전쟁이 끝나자 성적 모험의 물결이 봇물처럼 터져나왔고, 다른 한편으로 그렇게 갈망하던 남자들의 귀향 뒤에 극심한 실망도 뒤따랐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고 싶어 했으며, 이혼 수치는 비약적으로 치솟았다.
가족은 해체되고, 삶의 질서는 산산조각이 났으며, 인간 관계는 상실되어 갔지만, 사람들은 새롭게 다시 모여 어울렸고, 젊고 용기 있는 사람들은 잿더미의 혼란 위에서 매일마다 자신의 행복을 찾는 모험을 즐겼다. 전후 독일인의 의식을 볼 때 홀로코스트가 미친 영향은 놀라울 정도로 미미했다. 자신들의 ‘수상쩍은 행복’을 위해서 홀로코스트를 회피했고, 자신들을 희생자로 그렸다. 그러면서도 전후 시대는 지금까지 여겨지던 것보다 더 논쟁적이었고, 삶은 더 개방적이었으며, 지식인은 더 비판적이었다. 의견의 스펙트럼은 넓었고 예술은 더 혁신적이었다. 이런 의식적 억압과 왜곡 속에서 반파시스트적이고 신뢰를 일깨우는 오늘의 독일이 탄생했던 것이다.
이 책은 전쟁 직후 10년의 기간 동안 독일이 거쳐야 했던 재건 사업과 그 속에서 분열된 독일인의 멘털리티를 다각도로 살핌으로써, 잊고 있던 1945년과 1955년 사이의 독일을 새롭게 조명한다. 공식문서나 출간된 책뿐 아니라 일기, 수기, 문학작품, 신문, 잡지, 영상자료, 심지어 유행가 가사 등 방대한 자료와 세심한 해석을 통해 독일이 어떻게 그 시기를 넘어 오늘의 독일을 만들었는지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특히 토마스 만, 한나 아렌트 같은 유명인뿐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일반인들의 개인적 기록을 통해 그 시대의 분위기까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포착했다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우리가 아는 자기반성은 없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침묵의 카르텔, 희생양 논리를 주장한 독일인들
1945년 5월 8일 독일이 공식적으로 패망한 이른바 ‘제로 시간’ 직후, 독일인들이 맞닥뜨린 건 약 5억 세제곱미터의 폐허 더미였다. 전쟁으로 인한 6000만 명의 사망자, 붉은 군대의 진입과 함께 시작된 ㅁㅁ의 물결, 서방 연합군의 독일 점령, 1946년과 1947년 ‘기아의 겨울’이라 불리는 지옥을 경험한 독일인은 마치 홀로코스트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신들을 ‘희생자’로 여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그저 사람을 마비시키는 ‘독’과 같은 국가사회주의에, 사람을 순종적인 도구로 길들이는 ‘ㅁㅇ’과 같은 나치즘에, 히틀러라는 ‘악’에 희생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어떤 민족의 영혼도 독일 민족의 영혼만큼 운명에 의해 그렇게 자주, 그렇게 깊이 갈아엎어져 새로운 정신의 씨앗이 싹틀 토양을 마련하지는 못할 것이다.”_본문 430쪽
당시 언론과 책, 논문에는 독일인이 겪은 고통을 다른 민족의 어떤 고통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최상급으로 표현한 글이 넘쳐난다. 그 시기를 어둡게 그릴수록 자신들의 잘못과 책임과 죄책감이 더 가벼워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앞선《관점》의 기사는 이러한 처절한 생존 욕구 앞에서 독일인들이 택한 희생자 논리, 홀로코스트에 대한 의식적 억압, 집단적 침묵의 심리적 발로였다.
