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을 빠져나온 아르실은 자신의 몸에 배인 피 냄새에 짜증을 냈다.
“에잉, 괜히 살육전을 펼치게 했나, 그냥 싹 다 밖에서 지들끼리 싸우게 할 걸.”
정당방위라 할지라도 열 명의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피 흘리지 않고 제압할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아르실은 지하실에 들어오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흥얼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흥흥, 과연 우리 가온은 나와 같은 이방인을 상대로 얼마나 멋진 작품을 그려낼까, 기대되는 걸.”
가온과 함께 가는 전력이 결코 약한 건 아니지만, 그것만으론 이방인을 이기지 못한다.
이방인은 상식을 뛰어넘은 존재들, 그들을 이기려면 단순 기사와 용병들로는 이기지 못한다.
전부 죽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르실은 내심 기대하고 있다, 이번 임무에서 가온이 자신의 욕구를 자극할만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그녀가 환상으로 몰래 가온과 함께 갈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은 이유였다.
자신이 산장에서 생활을 그만두고 속세로 나온 이유인 가온, 그는 그녀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유일한 존재였다.
아르실은 주먹을 위로 힘차게 뻗으며 혼잣말로 외쳤다.
“가온의 이방인 사냥 시작!”
새벽 아침 일찍 출발한 가온의 발걸음은 말튼 성 외각 입구에서 멈췄다.
성 밖으로 나가는 문 주위에는 수십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성에 물건을 팔러 온 상인들도 아니고 부랑자나 여행자 무리도 아니었다.
하룬가의 임무인 이방인 사냥을 위해 모인 인물들이었다.
하룬 가에서 차출한 인원과 자유 해방단에서 뽑은 인원까지 합해 60명.
거기에 가온 같은 짐꾼까지 합하면 70명이 넘는 대 인원이었다.
이번 임무의 총 책임자를 맡은 이는 하룬 가의 늑대 기사단의 부단장인 하워드 브레이크 경이었다.
하워드는 허리춤에 찬 의장용 검을 높이 쳐들며 거만하게 말했다.
“다들 내가 누군지 알겠지? 위대한 하룬가의 세 기사단 중 늑대 기사단의 부단장, 하워드 브레이크다, 이번 임무의 대장이니만큼 내 명령에 불복하는 놈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참수시킬 것이다, 잘 알겠나?”
“…….”
“뭐야, 반응이 왜 이래?”
하워드는 대장인 자신의 말에도 뒤숭숭한 분위기에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을 따라 나선 늑대 기사단원들은 무표정으로 박수를 치지만, 자유 해방단원에서 나온 이들의 반응은 조용했다.
자유 해방단원들은 대장이랍시고 나온 하워드를 아니꼽게 바라보았다.
그럴 만도 했다.
부단장이라고는 하지만, 얼굴을 뒤엎을 것만 같은 살과 뒤뚱거리는 걸음 거리가 흡사 거리에 나온 돼지와도 같았다.
움직이는 것도 버거워 보이는 게 검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할 게 분명했다.
이런 작자가 이번 임무의 대장이라니, 자유 해방단에서 뽑힌 단원 중 한 명이 대놓고 불평했다.
“젠장, 상대는 이방인인데 우리는 돼지가 대장이라니.”
“방금, 뭐라 했지?”
수십 명 중이 득실거리는 이 공간에서 한 단원의 불평을 하워드는 기가 막히게 들었다.
하워드는 불평을 한 단원을 모두가 보는 자리 앞에서 불러내곤 음산한 목소리로 물었다.
“다시 한 번 말해봐라.”
“얼마든지 말해주지, 난 댁 같은 돼지는 대장으로 인정 못…….”
서걱!
불평을 하던 단원의 머리가 하늘에 높이 뜨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단원의 목을 친 건 살이 갑옷 사이로 삐져나올 정도로 뚱뚱한 하워드가 한 일이 아니었다.
그의 옆에 있던 부하인 늑대 기사단원이 벌인 일이었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에 자유 해방단 단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하워드는 단원의 목을 친 부하를 칭찬하며 자신의 의장용 검으로 목이 없어진 단원의 시체를 밀어버렸다.
털썩.
목이 날아간 단원의 시체를 밟으며 하워드는 살벌한 눈빛으로 말했다.
“다른 불만사항이 있으면 말하도록 자비로운 이 몸은 참겠지만, 내 부하들이 어떻게 나설지는 장담 못하겠군.”
“…….”
“너희 자유 해방단이 우리 하룬 가랑 동급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우린 위대한 하룬 가의 구성원이고 너흰 그저 하찮은 봉사단체에 불과하니깐, 내 명령에 절대 복종해라.”
일방적인 하워드의 명령에 자유 해방단원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눈앞에서 자기들과 같은 동료의 목이 날아갔다.
