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귀향
가난은 아름다웠지만
귀향은 치욕이었다
실업의 고통이 겨울 강변을 깨끗이 청소한다
강을 잡아먹던 나무들을 자르고 쓰러뜨리는 공공근로
사업자들의 느린 작업이 신문지를 덮은 서울역 노숙자들
의 긴 행렬로 이어져 굽이굽이 누추한 강으로 드러난다
돌아온 자들은 떠났던 자들이니
누가 다시 고향에 돌아와 누구와 눈 맞추고 산천을 똑
바로 쳐다보리
나라는 빚지고
뼈 휜 내 노동은 털렸다 탈탈 털면 하얀 이들이 떨어
지던 몸은 김이 났었다 이제 망가진 몸뿐이니
찬 술로 세상에 설 뿐이다. 아이들도 아내도 서울에
두고 빈집에 돌아와 날마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손
에 잡히지 않는 낫과 괭이와 등에 닿지 않는 지게를 때
려부수고 녹슨 쟁깃날을 내던지며 밤이면 아, 밤이면 밤
마다 별 볼일 없는 내 일생의 서러운 논밭을 뒤적인다
늦은 밤 변소길에 본 집 앞 가로등 저쪽 캄캄한 어둠
속을 흐르는 물소리를 얼마나 무서운가
환하게 밝아오는 내 고향의 아침은 얼마나 겁나는가
가난은 아름다웠지만
고향은 치욕이다
김용택
나무, 창비시선 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