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야가 돌아온다. 입을 통해 숨이 쉬어진다.
머리가 생각을 시작한다.
끔찍한 기억이었다. 방금 전까지 무언가 끔찍한 일이 있었던 것만 같다. 일이 되는 대로 풀리지 않는다며 절규를 했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온몸이 격하게 쓰라려온다. 마치 크게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제서야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서 기겁한다.
"뭐, 뭐야…!?"
자신이 살아있는 상태가 맞는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야 마치 불구덩이에 던져지고 난 상태같지 않은가. 그 아픔을 통해 기억은 더욱 생생히 되살아나버린다.
"…나, 나,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살아있단 말인가. 분명 제 몸이 불꽃과 함께 사라져가는 모습을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었는데. 그렇게 비명을 질러댔는데.
재미있는 게임이 되어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 몸이 불타는 수준의 고통까지 재미있어하는 취미는 그에게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전혀 즐겁지 않았던 기억이었다.
"정신이 들어? 네가 누군지, 뭐하고 있었는지 다 기억 나?"
남자는 그제서야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든다. '누군가'라고밖에 추정할 수 없는 가려진 모습의 인물이 있었다.
"설마, 네가?"
"게임은 재미있었어?"
"이 새끼가……!"
그 말을 꺼낸 인간이 남자의 바로 눈앞에 있다.
그런 건방진 상대에게 다짜고짜 주먹부터 내지르려는 순간이었다.
"그럼 안 되지."
"컥, 억, ………!!"
주먹을 쥐어 상대의 안면에 내리꽂아야 했을 손이, 어쩐지 방향을 틀어 자신의 목을 부여잡는다. 그리고 쥐어터뜨릴 듯이 경동맥을 조르기 시작했다. 남의 손이 그대로 자신의 팔목 위에 붙은 채 남의 머리로 조종해오는 듯한 감각이었다.
타인을 향한 살의가 고스란히 되돌아오는 상황을 눈뜨자마자 다시 한 번 맛본다. 초 단위의 시간이 지날 수록 목을 짓누르는 고통은 의식의 둔화로 번져갔다.
정상적인 사고가 힘든 그의 귓속으로 아무렇지 않게 말이 날아든다.
"네가 당한 건 게임의 패배자로서 받는 벌칙이야. 온몸이 빠짐없이 불타고 재도 안 남는 형벌. 네가 그 동안 상대에게 하던 짓을 돌려 받은 것 뿐이거든. 인과응보 아니겠니?"
"그, 그걸, 어, 어떻게…!?"
"응, 알아. 너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건 질색이었잖아. 그래서 내 말에 귀담아들은 거고. 다르게 말하자면, 나 같은 애가 아닌 이상 널 지켜봐줄 사람도 없다는 거야."
머릿속으로 직접 속삭이던 순간 처럼, 그 육성으로 전해지는 목소리는 머릿속으로 똑똑히 박혀든다.
그 사이 남자의 눈앞은 다시 흐릿해진다.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래. 더는 없어. 너를 걱정해줄 사람도, 찾는 사람도. 낙오자인 너한테 유일한 의의였던 승리마저 빼앗겼어. 그런 사람이 다시 눈을 뜨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
그 자는 손을 뻗어 목을 죄는 남자의 손을 살살 어루만진다. 피부에 전해지는 작은 손의 감촉은 부드럽고도 차가웠다. 그 감촉과 함께 쓰라린 아픔이 찾아온다.
"기적이 있기 전까지는."
감촉이 전해지자마자 손의 힘이 풀린다.
덕분에 억류되던 숨을 거칠게나마 내쉴 수 있었다.
기적.
목소리의 주인이 맞다면, 지금 자신이 이렇게 되살아난 것 또한 이 자의 은총인가.
사경을 헤멜 압력에서 막 벗어난 그의 정신은 다시 혼란을 받아들인다.
"다시 눈 뜬 소감이 어때? 불쾌하지 않아?"
"무슨 생각이야?"
정말이라면, 이런 인간이 공짜로 자신을 되살려줬을리가 없다.
분명 이상한 일에 부려먹을 생각이겠지.
"그냥, 억울하겠다 싶어서. 너한테 중요한 건 이겼느냐 졌느냐 아니겠어?"
그동안 자신을 살피면서 어떤 구석을 어떻게 얼마 동안 눈여겨봤을까.
되새겨 볼 수록 소름이 느껴진다. 저런 녀석을 잠시나마 친구로 여겼다는 것이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다.
"게임을 못 이겼잖아. 남한테 주던 고통을 네가 받는다는 굴욕을 겪었어. 그런 너한테 다시 움직일 기회가 생겼는데, 뭘 해야된다고 생각해?"
굴욕을 준 상대를 찾자면 바로 눈 앞에 있다.
하지만 그의 머리로도 당장 적의를 드러냈다가 어떻게 될지는 알고 있다. 이번에는 멈추는 일 없이 그 스스로 숨통을 끊는 결과가 될 것이다.
흥미거리를 찾을 여유는 없이 살기 위해 할 일을 찾는다.
누군지 답은 금방 나왔다.
"그 새끼, 어딨어?"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미소를 짓고 있으리라 보았다. 의외로 말을 잘 알아듣는구나, 하면서.
◈
"그 사람이?"
"확실한 건 아냐. 근데 어디서 기척이 감지된 건 사실이야. 넌 뭐 느낀 거 없어?"
"……."
머리가 얼떨떨해지는 것을 느낀다.
자신이 잠깐 놀러온 자리에 어둠의 듀얼리스트가 있을지도 몰랐다니.
메신저도 아니고 통화로 연락을 해왔다는 시점에서 긴 이야기가 있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반쯤 긴장하면서 받고 나니 역시나, 긴장해야 마땅한 내용이 흘러 나오는 것이다.
아이바 유노는 칸노 모토미라고 자칭한 남자를 용의자로 꼽았다. 유노 앞에 찾아와서 듀얼을 신청한 남자라는 사실을 유진은 기억했다.
또한 카드 매장에서 열심히 카드를 뽑고 있던 사람이기도 했다.
유진은 등골이 서려왔다. 매장에서, 그리고 메이드 카페에서 마주쳤을 때만 해도 그는 분명 자신한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텐데.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역시. 그럼 가능성은 더 높다고 봐도 되겠네."
역시 그 때 어렴풋이 느낀 감각은 착각이 아니었단 말인가. 기척이 오래 남은 것도 아니었고, 애꿎은 사람을 붙잡는 꼴이 될까 싶어서 그냥 지나친 사람.
그런 자가 여태까지 상대해 온 자들과 같은 부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안, 조심했어야 됐는데."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됐어."
"설마 네가 그 가게에 있던 것도…."
"맞아. 그 근처에서 포착했다는 정보가 있었거든."
"감시만 목적이면 굳이 거기서 일할 필요는 없지 않나?"
"뭐가 됐든 듀얼이 치뤄지는 자리니까. 어둠의 듀얼이 벌어지지는 않아도 듀얼리스트라면 기웃거릴 가능성은 있겠지."
폰 너머로 희미한 한숨 소리가 들린다.
"…그런 추론을 근거 삼아서 날 거기로 보낸 거라고. 급료도 제대로 준다고 했으니까."
"굳이 그렇게까지 하나? 그냥 사회 경험도 해보라 치고 보낸 거 아냐?"
