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엔 신비한 생물이 있다.
포켓몬스터.
직역하면 주머니 괴물이지만 이상하리만큼 이 이름에 이 ‘세계’사람들은 그런 부분에 조금의 의문도 갖지 않는다.
아무튼 그런 신비한 생물체를 다루는 인간을 ‘포켓몬 트레이너’라고 부른다. 또한 그 트레이너의 정점에 서는 것이 바로 ‘포켓몬 마스터’.
그렇다.
모든 트레이너의 최종목표이자 꿈.
물론. 지금의 소년도 인간들 중 한명이다.
삐-. 삐-.
시끄러운 알람소리가 쓰레기장 같이 더러운 방안에 울려 퍼진다.
그리고 그 알람의 중심에 있는 소년은 평소라면 당장 알람을 끄고 다시 잠을 청할 테지만 오늘만큼은 알람을 끄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소년은 입고 있던 푸른 물방울의 잠옷을 대충 벗어던지고 옷장에 걸려있던 심플한 추리닝으로 보이면서 묘하게 단정해 보이는 외출복으로 갈아입는다.
오늘은 소년의 17번째 생일.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좋을 시기구나~’라고 생각하는 날이다.
왜냐면.
“드디어 나도 포켓몬 트레이너가 되는 건가”
소년은 평탄하면서도 약간 들뜬 듯이 중얼거렸다.
‘포켓몬 트레이너’를 목표로 하는 인간은 세상에 수도 없이 넘쳐난다.
소년도 그런 인간 중 한명.
하지만 포켓몬 트레이너가 되어 여러 체육관을 돌고. 리그의 참가하고. 포켓몬 마스터가 되려면 여러 가지 곳들을 다녀야 할 필요가 있다.
즉. ‘여행’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개나 소나 ‘여행’을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이 ‘세계’가 정한 것이 바로
“그나저나 17살부터 여행을 할 수 있는 ‘법’ 이라니. 역시 이해 할 수 없다니까……, 이왕 정할 거면 만 19세 성인으로 제한을 하던가 할 것이지…. 뭐, 상관은 없지만 서도”
***
“정말로 가버리는 거니?”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식탁에 소년과 마주보고 있는 조금 어리게 쳐주면 10대 후반. 많이 쳐줘도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조금 긴 갈색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어둔 여성이 어떻게 들으면 장난으로도 들리는 소리로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말 했잖아요. 포켓몬 마스터가 되겠다! 고……, 게다가 아버지도 찾아보고 싶고”
소년은 아마 당분간은 먹지 못할 따뜻한 밥을 한 숟갈 입에 넣으면서 말했다.
“아아아아,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보면 안 될까?, 그, 왜, 여행이라면 내년에 가도 상관없잖아?”
“안돼요”
너무나도 단호하게 대답해 버리는 소년에게 10대 후반에 젊은 여성은 부르르르 몸을 가늘게 떨며 날카로운 눈으로
“너무 매정해!”
“안 매정해요”
“매정해 매정해!”
“저기….”
“아아!, 떠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버려! 대신에 이 엄마는 매일매일매일매일 혼자서 이 집구석에서 훌쩍훌쩍 울다가 바퀴벌레와 만나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결국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나중에는 연인 사이로까지 발전. 최종적으로는 사랑의 도피를 해버릴지도 모른다고?!?!?!!!!”
눈에는 약간의 눈물까지 고여 있는 엄마를 말끔히 무시하고 소년이 묵묵히 밥을 먹자
“이번엔 말도 안 해주는 거야?, 엄마 정말로 삐져버린다!”
“잘 먹었습니다”
“그거 말고! 좀 더 다른 말을 해보란 말이….”
문득 소년의 어머니는 말을 멈추고는 멍하니 소년을 바라봤다.
아니, 정확히는 소년이 오른손으로 자신의 식기를 정리하면서 왼손으로 어머니의 입을 막은 것이다.
곧 식기를 모두 정리한 소년은 왼손을 어머니의 입에서 치우고는 나름 상큼하다고 생각하는 미소를 싱긋 지으며
“괜찮아요. 나는 꼭 무사히 돌아올 테니까. 덤으로 아버지까지 세트로 돌아올게요.”
소년은 어머니의 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의자 옆에 세워둔 배낭을 메고는 바로 집을 빠져나왔다.
어머니는 그런 소년의 등을 마지막까지 멍하니 지켜보고는
그리고 작게. 이젠 자신밖에 없을 집임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진짜. 역시 ‘그 녀석’과 완전히 똑같이 자라 버렸…. 잖아…….”
***
‘라고 멋지게 집을 나온 건 좋은데…….’
소년은 지금 매우 곤란해 있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아니, 뭐라고 이 새♡야?”
소년의 앞에 있는 것은 소년보다 조금 키가 작은 초로의 백발노인이다.
아마 이 ‘세계’의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알 만한 유명인.