전후 독일인조차 옛 시절을 회고할 때, 스스로를 그동안 겪은 일을 일단 말없이 견뎌내야 했던 ‘위대한 침묵자’로 그리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침묵은 홀로코스트에 한해서만 선택적으로 이루어졌다. 오히려 죽음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대다수 사람들은 전례 없이 뜨거운 ‘삶의 기쁨’을 만끽했다. 항복 선언 후 보름 만에 폐허 속에서 영화관이 다시 문을 열었고, 두 달 만에 밤새 투어를 돌 수 있을 만큼 수많은 댄스홀이 영업을 재개했다. 전후 전체 인구의 약 5%만이 살아남은 쾰른에서는 1946년 으스스한 잔해 사이로 이미 작은 ‘카니발 행렬’이 지나갔고, 같은 해 베를린에서는 ‘환상 무도회’가 열렸다. 1947년이 되자 사람들은 벌써 휴양지로 휴가를 떠났다. 질트섬의 1만여 개 휴양 숙소 가운데 6000개는 피난민들로 꽉 차 있었지만, 나머지 숙소는 휴양객들이 차지했다.
저자는 패망 직후 수십 년간 수백만 명의 학살에 대한 폭넓은 사회적 논쟁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과거 청산은 1963년부터 1968년까지 아우슈비츠 재판이 진행되면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이 또한 철저한 자기반성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나치 세대에 불복종 운동을 펼칩시다”라는 1967년 길거리에 붙은 전단처럼 68세대의 분노에서 촉발된 부모 세대에 대한 역사적 승리였다. 즉 우리가 모범 사례로 드는 독일의 과거사 청산은 1945년 이후 독일인들이 스스로에게 가했던 억압의 후유증이었던 것이다.
“도덕적 붕괴와 집단적 인식의 왜곡”
내부자의 눈으로 전후 독일인의 멘털리티를 부검하다
패전 후 연합군이 점령하기 직전 ‘권력의 공백기’에 독일인들은 ‘약탈’에 몰두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 속에서 사람들은 정부 건물, 비축품 창고, 화물열차, 농장, 이웃의 집까지 미친 듯이 물건들을 털었다. 이는 18세의 평범한 독일 여성의 일기에 친지, 이웃들과 함께 떠난 약탈 기행이 기록되어 있을 만큼 일반적인 일이었다. 연합군은 곧 행정기관의 정상화를 통해 사회 시스템은 안정시켰지만, 도덕적 붕괴는 멈출 줄을 몰랐다. 특히 종전 직후 3년간은 1인당 최하 800칼로리의 식량만 배급했기 때문에 독일인들은 늘 굶주림에 시달렸다. 사람들은 대체로 부도덕한 자구책을 다양하게 마련했고, 시골로의 ‘도둑질 투어’도 그중 하나였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원하는 것을 살 수 없는 도시민들은 시골 농부들의 수확물을 훔치기 위해 기차를 탔다. 식량 배급표의 틈새에도 금세 구멍이 생겼다. 암시장에는 연합군의 PX에서 횡령하거나 밀수한 물건들이 넘쳐났고, 위조된 식량 배급표가 다발로 유통되었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늑대의 시간’, 즉 ‘자연 상태의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늑대인’ 시간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법의식과 도덕 감정의 완전한 붕괴가 임박했다는 뜻이었다.
“얼어 죽지 않은 사람은 모두 도둑질을 했다. 모두가 도둑이라면 과연 서로를 도둑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_본문 261쪽
1947년 범죄학자 한스 폰 헨티히는 “독일의 범죄 양상은 서양 문명의 역사에서 유례없는 규모와 형태를 띠고 있다”며 ‘범죄의 일상화’에 대해 우려하는 글을 발표했다. 당시의 잡지, 학술서, 신문, 수기 등에는 이런 독일인의 법의식 실종과 죄책감에 대해서 벌인 논쟁이 수없이 발견된다.