"안 그래도 바쁜데?"
"아니면, 알바생 머릿수 채우기가 목적이었다던가."
"으음…."
설마, 하고 넘기자니 아주 부정하기만도 힘들었는지 유노가 뜸을 들였다.
듀얼 실력 능숙하고 어떤 손님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데다, 외모까지 받쳐주는 젊은 여성 아르바이트생이라니, 그 채용 조건을 전부 성사시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터.
듀얼 이벤트에 카이바 코퍼레이션이 관여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런 자리를 만드는 시점부터 인사 담당자든 누구든 그녀를 채용하길 고려하지는 않았을까.
그녀 본인이 그 사실을 짐작하고 있을지 유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해보았다.
"어쨌든, 보다시피 당첨이었네. 또 감시할 대상이 생겼단 말이지."
'당첨'이라고 말하는 유노의 말투는 영 밝지 않다.
자신이 단죄해야 마땅할 어둠의 듀얼리스트가 대놓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것도, 이미 감시하고 있는 대상이 또 하나 늘어나버린 것도 그녀에겐 피곤한 일이었을 테니까.
물론 딱히 맞지 않는 아르바이트 자리에 나와야 한다는 사실도.
"내가 도와줄 건 없어?"
"너도 메이드복 입게?"
"아니아니, 감시 말야."
"말했잖아. 너한테 일상을 되찾을 권리가 있다고."
"되찾았잖아."
"그럼 되찾은 김에 소중히 여겨. 아린이 몫까지. 그것만 해도 큰일일 거야."
"그건 그렇긴 한데…."
"그러니까 마음만 받을게. 조심해야 되는 건 네 쪽이야."
"알고 있어."
"그리고, 혹시나 내가 얘기한 사람을 찾아가 볼 생각은 않는 게 좋아. 아닐 수도 있으니까."
"추론이니까."
유진도 동감한다. 생사람을 잡는 일은 유진으로서도 피하고 싶으니까.
"그래도 만약 그 쪽이 나한테 먼저 찾아온다면…."
"그렇게 안 되도록 할 거지만, 최악의 사태는 대비해두는 게 좋겠지."
'최악의 사태'라. 이미 재버워키와 한 번 상대한 것에 비하면 그것을 정녕 '최악'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한 번만 패배해도 다음을 장담할 수 없는 어둠의 듀얼에 엮여 있다면, 누가 됐든 우습게 봐서 될 것은 아닐 터.
"분명 그 쪽도 네 기척을 파악했을지도 모르니까. 여기서는 아무 일 없었더라도, 만약 무슨 짓을 해올지도 몰라."
"……응."
"그러니까 함부로 밖에 돌아다니지는 않는 편이 좋을 거야. 특히 그 쪽 부근은."
"거기 근처 매장이 내가 카드 뽑으러 다니는 곳인데?"
"다른 듀얼리스트도 그렇겠지."
"…그건 그렇네."
"그리고 카드를 거기서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온라인 주문도 있고."
"만약에 카드 배달하는 사람이 그런 쪽이면?"
"그런 식이면 아예 사람하고 대면 자체를…, 아니 냉정하게 따지자면, 그런 걸 각오해야겠지."
유노도 차마 그 불안을 부정하지 않는다.
새삼 그런 불안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하루종일 밖에서 일하던 그녀를 용감하다고 봐야할지, 한 편 미련하다고 봐야할지 생각한다.
"그걸 막을 수 있는 데 까지 막아보자는 거야.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연락해 줘. 내가 안 돼도 누군가든 와 주겠지."
"누군가?"
"다른 태스크 포스 분들이 대타로 투입될지도 모르잖아."
"나같은 사람 구하자고 정말 그래줄까?"
"너같은 사람이라니?"
"아니,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이 되는지 잘…."
"잘 들어. 우린 어둠의 듀얼이라는 것 때문에 민간에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려고 모인 거야. 다들 사람 구하는 데에 목숨 버릴 각오는 되어 있는 분들이라고."
자신을 위해서 다른 누군가가 싸움에 뛰어들어 희생한다.
유노가 아닌 그 누구라 해도 그런 일에 휘말려든다는 것이 유진에게는 새삼 불편하게 다가온다. 이미 그런 일을 겪어봤으니까.
그 때 그냥 자신이 뛰어들었더라면 야마네 토우키라는 사람은 살 수 있었을까.
"솔직히 너한테 도움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포기는 하지 마. 네가 조금이라도 더 무사하길 원하면, 되도록 너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선택부터 자제하라는 거야."
"그건, 나도 그러고 싶은데… 자신이 없어."
왜 자신이 없냐, 라고 물으려 했던 유노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끊긴다. 그 공백을 숨을 삼키는 소리가 대신했다.
"저번에야 아린이가 무사해서 망정이지, 재버워키가 생각을 바꿔서 작정하고 주변 사람 건드리기라도 하면 난 어째야 돼?"
카이바 코퍼레이션 입장에서는 그런 것까지 책임져주지 못한다. 입증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한 피해에 명분도 없이 개입하는 것부터가 곤란한 일이니까. 관할에서 벗어난 마을 전체를 감시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차마 유노는 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일단, 네 걱정부터 해보자. 그걸 도와주겠다고 했잖아."
모른다. 그런 건 내 관할 밖이다.
유진은 그런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최소한 자신만큼은 어떻게든 도와주겠다는 그 호의에 의문을 더 제기하고 싶지도 않다.
"지금 네 과제는 주말부터 무사히 보내는 거야."
"과제는 시험 공부겠지."
"하는구나. 아무튼."
"넌 공부 안 해?"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시간만 잠깐 쪼개면 되는 거니까."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들리는 대답에 유진은 이내 괜한 질문이었음을 깨닫는다.
보아하니 그녀의 성적 역시 아린 만큼이나 우수하다는 모양이다. 실제로 유진 역시 게시판에 걸린 학업성적표에서 그녀의 이름이 윗부분에 자리잡은 것을 얼핏 확인한 적이 있으니까.
이쯤 되면 못 하는 게 뭔지를 따지고 싶은 수준이다. 어쩌면 이것도 디젠의 에너지인지 뭔지의 영향은 아닐지 의심하려다 유진 자신의 경우를 생각하고는 접어버린다.
"진짜 열심히 사는구나."
"그 말 전에도 들은 것 같은데."
"그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잖아. 어떻게 보면 부럽다."
"고마워. 그럼 답은 정해졌네. 너 나름대로 열심히 거드는 방법."
"그게 뭔데?"
"열심히 공부하는 거지."
"앗."
그러다 유진은 본인의 말실수를 뒤늦게 깨달았다.
"부럽다며? 테스트도 해줘?"
"아뇨, 됐습니다."
"그래. 다음에 보자."
"…네."
유진은 통화를 끊고는 한숨을 쉬었다.
요컨대, 유노는 등교하는 날까지 얌전히 집에 있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반대할 이유는 없다. 마침 돈도 쓸 만큼 썼겠다, 애초부터 남은 주말 시간 동안에는 그냥 집에 틀어박혀 있을 예정이었으니까.
유진은 잠시 침대에 누웠다. 이대로 잠에 든다면 하루는 꼬박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하루 종일 밖을 나돌아다녔음에도 몸에 남아도는 에너지 탓인지 아직 잠기운은 찾아오지 않는다. 말짱한 머리로 침대에 누워만 있는 것도 평온을 만끽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겠지만, 시간 낭비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결국 잠시 생각해본 끝에 유진이 내린 선택은, 다시 일어나 책상에 앉는 것이었다.
