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
Episode. 2
배경 BGM:
세계수의 미궁 4: 전승의 거신- A Cave of Exciting New Encounters.
깨질 듯 머리가 아파왔다. 마치 차 안에서 책 같은 것을 읽어 멀미로 인해 먹은 것들을 다 토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어나려 했지만 내 몸 스스로가 움직이지 말라는 듯 무거움을 느꼈다.
눈을 뜨려 했다. 어떻게든 눈을 뜨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물 쏟아지듯 몰려오는 현기증으로 인해 계속 눈이 감겨졌고 덕분에 꿈을 꾸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기분 탓이었나? 내 입가에 무언가가 느껴졌다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하고 탄력 있는? 비몽사몽 했지만 따뜻한 숨결이 전해지는 동시에 코를 찌르는 향기로움은 어지러웠던 기분을 어느 정도 지워주었다.
어느 정도 감각이 돌아왔을 때 내 머리 아래에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베개보다 포근하면서도 부드러운 감각이 내 머리로 전달되면서 아까전의 향기를 여전히 맡을수 있었고.
부드러운 콧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몇번 눈을 깜짝이자 안개가 사라지듯 흐린 시야가 깨끗해지자 세미 롱 헤어의 핑크색 머리결의 앰버색 눈동자를 가진 하얀 피부의 소녀하고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내가 깨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기뻤는지 방긋 웃는 그녀. 내 눈앞에 소녀가 있었다. 꿈속에서 나올 나올 듯한 아름다운 소녀가.
이게 꿈이라면은 평생 깨고 싶지 않았다.이대로 잠들고 싶었다.
밝은 핑크색 빛을 띄우는 입술에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아직 비몽사몽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지만 확실한 것이 있었다.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가 나를 편안하게 해주고 있다고.
무릎에서 편한 표정을 지은 체 누워있는 내 이마를 쓰다듬어 주었다. 마치 자장가 해주듯.
어느 정도 마음이 편안해질 즘 내 입안으로 무언가가 들어가고 있었다. 눈동자를 돌려보니 소녀의 손에는 약병 비슷한 것을 쥐고 있었고 그 안에는 정체를 알수 없는 녹색의 액체가 내 입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착각이 아니라는 듯 내 혀에서 달면서도 쓰디쓴 맛이 느껴졌고.
나는 본능적으로 팔을 휘둘러서 소녀의 손에 들어진 약병을 후려쳤고 쨍강-하는 깨지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을 일으켜 앉은 채로 뒤로 물러갔다.
소녀도 당황 했는지 눈을 크게 뜨면서 진정하라는 듯 양 손을 들었다.
놀란 가슴을 어느정도 진정 시키니 검은색의 금색의 테두리가 그려진 약간 짧은 스커트에 어깨를 훤히 드러낸 흰색의 민소매 비슷한 것을 입은 소녀가 눈에 보였었다. 화염과 비슷한 붉은색의 망토가 그녀의 등을 감싸고 있었고 옆구리를 자세히 보니 MMORPG 게임에 나올만한 여러 색의 포션들과 커다란 두께의 책 한 권이 옆구리에 끼워져 있었다.
딱 봐도 이 세계 중세 판타지에 나올만한 복장을 한 코스플레이어 소녀였다. 엠버색의 콘택트 렌즈를 끼고 원래 머리색이 안 보일 정도로 분홍색으로 떡칠해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정말로 판타지를 따라 하듯 기절한 나한테 이상한 약인지 뭔지를 마시게 하려 했고.
그런 것을 떠나 자세히 보니 상당히 균형이 잘 잡혀 있는 몸매의 소녀였다. 가느다란 팔과 다리에 매끄러움이 느껴질 정도의 라인을 가진 몸매는 그녀의 매력을 더욱더 돋보이게 해주었다.
저런 몸을 가졌으니 판타지 마법사 코스프레가 가능하겠지만.
“여긴 어디야?”
“……?”
“너 혹시 나 기절한 틈에 납치한 거나 그런 거야?”
“………………?”
대답 대신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까 전부터 무슨 얘기를 하나라고 말하는 듯.
주변을 둘러보니 나하고 소녀가 있는 곳은 동굴이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동굴보다 무슨 고대의 유적 같은 곳이었다. 주먹으로 살짝 치기만 해도 허물 어질 벽들 안에 있는 금이 간 기둥들은 이곳이 상당히 오래된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가 있는곳을 살펴보니 내 가방을 비롯해 안에 있던 내용물들도 바닥에 쏟아져 나와 있었다.
