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가 촉한의 황재가 된 이후
촉오 의 형주 영유권 분쟁은 극에 달함니다
형주 쟁탈전에서 유비는 같은실수를 두번이나 한 것이 모든걸 잃게되었다 고 할수 있습니다
유비는 젊은시절 일생일대의 실수를 한번 경험 하는데
바로 여포와의 일 입니다
여포는 유목민족 출신이라 물질적 이득을 우선시 합니다
하지만 유비는 여포에게 유교적 사고로 대하며 자신이 이정도 해 주었으니까
담에는 부족해도 의리로 대해 주겠지 이래 생각 했습니다
하지만 여포는 원술이 더 많은 뇌물을 주자 바로 배신 때립니다
유비는 한번 은혜 배푼걸로 엄청 울궈먹을수 있을거라는 철저한 유교적 사고주의 때문에 큰 낭패를 본 것입니다
말년에 또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데
자신의 세력에 기반이 잡히면 형주의 반을 돌려 주겟다고 해 놓고
자신의 세력이 강해지자 갑자기 걍 우리에게 복속해야 하지 않겠냐는 식의 잦대를 들이댑니다
유교적 도리를 내세움서 이번엔 오로지 충성이 먼저다 라는 사고를 주장하면서
한나라 재건을 위해 위 오 모두 촉한에 복속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웁니다
관우가 위의 발언을 했고 유비도 같은 심정으로 걍 형주 좀 떼주고 오나라랑 손잡고 보자는
제갈량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무시했습니다
이후 위나라가 우릴 도와줌 형주를 모두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자
오는 위와 손잡고 형주를 쟁취하고 관우를 참수 합니다
오나라나 여포나 유교적 도리 보다는 물질적 이득을 우선시 하는 문화권 인데
유비는 그런 부분들을 끝까지 인정하려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유교적 신념을 고집한게
모든걸 잃게된 원인이라 할수 있습니다
촉과 오의 형주 쟁탈전의 시발점은 사실 정사관점으로보면, 노숙으로 대표되는 오의 대촉한 친교노선파가 쇠퇴하고 ,여몽으로대표되는 주전파의 득세의 결과라고 볼 수있습니다. 사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오나라에게 형주지방의 획득이라는 전술적승리를 가져다 주는듯 하였으나, 장기적으로 보면, 상대적인 약소국인 촉과 오가 연합해서 위에 대항하는 구도를 깨뜨리게 되는 오나라의 전략적 패착으로 귀결 됩니다. 물론 형주의 입지상 중원,한중,강동으로의 사통팔달의 요충지임을 부인할 수없으나, 이미 다년간의 전쟁으로 상당히 피폐화된 상태였기 때문엔 실리가 크지 않았고, 관우을 제거함으로써 위로부터의 직접적 압박에 대한 완충 지대를 스스로 제거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물론 관우의 오만도 여기에 단초를 제공한건 부인 할 수없죠
저보다 더 많이 아시네요 솔직히 오나라가 형주에 욕심낸건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때 엄청큰 판단 미스라 생각해요 님 말대로 관우의 없애버린 탓에 위나라 견재할 방법이 사라져 버린것도 문제고 더군다나 땅이 넓어진 만큼 군사적으로 유리할지 몰라도 경제적으론 엄청 타격컸죠 유비 사후 툭함 오나라에 들쭉날쭉 한 내정땜시 자주 반란 일어났고 형주땅이 오랜 전쟁으로 많이 피퍠해진 탓에 경제적 플러스 요인이 되질 못했고 형주땅 득템한 이후 그렇다 할 원정도 못한채 무작정 짱밖혀서 세월 보내다 시피 한것도 있고
촉이 유교적 사고가 강한 나라였다기보단 그냥 유비가 그런인물이 아니었나 싶네요. 그냥 의를 중요시하는게 너무 강하다보니 실리를 놓친거죠. 저는 유비보다 유선의 무능력이 가장 큰 요소였다고 보는데, 위에서 조씨들 몰아내고 사마의가 권력을 차지했던 것처럼 차라리 제갈량이 유선을 폐위시켰으면 어땠을까 싶기도..(물론 그럴인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촉이 통일하기에는 장수도 부족하지 않았나 싶네요. 암튼 결과적으로는 유비가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네요 꼭 통일을 해야 역사적 승리를 하는것도 아니고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되서.. 유교는 베푼만큼 욹궈내자보다는 그냥 성인지도를 실천하는 사상이죠. 대가를 바라지 않고
관우가 있는 무릉이던가(?) 군사적 거점 말고는 다른 형주 땅은 다 오나라로 넘긴걸로 알고 있는데요. 게다가 정사에서는 적벽전투가 유비, 손권 양 군이 대등한 전력이었고 유비가 고생해서 얻어낸게 형주입니다. 또한 정통성으로 따져도 형주의 주인은 유기-유비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을텐데요. 형주 문제는 조그만 땅 욕심낸 손권의 실책으로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