…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쭉 기지개를 킨다.
아직 풀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었기에 유진은 다시 책상 위에 있는 문제집으로 시선을 옮겼다.
시험 공부가 과제라고 본인 입으로 꺼낸 말을 책임지기라도 하겠다는 것인지, 아린과 유노 둘 다 시킨 일이니 어쩔 수 없이 하겠다는 것인지.
방금까지 머리를 싸매던 문제에 또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는 사실에 눈앞이 잠시 아찔해진다.
이러다 또 틀리면 이 공부도 소용없다는 사실에 직면해버리니까. 차라리 침대에 누워있는 것만 못한 꼴이다.
답지를 봐두어야 할지 고민하던 유진은 문득 다른 것을 떠올린다.
"어디 보자, 시간은…."
반올림하면 2시간. 애매해도 유진이 요새 투자한 하루 공부 시간치고는 많은 편이다.
기지개를 키고도 남은 잠기운을 확인하듯 목을 잠시 까딱여 본다. 그러나 멀쩡하기만 한 정신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잠기운 때문에 집중에 한계가 온 것이 아니라면 딱히 여기서 더 한다고 내용이 눈에 들어올 것 같지는 않다. 피로 문제가 아니라 정신 차원의 문제가 아닐까.
메신저 알림음이 들린다.
확인하려고 아린과 함께 들어가 있던 채널로 들어가니, 문득 눈에 들어온 것은 사진 하나. 아린이 가게에서 나오기 전에 유진과 함께 찍어서 메신저에 올려놓은 투샷이었다.
사진 속의 유진이 어색하게 웃는 것과는 달리 그녀의 미소는 정말로 밝아보였기에, 새삼 이렇게 발랄한 애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어버린다.
전부터 귀엽고 예쁘장한 것에 관심을 갖던 애가 그러한 사람들의 친절로 그러한 옷까지 입었으니 어느 정도 소원을 성취했으리라.
-Arin: 덱 다 짰어
메시지 내용은 간결했다. 보아하니 아까 새로 뽑았다던 그 카드를 말하는 것이겠지.
-EugeneS: 축하해
-EugeneS: 내 덱 이길 자신 있어?
-Arin: 가능하지 않을까?
순간 발끈할 뻔한 유진은 객관적으로 생각을 바꿔본다. 놀리는 차원에서 나온 대답이겠지만 유진조차 그럴지도 모른다고 납득하게 되는 것이었다.
본인이 새롭게 뽑은 강력한 카드로 기꺼이 짜낸 덱은 데뷔전부터가 패배였으니까. 이러니 자신감이 뚝 떨어져버린다.
그러나 덱을 다시 살펴 봐도 무엇을 고쳐야할지는 자신이 서지 않았다.
좀 더 전개에 최적화된 구축으로 바꾸는 편이 좋을까? 상대의 반격 행위를 견제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될까?
-EugeneS: 그럴까봐 무섭다
-Arin: 기운 내
-Arin: 듀얼리스트잖아
-EugeneS: 병주고 약주냐
대답으로 출력되는 것은 킥킥 비웃는 이모티콘.
거 봐, 역시 놀리는 거 맞잖아. 유진은 속으로 투덜거린다.
-EugeneS: 공부는 잘 되가?
-Arin: 해야지
-Arin: 근데
-Arin: 보통은 내가 묻지 않나?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이제는 유진도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EugeneS: 걱정 마
-EugeneS: 방금 전까지 잘 됐으니까
-Arin: 그래
-Arin: 지금은 안 하겠다고?
뜨끔.
역시 하루 공부 시간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는 뜻일까.
-Arin: 호오
-Arin: 공부를 다 했다
-Arin: 그럼
-Arin: 테스트
-Arin: 해봐야겠지?
-EugeneS: 괜찮습니다
-EugeneS: 용서해 주십시오
우등생이 친히 수능평가를 거들어준다는 것은 학업이 의무인 학생 입장에서 특혜가 아닌가도 싶지만, 왠지 모를 압박감에 유진은 금방 주저해버리는 것이었다.
역시 즐기지 못할 일은 오래 붙잡고 있을 것이 아니다. 유진은 그런 깨달음을 상기한다.
메신저를 짧게나마 주고받고 유진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나른한 분위기에 잠시 젖어있었다.
이젠 또 뭘 해야 좋을까.
결론을 내린 유진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
처음으로 켠 TV 채널에는 이번에도 카이바 코퍼레이션을 물어뜯는 뉴스 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카이바 랜드의 보안 강화로 인해 한층 더 엄격해진 운영이 지속되자 이용객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는 모양이다. 심지어 본격적인 테러라 하기엔 애매한 사건을 가지고 과잉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유진은 새삼 저런 사태가 터지기 직전에 무사히 스타디움에서 대회를 치르고 나온 것을 다행이라 느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본다. 그게 과연 다행인 것이 맞을까. 만약 저런 일이 더 빨리 터져서 대회 일정이 뒤틀리기라도 했다면, 분명 그 때 패배에 상심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패배라는 것 역시 의미는 있다는 깨달음을 유진은 다시 곱씹어 보았다. 어차피 그런 덱이었다면 언제 열린 대회라 해도 끝까지 이기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자신의 불완전함을 더 빨리 깨달았다는 것에 의의를 둬야하는 것이다.
그런 일 없이 재버워키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자신은 어떻게 되었을지 유진은 생각했다. 별다른 준비도 해놓지 못한 자신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치뤄진 어둠의 듀얼에서 과연 이기고 살아남을 수는 있었을까.
분명 그 당시 사용했던 덱도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보다 못한 덱을 들고 나갔더라면, 지금 이렇게 느긋한 일상을 누릴 수나 있었을 것인가.
하지만 자신이 이기지 못했더라면, 최소한 성아린 같은 주변 사람이 어둠의 게임에 말려들 일도 없지 않았을까.
문득 유노가 그러지 말라고 호소했던 것을 떠올린다. 적어도 그녀와의 인연이 시작되는 일 역시 없었으리라.
복잡한 마음 속에서 다시 리모콘을 집어들려던 유진은, 무의식 중에 쿠션을 안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뭔가 허전하다는 듯이 그의 팔은 안을 것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
최근들어 이성과 접촉하는 일이 제법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악수는 물론 포옹까지. 후자는 사춘기 입장으로서 적지 않은 자극이다.
그러나 하나같이 디젠이라는 요물과 관련된 일이었음을 고려하면, 좋은 추억이라고만 생각하기도 곤란했다. 특히 자신에게 안겼던 한 명은 스스로의 손으로 떠나보냈으니까.
공허한 거리에서 고통과 공포로 찢어질 듯 울려퍼지던 비명은 조만간 잊혀질 수가 없으리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울해지는 기억을 달래보고자, 그 다음 안겼던 기억을 살펴본다. 최근이라기엔 벌써 저번 주의 일.
가녀려서 조금이라도 팔에 힘을 줬다가는 부러질 것만 같은 몸집이, 발을 뻗으며 자신을 갑자기 안았다.
현실에서는 짧기만 한 시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용케도 눈치챈 그녀는 그대로 자신을 토닥토닥거렸다. 그건 분명 위로 이상의 다른 의미는 없었으리라.
