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은 궁예를 몰아내고 실권을 잡자 궁예의 기조와는 다르게
이제 힘을 잃고 껍데기만 남은 나라 신라에 우호정책을 펴는데,
태조는 그 이유를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고 한다.
“천년 왕국을 힘으로써 굴복시킬순없다. ”
이후 왕건이 거의 목숨을 잃을뻔한 역대급 패전인 공산전투도
신라를 구원하러가다 생긴일이었으니, 신라입장에서는
고려의 진정성을 알게되었고 이는 이후에 신라의 귀부까지 이어진다.
오죽하면 공산전투는 왕건의 대패였으나 삼국통일의 시작점이었다고 말할정도.
신라의 마지막왕 경순왕 김부는 고려에 투항했고
신라의 상층부와 유민들은 저항감없이 고려에 흡수되었다.
이후 후백제의 신검을 치고 후삼국을 통일하니
신라를 매우 적대시했던 견훤과 궁예는 이루지못한 업적을
왕건은 긴 안목을 통해 세운것이다.
왕건은 단순히 궁예를 몰아내고 실권을 잡은게 아니라 918년에 왕건은 역성혁명을 일으켜서 궁예를 몰아내어 궁예의 태봉국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나라 '고려'를 건국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