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한 사람들 죽여가지고 황건적 수급으로 위장해서 공적올렸었다는데
기록이 있는건가
이미지로는 굳이 기록에는 안남더라도 동탁이라면 어련히 비슷한 일 몇개 쯤 있을거같기야한데 ㅋㅋ
엄한 사람들 죽여가지고 황건적 수급으로 위장해서 공적올렸었다는데
기록이 있는건가
이미지로는 굳이 기록에는 안남더라도 동탁이라면 어련히 비슷한 일 몇개 쯤 있을거같기야한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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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찬처럼 정사가 더 이상한 새끼도 있다보니 동탁같은 경우에 정사에서도 그랬을 것 같긴 하다;;;
공손찬처럼 정사가 더 이상한 새끼도 있다보니 동탁같은 경우에 정사에서도 그랬을 것 같긴 하다;;;
우리나라도 그런놈 하나있으니 저쪽도 있어도 이상할거 없지. 원 뭐시기라고..
원균이도 백성들 수급 모아다가 왜군수급인척 했다며
일찍이 군사를 보내 양성(陽城-예주 영천군 양성현)에 도착한 일이 있다. 때마침 2월 사(社-지신제. 또는 이를 지내는 장소)를 지낼 때라 백성들이 각기 사(社) 아래에 모여 있으니 그 남자들을 모두 참수하고는, 그들의 소와 수레를 몰아 그 부녀와 재물을 싣고 수레의 끌채와 굴대에 그들의 목을 매달고 수레를 늘어세워 낙양으로 돌아왔는데, 적(賊)을 공격해 크게 노획했다고 말하며 만세를 불렀다. 제사지내는 민초 싹 따서 물자개꿀띠함
이때 장사 태수(長沙太守) 손견(孫堅)이 예주의 여러 군현의 병사를 이끌고 동탁을 토벌하려 했다. 동탁이 그 전에 장수 서영(徐榮)과 이몽(李蒙)을 네 번 출전시켜 노략질을 했다. 서영이 손견을 양(梁)에서 조우하여서〔一〕 전투를 벌여서 손견을 격파하고 영천 태수(潁川太守) 이민(李旻)을 사로잡아서 팽형에 처해 삶아죽였다. 동탁은 의병을 포로로 잡으면 모두 천으로 돌돌 말아서 땅에 엎어놓고서 뜨거운 기름을 부어서 죽였다. (후한서 동탁열전) 손견이 양 동쪽으로 옮겨 주둔하였다가, 동탁군에게 크게 공격을 받으니, 손견과 수십 기만이 포위를 뚫고 탈출했다. 손견은 항상 붉은 두건(幘)을 쓰고 있었는데, 이에 두건을 벗어 친한 주위 장수 조무(祖茂)에게 이를 쓰게 하였다. 동탁의 기병들이 다투어 조무를 추격하니, 그래서 손견은 샛길로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조무는 (상황이) 곤박(困迫)해지자, 말에서 내려 두건을 무덤 사이에 씌어 놓고 기둥에 불을 놓아, 풀 속에 엎드렸다. 동탁의 기병들이 이것을 바라보고는 여러 겹으로 포위하고, 가까이 가서야 이것이 기둥임을 알고 이내 물러갔다. (손견전) 일찍이 군사를 보내 양성(陽城-예주 영천군 양성현)에 도착한 일이 있다. 때마침 2월 사(社-지신제. 또는 이를 지내는 장소)를 지낼 때라 백성들이 각기 사(社) 아래에 모여 있으니 그 남자들을 모두 참수하고는, 그들의 소와 수레를 몰아 그 부녀와 재물을 싣고 수레의 끌채와 굴대에 그들의 목을 매달고 수레를 늘어세워 낙양으로 돌아왔는데, 적(賊)을 공격해 크게 노획했다고 말하며 만세를 불렀다. (낙양의) 개양성문(開陽城門)으로 들어와 그 머리를 불태우고 부녀들은 갑병(甲兵)에게 주어 비첩(婢妾)으로 삼게 했다. 궁인(宮人), 공주(公主)를 간란(姦亂-간음)하는 데까지 이르니 그 흉역함이 이와 같았다. (정사 동탁전) 영한(永漢) 원년(189), 효렴[孝廉 ; 한나라때 '현량 방정(賢良 方正)' 처럼 관직 천거 요건]으로 천거되어 수궁령(守宮令)에 배수되었다. 동탁의 난 때, 외직으로 나가 보필하는 관리가 되길 구하였다. 항보(亢父) 현령에 제수되었으나, 마침내 관직으로 버리고 돌아와서, (고향의) 부로들에게 "영천은 4면에서 전쟁에 벌어질 수 있는 땅인데, 천하에 변란이 있어 항상 군대의 충돌이 생길 것이니, 마땅히 이곳을 떠나 오래 머무르지 마십시오" 라 했다. 고향 사람들이 많이 땅을 생각해 주저하며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기주목(冀州牧)으로 같은 군 사람인 한복(韓馥)이 기병을 보내 맞이하려 하게 되자, 따르는 자가 없으니, 순욱만 그의 종족들을 데리고 기주에 이르렀다. 원소(袁紹)가 이미 한복의 지위를 박탈하였으나, 순욱은 상빈(上賓)의 예로 대우했다. (정사 순욱전) 반동탁연합 X대 전투 중 하나인 영천전투 (서영+이몽 vs 손견) 손견의 패배 후 영천 지역에서 깽판을 친 걸로 추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