소녀는 검지로 자신의 입을 가르치면서 뭔가를 말하였다. 그것은 한글도 아니었다. 그러면 영어인가 했는데 그것도 아니고…독어인가? 불어인가? 일어인가? 라는 생각이 오고 갔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아는 언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말할 줄도 알아 들을 수도 없는 완전히 낯선 언어였다….
이야 얘 진짜 중증일세. 하다못해 이 세계 언어 코스프레까지 하고 있어. 그것도 유창하게 말이야. 평소에 이 세계물 라이트 노벨이라도 읽고 살아왔나.
“저기 그러니까…”
나도 일단 말을 해보기로 했다. 저렇게 나온다면 나도 놀아줘야지. 이 세계로 와버린 고딩 역할로 말이야.
“엄 그러니까 좋은 아침이야? 굿 모닝? 곤니치와? 봉쥬르? 구텐 모겐? 나 지구에서 온 용자니 헬프미…플리즈?”
지금 뭐 하는 거야. 처음 보는 여자애 앞에서 이상한 추태를 보이고.
비록 코스프레에 이 세계 판타지 소녀 컨셉을 하고 있다지만 지금 한 행동은 나를 이상한 남자애로 생각하기 딱 좋은 행동이었다.
입에서 계속 나의 미숙한 외국어 실력을 선보이는 나의 자랑스러운 (?) 모습을 보던 소녀는 엄지를 볼에 댄 체 검지와 중지로 이마를 톡톡 두들기고 있었다. 한참 동안의 생각 끝에 무언가가 생각했는지 손가락을 한번 튕겼다.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소녀는 바닥에 놓인 여러 주머니가 달린 가죽 가방을 열어 손을 집어넣었다. 무언가를 꺼내려는 건가, 라고 생각할 때쯤….
여기서부터 알게 된 거 같다.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가방에 들어간 손은 무언가를 꺼냈다. 사람이 앉아서 밥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크기의 미니 테이블을.
처음에는 내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라고 생각할 때쯤 탁-하는 테이블 다리가 바닥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선명하게.
무슨 애니메이션도 영화도 아니고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하지?
소녀는 옆구리에 차던 포션들을 색깔 별로 놓은 뒤 안경을 쓴 다음 역시 허리에 차고 있던 책을 펼쳤다.
페이지 몇 장을 넘긴 뒤 아-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에 놓인 약들을 빈 병에다 따랐다. 5병인가? 그 정도쯤 넣은 뒤 병을 흔들어서 섞으니 여러 가지 색들이었던 약물이 하나의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탁한 파란색으로. 안에 푸른색 솜털이 들어간 듯한 비쥬얼로.
약물이 담긴 병을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들긴 뒤 만족하듯 음음-하면서 소녀는 안경을 벗은 뒤 나한테 다가오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맛없을 거 같은 저 이상한 액체 때문인지 소녀가 다가올 때 마다 한 걸음씩 물러갔다.
원래 같았으면 코스프레를 즐기는 여고생이 주는 과일 음료 비슷한 거로 생각했겠지만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거 마시면 진짜 위험하다고.
핑크 머릿결이 흔들리면서 걸어오는 그녀를 보면서 여전히 머리속으로 이세계 코스프레 하는중인가 생각했지만 동시에 아까 봤던 테이블 꺼내는 모습 때문인지 아니다 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계속 뒷걸음 치자 소녀는 자리를 멈추었다. 다시 골똘히 생각이 잠겼는지 흐음-하는 소리와 함께 함께 검지와 엄지로 이마를 톡톡 두들긴 뒤 약병의 뚜껑을 열었다.
검지로 약병을 가리킨 뒤 하얀 목덜미의 위와 아래를 선 긋듯이 긋고 나서 한 모금 마시는 그녀. 저 푸른색 솜털들이 들어간 듯한 비쥬얼의 약에서 쓴맛이 느껴졌는지 찌푸린 얼굴을 짓던 소녀를 바라보면서 어느 정도 경계가 풀려난 듯 한 발짝 다가와 오른손을 뻗었다.
이렇게까지 나를 안심시키려고 노력 하고 있는데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듯 했다. 이 약은 안전하다고 말하려는 듯 한모금까지 마실 정도인데.
마시기 전 다시 한번 안의 내용물을 바라보았다.
