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김정일 프로덕션]: 세상에서 가장 황당하고 대담한 납치극

[데스티네이션]

저자 - 폴 피셔

역자 - 제 엘리자베스

출판사 - 한울 아카데미

쪽수 - 472쪽

가격 - 25,000원 (정가)

북한의 독재자는 왜 신상옥과 최은희를 납치했을까?
북한 이미지 정치의 탄생과 완성 

1978년 1월 14일 인기 영화배우 최은희가 북한에 납치되었다. 같은 해 7월에는 영화감독 신상옥이 납북되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나 북한 영화 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나는 성취를 이룩했다. ‘황당하고 대담한’ 납치극을 지시한 사람은 김정일이었다. 프랑스 출신 영화감독 폴 피셔는 이 황당무계한 사건을 소재로 삼아, 데탕트 시대 남북관계의 변화 양상과 극장 국가 북한의 프로파간다 정치 실상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흥미진진한 스토리 덕분에 원서는 14개국 언어로 번역되었고, 이야기의 실제 현장인 한국에서 열다섯 번째로 출간되었다. 독자들은 소설 형식을 빌려 북한 정치의 미시사를 훑는 이 독특한 책을 통해, 김정일이 완성시켰고 여전히 왕성하게 진행 중인 북한 이미지 정치의 일대기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어떻게 국가가 되는가
김정일의 머릿속에 떠오른 한 사람

분단 후 남한과 북한은 격렬한 체제 경쟁을 벌였다. 1960년대부터 남과 북은 군비를 증강하고 전력을 과시하며 서로의 체제가 옳다고 선전했다. 선전은 일시적으로 주효했으나 지속될 수는 없었다. ‘잠시 중단’을 뜻했던 휴전이 ‘사실상 종전’으로 굳어지자, 더 이상 적국의 위협을 주장할 수 없게 된 한반도의 집권자들은 전전긍긍했다. 국민과 인민은 평화에 걸맞은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법과 제도를 요구했다. 총칼로 집권한 두 독재자는 난색을 표했다. 당시 북한에서 권력 서열이 높지 않았던 김정일은 아버지의 고심을 눈치채고 기괴한 작전을 벌이기로 결심한다.

김정일이 아버지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고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제적 성과를 낼 필요가 있었다. 김정일은 이미 많은 것을 보유하고 있었다. 자신이 제작할 영화에 투자할 수 있는 엄청난 자본, 모든 것을 박살내버릴 불굴의 야망. 이제 그에게 부족한 것이라고는 영화 제작에 관한 경험과 재능뿐이었다. 그렇다면 자국민의 출국과 외국인의 입국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는 은둔의 왕국 북한에서 그의 꿈을 실현시켜줄 인물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때는 바야흐로 1977년, 곰곰이 고심하던 김정일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_ 1막, 102쪽

유럽에서 활동하는 영화감독 겸 제작자 폴 피셔는 체제 선전에 동원하기 위해 적국의 인기 영화감독과 영화배우를 납치한 이 기상천외한 사건을 소재로 삼아,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선 독특한 책 한 권을 펴냈다. 『김정일 프로덕션: 세상에서 가장 황당하고 대담한 납치극』은 김정일·신상옥·최은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냉전 이후 데탕트 시대 남북관계의 축과 북한 프로파간다 정치의 실상을 이야기의 형식을 빌려 재현한다. 흥미진진한 스토리 덕분에 원서는 14개국 언어로 번역되었고, 이야기의 실제 현장인 한국에서 열다섯 번째로 출간되었다. 2017년 9월에는 같은 주제를 다루고 영국인 감독이 연출한 98분짜리 다큐멘터리가 개봉되기도 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최 여사.”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지금 김일성 장군의 품으로 가는 길이라오.” “방금 뭐라고 하셨죠?” 남자는 쓰고 있던 가발을 벗어버렸다. “위대한 지도자인 김일성 동지의 품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소.” _ 1막, 120쪽