마음 같아선 임무고 뭐고 저 돼지를 죽이고 싶은 심정이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하워드가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저런 돼지쯤은 자유 해방단원 중 누구라도 1초 안에 도륙할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하워드 주위에 있는 늑대 기사단원들이었다.
하나하나가 자유 해방단 일원보다 월등히 강한 이들이 무려 스물이 넘어간다.
전투가 시작되면 자유 해방단이 몰살될 것은 분명한 일, 그렇기에 참아야 했다.
자유 해방단원들은 고개를 숙이며 한 쪽 무릎을 꿇었다.
복종의 뜻이었다.
그걸 본 하워드는 흡족한 미소를 띤 채 부드럽게 말했다.
“흐흐, 진즉에 그럴 것이지, 좋다, 너희들이 내 명령에 훌륭히 수행한다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내릴 것이다, 무슨 소리인지 알겠지?”
“……알겠습니다.”
“좋아, 출발하도록 하지.”
자유 해방단원들을 굴복시킨 하워드는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출발했다.
이방인 캐롤 하운드를 사살하기 위해 모인 원정대.
표적인 이방인은 도망친 지 한 달은 되었지만, 멀리 가지는 않았다.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제보에 의하면 이방인 캐롤 하운드는 말튼 성 영지 북쪽 외각에 위치한 랠리 숲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출발하기 전 하워드는 자유 해방단원들은 앞에 세웠다.
이방인이 기습을 해도 자신의 부하는 안전하게끔, 자유 해방단원들을 방패로 내세운 것이다.
하워드는 자유 해방단원들에게 이방인에 대한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다.
생김새는 어떻고 무슨 능력을 가졌는지.
이방인을 적으로 둔 채 아무것도 모른 채 앞에 서서 행군하라는 건 자살행위였다.
하워드의 의도를 모를 리가 없는 자유 해방단원들이지만, 항의를 할 순 없었다.
자신들의 동료가 앞에서 목이 날아가는 걸 보았다, 입을 함부로 놀리면 자신들도 그 꼴이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세상에선 강함이 곧 이치다.
강자 앞에 선 약자는 저항하지 못하고 당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강자인 자신 앞에서 꼼짝도 못하는 자유 해방단원들을 보며 하워드는 기분 좋게 웃었다.
“크하하핫, 입을 다문 채 벙어리 마냥 아무것도 못하는 꼴이 우습군.”
자유해방단을 굴복시킨 하워드는 음흉한 미소를 띠었다.
이방인을 잡는 임무에서 자신의 부하들을 다치게 할 수는 없지,
자유해방단은 자신의 장기 말로서 훌륭히 미끼 역할을 해낼 것이다.
하워드는 속으로 자신의 계획을 다시금 떠올렸다.
‘내 부하들은 한 명도 다치게 하지 않고 깔끔하게 이방인 놈만 잡는다!, 단장 자리는 내 것이다.’
지금은 부단장이니 만큼 늑대 기사단원들을 자신의 마음대로 부리지는 못하지만, 단장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반드시 이번 임무에서 큰 공을 세우고 단장이 되리라.
원정대에 있는 건 늑대 기사단원들과 자유 해방단원 같은 전투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일행의 맨 뒤에는 일행의 물자를 책임지는 짐꾼들이 있었다.
가는 길이 도로가 없는 산인지라 짐승을 끌고 가지는 못하니 모든 짐들은 짐꾼들이 들어야 했다.
짐꾼들은 각자 자기 몸보다 큰 짐들을 든 채 힘겹게 일행을 따라가며 욕설을 퍼부었다.
“망할 놈들, 지들은 자기 장비만 편하게 챙기고 우리한테 다른 짐들을 몽땅 맡기다니.”
“으으, 발에 물집 잡혔어, 무슨 길이 이렇게 험해? 도로도 없고 완전히 산길이잖아.”
“무슨 짐이 이렇게 많아, 제길, 돈 좀 많이 준다는 말에 혹한 내가 멍청이지, 하필이면 하룬 가의 임무라니.”
열 명 가까이 되는 짐꾼들은 하나 같이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내었다.
두 사람이 들기 힘든 짐을 한 사람이 들고 산길을 걷고 있으니 불만이 나올 법도 했다.
하지만 그런 짐꾼들의 불만을 짐꾼 감독관이 억눌렀다.
“조용! 그렇게 떠들 거면 니들이 나가서 싸우던가! 싸울 줄도 모르는 무능한 놈들 주제에 무슨 말이 그러게 많아?”
감독관의 한 소리에 짐꾼들은 감독관을 노려보았다.
같은 짐꾼이지만, 감독이라는 업무를 맡은 감독관은 어떤 짐도 들지 않은 채 유유이 걷고 있었다.