“아아, 그러니까. 너한테 줄 포켓몬은 없다고 했단다. 미안”
“어어어어어어어이!!,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분명히 오늘 오면 이상해씨, 파이리, 꼬부기 중 한 마리 주는 거 아니였어?!, 준다고 했었잖아!! 지역광고에도 그랬고! 알림판에도 분명히 써 있었어!!!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오박사 이 자시이이익!!”
“그게 말이야.. 이미 앞에 녀석들이 전부 가져가 버렸다고…. 무려, 첫 번째로 ‘파이리’를 가져간 녀석은 새벽에 떠났고”
“뭐?, 뭐? 뭐? 뭐?, 아아아아아, 아 , 아 아, 이거 그거지?, 그래, 맞아!, 피카츄!! 피카츄 주는거지?!, 좋아, 피카츄라도 좋으니까 제발 줘!!”
소년은 전기구슬도 없는 피카츄따위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트레이너’가 되려면 포켓몬이 필요하다. 아무리 좆같은 포켓몬이라도 한 마리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안. 그녀석도 줘버렸어.”
이자시이이익!. 하며 자신도 모르게 오박사의 멱살을 잡은 소년이었지만 오박사는 비교적 냉정하게 “어쩔수 없잖아. 없는걸...” 하며 소년을 타일렀다.
“정말 미안. 그래도 여기. 몬스터볼 정도라면 줄 테니까 말이야. 무려 5개나!!”
‘겨우 200원짜리 몬스터볼 5개 가지고 대단한 일 한다는듯이 말하지마아아아아!!!’를 마음속으로만 중얼거리고 더 이상 뭔가를 따질 기력이 없는 소년은 혼이 빠져나간 듯이 하하하 하고 웃을 뿐이었다.
***
“젠자아앙 세상에 되는일이 하나도 없어!, 나느 햄보카고 시픈데 어째서 햄보칼수가 없는거야아아!!”
결국 오박사에게 몬스터볼만 5개(포켓몬도감의 여분도 없어서 도감조차 받지 못했다)를 받은 소년은 힘 없는 걸음으로 자신의 마을인 ‘태초마을’에서 상당히 떨어진 호수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하…. 지금 상황이라면 풀숲에 포켓몬도 위험 할 테고, 역시 일단은 낚시인가?, 집에 있던 ‘낡은 낚싯대’를 가져온 건 정답이었군.’
어느새 3방이 나무로 둘러싸인 폭 3m정도의 호수를 발견한 소년은 근처에 배낭을 내려놓고 ‘낡은 낚싯대’를 꺼내 부품을 조립하고는 배낭을 의자삼아 낚시모드 돌입.
………….
………….
………….
“젠장!!!!!, 그래 안 나올 줄 알았어!!, 아마 몇 시간을 기다려도 안 나타나겠지!!, 오박사 새♡가 포켓몬들 다 데려갔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 그냥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던가 해야 했는데!, 젠자아아아아아앙”
그때
이제까지 움직이지 않던 낚싯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읏…. 이 녀석……!”
월척인가. 하면서 낚싯대를 세게 잡아당기자
“잉….잉어잉어어!!”
“잉어킹이냐!?!?”
아아, 역시 재수가 없군. 하고 중얼거리는 소년의 복부의 잉어킹의 몸통이 꽂혔다.
“!!”
잉어킹의 ‘몸통박치기’를 맞은 소년의 몸이 기역자로 구부러지며 그대로 뒤로 날아갔다.
“잉어,잉어잉어!!”
“ 큿, 뭐야 갑자기!!”
바닥을 몇 번씩이나 구른 뒤에야 겨우 몸을 일으킨 소년이 소리쳤지만 잉어킹은 어쩐지 화가 난 것처럼 씩씩 거릴 뿐이었다.
소년은 방금 잉어킹에게 맞은 배를 슬슬 문지르며 숨을 몇 번 고르고
“왜 나한테 신경을 내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쪽도 오늘은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프다고!!”
달려갔다.
소년과 잉어킹의 거리는 약 8미터.
소년의 체격으로는 몇 발짝만 뛰어가면 금방이라도 좁힐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잉어어어어어!”
소년이 잉어킹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잉어킹이 크게 튀어올랐다.
튀어 올라간 높이는…….
‘보이지 않아?!’
소년의 머릿속의 혼란이 일었다.
‘…, ‘튀어 오르다’라고?, 어째서 겨우 ‘튀어 오르다’로 저 정도 까지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거지?’
애초에 비행타입의 한턴 정도 하늘높이 날아가는 ‘뛰어오르다’라면 몰라도. 단순히 튀어 오르기만 할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튀어 오르다’로 보이지 않는 높이 까지 올라간 것 자체가 이미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
등 뒤에서 둔탁한 충격이 느겼졌다.
소년이 뒤를 돌아봐 충격의 정체를 확인하기도 전에 ‘잉어어어어!’하는 소리가 들렸다.