김정일은 최은희와 신상옥을 납치해 무슨 짓을 했을까? 혹시 최은희와 신상옥은 재기를 위해 일부러 월북한 것은 아니었을까? 요란했던 납치와는 다르게 허무하게 도망자를 놓친 북한의 진짜 속셈은 무엇이었을까? 이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종종 남북한의 오랜 앙숙 관계를 희화화하고 자극적으로 조리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미치광이 독재자에게 납치된 비련의 연인”이라는 프레임은 흥미롭기는 하나 지적이지는 않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 납치 사건으로부터 본격화된 북한 이미지 정치는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그리고 그것은 성공했는가? 『김정일 프로덕션』은 국가를 상대로 한 전대미문의 납치 사건이라는 희극적인 소재를 통해 냉전 시대부터 현재까지 그 생명줄을 이어오고 있는 아시아의 작은 독재 국가가 어떻게 인민을 교화하고 충성심을 창출하고 나아가 정권의 신화를 갱신해나가는지 세밀하게 그려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저자가 활자로 직조한 흑백영화를 따라가며 북한 이미지 정치의 탄생과 완성의 일대기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만만하지 않은 주제를 소설로 극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이야기의 여백을 채워나갔다. 북한 전문가, 탈북자, 외신 기자 등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사건의 당사자인 최은희와 숱한 대화를 나눴다. 물론 북한에도 다녀왔다. 그 결과 북한 정치의 미시사를 훑는 매우 독특한 장르의 두툼한 책 한 권이 나왔다. 

북한은 여전히 외부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미지이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정보들의 사실 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 도구(tool)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는 구글어스(Google Earth)가 있다. 이는 실제로 북한 연구자들이 탈북자들의 증언에 등장하는 장소나 건물의 위치 등을 확인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나는 사건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장소에 직접 가봤으며, 이렇게 현장답사를 한 국가들로는 대한민국·오스트리아·독일·헝가리·홍콩 등이 있다. 물론 북한도 직접 다녀왔다. _9~10쪽

포/르/노 영화를 조달하라

김정일이 처음부터 김일성의 후계자는 아니었다. 탁월한 재능을 발휘해 아버지의 총애를 받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한 분야에서만큼은 탁월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재능은 후천적인 노력과 집착으로 만들어졌다. 

김정일은 30세가 넘어서야 김일성의 정식 후계자로 거론되기 시작했으며, 군 경력이 전무했던 김정일은 특별한 목표의식 없이 아버지의 특혜를 받고 자란 젊은이에 불과했다. 또한 정계와 재계 어떤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는 정식으로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적이 없었으며 인민의 영웅도 아니었다. …… 그러나 김정일은 드라마 스토리의 전개 방식, 쇼맨십을 활용하는 법, 신화를 만들어내는 능력 등에는 어느 정도의 재능을 보였다. 이런 기술들은 당연히 그가 정치학·지역학·역사학 등을 공부하며 터득한 것은 아니었다. 김정일이 북한에 새로 도입한 모든 정책과 그로 인한 업적들은 바로 영화를 보고 배운 것들이었다. _ 1막, 59쪽 

저자는 취재를 바탕으로, 영화광 김정일이 아직 권력 바깥에 머무르고 있던 청년 시절에 벌인 ‘해적판 영화 비디오(불법 복제 비디오)’ 밀수 사업의 전모를 상세히 설명한다. 이른바 ‘100호 물자’ 사업이라고 불린 이 작전에는 북한의 외교부와 공작원이 대거 투입되었다. 이들은 국가 최고 지도자의 아들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전 세계의 북한 외교관들은 명목상으로는 대사관 내부 상영용으로 영화 비디오를 빌렸으나, 아무도 그들이 지하에서 비디오를 불법으로 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지하에서 은밀하게 생산된 해적판 비디오는 프라하, 비엔나, 마카오, 광저우 등에 집산된 뒤 종류별로 분류되어 평양영화도서관에 모였다. 이렇게 쌓인 김정일의 컬렉션에는 주로 할리우드 첩보물, 일본 야쿠자 영화, 로맨틱 드라마, 심지어 포/르/노 영화까지 종류를 불문한 방대한 자료가 구축되었다. 이 작업을 총괄했던 평양영화도서관에는 무려 250명이 넘는 직원이 상근했다. 훗날 북한의 젊은 독재자가 될 이 청년은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언젠가 자신이 완성할 새로운 북한의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김정일이 공식 집권하는 1970년대까지도 북한의 영화 산업은 몹시 열악했다. 미군 포로로 북한에 억류되어, 주로 ‘미제의 악랄한 침탈’을 비방하는 북한 기록영화의 미군 역으로 출연하고 있던 젠킨스는 당시 북한 영화의 수준을 이렇게 술회했다. 