그러나 그 때 유진이 느낀 것은, 설레임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제서야 자각해버린 것이다. 자신과 그녀는 서로 이성이라는 것을.
어언 10년을 어울려 지내면서 인식이 흐려진 감은 있지만 그 사실을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동안 서로의 모습도 관계도 딱히 바뀌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자기 자신이 바뀌었다는 자각조차도 늦었으니까.
그래도 변성기가 오고 키도 자란 자신과는 달리, 어린 시절에 봤을 때에 비하면 그녀는 그렇게까지 바뀌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또래 애들에 비해도 더 어려보이는 감이 있을 정도다.
그 때는 분명 자신보다 키가 더 컸던 것도 같은데, 지금 와서도 별다를 것 없는 그녀를 보자면 불편한 것이 많지는 않을지 내심 걱정이 들기도 했다.
유진이 기억을 되짚어 보자면, 성아린은 자신 앞에서는 다소 짖궂어지는 구석은 있어도, 아니, 사실은 꽤 짖궂더라도 대체로 얌전하고 의젓한 애였다.
한 편으로 작가 지망생이 되기 전부터 그녀는 자신의 몽상을 곧잘 떠벌리고는 하던 꿈 많은 아이였다. 저러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버리는 건 아닐까 싶어서 밖으로 데리고 놀러나간 적도 꽤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밖에서 보고 접한 것마저 이야기 소재로 삼으려드는 것이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시비를 걸어 오던 애들을 나서서 쫓아낸 적까지 있었다. 이래뵈도 당시의 유진은 나름 밖에서 큰소리치던 아이였으니까.
그 때나 지금이나 노는 것 생각 뿐이지만, 한 편으로 자신과는 다른 구석이 많은 소꿉친구가 어디서 큰일이 나지는 않았을지 눈치를 봐온 그였다.
그녀에겐 더이상 친부모가 없다. 그러니, 자신보다 더 오랫동안 혼자라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그녀는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친구가 있는지 제대로 확인할 일은 없었으나, 유진의 시선으로 봤을 때 그렇게까지 겉돌던 아이는 아니다.
중학생 시절 그녀는 문예부에 들면서 지금보다 더 열심히 창작 활동을 불태우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고등학교 들어서면서 문예부가 이미 폐쇄되었다는 소식에 아쉬워했던 그녀였지만, 그래도 반에서 아이디어를 주고받을 애들이 자신 말고도 따로 있는 듯하다.
자신 말고 다른 아이들과 교류가 있다. 그것은 어쩐지 낯설면서도, 한 편으로는 마음이 놓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지내주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장하다 싶기까지 한 심정이 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부모는 커녕 한 식구 조차도 아닌데.
어쩌면, 그 때 제 자식마냥 토닥이던 그녀도 같은 생각을 품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혹도 든다. 서로가 서로를 애 취급하고 있다니, 역시 둘 다 딱히 변한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아직 청춘 한 가운데에 있는 서문유진의 인생에서 성아린이라는 아이는 빼놓기 힘든 존재가 되었다고 해도 좋다.
그렇다면 그 때 그 사건은 필연이었을지 모른다.
그녀를 위해 어둠의 듀얼을 제발로 치렀다. 타인의 최후를 지켜봐야만 했다. 비록 의미없는 일이 되기는 했지만 무사한 그녀를 보고 마음이 놓이는 자신이 있었다.
소꿉친구로서, 이웃으로서, 다시 보게 될 수 없을지 모른다는 것이 꺼려졌다. 깊게 고민하기도 전에 자신은 싸운다는 선택을 제 스스로 해버렸다.
친구 관계라서 그렇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이 느낌을 친구 관계로만 몽뚱그리기에는 역시 이상하다.
그렇다면 자신이 깨닫기 시작한 그런 관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진전시켜도 좋은 것일까. 어둠의 게임을 계속 해나가야 할지도 모르는 자신이.
쿠션을 급하게 소파에 놓는다. 딱히 볼 것이 떠오르지도 않은데 무작정 케이블 채널을 돌렸다.
돌려도 돌려도 마땅한 채널이 나오지를 않으니 차라리 VOD로 재방송을 보는 게 낫지 않나 싶을 정도다.
생각이 난 김에 VOD 항목을 돌려보던 유진은, 보기만 해도 건전치 못한 제목이 눈에 들어오자 급하게 다시 꺼버린다. 평상시에는 그냥 무심히 지나쳤을 텐데.
아무도 없는데도 유진은 낯이 괜히 부끄러워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마음을 들여다보고만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마치 이성간의 교류에 솔직하지 못한 어린애들의 심정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아니, 돌아왔다기 보다 애초에 바뀐 게 없는 것은 아닐까.
문득 아린의 메이드복 차림을 떠올린다.
다시 봐도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억눌러온 부끄러운 감정이 다시 용솟음칠 것만 같을 정도로.
'아, 잠깐. 그냥…'
그런 감정을 다시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유진이 뭔가를 결심한 순간이었다.
똑똑.
현관문 여는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뭐지, 하고 유진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다음은 초인종 소리.
"택배입니다."
인터폰을 확인해보니 그 말대로 택배원 모자를 눌러쓴 사람이 보인다.
늦은 밤에 택배 올 일이 있나 의문을 품으면서도 일단 현관으로 향하던 유진은, 갑자기 느낀 소름에 멈춰선다.
피부에 와닿는 낯설면서도, 어째서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감각.
분명 '냄새'라고 누군가는 표현했던 그 느낌을.
'서, 설마…?'
그로 인해 유진은 금방 떠올리고 말았다. 자신이 처음으로 비일상에 휘말린 순간을.
그리고 겨우내 빠져올 수 있었던 그 악몽의 순간을. 그 방아쇠가 또다시 당겨지기 직전이란 말인가.
아직 대답은 하지 않았다. 발소리가 저쪽 귀에 들렸을지는 알 수 없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지나갈 수 있을까.
그런 일말의 기대를 품으며 유진이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을 무렵이었다.
"아이씨, 역시 안 먹히네."
그렇다. 역시 이런 시간에 올리가 없다. 십중팔구 수상한 사람, 그것도 어둠의 듀얼과 관련된 작자가 틀림없다.
새삼 하룻동안 결코 나쁘지 않았던 시간을 단번에 후회하게 만들 정도로, 그 불안감은 무겁게 유진의 가슴을 짓누른다.
유노의 말은 적중하기도, 틀리기도 했다.
가장 먼저 조심해야 되는 것은 자신. 하지만 집 안에 있다고 해서 결코 안전하다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조차도 안일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서문유진 본인마저 깨닫지 못했다.
그 때 맡은 기척을 쫓아 여기까지 온 것일까.
자신이 가진 디젠이 그렇게나 기척(냄새)가 강한 것이라면 이미 여기 있는 시점에서 맡았을지도 모르겠지만, 하다못해 나와줄리 없다 생각하고 생각해줄 수는 없을까.
다음에 시도한다면서 물러나준다면, 적어도 대책은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무리 가만히 지낼 뿐이던 자신이라 해도.
그런 일말의 기대를 문 너머의 목소리가 박살낸다.
"늦었어, 임마."
대답해서는 안 된다. 아직 조용히 해야 된다는 감에 따라 유진은 여전히 숨을 삼켰다.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개수작 부리지 말고 나와."