딱 봐도 뭔가 마시기가 푸른색의 먼지가 들어간 듯한 색깔이 눈에 보였다. 마시면 먼지 때문에 목에 걸릴듯한 그런 분위기였고.
핑크색 머리결의 소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모르지만 앰버색 눈동자가 반짝이는 듯한 분위기도 들었고. 그것도 뭔가 기대가 가득 찬 그런 분위기?
에라이 모르겠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약의 내용물이 입으로 들어가자 쓴맛이 혀를 먼저 찌른 동시에 무언가의 달콤한 향 또한 코를 맴돌고 있었다. 무언가의 찜찜함으로 인해 밷을까 라는 충동이 들었지만 나를 위해 이 약을 만들어 주고 어떻게든 안심 시켜주려 했던 핑크색 머리결의 소녀를 생각하니 결국 목구멍으로 넘기게 되었다.
꿀꺽-하는 소리가 귀로 들려오고 소녀는 축하해-라고 하듯 말하는 동시에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눈앞의 예쁜 소녀에게서 칭찬받으니 기분이 좋긴 하네. 마신 뒤 아무 일 없어서 괜히 겁먹었네 라는 생각이 들었고.
…라고 생각할 때쯤이었다.
갑자기 머리에 두통이 한 번에 몰려오고 시작했다. 머릿속에 무언가가 들어가 머릴 깨뜨리고 나올듯한 통증과 함께 그로 인해 안구가 튀어나올 듯했고.
“뭐-뭐야? 너 뭐한 거야!?”
마지막 힘을 짜내 소리를 외친 나를 유심히 바라보는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순식간에 시야가 뿌연 안개 처럼 변하면서 다리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뜬 채 내 전신이 축 늘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흐려져 가는 시야 속에서 간신히 볼 수 있었던 것은 소녀의 맨 다리 정도? 몰려오는 공포로 인해 도망치려 했지만, 여전히 머리를 감싼 두통을 비롯해 이미 마비되어버린 내 몸은 그것조차 허락해 주지 않았다.
내가 쓰러진 것을 확인 한 뒤 소녀는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한발자국씩 천천히…
저벅…저벅…걸어오는 소리가 내 귀로 들려오면서 내 눈이 완전히 감겨졌다.
“…무 독하게 만들었나? 깨어나지 않네.”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라서 그런지 헛것을 들은 거라고 생각했고. 머리 아랫부분이 포근했다. 베개보다 더 편하고 왠지 모르게 부드러운 느낌과 향기로운 향 또한 맡아졌다.
코를 찔러오는 향긋한 냄새로 인해 더욱더 졸음이 몰려오면서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한 번이라도 얼굴을 보고 싶어 할 만한 달콤한 목소리가.
“깨어나면 사과라도 해야겠어. 다음에는 덜 독하게 만들어 보고.”
퍽-
양손으로 그녀의 몸을 밀어 버렸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위협으로 인해 내 숨이 거칠어지고 있었고 그녀에게서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앉은체로 뒤로 물러갔다.
“나한테 오지 마!”
저 여자애 분명히 무언가를 할 것이다. 내가 기절한 틈을 타서 장기매매자들에게 호출한다던가. 그 뒤 돈 받아먹은 뒤 내 몸속에 있는 간, 내장, 심장 등을 다 빼가고…
자기 외모로 유혹해서 애인 간을 뜯어가는 악질 범죄자 여고생인 게 확실하다. 궁금한 스토리 Why 에서 자주 보는.
소녀는 아까 전 처럼 나를 진정 시키려는 듯 양팔을 벌리면서 외치고 있었다.
“저기 일단 진정하고! 나 너를 해하려고 한 건 절대 아니니까!”
“그러시겠지! 이상한 약을 줘서 나 기절시킨 뒤-”
말을 이어가다 멈추었다. 뭔가의 위화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분명히 나는…
“이젠 진정돼? 내 말 알아들을 수 있고?”
소녀의 말을 알아듣게 된 것이다. 지금처럼.
“방금 진정되냐고 물어봤지?”
“응! 응! 맞았어! 맞았어!”
정말로 기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 뒤 소녀는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조금만 움직이면 서로의 얼굴을 맞댈 정도로.
“단순히 알아듣는 것뿐만 아니라, 말도 할 수 있다니! 이건 대 성공이야! 처음 만들어보는 거라 좀 긴장했는데.”