그러나 독일 전후 일상의 특수성에서 벗어나 역사적 거리를 두고 이런 논쟁을 바라보면, 논쟁 자체가 터무니없어 보인다. 독일에서만 50만 명의 유대인이 약탈당하거나 집에서 쫓겨났고, 그중 16만 5000명이 살해되었다는 사실은 법의식 실종의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패전 후 세상 사람들의 눈에 ‘독일인들’은 전쟁 범죄와 제노사이드를 통해 가해자로 낙인찍힌 지 오래였는데도 독일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나라가 질서와 품격을 갖췄다고 생각했다. 국외에서는 전후의 이런 시스템 붕괴를 독일을 재사회화할 기회로 바라보았지만, 독일인들은 이제야 범죄의 구렁텅이에 빠졌다고 우려했다는 점에서 당시에 집단적 인식의 왜곡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유추할 수 있다.
강제수용소 유대인의 행방, 전쟁 이주민의 사회적 역할
시민사회의 초석은 이렇게 다져졌다
유대인들이 수용소에 잔류한 까닭은 다양했다. 대부분은 돌아갈 곳이 없어서였고, 정신적ㆍ신체적 쇠약함으로 이송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미군은 “유대인은 같은 국적의 다른 비유대계 주민들보다 나치에 의해 훨씬 더 큰 고통을 받았다”는 이유로 유대인 생존자들을 위한 새로운 수용소를 마련해줬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뮌헨 인근의 ‘푀렌발트 수용소’였다. 원래 염료회사의 사택 단지였던 푀렌발트는 말이 수용소지 작은 유대인 사회나 다름없었다. 켄터키 거리, 뉴욕 거리를 포함해 총 15개의 거리가 있었고, 자체 행정기관, 정당, 경찰, 법원, 병원, 직원 훈련소, 학교, 극장, 스포츠클럽 등 다양한 시설과 심지어 이디시어로 신문까지 발간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많은 유대인이 떠났지만, 반대로 돌아오는 유대인들도 있었다. 십수 년의 수용소 생활로 자유로운 삶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 남들이 알아서 삶을 정리하고 보호해주는 수용소 속 ‘수동적 삶’을 그리워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강제 징용자들 외에도 전후 연합국이 책임져야 할 사람은 총 4000만 명이 넘었다. 피난민, 노숙자, 탈영병과 얄타회담 및 포츠담회담으로 독일 동부가 폴란드령이 되면서 강제 이주당한 실향민들, 반유대주의와 집단학살로 독일로 밀려드는 유대인 난민까지, 종전 직후 독일은 또 다른 디아스포라로 뒤엉켜 있었다. 이에 더해 여전한 인종주의와 지역주의, 부족주의까지 횡행하며 당시 사람들조차 사회 통합이 가능하리란 상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통합의 기적’은 일어났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1200만 명의 실향민이었다. 연합군 계획하에 시골로 이주한 그들은 지역 토착민의 적대감 속에서도 사회 현대화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탈지방화의 효소 기능, 지역적 차이의 평준화, 경제 기적의 동력, 그리고 헌법적 애국주의에 기반한 국가 정체성을 중심으로 단결하는 데도 실향민이 일조했다. 곧 제도적 통합도 뒤따랐다. 특히 1952년에 서독에서 실시된 ‘부담 조정법’은 ‘부동산과 주택, 기타 자산을 소유한 사람은 50%를 손실을 입은 사람에게 양도해야 한다’는 본래 목적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해냈다. 치열하고 집요한 논쟁을 거쳐 힘겹게 균형을 이룬 타협안에 동의하는 재분배 과정에서 훗날 ‘시민 사회’라 불리게 될 공동체적 자산의 초석이 놓인 것이다.
나치, 파시즘, 제3제국의 흔적은 어떻게 지워졌나?