어쩐지 기억에 있는 목소리다. 다만 적어도 칸노라는 남자의 목소리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익숙할 수록 불안은 부추겨지기만 할 뿐이다.
그럼에도 잠시 더 침묵.
"내가 이렇게 대놓고 말을 꺼내잖아. 보면 모르겠냐? 너 빼고 듣는 사람 없어. 내가 있는지도 모를걸? 왜 그런지 알지?"
유진은 창밖을 살핀다. 단순한 밤하늘이라기엔 지나치게 깜깜한 암흑만이 보이고 있었다. 뿐만 아니다. 분명 불을 켜놨을 실내가 눈에 띄게 어두워져 있다.
이미 이곳은 그가 깔아놓은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몰라? 지금까지 숨 붙어 있으면 알 때도 됐잖아. 그러니까 좋은 말 할 때 열어."
쾅 하고 부딪히는 소리. 아무래도 현관문을 힘껏 걷어찬 모양이다.
이렇게까지 난폭한 태도도 유진에게는 어딘가 익숙했다.
"빨리 열라고!"
발소리만큼이나 언성이 한 층 더 높아진다.
그는 어떻게 해야 사람을 위축시킬지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 모습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도 이미 양아치라는 사실은 충분히 알 수가 있다.
어둠의 듀얼에 익숙해진 지금이라면 맞서 싸우지 못할 것은 없지 않을까.
그런 의혹에도 선뜻 발이 나가지 않는다. 자신은 그 때와 딱히 달라진 것이 없는 겁쟁이로 남은 것이 아닐지 유진은 고민한다.
이래서야 침 넘어가는 소리조차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어야 할까. 유진은 차마 기대하기도 애매한 희망을 생각해본다.
정말로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이 영역도 과연 사라질 수 있을까.
놀랍게도 그 바람은 이루어지는 듯 보였다.
"아이씨, 분명 냄새가 나는데. 뭐지? 진짜 없나?"
그 말 직후 다시 원래의 풍경으로 돌아온 것이다.
진짜로 포기하려는 건가, 하고 반신반의하던 유진에게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 지나간다.
"할 수 없다. 딴 데부터 들르자. 아린이라는 애 집이…."
어디서 그 이름을 들었을지는 둘째치고, 그 말을 내뱉었다는 사실 자체가 유진에게 중요했다.
"이 새끼가…!"
유진은 바로 D-패드를 챙긴다. 그리고는 제 스스로 현관문으로 뛰어들어가 확 열어버리는 것이었다.
문밖의 남자는 그제서야 모자를 벗고는 미소를 드러냈다.
"안녕, 서문유진?"
얼굴을 보고서 유진은 순간 흠칫하며 뒷걸음질친다.
누군지 도저히 알아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얼굴이 지져지다 흘러내린 것마냥 피부가 벌겋게 익은 채 흉측하게 얽힌 상태였으니까. 머리털 역시 홀랑 타버린 영향인지 거칠거칠한 두피만이 남아있었다. 코까지 뭉개져 있으니, 말 그대로 해골 위에다 너덜너덜해진 거죽을 덮어놓은 것만 같은 꼴이다.
그런 가운데 또렷한 눈동자만이 살기넘치는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누, 누구야?"
"아, 역시 못알아보네. 그 있잖아? 네가 불 지른 놈."
그제서야 누군지 떠올리기에 이른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어둠의 듀얼이라는 것을 알려준 인물. 동시에, 그 듀얼에서 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똑똑히 보여준 인물이 아닌가.
"엔도 모리스……."
"이름 안 까먹었네? 고맙기도 하지."
"어떻게 살아있어? 그 때 분명…."
"나도 신기하긴 해. 근데 기회를 또 주더라고. 그걸 아깝게 날릴 수는 없지? 안 그래?"
그 기회를 누가 줬을지 추론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재버워키의 농간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으니까.
아무리 장본인을 쓰러뜨렸다고 한들, 어둠의 듀얼리스트라는 존재는 그 대회에 참여했던 인물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쯤이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 어둠의 듀얼리스트 중에서도 그의 손길에 닿은 자가 또 있으리라는 생각을 놓지 말아야 했다.
놓지 않았기에 자신은 여전히 경계를 완전히 풀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보내오던 일상 속에서 결국 경계해야 마땅한 사태는 다시 터지고야 말았다.
단지 미처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찾아왔을 뿐.
어둠의 게임으로 사라져버린 존재가 다시 살아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재버워키가 보여온 능력만으로도 불가능은 아닐 것이라 납득해버리는 자신이 있다.
그렇다면 죽는다고 끝이 아니지 않냐는 의문이 생기지만, 이내 저 남자의 꼬라지를 보고는 쓸데없는 희망을 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정리되는 결론은 다른 불안을 불러들인다.
'역시 재버워키도…'
끝나지 않았다. 재버워키도, 어둠의 게임도, 일상에 스며들어오는 위협도, 아무것도.
도시의 모습을 한 감옥을 빠져나와봤자 그의 게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시련이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다.
게임에서 이긴 보상으로 유진은 '더이상 얼씬대지 말라'고 답했다. 그러니 재버워키 자신이 아닌 다른 자객을 내보낸 것이라면, 또다시 말장난으로 뒷통수를 맞은 셈이 된다.
전지전능해보이는 능력을 제 유희를 위해 얼마든지 다뤄보일 수 있는 녀석이라는 것을 더욱 주의했어야 했다.
기가 질린 유진은 그저 이를 꽉 깨물 수밖에 없었다.
도망쳐야 된다는 생각은 차마 들지 않는다. 이미 집 안이라 달리 도망칠 곳도 없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도망이라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질리도록 깨달은 참이다.
이미 캄캄해지긴 했지만, 그런 어둠에 적응이라도 된 건지 모리스는 복도와 현관문 너머를 슥 번갈아보면서 감탄하는 시늉을 내뱉는다.
"야~, 좋은 데에서 사네. 편했겠다? 남의 몸뚱아리에 불질러놓고 발뻗고 잘 만한 데가 있어서."
"그쪽이 먼저 덤빈 거잖아."
그러니 한 발짝 이후로 더이상 뒷걸음 치는 일은 없다. 오히려 그는 똑바로 시선을 마주하며 대꾸하기로 했다.
"뭐?"
"덤벼놓고 졌으니까 그 꼴이 된 거 아냐. 어디서 남 탓이야?"
대답 대신 모리스는 피식 웃는다.
말대답을 하는 유진 본인마저 발길질이 날아오는 건 아닌가 움츠러들 뻔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다.
"남 탓?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나 그런 찌질한 짓 안 해."
"그럼 뭔데?"
"나도 알지. 내가 져서 이렇게 된 거. 그러니까 이번엔 이기러 온 것 뿐이야."
자신이 이긴다. 그것은 자신이 당한 '벌칙'을 똑같이, 어쩌면 그 이상으로 되돌려주러 왔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알기 쉽지만 가볍게 받아넘길 수는 없는 이유, 요컨대 복수다.
"너도 걔한테 관심 좀 받는 것 같던데. 혹시 알아? 여기서 져도 나처럼 도로 살려줄지. 아니, 나보다도 더 아끼는 모양이니까 분명 그럴걸. 어떤 꼬라지로 돌려놓을지는 나도 모르겠고."
