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라고 백날천날 활만 쏘고 접근당하면 쓸려나가는 극단적 원거리 메타로 먹고 산 줄로 아는데.
의외로 조선의 초기는 고려의 전통을 유지하여 근접 육박전이 장기인 극단적 근접 메타에 가까웠다.
세종, 세조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군의 상당수는 사수가 아닌 방패로 무장한 팽배수와 중기병들이 주를 이뤘는데.
이는 4군 6진 이전 험악한 함경도 산악지에서 여진족들과 난전을 펼치거나, 소규모 각개격파 전투를 벌여야 했기 때문.
그러나 세종 때 4군6진의 개척으로 전투의 양상이 개활지 회전이나 게릴라 전투에 맞서야 하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전선이 넓어지며 소수 정예화된 근접 병종들보단 빠르게 소집할 수 있는 대군이 필요해지고.
군대에 들어가는 비용이 미친듯이 폭증하니 세조 중후기 부턴 우리가 익히 아는 원거리 메타로 전환된다.
활을 잘쏘면 검술도 당연시될정도로 잘했다 활시위를 당기는 팔근육 파워를 닷씨는 무시하지마라
원거리가 싸고 좋은건 아니였지만 그래도 중기병+근접병과보단 싸고 훈련량도 적었다 그.체제가 고대로 임란까지 왔으면...아니 부분부분이라도 제대로 남아있었다면 평양쯤에서 일본군 올라가기 ㅈ같았을꺼임
세조의 군제 개혁이 조선군 약체화의 주범은 맞는데. 세조가 아니라 다른 왕이었어도 비슷한 상황이 찾아오긴 했을거긴함
이상하게 세조 억까 하던 시절에는 이게 다 세조탓이라는 얘기가 많았는데 실은 군비로는 이미 당대 조선에선 한계상황이었고 세조는 어떻게든 이거 유지하려고 발악하던 왕이라는게 사실에 가깝지, 결국 성종때 항복 선언하고 군비축소에 들어가는거고.
최근 연구로는 화포도감 폐지껀은 사실 화포도감만 다루던 화기를 전군에 보급시키려는 과정이었다는게 더 사실에 가깝다고 하더라
딱히 주범도 아님. 200년동안 큰 전쟁도 없고 적성국가와의 군사적 긴장도 없이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면 어느 나라나 군사력은 당연히 약화됨. 일본도 내전 한창 하던 전국시대에나 군대가 강했던거지 에도막부 평화 200년 거친 후에 막부 말기에는 백성 민란도 제대로 제압 못하고 쩔쩔 매는 수준으로 군대가 약화됨
ㅇㅇ 맞엉. 이만주 잡는다 이시애 잡는다 어쩌고 하면서 군대는 비대해졌는데 이걸 당장 축소 할수 없으니 어떻게든 땡겨서 군대 유지 할려고 했던거지. 화포도감 폐지건도 저 재정악화때문이라고 봐야 하는데 쿠데타당할까봐 없앴다는 소리나 나오고.
활을 잘쏘면 검술도 당연시될정도로 잘했다 활시위를 당기는 팔근육 파워를 닷씨는 무시하지마라
(대충 어디 무과 떨어진 건달들이 칼들고 설치느냐 하는 짤)
조선시대 하급 군관들 중엔 검계나 건달짓하며 부족한 녹봉을 채우는 이들도 있었지..
상대가 정예기병 메타라 어차피 활아니면 양손무기로 붙어야됨 무슨 고대 로마 나 중세 기사들 처럼 풀차징 충격 기병이 아니라
겜에서 궁수가민첩찍는거 솔직히 이해안됨 ㅋㄱㅋ
눈 보니까 옛날에 본 이호성 합성짤 떠오름... 존나 무서웠는데...
원거리가 싸고 좋은건 아니였지만 그래도 중기병+근접병과보단 싸고 훈련량도 적었다 그.체제가 고대로 임란까지 왔으면...아니 부분부분이라도 제대로 남아있었다면 평양쯤에서 일본군 올라가기 ㅈ같았을꺼임
기병이 진짜 돈먹는 하마라...
사람9명이 먹는게 한끼라고 전에 유튭에서 본거같은데
말에만 돈이 들어가는게 아니라 기병 자체도 엘리트라 갑주니 장비니 훈련이니 돈이 엄청나게 들어감
세조의 군제 개혁이 조선군 약체화의 주범은 맞는데. 세조가 아니라 다른 왕이었어도 비슷한 상황이 찾아오긴 했을거긴함
봉완미
이상하게 세조 억까 하던 시절에는 이게 다 세조탓이라는 얘기가 많았는데 실은 군비로는 이미 당대 조선에선 한계상황이었고 세조는 어떻게든 이거 유지하려고 발악하던 왕이라는게 사실에 가깝지, 결국 성종때 항복 선언하고 군비축소에 들어가는거고.
봉완미
딱히 주범도 아님. 200년동안 큰 전쟁도 없고 적성국가와의 군사적 긴장도 없이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면 어느 나라나 군사력은 당연히 약화됨. 일본도 내전 한창 하던 전국시대에나 군대가 강했던거지 에도막부 평화 200년 거친 후에 막부 말기에는 백성 민란도 제대로 제압 못하고 쩔쩔 매는 수준으로 군대가 약화됨
GNT-0000 QUANTUM
ㅇㅇ 맞엉. 이만주 잡는다 이시애 잡는다 어쩌고 하면서 군대는 비대해졌는데 이걸 당장 축소 할수 없으니 어떻게든 땡겨서 군대 유지 할려고 했던거지. 화포도감 폐지건도 저 재정악화때문이라고 봐야 하는데 쿠데타당할까봐 없앴다는 소리나 나오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거지만. 세조가 일부러 망쳤다기보다는 저렇게 갈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다는걸 말하고 싶었던겅미 ㅋㅋ
봉완미
최근 연구로는 화포도감 폐지껀은 사실 화포도감만 다루던 화기를 전군에 보급시키려는 과정이었다는게 더 사실에 가깝다고 하더라
아 그렇게 되는거구만.
활을 잘 못쓰는 이유로 산악지대가 태반이라 멀리 날려봐도 의미없는거라든가 그런건 아니구나
당시만해도 고려말까지 골치아팠던 왜구는 세가 꽤 줄어들어 남방은 삼포왜란 제외하면 사실상 후방이 됬고 전방인 4군 6진도 엄밀히 보자면 여진족 소탕에 집중했고 명나라와 정면대결은 고려대상도 아니었으니 ㅇㅇ,,,
그리고 현대도 그렇지만 군대 적정자원=산업 적정 자원이라서 너무 군대를 비대하게 유지시키는것도 손해긴 했음. 임진왜란도 명군 내려오니깐 조선이 가장먼저 한게 조선육군 상당수를 다시 산업인력으로 전환시키는거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