거대한 설계자 연합국의 치밀한 계획
미군 또한 메릴랜드의 리치캠프에서 고도의 훈련을 받은 ‘리치 보이스(Ritchie Boys)’와 함께 열여섯 개의 새로운 신문을 창간하고 배포했다. 한데 소련과 달리 미국이 ‘민주주의의 촉진제’로서 독일인들을 ‘재교육’하기 위해 주목한 게 또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예술, 그중에서도 ‘추상미술’이었다. 미국은 추상미술이 ‘상상력의 탈나치화’에 좋은 미적 프로그램일 뿐 아니라 소련에 대항하고 서독에 독자적인 미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적합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추상미술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전폭적이었다. 젊은 화가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전시회 자금을 지원하고, 그들의 작품을 다량으로 구매했다. 미국의 치밀한 작전을 통해 추상미술에 대해 여전히 반감을 가진 독일인의 집에도 서정적인 추상화가 침투했다. 추상 무늬의 커튼과 카펫, 테이블보가 집 안을 장식한 것이다. 전후 독일인들의 집은 곧 둥글고 불룩하고 구부러지고 비스듬한 소도구들과 ‘콩팥 모양’의 키드니 테이블 같은 가벼운 가구들로 채워졌다. 파시즘의 상징과 같은 육중한 참나무 가구들은 버려지고 새로운 ‘시대정신’이 집 안 곳곳에 놓인 것이다. 이성만이 탈나치화의 유효한 수단이라 보는 사람들에겐 터무니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디자인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말처럼 독일인들은 환경을 바꿈으로써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규명하고자 한 부분은 명확하다. ‘다수 독일인이 개인적 책임을 거부했음에도 어떻게 나치 정권을 가능케 한 심리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나?’ 여기서 이전의 과대망상만큼이나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미몽에서 화들짝 깨어난 듯한 급격한 ‘현실 자각’이었다. 게다가 연합국에 딸려 들어온 느긋한 생활 방식의 매력, 암시장을 통한 쓰디쓴 사회화 과정, 실향민에 대한 사회적 통합 노력, 추상미술을 둘러싼 떠들썩한 논쟁,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즐거움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모든 것이 심리 상태의 변화를 촉진했고, 그 토대 위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담론은 서서히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독일’과 ‘독일인’이라 부르는 그들은 바로 이렇게 탄생했던 것이다.
- 들어가는 말: 불행 사이로 비치는 행복 7
1. 제로 시간?
수많은 시작과 끝ㆍ19 | 지옥을 경험한 사람들ㆍ28
2. 폐허 속에서
거대한 잔해는 누가 치울 것인가ㆍ37 | 폐허의 아름다움과 잔해 관광ㆍ55
3. 대이동
영원히 고향을 잃은 사람들ㆍ71 | 해방된 강제 징용자와 유랑 포로ㆍ78 | 충격적인 자기 자신과의 만남ㆍ102 | 길 위에서의 곤궁한 삶ㆍ124
- 4. 댄스 열풍
끓어오르는 삶의 기쁨ㆍ139 | 잿더미 위에서 열린 광란의 파티ㆍ149
5. 파괴된 도시의 사랑
탈진한 남자들의 귀향ㆍ171 | 《콘스탄체》, 여성의 목소리를 내다ㆍ185 | 삶에 굶주리고 사랑에 목마른ㆍ191 | 여성 과잉 시대ㆍ199 | 동쪽 여성들이 겪은 “능욕의 시간”ㆍ209 | 서쪽의 양키 애인, 베로니카 당케쇤ㆍ216
6. 약탈, 배급, 암거래: 시장경제를 위한 수업
재분배의 시작: 약탈을 배우다ㆍ237 | 식량 배급표의 논리학ㆍ243 | 좀도둑 민족의 탄생ㆍ252 | 시민 학교로서의 암시장ㆍ271
7. 경제 기적과 부도덕에 대한 염려
화폐 개혁, 두 번째 제로 시간ㆍ285 | 볼프스부르크, 인간 대농장ㆍ296 | 부부의 성을 사업 모델로 삼다ㆍ321 | 도덕적 타락에 대한 두려움ㆍ332
8. 재교육자들
연합국의 독일 정신 개조ㆍ343 | 고향을 찾은 낯선 손님들ㆍ360
9. 예술 냉전과 민주주의 설계
문화에 대한 갈망ㆍ385 | 추상미술과 사회적 시장경제ㆍ393 | 키드니 테이블이 바꾼 생각들ㆍ414
10. 억압의 소리
공기처럼 사라진 파시즘ㆍ425 | 침묵, 말, 그리고 내키지 않는 밀착ㆍ434 | 탈나치화와 민주주의ㆍ451
맺음말: 삶은 계속된다 460
주 466
참고문헌 507
그림 및 인용 출처 521
찾아보기 522
