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선조는 에도막부가 공인한 일종의 사설경찰로, 존속시기는 1863년 부터 ~ 1869년까지 입니다.
1868년경 초창기 멤버였던 곤도 이사미, 오키타 소지는 사망하였고
1869년 히지카타가 홋카이도 하코타테에서 전사하면서 신선조는 공식적으로 해산됩니다.
2. 신선조는 '좌막' + '양이'를 상징하는데
막부를 보좌-수호하여(좌막), 서양 오랑캐를 배척하고(양이), 유신지사들을 처단한다.
이와 비슷하면서 반대되는게 존황양이파인데
신선조 내부에서도 '존황' / '좌막'으로 갈리는 상황이었고 그 결과 나타난게 단무지 광인의 피의 숙청
안경남 야마나미가 탈주했던 이유중 하나가 자신들이 결국 실패할거라는걸 눈치 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 메이지유신과 함께 일본이 근대화되면서 몰락한 신분이 무사 계급입니다.
3. 신선조를 상징하는 옥빛 하오리의 창시자는 곤도 이사미
조직 창설 당시 츄신구라 덕질하고 있던 곤도 이사미가 정말 좋아서 단체복으로 맞춘게 옥빛 하오리
다만 이 옷은 정식 발대식때 입고 그 후에 몇번 안입고 어딘가로 쳐박아버렸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요약하면 너무 화려하고 눈에 띄어서....
(유신지사들, 도막-막부 반대파 세력들 급습해서 썰고다니는게 신선조인데 대놓고 눈에 띄는 옷을 입는다는거 자체가 패착)
4. 의외로 검술만 쓰는 집단은 아니었던 신선조
페그오 단무지 광인이 총을 쏴대는 것처럼 신선조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서양식 총포류로 무장하고 일종의 군사조직으로 변모
대부분 천연이심류(ex : 단무지 광인, 오키타), 북진일도류(ex : 안경남)가 주축이긴 했는데
하라다 사노스케와 같이 타케다류 창술을 쓰는 무사도 약간이나마 있었습니다.
5. 기타
- 신선조를 대표 하는 3대 검사는 오키타 소지, 사이토 하지메, 나가쿠라 신파치
이 중 사이토 하지메, 나가쿠라 신파치는 신선조를 그만두고 천수를 누린 몇 안되는 케이스입니다.
- 오키타 소지는 폐결핵으로 죽었는데, 곤도 이사미보다 두 달 더 살고 죽었습니다.(곤도는 5월 체포 후 참수, 오키타는 7월)
- 히지카타는 준수한 외모로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았으며, 연애시도 많이 써서 지금까지도 시문집이 남아있습니다.
안경남도 시를 썼다고는 하는데 현존하는 작품은 없습니다.
다만 안경남이 쓰는 보구 대사는 히지카타가 지은 시(물의 북쪽, 산의 남쪽과 봄의 달)에서 따왔습니다.
- 신파치와 하지메가 그만둔다고 했을 때 히지카타는 순순히 보내줬다고 합니다.
히지카타는 수 틀리면 같은 동지였어도 죽여버렸던 과격파인데, 의외로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합의해서 탈퇴를 인정해주는거 보면
안경남은 그냥 물렁이 멘탈이었던걸로(그러니 '이제 그만합시다'라는 나사빠진 소리나 하고 있는거죠)
나카쿠라 신파치와 사이토 하지메는 정말 천수를 누리다 떠났지요 신파치는 신선조의 상세한 기록을 남겨두어 신선조 연구에 큰 도움을 주었고 사이토 하지메는 서남전쟁에 참전 이후 밀정일을 계속하다 은퇴했는데 조사하면서 놀란건 이 양반 말년엔 오카노미츠 여자 대학교 에서 회계 및 사서 일을 했다는게 참 의외였죠
이토 카시타로가 안경남임?
아니요 야마나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