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거병.
18살때 처음 전장에 출전해서 기병 800명을 이끌고 본대를 이탈하여
흉노족 병사 수천명과 흉노선우의 할아버지를 죽이고 삼촌을 포로로 잡았다.
21살에 표기장군에 임명되어서는 병사 1만명을 이끌고 1천리를 진격하면서
흉노족 수천명을 죽이고 흉노의 왕이 제사지낼때 쓰던 금인을 탈취했는데
기록에 의하면 그와중에 그의 군대는 갑옷 하나 잃지 않았다고 하더라.
이후 흉노족을 공격할때는 흉노땅 깊숙히 진격했으나 후발대로 오기로 한 공손오가 길을 잃어
제때에 오지 못하자 그를 기다리지않고 더욱 진격하여 흉노족 수만명을 죽이고 흉노의 왕과 그 가족을 비롯한 수천여명을 포로로 잡았다고 한다.
흉노의 어느 왕은 계속 지니까 선우에게도 된통 깨지고 차라리 항복해버릴까 하였고
곽거병은 그들중 항복을 원치않았던 수천명을 죽여버리고 나머지 수만명에게 항복을 받아냈다.
2년후, 한무제는 위청과 곽거병에게 대군을 동원시켜 흉노를 공격하게 했다.
곽거병은 흉노족 포로에게 흉노선우의 위치를 듣고 그쪽으로 진격했고
흉노쪽에서는 한나라 군대가 사막을 넘어오면 지칠것이라고 여기고 천천히 기다렸는데
곽거병이 아니라 위청에게 포착되어 개박살이 났지만 흉노선우는 아슬아슬하게 탈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사이에 곽거병은 사막을 지나서 바이칼호까지 진격했다.
군량보급은 적들을 때려부수고 그 군량을 빼앗는것으로 해결하면서 흉노족 고위인사들을 잔뜩 죽이고
수만명을 포로로 잡아버렸다.
위청도 나름 잘 싸웠지만 선우를 놓쳐버리고, 곽거병이 이런 엄청난 전공을 세우는 바람에 낙동강 오리알신세가 되고말았다.
하지만 곽거병은 얼마 지나지않아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향년 24세였다.
당대에도 그러했고 후세에도 곽거병의 전략 전술은 임기응변에 의존한것이라 그저 운이 좋아 연승가도를 달렸을 뿐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큰 낭패를 봤을 지 도 모른다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최근 분석에 따르면 곽거병의 전술은 자신이 상대한 흉노족의 것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흉노족의 기병을 카운터 칠 수 있는 병기도 운용했다고 하니 그저 되는대로 싸워댄 건 아니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