앰버색 눈동자는 아까 전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아직도 경계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의 얼굴이 서서히 나한테 가까이 다가오길래 공포심이 들었고.
근데 가까이서 보니까 확실히 예쁘긴 하네. 평소에 머리 관리를 했는지 핑크색 머리카락이 빛을 내고 있었고, 거울처럼 내 얼굴이 비치는 앰버색 눈동자와 분홍색과 붉은색이 섞인 입술의 하얀 피부의 얼굴은 나한테 가까이 다가올수록 향기로운 향이 내 코를 찔러주고 있었다.
“나한테 뭘 먹인 거야? 뭘 했길래 두통이 몰려오고 뜬금없이 너의 말을 알아듣게 되었고?”
“절대 기억 향상 약. 마시면 약 효과로 인해 잠시 동안 기억하고자 하는 정보를 절대 암기시켜주는 약이야. 두통을 느낀 것도 머리에 절대 기억 능력이 향상 되어서 그런 거야.”
소녀는 나한테 밝은 푸른색 표지의 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난생처음 보는 문자가 표지에 적혀져 있었다. 한글도 아닌 영어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ABCD 같은 알파벳 도 아니었다. 기이하면서도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는 그런?
하지만 그런 것을 제쳐두더라도 중요한 것은…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오케아나 모국어?”
읽을수 있었다. 표지에 적힌 제목을.
그것도 모자라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보이는 단어들이 그대로 머릿속에 읽혀졌다. 마치 내가 태어나자 마자 접해오던 모국어를 보는 듯.
“네가 기절한 사이에 나는 이 책으로 너에게 우리가 쓰는 언어를 주입 시켰지. 마치 상자가 열린 사이 내용물을 집어넣은 거와 비슷한 격이랄까?”
“무슨 만화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해.”
지금 내가 내뱉은 말에 소녀는 고개를 갸웃하였다. 소녀의 반응에 나도 좀 의아했고.
“딱 봐도 만화 같은 전개잖아. 무슨 약을 먹여서 외국어를 머릿속에 집어넣기 이런 거라든지 말이야.”
“만화가 뭐길래?”
소녀의 얼굴은 다시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아까처럼 호기심이 가득 찬 얼굴로.
“재미있는 거야? 연금술만큼? 지금 볼 수 있어?”
“음 설명하자면 현실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재미있는 그림으로 그려 주는 거? 애 어른 구분할 거 없이.”
“재미있는 거 맞네!”
소녀는 양손을 꼭 쥐면서 엠버색의 양 눈이 더욱 더 반짝이고 있었고 그녀 특유의 활기참에 의해 내 몸이 서서히 밀려가는 듯 했다. 보아하니 나하고 또래 나이인듯 한데 이렇게까지 아무 걱정없이 활기참으로 가득찬 소녀는 난생 처음인듯 하였다.
“근데 너 방금 연금술이라 했어? 금을 만드는 그 연금술?”
잘못 들었나 라고 생각했다. 쟤 방금 입에서 연금술이라는 단어가 들려왔다. 내가 생각하는 그 연금술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의미가 떠오르지 않았다. 연금술이란 단어 의미가.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소녀는 목에 걸고 있던 펜던트를 민소매 안에서 꺼내었다. 금으로 만들어진 원형 안에 삼각형과 역삼각형이 서로 위아래로 붙여져 있었고, 각 도형의 뾰족한 부분에는 원형의 윗부분 길이만큼의 줄이 붙어져 있었다.
대충 내가 직접 그린 키스가 보여준 팬던트. 금으로 만들어져있다. 마음 같으면 아이폰으로 찍고 싶었다.
자세히 보니 원형 안에는 작은 글씨로 무언가가 적혀져 있었다. 오케아나 언어가 아니라는 듯 내가 읽을 수 없는 문자로.
“이래 봬도 연금술사야. 나처럼 아름다운 미소녀가 연금술사임을 증명하는 문장도 가지고 있고. 네가 말한 금이나 다른 물체들을 연성하는 것 말고도 포션 제조가 특기이지.”
“연금술사가 약이란 것도 만들어? 금속만 다룰 줄 알았는데?”
“포션 제조도 연금술사의 전문 분야중 하나라는 것은 동네 어린애들도 아는 사실이지.”
연금술 그리고 포션 제조라. 그러면 모든 것이 설명되긴 했다. 얘가 나한테 먹인 약은 확실히 보통 약이 아니긴 하다. 단순히 한 병 마셨을 뿐인데 단숨에 외국어를 터득했으니 말이다.