“그곳은 영화를 제작하는 데 기본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곳이에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선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한꺼번에 촬영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데, 북한 사람들은 그저 대본에 일어나는 사건의 순서대로 장면을 찍더군요. 영화에 등장하는 사무실을 지어놓았으면 필요한 모든 장면을 한 번에 찍고 허물어야 할 텐데, 한 장면만 찍고 사무실을 허물어버린 후 다시 지어 다른 장면을 촬영하더라고요!” 그는 이어서 말했다. “물론 저는 설마 이 사람들이 그 정도로 멍청할 리가 있겠느냐고 생각했죠. 제 생각에 아마 그들은 대본을 다 만들어놓은 후에 촬영에 돌입하는 게 아니라, 영화를 찍는 동안 동시에 대본을 쓰는 것 같았어요. 맙소사!” _ 1막 97~98쪽

이 평가에 대해서는 김정일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는 이미 1951년에 일본 영화계로부터 엄청난 열등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무명 감독이었던 구로사와 아키라가 연출한 <라쇼몽>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것이다. 세계 영화 시장에서 변방 중 변방이었던 일본은 이때부터 일약 영화 대국으로 우뚝 섰다. 일본 영화계의 빛나는 성취만큼이나 김정일의 자존심에는 큰 상처가 생겼다.

<라쇼몽>의 성공으로 인해 전 세계는 일본 영화의 잠재력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1970년대 김정일이 북한의 영화 제작 현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이미 20세기 폭스에서 일하고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A. Spielberg), 조지 루카스(George Lucas),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 등 거장들은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감독으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을 꼽았다. 한반도 남쪽과 북쪽에서는 일본 영화계의 이 믿을 수 없는 ‘열도의 성공’을 흉내 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양국의 정부는 영화야말로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문화수출산업이라고 확신했으며 영화 제작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구로사와 아키라와 같은 영화 영웅이 되고 싶어 했다. 물론 김정일도 그중 한 명이었다. _ 1막, 102쪽

이처럼 『김정일 프로덕션』은 청년 시절 김정일의 독특한 취미 생활과 일본 영화에 품었던 열등감 등 독재자 이전의 비루한 한 인간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특히, 최은희가 김정일의 집에 방문해 당시 여섯 살이었던 어린 김정남과 나눈 대화는 이 독재 왕조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알려준다. 

“아들이 계셨군요!” 최은희가 놀라 물었다. “아들도 있고 딸도 하나 있다우. 근데 딸은 지금 여기 없습네다.” 최은희는 구부려 앉아 김정일의 아들에게 물었다. “참으로 잘생겼구나. 몇 살이니?” “일곱 살!” “이름은 뭐니?” 이름을 묻자 남자아이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아버지를 올려다봤다. “이 아주머니는 왜 내 이름을 묻는 거죠?” 김정일은 잠깐 웃더니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른이 이름을 물어보면 공손하게 대답을 해야지.” “아.” 소년은 최은희에게 돌아서서 “제 이름은 김정남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정남은 자기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을 여태까지 만나본 적이 없었다. _ 2막, 138~139쪽

김정일에게 영화는 북한 이미지 정치의 최전선이었다. 자신이 세울 왕국의 신화를 인민의 눈앞에 재현하고, 그 신화의 유지와 부흥에 동원할 희생을 정당화하는 지배 도구였다. 김정일은 세심하게 작품을 구상했으며 반드시 들어가야 할 구성요소를 빠뜨리지 않고 챙겼다. 이제 그에게는 자신의 상상을 세상에 구현할 전문가가 필요했다.