그런 감독관이 짐꾼들에겐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살벌한 주위의 시선을 느낀 감독관은 사태를 무마하고자 다급히 말했다.
“지, 지금 너희들 나한테 함부로 대했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알지? 난 하룬가의 주요 인사다, 날 건드리면 너희들의 목숨은 끝이야.”
“…….”
감독관의 위협에 짐꾼들은 이를 악문 채 고개를 숙였다.
같은 짐꾼들이지만, 여기 짐꾼들은 무작위로 뽑힌 평민들이나 자유 해방단에서 차출된 이들이었다.
그런 자신들이 대 가문 중 하나인 하룬가에게 잘못 보였다간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조용해진 짐꾼들을 보며 감독관은 피식 웃었다.
권력의 맛이라는 건 이런 거구나.
하룬가에선 짐꾼 취급을 받으며 벌레만도 못한 대접을 받던 자신이지만, 여기선 다르다.
같은 짐꾼이지만, 자신은 무려 하룬 가의 짐꾼이다!
자신이 저들보다 힘이 세거나 리더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소속된 세력의 차이가 지금의 권위를 만들어냈다.
적어도 이 원정이 계속되는 한 여기 있는 짐꾼들은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
그러나 마냥 하인 부리듯 다루면 좋을 게 없겠지, 이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한다.
주위를 살피던 감독관은 음흉한 미소를 지은 채 짐꾼들을 비난하며 누군가를 가리켰다.
“쯧쯧, 니들은 저기 착실히 걸어가는 꼬마 녀석을 본받아라, 너희들보다 많은 짐을 들고 가면서도 불평불만 한 번을 안 하잖아?”
감독관이 가리킨 건 짐꾼들 중 가장 앞에서 묵묵히 짐을 들고 있는 흑발 머리의 소년이었다.
성인도 되지 않았고 사춘기도 안 왔을 거 같은 어리디 어린 소년.
목을 두른 목도리가 입까지 가려 눈 밖에 보이지는 않지만, 선명하고 또렷한 눈빛을 가진 소년이었다.
감독관은 잠시 그 소년을 자신의 앞으로 불러냈다.
앞장서서 걷고 있던 소년은 군말 없이 감독관의 앞으로 걸어왔다.
“흠흠, 소년, 자네의 소속과 이름을 밝히게.”
“……자유 해방단 소속 가온이라고 합니다.”
“그래, 가온, 어린 나이에도 불만만 토로하는 어른들하고 다르구나, 대견해 이걸 받으렴.”
짤랑.
감독관은 가온에게 한 줌의 돈주머니를 건넸다.
건네준 돈은 달랑 10실버 밥 한 끼 사먹을 돈도 안 되지만, 감독관은 최대한 선심 쓰는 척 가온에게 말했다.
“잘하는 만큼 보상을 줘야 좋은 어른이겠지? 너도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자 보상이다, 이 원정대에 참여하는 일원답게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줬음, 좋겠구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하하, 그래 대견스럽구나! 훌륭한 짐꾼의 표본이야, 다들 앞으로 이 가온이라는 소년을 본받도록! 알겠나?”
감독관의 외침에 짐꾼들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관은 한동안 가온을 옆에 두며 온갖 칭찬을 하고선 돌려보냈다.
돌아가는 가온을 보는 짐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원정대에 속해 있는 줄도 몰랐던 꼬마지만, 자신들이 미워하는 감독관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자연스레 꼬마에게도 악감정을 품었다.
“저 꼬마는 대체 뭐길래, 감독관 놈이랑 친한 거야.”
“우리랑 같은 자유 해방단원이라며? 하룬가에게 뇌물이라도 바친 거 아니야?”
“빌어먹을, 저런 꼬마를 본받으라니, 감독관이나 저 꼬마나 짜증나는 놈들뿐이야.”
서로 수군거리며 감독관이 아닌 가온을 뒤에서 욕하는 짐꾼들.
그런 짐꾼들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감독관은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미소를 주체하지 못했다.
“큭큭, 한심한 녀석들.”
자신이 하룬 가에 속한 인물인 이상 짐꾼들이 자신을 함부로 건들지는 못하지만, 미움 받아서 좋을 게 없다.
그렇기에 그는 불만의 화살을 저 가온이라는 짐꾼에게로 돌렸다.
이제 저들은 불만이 생길 때 마다 가온이라는 어린 소년에게 그 불만을 풀 것이다.
몇몇 짐꾼들은 벌써부터 꼬마에게 접근해 괴롭히기 시작했다.
힘들게 걷고 있는 꼬마에게 시비를 거는 건 기본이고 어떤 이는 발을 걸어 짐을 들고 있는 꼬마를 넘어뜨리기 까지 했다.