쿵.
어느새 뒤로 옮겨간 잉어킹의 공격을 받은 소년은 다시 한 번 바닥을 데구루루 굴렀다.
“젠장….”
소년의 입 안에 붉은 액체가 살짝 고였다.
“젠장……, 생각났어. 너. 예전에 내가 어렸을 때 학교 체험학습으로 이 근처에 왔을 때 한번 만난 적이 있지? 선생님이나 애들이랑 떨어져 근처를 헤매다가 우연히 만났던 그 녀석 맞지?”
소년은 기분 나쁜 쇠냄새를 애써 무시하며 조금씩 기억을 더듬어갔다.
“분명히 체험학습에 가기 전에 엄마나 마을 아저씨, 아줌마들한테도 주의를 잔뜩 받았었지. 그 근처에 막다른 곳에 있는 나무들 사이에 있는 호수에는 이 근처를 총괄하는 ‘대장’이 있다고.”
2번이나 잉어킹의 몸통 박치기를 받은 소년은 이미 후들거리기까지 하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천천히 다시 한 번 일어섰다.
아무리 공격 종족값 10의 잉어킹이라고는 하지만 상대는 포켓몬이다. 본래 포켓몬과 인간이 승부가 될 리가 없다. 게다가 저 잉어킹은 분명히 보통의 잉어킹과는 차원이 다르다. 소년도 물론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 너를 봤을 때는 겁을 먹었었지. 딱히 아무 위해도 받지 않았지만 널 보는 순간 이곳의 ‘대장’이 너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거든. 게다가 그때의 나는 굉장히 어렸으니까. 무서워하는 것도 당연했고.”
“잉어어어어!!”
소년의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소년은 자신을 노려보는 잉어킹을 마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때의 너도 지금처럼 ‘튀어오르다’를 썼지?, 그리고는 바로 사라졌고. 어렸을 때는 그 행동에 대해 별 생각도 없었고 그저 무서운 ‘대장’이 사라졌다. 라는 사실에 힘이 빠져서 그대로 오줌을 지렸어.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때의 너는 나를 도와준 거였지? 길을 잃어버린 어렸을 때의 내가 그곳에 있다는 걸 다른 사람들한테 알려준 거였지?, 네가 사라진 뒤 5분도 안돼서 내가 구조된 걸 생각해보면 역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잉어어어어!”
잉어킹이 울부짖었다.
이 잉어킹이 지금 자신에게 해주려는 것은 무엇일까?
소년에게 그런 걸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포켓몬의 언어를 할 줄도 모르는데다 지금은 왠지 그런 건 어찌돼든 상관없다는 기분이었다.
한마디로
“그때 그건 좀 많이 늦었지만 고마웠어.”
소년은 하지만 하고 덧붙이고는
“지금은 겨우 잉어킹 따위한테 지고 싶은 기분이 아니거든?”
짜증나고 귀찮을 뿐이었다.
소년의 말에 반응하듯이 잉어킹의 분위기나 표정에도 조금의 변화가 나타났다.
탓.
소년이 땅을 차고 전진하는 소리가 좁은 외길 안에 울려 퍼졌다.
그것을 신호로 잉어킹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인간과 한 포켓몬이 격돌한다.
단지 그것뿐인 일이 지금 일어났다.
“죽어버려라 이 빌어먹을 잉여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잉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키이이잉!!”
***
“하아…. 하아…….”
다리와 팔에는 시퍼런 멍과 긁힌 상처. 심지어는 피까지 흘리고.
아마 새것이었던 옷은 여기저기 찢어진 상태에 얼굴에도 긁히고 부딪치고 찢긴 상처가 여기저기 보이는 소년은 3방이 나무로 둘러싸인 호수 앞에 작은 잔디위에 누워서 조금씩 숨을 고르고 있다.
소년의 오른손에 있는 것은 몬스터 볼이라고 불리는 동그란 기계.
‘포켓몬스터’라는 신비한 생명체를 강제로 붙잡아 둘 수 있는 ‘인간’이 개발한 도구이다.
그런 소년의 몬스터볼 안에 들어 있는 건 ‘잉어킹’이라고 불리는 포켓몬.
총 종족 값이 200밖에 안 돼는 포켓몬으로서는 상당히 약한 포켓몬이다.
아까의 바보 같은 싸움에서 소년의 주머니에서 어쩌다가 굴러 나온 몬스터볼에 맞았더니 소년에게 잡히고 만 것이다.
“………….”
소년은 상처투성이의 오른손을 자신의 얼굴 쪽으로 향하고는 그 안에 들어있을 잉어킹을 바라보며 왠지 허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뻐 보이기도 하는 웃음을 띠며
“첫 번째 포켓몬….인가”
왠지 중2병틱한 포켓몬 소설을 쓰고싶어졌습니다.
이것은 내가 원하던 소설. 후속작을 기대하겠스므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