추 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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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하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책 중 가장 세심하게 연구된 역사서 중 하나다.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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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재능이 있는 해설가. 엄청난 달변과 뛰어난 극적 감각으로 책의 저자는 이 역사적 자료를 놀랍고도 매혹적인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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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속적인 과거 청산 과정의 일부다. 방대한 문헌을 바탕으로 나치즘이 패배하고 독일이 서방 동맹국과 소비에트 러시아로 분할된 후의 놀라운 10년을 명쾌하게 개괄한다. 폭발적인 이념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주제를 다루지만, 이야기는 신중하며 공정한 지성과 가벼운 필치로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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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민이 자신의 과거를 자유롭게 기록하고 토론하는 것을 장려하거나 심지어 허용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오히려 현대의 정치적 목적을 뒷받침하기 위해 허구의 역사를 위조하는 국가가 얼마나 많은지 보는 것은 암울한 일이다. 미국과 대부분의 유럽에서는 진실을 추구할 권리를 당연하게 여긴다. 독일인들은 특히 20세기 중반에 대한 모범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이 책을 통해 더욱 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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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직후를 관통하는 이 책은 독일인들이 열심히 일하고, 새로운 것들에 적응함으로써, 트라우마와 죄책감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났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독일인들은 참혹한 패배를 딛고 일어섰다. 작가의 우아한 분석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삶의 세밀한 지점들을 드러냄으로써, 도덕적으로 혼탁해 보이는 역사의 분기점을 생생히 재현한다. 이 책에서 눈을 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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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독일이 어떻게 그리고 왜 사악한 파시스트적 사고방식에서 현대 민주주의 국가로 급진적으로 변모할 수 있었는지 살펴본다. 정치, 사회, 지리적 영역을 넘나들며 광범위하면서도 예리하게 당시의 시대상을 개관하고, 끔찍한 전쟁의 패전국이라는 극명한 결과에서 방황하는 한 나라의 초상을 명료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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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패망 후 독일사회의 모습과 독일인들이 무슨 생각으로 지냈는지는 왜인지 평소 궁금하던 주제였는데, 그에 관한 책이 나왔길래 주문했습니다. 책 사면 대개 그렇듯이 본격적으로 읽는 건 미루고 대충 훑어보기만 했는데, 취미로 역사를 들여다 보는 시각에서 볼 때 과도한 TMI 라는 인상을 받긴 하네요. 하지만 굳이 그런 자료를 접해본다면 관심있던 이 시기를 선택하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나쁘진 않은 듯 합니다
2차 대전 패망 후 독일사회의 모습과 독일인들이 무슨 생각으로 지냈는지는 왜인지 평소 궁금하던 주제였는데, 그에 관한 책이 나왔길래 주문했습니다. 책 사면 대개 그렇듯이 본격적으로 읽는 건 미루고 대충 훑어보기만 했는데, 취미로 역사를 들여다 보는 시각에서 볼 때 과도한 TMI 라는 인상을 받긴 하네요. 하지만 굳이 그런 자료를 접해본다면 관심있던 이 시기를 선택하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나쁘진 않은 듯 합니다
전쟁은 인간을 극도로 짐승만도 못한 존재로 만들어버리죠. 아니 그보다 더 한 존재로 만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