잠깐…나 언제부터 이게 코스프레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거지? 금세 적응이 된 건가?
“어흠…이야기가 딴 데로 샜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금술로 만든 포션과 마법으로 너의 머릿속에 오케아나 국가에서 쓰는 모국어를 넣었다 이거야. 그래서 너는 나랑 같이 얘기가 가능한 거고.”
소녀의 말을 들으면서 한 손으로 내 입을 가려보았다. 내 입에서는 지금 한글이 아닌 소녀가 말한 오케아나 언어로 추정되는 단어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글을 알고 있지만, 소녀와의 원활한 대화하기 위한 본능 때문인지 오케아나어가 먼저 입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뭐 그렇게 된 거면 나를 도와주려고 한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래도 나 아까 무서웠다고.”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일단은 소녀에게 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놔야 할 듯싶었다.
“약 마신 뒤 쓰러졌을 때 공포감이 몰려왔어. 전신이 마비되고 움직이지도 못해서 나 무슨 일이 생기는 건가 혹은 나 죽는 건가 이런 것도 포함해서 말이야.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미안해.”
내 말이 끝나자마자 소녀는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적어도 너한테 물어보고 마시게 하고 싶었다고. 말을 못알아 듣길래 어떻게든 도와주려 했고.”
“아니 됐어.”
두통이 가라 앉는 느낌이 들면서 내 입에서 거대한 숨을 내 뱉었다. 긴장이 좀 풀려서 인지 피로함이 몰려왔고.
“너나 나나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잖아. 서로 말이 안 통하고. 너도 절대 악의로 그랬다느것을 아닌것은 나도 아니까.”
적어도 얘는 양심이란 것이 있네. 솔직히 말해서 여기서 그래도 무사하면 된거 아니야? 죽지 않았으면 된 거지! 라는 류의 대답을 했다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 애들하고 엮이고 휘말리는 것은 이젠 싫증이 나고 피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자세히 생각해보니, 내가 깨어날 때쯤 얘 가 분명히 내가 깨어나면 사과해야지 라고 한 거 같기도 하고.
“아 맞다!”
소녀는 손뼉을 한번 친 뒤 말을 이어갔다.
“우리 아직 통성명을 안 했지? 서로 이름을 모르고.”
“그러고 보니 그렇네. 하도 정신없다 보니까.”
내 입에서 옅은 미소가 그려지자 마치 나를 따라 하듯 소녀 역시 미소를 지었다. 저 얼굴에 미소를 지으니까 확실히 귀여워 보였다. 뭐랄까 미소에 잘 어울리는 소녀라고 해야 할까.
“내 이름은 키스.”
자신을 키스라 소개한 소녀는 자기 오른손으로 가슴 쪽을 두들기면서 말을 이어갔다.
“연금술사 키스 플레어필드. 이름이 뭐야 잘생긴 소년 씨?”
“정성운.”
생각해보니 이런 건 처음인 듯 했다.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이렇게 서로가 통성명하는 것도. 그것도 여자애에게서 말이다. 핑크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미소녀에게서.
“줄여서 그냥 성운이라고 불러도 돼.”
“헤에-그러니까 너 요리사였어? 그 한국이라 불리던 곳에서 말이야.”
“정확히는 학생이었어.”
키스의 양손에는 프라이팬과 식칼이 들려 있었다. 내가 쓰러졌던 자리에 흩어진 물건들을 다시 모으고 있었는데 키스는 신기한지 아까 전부터 하나씩 손으로 들면서 쳐다보고 있었다.
“학원 다니면서 요리를 배워왔어. 그래서 요리에는 자신이 있어.”
“대단하다. 요리도 잘하니 매일 맛있는 거 먹겠네?”
“그럴 여유가 있어야 한단 말이지.”
물건 중 생각보다 양호한 상태의 물건들이 많았었다. 요리 도구들은 물론 출출할 때 먹으려고 했던 간식들도 포함해서.
“한국에 살았을 때 그럴 여유가 없었어. 요리 학원뿐만 아니라 다른 학원들도 다녀야 해서.”
“맛있는 거 못 먹는 여유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
키스의 말은 물건 정리하던 내 손을 멈추게 해주었다. 잠시의 침묵과 함께 뒤를 돌아보니 어디서 찾았는지 붉은색의 액체가 담긴 병을 바라보는 키스가 보였었고.