기묘한 공조 관계
김정일과 신상옥 그리고 최은희 

납북 초창기, 수차례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수용소에 수감되어 죽을 날을 기다리던 신상옥은 평양에서 김정일이 주최한 파티에서 극적으로 자신의 전 부인 최은희를 만난다. 그 뒤, 신상옥은 최은희와 함께 북한 ‘영화 정치’에 적극적인 공범으로 가담한다. 그들은 고국에서 분출하지 못한 자신의 재능을 김정일의 왕국에서 마지막으로 불태우기로 결심한다. 

고통을 감내하는 유일한 방법은 창작과 영화의 세계로 도망치는 것이었다.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던 때와 장소로 기억을 더듬어서 말이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영화의 스토리를 다시 쓰고 편집했다. 예전 영화들의 실수를 바로잡고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 다시 재창작해낼지에 대해 고민했다. …… 수용소의 열악한 상황에서 미쳐버릴 것만 같을 때에는 상상의 세계로 도망치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 감옥에서 많은 시간이 주어진 탓에 영화 구상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신상옥은 이를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_ 2막, 248~249쪽

그는 비록 인질이었으나 영화에 대해서는 북한에서 유일하게 김정일과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는 전문가였다. 독재자는 그와 그의 연인에게 전권을 줬다. 북한에서 신상옥이 감독한 첫 작품 <돌아오지 않는 밀사>는 1984년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놀라운 작품의 완성도와 함께 사상 첫 영화제 수상이라는 쾌거에 김정일은 뛸 듯이 기뻐했다. 1985년에는 김정일이 직접 제작자로 나서고 신상옥과 최은희가 각각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소금>이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다. 북한 최초의 SF 괴수 영화 <불가사리>도 바로 이때 신상옥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북한에서 신상옥이 감독한 마지막 작품이 되었으나, 훗날 미국 B급 괴수 영화계의 전설적인 작품으로 회자되며 마니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고전이 된다. 
김정일을 제외한 모든 이의 우려 속에서 시작된 ‘세상에서 가장 황당하고 대담한 납치극’은, 세 사람의 기묘한 공조 관계 속에서 그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김정일의 꿈은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신상옥과 최은희가 이듬해 북한을 탈출하기 전까지는.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사관까지는 불과 50야드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택시는 조금도 앞으로 전진을 할 수 없었다. 신상옥은 숨도 쉬지 않고 재빠른 목소리로 에노키에게 안전하게 도착할 때까지 망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작별 인사를 할 새도 없이, 택시 문을 박차고 나섰다. 앞좌석에 앉아 있던 최은희도 따라 뛰어내렸다. 두 사람은 있는 힘을 다해 뛰어가 거의 동시에 대사관 문 앞에 도착했다. 너무나 급한 나머지 뛰어 가는 동안 서로 경쟁하듯 앞질러 나갔다. 전속력을 다해 대사관 문을 통과한 후 접수 데스크로 뛰어가 이름을 댔다. …… 미국인 대사관 직원은 빠르게 말했다. “서방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최은희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장미를 받아든 최은희는 눈물을 터뜨렸다. _ 3막, 400~401쪽