다 큰 어른들이 자식뻘인 아이를 대놓고 괴롭히지만, 말리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감독관은 괴롭혀지는 꼬마를 보며 혀를 찼다.
“꼬마 녀석만 불쌍하게 되었군.”
감독관 본인 때문에 꼬마가 괴롭힘을 받는 거지만, 그는 죄책감 따윈 느끼지 않았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 남을 이용하는 건 하룬가의 가훈 중 하나다.
자신은 하룬가에서 배운 걸 훌륭히 실천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유 해방단 단장인 하밀부르크는 분명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노에가 아닌 같은 사람끼리 하는 일인 이상, 짐꾼 일은 힘들지 않을 거라고.
“…….”
가온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흙과 돌이 섞인 땅이 눈을 뜬 자신을 반기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멀쩡히 짐을 들고 가고 있었지만, 누군가가 발을 걸어 넘어지고 말았다.
그냥 맨 몸일 때 넘어졌던 거였다곤 상관없었지만, 지금 가온은 성인 어른도 벅찬 짐을 들고 있었던 참이었다.
넘어짐과 동시에 들고 있던 짐이 자신을 덮치는 바람에 잠시동안 정신을 잃었던 가온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주위의 짐꾼들은 가온을 걱정해주는 대신 비난을 쏟아냈다.
“어린 놈이 빠져가지곤, 그거 넘어졌다고 정신을 못 차리네.”
“빨리 안 일어나? 너 때문에 행렬이 늦어지면 우리만 손해라고.”
“그냥 밟으려다 말았다, 빨리 일어나기나 해.”
가온은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짐꾼들을 조용히 응시했다.
이 중 누군가가 자신의 발을 걸었다.
도둑이 제발을 저린 다더니 가장 먼저 비난한 짐꾼이 뜨끔했다.
그는 가온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버럭 화를 냈다.
“어쭈, 날 지금 노려보는 거냐?”
“…….”
“어린 녀석이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고 말이야, 확 씨!”
짐꾼은 때릴 듯이 손을 올려보지만, 가온은 눈썹 하나 찌푸리지 않고 가만히 쳐다보더니 다시 제 갈 길을 걸었다.
짐꾼은 조용히 자신을 지나쳐 가는 가온을 보곤 애써 자기 합리화를 했다.
“흠흠, 나한테 겁을 먹고 쫄았네, 쫄았어!”
짐꾼의 조롱어린 외침에도 가온은 신경쓰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온 몸에 묻은 흙을 털며 다시 짐을 들고 걷기 시작했다.
괴롭히는 짐꾼들은 하나 둘 점점 늘어났다.
“에구구, 내 허리가 아파서 그런데, 젊은 네가 좀 들어줄래?”
“…….”
“뭐야, 안 들어 줄 거야? 어린 자식이 까져가지곤! 빨리 들지 못해?”
짐꾼들은 자신들이 들고 있는 짐의 일부를 반 협박으로 가온에게 떠넘겼다.
한 두 명도 아니고 거의 모든 짐꾼들이 가온에게 짐의 일부를 떠넘기니 가온이 들고 있는 짐은 다른 짐꾼들의 2배가 넘어갔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짐꾼보다 2배에 가까운 짐은 물론 가는 내내 괴롭힘까지 당했다.
가온이 아닌 다른 짐꾼들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항의를 하거나 싸움을 벌였겠지만, 가온은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했다.
이를 본 짐꾼들은 확신했다.
“큭큭, 꼬마 놈 건방지게 굴더니, 겁을 먹었구만.”
“감독관 자식 때문에 짜증이 났는데, 저 놈한테 시비나 걸어야지.”
확신이 선 짐꾼들은 감독관이 자신들에게 갑 질을 하고 받는 스트레스를 가온에게 또 다시 풀기 시작했다.
가온이 들고 있던 짐은 남들의 세 배가 되었고 길을 가다 발에 걸려 넘어지는 횟수도 많아졌다.
괴롭힘을 넘어서 가다가 심한 부상을 입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지만, 가온은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짐꾼들과 감독관들의 생각과는 달리 가온은 여유로웠다.
‘하밀부르크 그 녀석이 말 한 대로네, 짐꾼 일, 생각보다 별 거 없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취급이지만, 자신은 거의 평생을 노예로 살아왔다.
남들보다 강한 강도의 일과 괴롭힘을 당하지만, 최소한 저들은 자신을 사람취급 해준다.
노예였다면 대놓고 폭력을 가하거나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처우는 지상낙원이나 다름없었다.
처음에는 가온을 마음껏 괴롭히던 짐꾼들은 아무리 괴롭혀도 싫은 내색 한번 안 하는 가온을 짐꾼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