“나도 지금도 연금술 공부 틈틈이 하지만 시간의 여유가 생길 때마다 카페테리아 가서 케이크와 홍차를 마시는데. 그런 낙도 재미가 있어야 하루를 버틸수 있으니까.”
“거긴 그래야 하니까.”
가방 속에 들어진 책들을 바라보았다. 요리의 기본, 제과 제빵식 기술, 유명 요리사들이 쓴 책, 튀김의 기술, 스시 쉐프들이 쓴 책 등등…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것들을 가져온 것을 말이다. 뭔가 씁쓸한 마음도 들지만.
“내가 살던 곳은 요리만 잘했다가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 남들에게 뒤처지는 순간 아무리 실력 좋아도 없는 사람 취급하거든.”
“그런 게 어딨어?”
키스는 여전히 빨간 병을 든 체 나한테 다가왔다. 표정과 말하는 분위기를 봐서 지금 내가 한말이 믿어지지 않는가 보다.
“맛있는 밥을 만들 줄 안다면 어디든지 환영일 텐데? 식당에서도 여관에서도 심지어 모험가 파티에서도. 맛있게 배를 채우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으니까.”
“그건……”
한숨 푹 쉬면서 키스를 바라보았다.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 오케아나라는 국가에서는 그러겠지만 한국에서는 그러지 않으니까. 비전이 없는 직업이라느니 백종원처럼 되는 사람은 10명 중 1명이 될까 말까 한다느니 시간 낭비하지 말라느니……
무엇보다…
돈이란것이 없으면 실력이고 나발이고 다 소용없으니까.
“괜찮아 지금 얘기하지 않아도 되니까.”
어깨 위에 따스함이 느껴지길래 고개를 둘러보니 키스가 윙크하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소를 지은 체.
“지금 막 깨어나서 정신없을 텐데 나중에 네가 편해졌을 때 얘기해. 괜히 슬픈 표정 짓지 말고 알았지?”
내 얼굴이 조금 달아오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지자 매력이 더욱더 돋보이게 했고 주변이 환해진 듯한 느낌도 들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미소가 어울리는 소녀였다. 그 미소를 바라보고 있으니 뭔가 마음이 편해졌고.
“아 맞다 나 신경 쓰이고 있었는데.”
아까 전부터 한 손에 쥐고 있던 붉은 액체가 들어진 병을 나한테 보여주었다. 영어로 Carolina Reaper라 적혀진……
“그 한국이란 나라에서 가져온 소스야? 참 재미있게 보이는 병이다.”
“매운맛.”
“…에?”
내 대답을 들은 키스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듣지 말아야할것을 들었다는 듯.
“방금 매운맛이라 했어?”
“그것도 엄청나게. 미국 캐롤라이나라는 지역에서 재배한 가장 매운 재료로 만든 소스야. 이름에 Reaper 즉 사신이라 불릴 정도로 매워.”
내 대답을 들은 키스는 나하고 병을 번갈아 보았다. 검은색 배경에 Carolina Reaper라 적혀진 하얀색 글씨 뒤에는 선글라스 낀 사신이 해맑은 표정으로 낫을 들고 있었다.
무언가의 위험을 느꼈는지 키스는 내 손을 잡고 다시 소스를 쥐게 해주었다. 뭔가 무서운곳에 갔다온 뒤 공포로 가득 찬 얼굴로.
“에헤헤……그냥 너 가져 이거……”
소스를 주는 키스의 손은 내 손을 꼭 쥐었다. 내 착각인지 몰라도 미약하게 떨리는듯한 느낌도 들었고.
“왠지 입에 댄 순간 평생 후회할 거 같으니까.”
“잘 생각했어 키스.”
소스를 돌려받은 뒤 표정이 변하지 않은 키스를 바라보았다. 입에서 에헤헤 하는 작은 웃음이 나오면서. 쟤 매운 거를 싫어하나? 일단 겉으로만 봐도 매운맛하고 거리가 먼 소녀인 듯하지만.
“캬악-“
“아 드디어 왔다.”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오더니 키스가 팔을 뻗자 무언가가 그대로 그녀의 팔 위에 앉았다. 크기는 작은 강아지 크기만 한 전신이 붉은색 비늘로 감싸져 있고 머리 부분에는 작은 뿔이 달려져 있는 도마뱀 비슷한 거였다. 비늘의 색에 맞게 날개가 달린 것을 보니 설마..