패배해서 사라졌다고 해도 살아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은 유진으로서도 듣도보도 못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저 지경이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지지 않는 선이 나을 것이다.
자신이 패배를 경계하지 않을 이유는, 여전히 처음부터 없는 것이 된다.
"뭐, 꼬우면 그 때 다시 덤비러 오면 되겠네?
"그럴 일 없어."
"뭐?"
"이번에도 안 지니까."
절대로 살려둬서는 안된다. 그렇게 판단하는 자신이 있다.
자신이 있는 곳을 알고 있다. 아린이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런 존재를 가만히 둬서 좋을리가 없으니 이 자리에서 끝을 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에 적응해버린 자신에게 한 순간 경악하면서도, 이 판단을 머뭇거릴 수는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또 한 번 이긴다 한들 또다시 저렇게 살아서 돌아왔다면, 그 다음에도 돌아올 가능성이야 충분하지 않을까? 생긴 것 처럼 저건 그야말로 좀비가 아닌가.
그런 불안한 의문이 뒤늦게 스며들어와도 결국 결론을 번복하는 일은 없다.
"덤비려면 덤벼."
유진은 바로 D-패드의 시동을 켠다. 덱은 진즉에 세팅되어 있었다.
저번처럼 급조된 덱으로 억지로 붙어야 하는 사태는 없으니 더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자고 왔다니까."
남자는 현관문을 고정시킨 채 뒤로 물러나고는, 마찬가지로 D-패드를 가동시킨다.
그렇게 좁은 문을 사이에 두고서 이번에도 아무도 알지 못할 결투가 펼쳐지는 것이다.
""듀얼!""
[서문유진: LP 8000, 패 5장]
[엔도 모리스: LP 8000, 패 5장]
그 때처럼 선공.
분명 먼저 하는 쪽이 더 유리한 경향이 있는 게임인데다가, 그 때보다 더 강한 덱일 텐데도 유진은 불안을 놓지 않는다.
패에는 예상한 카드들이 잡혀 있었다. 그야, 매장에서 새로 맞춘 덱과 구성은 거의 바뀌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모리스와의 첫 듀얼에서 사용한 것보다는 충분히 쓸만할 것이라는 믿음에 첫걸음을 선보이기로 했다.
"내 필드에 몬스터가 없으니까, '크샤트리라 유니콘'을 특수 소환."
[크샤트리라 유니콘: 사이킥족 / 바람 / 레벨 7 / ATK 2500 / DEF 2100]
"'유니콘'의 ②의 효과로 덱에 있는 '크샤트리라 버스'를 패에 추가. 체인은?"
"없으니까 하고 싶은 거 계속 하셔."
계속 가란다. 저 자신감은 무엇인가.
의혹을 품은 채 유진은 다음 카드를 꺼낸다.
"이어서 지속 마법 '크샤트리라 버스'를 발동. 이 효과로 레벨 7의 몬스터를 릴리스없이 소환할 수 있어. '안개 골짜기의 거신조'!"
붉은 몸체의 괴인에 이어서 거조 한 마리가 예고도 없이 나타난다. 거조는 돛처럼 커다란 날개를 접고는, 번개처럼 구불구불한 깃을 흩날리며 우뚝 내려섰다. 언젠가 다시 날아오를 때를 대비하듯이.
[안개 골짜기의 거신조: 비행야수족 / 바람 / 레벨 7 / ATK 2700 / DEF 2000]
[서문유진: 패 3장]
레벨 7이 2마리. 이걸로 랭크 7의 엑시즈 소환이 가능하다.
평소 같았으면 분명 망설임없이 그랬겠지만, 메이드 카페에서의 처참한 패배를 떠올리며 유진은 잠시 신중을 기하기로 한다.
"이어서 '긴급텔레포트'. 덱에서 레벨 3 이하의 사이킥족 하나를 불러낸다."
[유령토끼: 사이킥족 / 빛 / 레벨 3 / ATK 0 / DEF 1800]
[서문유진: 패 2장]
"레벨 7의 '유니콘'에 레벨 3의 '유령토끼'를 튜닝! 레벨 10 '플뢰르 드 바로네스'를 싱크로 소환!"
[플뢰르 드 바로네스: 전사족 / 바람 / 레벨 10 / ATK 3000 / DEF 2100]
이걸로 '니비루' 같은 대량 전개 견제책은 확보 완료. 그렇다면 더 전개에 들어갈 차례다.
"패에 있는 '스케어클로 크샤트리라'의 ①의 효과로, 이 카드를 특수 소환한 다음 묘지에 있는 '크샤트리라' 하나를 제외한다. 그리고 '크샤트리라 버스'의 ②의 효과로. 방금 제외한 '크샤트리라 유니콘'을 특수 소환."
[스케어클로 크샤트리라: 사이킥족 / 땅 / 레벨 7 / ATK 0 / DEF 2600]
[크샤트리라 유니콘: 사이킥족 / 바람 / 레벨 7 / ATK 2500 / DEF 2100]
[서문유진: 패 1장]
남은 패 중에 더 특수 소환할 거리는 없다. 이제 덱과 필드의 카드만으로 남은 전개를 해결해야 한다.
마침 엑시즈 소환의 기회가 돌아온 유진에게는 또다시 고민의 시간이었다.
'여기서 '드래고사크'를…, 아니 잠깐만.'
'드래고사크'로 토큰을 전개해서 'ET레인저'를 꺼낸다. 그 'ET레인저'로 또다시 토큰을 불러내고 다음 전개로 이어간다. 그 결과라면 분명 아까와 별 차이없는 빌드가 세워질 것이다.
나름 튼튼하다고 믿은 빌드였지만, 단번에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것을 떠올리니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레벨 7의 '스케어클로 크샤트리라'와 '유니콘'을 오버레이, 엑시즈 소환! 랭크 7 '크샤트리라 샹그릴라'!"
[크샤트리라 샹그릴라: 사이킥족 / 화염 / 랭크 7 / ATK 0 / DEF 3000 / ORU 2]
검은 허공으로부터 붉은 점 하나가 번뜩인다. 곧 점은 원으로 확장해나가더니 표면에서 육각형의 면들이 빠져나와 일제히 주위를 맴돈다.
그렇게 시커먼 어둠의 공간을 붉은 별빛이 물들여나갔다.
'샹그릴라'라는 이름의 별은 당장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은 없기에 그저 필드를 관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 쯤에서 턴을 넘길 수밖에.
"턴 엔드."
"이야~, 몰라보게 세졌네. 먹고 살만하니까 좋은 카드도 구할 수 있나 봐."
시비를 일일이 받아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유진은 그냥 침묵한다.
그 반응에 모리스는 코웃음을 한 번 쳐주고는 턴을 진행했다.
"내 턴."
[엔도 모리스: 패 6장]
[서문유진: 패 1장]
"스탠바이 페이즈에 '샹그릴라'의 ①의 효과. 덱에서 '크샤트리라' 몬스터 하나를 특수 소환한다. 체인?"
"…아이씨, 없어."
붉은 별을 둘러싼 육각의 궤도로부터 몇 줄기의 광선이 뻗어나온다. 이는 한 곳으로 집약되더니 지상으로 한 줄기의 붉은 광선이 되어 발사되었다.
광선을 타고 도착한 것은 '유니콘'처럼 붉은 몸체를 가진 괴인 한 마리.