1986년 3월 12일, 북한 이미지 정치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남한의 두 영화인은 자신들의 마지막 행운과 기지를 모아 탈출을 계획한다. 국외 촬영을 핑계로 잠시 프라하에 머물고 있던 신상옥과 최은희는 옛 동료이자 일본의 언론인인 에노키 아키라의 도움을 받아 북한 경호원의 감시를 피해 탈출을 시도했다. 저자는 탈출의 당사자 최은희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의 상황을 첩보 영화처럼 각색해 생생하게 재현한다. 결국 인민의 위대한 두 예술 영웅을 놓친 북한 공작원들을 뒤로 하고 연인은 미국 대사관 잠입에 성공한다. 대사관은 그들의 망명 신청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이 허무한 탈주극을 보고 외신은 북한이 신상옥과 최은희를 일부러 놓아준 것이라고 추측했다. 사람들은 그들의 납북 자체가 처음부터 조작된 사건이라고 수군거렸다. 연인은 항변했고 북한은 말을 아꼈다. 그리고 세 당사자 중 두 명이 세상을 떠난 지금, 진실을 확인할 길은 요원해졌다.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는 물론 알 수 없습니다. 북한이 개방되고 김정일의 개인적인 문서들이(만약 그러한 문서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공개되어 낱낱이 살펴볼 수 있을 때까지 그 어느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저는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신상옥과 최은희의 말을 사실로 믿을 생각입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_ 저자 후기, 446쪽

저자가 후기에 남긴 말처럼 신상옥, 최은희 납치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사건의 조작 여부가 아니라 그들이 잠시 머물렀던 1970년대의 북한에서 그들이 보고 듣고 겪고, 심지어 조력까지 한 이미지 정치의 내면을 탐구하는 일일 것이다.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프랑스의 한 영화감독은 직접 펜을 들어 영화사에 길이 남을 이 기이한 사건을 어느 고립된 왕국의 프로파간다 전략과 연결했고, 이제 우리는 그의 비평과 상상을 즐겁게 감상할 일만 남았다. 

북한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거짓이다. 그러나 그건 문제되지 않는다. 북한은 김정일이 감독으로 있는 엄청나게 거대한 연극 무대일 뿐이니까. 그는 오늘도 구경거리로 전락한 시스템, 실재하지 않는 정권의 정통성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연출법을 고안하고자 고심하고 있다. 북한에서 혁명은 진행 중이다. 연극도 멈추어선 안 된다. 영화도 끝이 나선 안 된다. _ 3막, 412쪽

목    차

글을 시작하기 전에: 출처, 조사방법, 이름에 관해 
프롤로그: 1982년 8월 

1막 운명 
1장 청와대 잔디밭에서 찍은 사진
2장 신 감독과 최 여사
3장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4장 백두산 위에 펼쳐진 쌍무지개
5장 김정일의 첫사랑들
6장 부전자전
7장 평양 영화 산업 내부 이야기
8장 3초간의 키스
9장 리펄스베이

2막 친애하는 지도자의 손님들 
10장 은둔의 왕국
11장 기소된 자
12장 뮤지컬, 영화, 사상교육
13장 납치
14장 타인들
15장 밤나무골로부터의 탈출
16장 신상옥은 여기서 숨을 거두었다
17장 고문 자세
18장 39호실
19장 단식투쟁
20장 신상옥 감독이 오고 있다

인터미션: 인민배우 우인희 

3막 김정일 프로덕션
21장 둘이 함께
22장 녹음기
23장 조명 그리고 카메라
24장 북한 밖으로
25장 유럽 영화 한 편처럼
26장 기자회견
27장 동상이몽
28장 꽉 찬 촬영 스케줄
29장 괴물
30장 비엔나
31장 부자세습
32장 성조기

에필로그: 2013

출처 :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3488884

[Asphel]

김전일 프로덕션인줄...

[가나다라마나바]

흥미롭네요

[うまくなりたい 。]

지옥이란 곳이 꼭 존재했으면 좋겠습니다.

[땅파는두더쥐]

움직이지마~!!!! 지금부터 움직이는 새KI는 다 범인이야!!!!!!!!!!!

[굿거리장단]

가장 순수하고 직접적으로 정치와 쇼가 구분되지 않는 국가, 라는 관점도 북한에 대해 꽤 괜찮은 분석틀이군요

[슈발로이카1]

이번 김정남 살인사건을 보면... 진짜 영화에서나 나올 악의 조직이 할 일은 엄청나게 하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