“드래곤이야?”
“ 내 사역마이자 레드 드래곤인 블레이즈야. 블레이즈 인사해. 새로운 친구인 성운이라고 해.”
캬악-하면서 손을 흔드는 새끼 용을 향해 나 또한 손을 흔들었다. 이 녀석 상당히 똑똑하네. 주인 말을 알아듣는 것도 모자라 저렇게 손까지 흔드니.
키스의 하얀 팔 위에 앉아 있던 블레이즈는 검지로 추정되는 손가락으로 복도를 가리키며 뭐라고 말하였다. 아니 정확히는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하는 거라고는 카악-카악-하는 울음 소리 정도일 뿐이니.
“수고했어 우리 블레이즈군. 내 팔 위에서 쉬어 이젠.”
“뭐라 하는지 알아들어 넌? 난 못 알아 듣는데.”
“사역마하고 계약자는 교감을 통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어.”
키스가 블레이즈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자 나 또한 따라 하듯 바라보았다. 칠흑과 같이 어둠으로 가득 찬 유적의 복도를 보고 있자니 만약 무방비한 상태로 들어갔다가는 봉변을 당할 것이라고 본능이 나한테 말해주고 있었고.
“다행히 안에는 하급 타입 몬스터들이 있어서 내가 핸들링 할 수 있는 수준인데 아직 출구로 추정되는 곳을 못 발견했대. 좀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야지 뭔가 알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잠깐 너도 그럼 길을 잃었다는 거야? 나가는 곳도 모르고?”
“아하하……그렇다고 볼 수 있지.”
키스는 검지로 천정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어갔다.
“다른 파티원들하고 이곳 던전을 돌아다니다가 그만 몬스터들의 습격받아서 나 혼자 낭떠러지로 떨어졌거든. 그래서 어떻게든 일행들과 만나려고 다시 올라갈 길을 찾고 있는데…”
퀘엑-하고 울음소리를 낸 뒤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른 블레이즈를 바라보며 키스는 책을 펼쳤다. 깃털 팬으로 무언가를 적더니 푸른색으로 지도가 떠오르면서 지도 중앙 부분에는 하얀색의 점이 빛나고 있었다.
“그럼 이젠 어떻게 할 거야? 나가는 쪽도 모르고 네 말대로라면 우리는 맨 아래쪽 깊숙한 곳으로 빠져든 것인데.”
“연금술사는 안된다라고 말하면 안된다. 늘 진리를 탐구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연금술사다.”
앞으로 나아가던 키스는 뒤돌아본 뒤 윙크와 함께 혀를 쏙 내밀면서 목에 매던 펜던트를 꺼냈다. 옆에서 날던 블레이즈도 퀘엑-하고 외쳤고.
“펜던트에 적힌 문장이야. 내 담당 교수님도 늘 신신당부 하신 말이고.”
------------------------------------------------------------------------------------------------------------------
에피소드 3 스타트-
내용을 봤듯이 이번 편은 어떻게 성운, 키스 그리고 쉐라가 만나게 되었고 파티를 이뤄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을 다룰겁니다.
어쩌면 당분간은 던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 될거 같고요.
잘 부탁 드립니다. 꾸벅.
p.s 피드백 및 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p.s 2 마음 같으면은 팬던트 그림 더 예쁜걸로 올리고 싶었는데 그림을 못그려서 저정도로 그렸습니다 허헛....
평범한? 첫만남이군요ㅎㅎ 우리나라에서 요리사로 취직해서 먹고 사는거 자체는 어떻게든 가능은 한데(학교나 병원같은 단체 급식 시설에 취직한다든가.) 보수 대비 중노동이라 문제긴하죠ㅠ 자기 명의의 식당 차리는 것은 돈이 문제고.
세사람의 첫만남은 의외로 평범(?) 한 편입니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요리사로 취직한다는것은 보통 힘든일이 아닌것은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이긴 하죠... 아무리 실력 좋아도 몰려오는 노동을 견디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백종원이나 고든 렘지 같은 스타 쉐프가 되는것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 하고요. 자신의 명의로 식당 차리는것도 리스크가 크다고 하네요. 돈도 돈이지만 실력 부족으로 인해 손님들 못 모으면 장사 망해서 빚만 쌓인다고 하고요. (실제로 제 주변 사람들중 그런 사람들 많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