[크샤트리라 펜리르: 사이킥족 / 땅 / 레벨 7 / ATK 2400 / DEF 2400]
"깜빡이도 안 켜고 말야. 뭐, 알아서 덱을 줄여주면 나야 고맙지. 먼저 마법 카드 '이웃집 잔디깎기'. 지금 내 덱은 54장. 네 남은 덱은 32장이니까, 내 덱에서 22장을 묘지로. 보내야겠지 체인 있냐?"
덱 갈기. 묘지 자원을 늘리는 행위를 허용해서 좋을리가 없다.
"'바로네스'의 ②의 효과를 체인. '잔디깎기'를 무효로."
"그렇게 나온단 말이지. 그럼 몬스터 효과 썼으니까 '삼전의 호'. 이러면…."
또 비슷한 상황이다. 마침 유진에게는 대응책이 더 있었다.
"'거신조'의 효과로 체인. '안개 골짜기' 몬스터 하나를 패로 되돌리고 마법의 효과를 무효로."
때가 찾아오자 '거신조'는 다시 넓다란 날개를 펼친다. 붉은 하늘을 가리는 그늘이 되기를 잠시, 전광을 머금은 날개는 오히려 주변을 밝히고는 몇 번 휘둘리는 것만으로 커다란 몸뚱이를 금세 하늘로 띄워올린다. 그렇게 비상하기 시작한 천둥새는 한 줄기 빛이 되어 역행하는 혜성처럼 필드를 떠나갔다.
한 편, 날갯짓이 남긴 바람은 직선으로 몰아치더니 모리스가 방금 발동한 마법을 휩쓸고 지나간다.
[서문유진: 패 2장]
[엔도 모리스: 패 4장]
"무서워라, 뭘 할 수가 없네. …라고 할 줄 알았냐? 아직 더 있거든."
이미 전개된 필드의 카드로 뭘 할지 파악하고 있었다는 듯, 모리스는 잠시 아껴둔 카드를 꺼내든다.
"'삼전의 재'. 2장 드로우."
[엔도 모리스: 패 5장]
그 다음 꺼내는 카드에 선택하는 효과까지. 지극히 익숙한 흐름이다. 마치 패배로 향하는 운명임을 암시하듯, 그것이 유진에게 불안을 안기고 있었다.
불안을 더욱 부추기는 것은, 뽑아든 패를 보고 나서 씰룩이는 그의 입가였다.
"너 피부가 타들어가는 느낌 알아?"
뭔 소리냐는 듯 유진이 대답 대신 눈을 부라린다.
"솔직히 난 그렇게 안 아팠거든. 환각인가 뭔가였을 테니까 진짜 불도 아니었을지도 모르고. 근데 새살이 돋고 적응이 되니까 겁나게 쓰라리더라."
모리스는 설명을 보충하겠다는 듯이 제 손으로 벌겋게 익은 피부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잘못 건드렸는지 욱신거림에 잠시 표정을 팍 찡그린다.
"새 삶은 그만큼 새 고통이 찾아온다, 뭐 이런 거겠지. 삶이 곧 고통이니까. 여태까지 꿀이나 빨면서 지낸 네가 얼마나 알지는 모르겠지만."
"너야말로,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지껄여?"
유진으로서는 그의 발언을 잠자코 들어주기가 힘들었다.
뜬금없이 철학적인 무드도 그에게 어울리지도 않거니와, 자신에 대해 철저한 몰이해만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이구, 화났어? 또 뭐가 있을지 불안해 죽겠는데 개소리까지 싸지르니까 꼽지?"
유진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어쩔래?"
"알았어, 알았어. 말보다는 피부에 와닿는 게 제일이지. 적어도 이 자리에서 그 느낌을 알아야겠구나 싶어. 확실하게."
"뭘 어쩌려는 거냐고?"
"좀 알아 쳐들어라. 그럴 카드가 있다는 거 아니냐."
불안 요소가 확정되었다는 사실에 유진의 표정이 굳는다.
그 반응에 모리스는 다시 한번 씨익, 하며 허연 이빨을 드러냈다.
"'샹그릴라'와 '펜리르'를 릴리스!"
검붉은 하늘에 지지 않겠다는 듯 바닥에 시뻘건 빛이 감돌기 시작한다.
그것은 열과 함께 용암의 형태로서 실체화되어 '펜리르'의 전신을 가라앉힌다. 이어서 먼 곳에 위치해있을 붉은 별까지 태양처럼 격하게 붉은 빛을 발하다 녹아내리듯 소멸했다.
"이런…!"
"그리고 상대 필드에 이 카드를 특수 소환한다. '용암 마신 라바 골렘'!"
[용암 마신 라바 골렘: 악마족 / 화염 / 레벨 8 / ATK 3000 / DEF 2500]
[엔도 모리스: 패 4장]
두 제물을 집어삼킨 용암은 비로소 유진의 뒷편에서 언덕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잔물결처럼 튀는 파편과 열기에 놀란 유진이 되돌아보니, 용암이 식으면서 갈라진 피부같은 표면을 가진 커다란 괴생물체가 자리잡고 있었다.
몸체 사이 사이로는 선혈보다도 벌건 용암이 새어나오고, 곳곳에는 아직 미처 녹아내리지 못한 채 매달린 유골더미에, 무언가를 고정하기 위해서인지 목 주변으로 박혀 있는 커다란 쇠말뚝 따위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 괴물에게서 도망치게 두지 않겠다는 듯 유진의 주위로 새장처럼 좁은 원통형 철창이 둘러진다. 철창은 '라바 골렘'의 한가운데 목에 박힌 말뚝에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유진은 열 덩어리의 몬스터 한 가운데에 사로잡힌 것이나 다름없음을 어렵지 않게 깨닫는다.
"어때? 뜨끈하지? 아직 데인 것도 아니니까 참아."
배틀 시티 준결승전에서도 상대에게 고통을 안긴 것으로 활약을 남긴 카드. 그것을 직접 체험하는 것은 전혀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지금같이 순식간에 남은 견제책까지 날려먹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럼 방해꾼은 어느 정도 치웠고. 다음은 '명추리'. 레벨을 선언하시지."
'이웃집 잔디깎기', '명추리' 등을 이용해 덱을 팍팍 깎아나가는 유형의 덱에서 주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의 레벨은 무엇이 있을까.
잠시 고민 중이던 유진은 그나마 떠올린 숫자를 읊는다.
"…4."
"4. 그럼 가보겠습니다아~"
선언한 양만큼 모리스의 덱을 구성하던 카드가 한 두 장씩 스르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줄줄이 빠져나가다 보니, 어쩌면 '잔디깎기'로 예정된 매수인 22장을 넘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벌써부터 흉측한 얼굴이 자아내는 여유로운 미소를 보고서 유진은 잘못된 선택을 했음을 깨닫는다.
[인페르노이드 데카트론: 악마족 / 화염 / 레벨 1 / ATK 500 / DEF 200]
묘지로 가는 행렬이 멈춘 직후, 이번에는 모리스의 필드로 새로운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리스마스 조명마냥 알록달록하게 반짝이는 진공관을 여기저기 달고 있는, 마귀의 얼굴을 연상시키는 구조물.
퍽 낡아빠진 것이 폐쇄된 유원지에 널부러진 놀이기구가 무슨 이변 마냥 갑자기 움직인 듯한 모습이었다.
[엔도 모리스: 패 3장]
"특수 소환된 '데카트론'의 효과. 덱에서 '인페르노이드' 몬스터 하나를 묘지로 보내고, 그 몬스터의 레벨만큼 자기 레벨을 올린다. 거기다 카드명하고 효과도 베껴갈 수가 있지. 레벨 4의 '인페르노이드 아스타로스'를 묘지로."
[인페르노이드 데카트론 → 인페르노이드 아스타로스: 레벨 1 → 5]
'인페르노이드'.
다행히도 서문유진이 알고 있는 범위 내에 드는 테마. 상대가 60장 덱 구축을 들고 나오면 예상할 수 있는 덱이기도 했다.
하필이면 이들을 저지할 '펜리르'가 방금 제물로 사라졌으니 뒤이을 행렬을 유진은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묘지도 충분히 찼겠다, 다음 애들도 꺼내줘야겠지. 지속 마법 '연옥의 허몽'. 이걸로 내 필드에 원래 레벨 2 이상의 '인페르노이드'들의 몬스터는 레벨 1이 된다. 그럼 묘지의 '인페르노이드' 1장을 제외하고, 패에서 '인페르노이드 벨제불'을 특수 소환."
[인페르노이드 벨제불: 악마족 / 화염 / 레벨 2 → 1 / ATK 0 / DEF 2000]
"'벨제불'의 효과로 상대 필드의 앞면 표시 카드 하나를 패로 되돌린다. '라바 골렘'을 회수하지. 그 다음 '인페르노이드' 둘을 또 제외하고, 묘지에서 '인페르노이드 벨페고르'를 특수 소환."
[인페르노이드 벨페고르: 악마족 / 화염 / 레벨 6 → 1 / ATK 2400 / DEF 0]
[엔도 모리스: 패 1장]
새로운 '인페르노이드'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가운데, 드디어 용암 사이에 쳐박힌 뜨거운 철창이 치워진다. 물론 지식이 있는 유진에게 이는 절대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만약 다음 턴이 찾아와서 자신이 다시 몬스터를 전개하고도 끝장을 내지 못한다면, 몬스터를 다시 집어삼키고 나타나는 저 철창에 갇혀야 한다는 의미니까.
"'연옥의 허몽'을 묘지로 보내고 ②의 효과 발동. 엑스트라 덱에 특수 소환된 몬스터가 상대 필드에만 존재하니까, 덱에서 융합 소재를 묘지로 보내고 '인페르노이드' 융합 몬스터 하나를 융합 소환한다. 2장을 묘지로 보내고, '인페르노이드 이뷜'을 융합 소환."
[인페르노이드 이뷜: 악마족 / 화염 / 레벨 1 / ATK 1100 / DEF 1100]
[인페르노이드 벨제불: 레벨 1 → 2]
[인페르노이드 벨페고르: 레벨 1 → 6]
"'이뷜'의 ①의 효과. 묘지에서 '인페르노이드' 몬스터 하나를 제외하면, 그 레벨 수만큼 '인페르노이드' 몬스터를 종류별로 묘지에 묻을 수가 있어. 레벨 4의 '아스타로스'를 제외하고, 4종류를 묘지로. 이어서 '데카트론', '이뷜', '벨제불'을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3 '하염의 구희'를 링크 소환!"
[하염의 구희: 악마족 / 화염 / LINK-3 / ATK 2700 / DEF ←→↓]
이전까지의 기계적이던 마귀들의 모습과는 달리, 마족으로 보이되 그나마 인간형으로도 보이는 몬스터의 모습이 전방에 나타난다.
늘어뜨린 붉은 머리에 환한 붉은 눈을 가진 미모의 여성이었으나, 머리에 달린 뿔과 이글거리며 벌겋게 타오르는 양손은 그녀 역시 불의 마인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깨 양옆에 커다란 뿔처럼 달린 장식물은 구불거리면서도 주둥이를 벌리는 모습이 마치 지옥에서 온 뱀의 머리를 보는 것만 같다.
"묘지로 간 '이뷜'의 ②의 효과로, 덱에서 '연옥' 마법이나 함정 하나를 패로 가져온다. 가져온 지속 마법 '연옥의 결계'을 발동. 제외된 '인페르노이드' 하나당 내 필드의 '인페르노이드' 몬스터의 공격력을 100씩 상승."
[인페르노이드 벨페고르: ATK 2400 → 2700]
[엔도 모리스: 패 1장]
결계가 펼쳐지면서 붉게 물들어 있던 필드가 서서히 푸른 불꽃으로 덧씌워져나간다. 싸늘한 분위기와는 달리 한 층 더 몸을 데워오는 열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인페르노이드'들은 그 열기에 동조하듯 퍼런 빛깔에 동화되어 간다.
"다음은 '구희'의 ①의 효과로 묘지에 있는 화염 속성 몬스터 하나를 특수 소환한다. 되살린 '데카트론'의 효과를 다시 발동. 레벨 9의 '릴리스'를 묘지로."
[인페르노이드 데카트론 → 인페르노이드 릴리스: 악마족 / 화염 / 레벨 1 → 10 / ATK 500 → 800 / DEF 200]
"계속 간다. 소환 조건은 '인페르노이드'를 포함하는 몬스터 2장 이상. '하염의 구희'와 '데카트론'을 링크 마커에 세트하고, 링크 소환! 링크 4 '인페르노이드 플러드'!"
[인페르노이드 플러드: 악마족 / 화염 / LINK-4 / ATK 3000 → 3300 / DEF ↑↙↓↘]
붉은 불꽃의 마인을 소재로 출현한 링크 마커로부터 이번에는 몬스터 존에 결계처럼 희푸른 불꽃이 소용돌이치며 나타난다.
그 사이에서 새롭게 솟아오르는 푸른 불덩어리는 '이뷜'의 상반신에 뱀의 하반신을 섞어놓은 듯한 실루엣을 띄고 있었다.
불꽃이 조금이나마 잦아들자 보이는 것은 다른 '인페르노이드'들과 차이 없어보이는 기계 마인의 모습.
톱니바퀴 모양의 프레임 사이에 박힌 수정체가 중심이 되는 투명한 날개, 그 사이에서 여전히 일렁이는 푸른 불꽃은 자신이 이 염옥의 주인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만 같았다.
"또 있어. 마침 내 필드의 몬스터 레벨 합계는 8 이하. 더 꺼낼 수 있다 이거거든."
"쳇…."
"묘지의 '인페르노이드'를 3장 제외하고, 묘지에 있는 '인페르노이드 릴리스'를 특수 소환!"
후방에서 다음으로 나타나는 거대한 악마는 날개 달린 뱀, 즉 용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데카트론'의 몸체가 그의 머리통에 해당하는 부분임을 알려주는 디자인이었다.
[인페르노이드 릴리스: 악마족 / 화염 / 레벨 9 / ATK 2900 → 3500 / DEF 2900]
[인페르노이드 플러드: ATK 3300 → 3600]
[인페르노이드 벨페고르: ATK 2700 → 3000]
"계속해서 특수 소환된 '릴리스'의 효과로 '연옥' 아닌 마법이나 함정을 전부 파괴한다. 여기에 내 묘지의 카드가 제외됐으니까 '플러드'의 ①의 효과도 발동. 마지막으로 남은 '바로네스'도 제외."
두 기의 거대한 '인페르노이드'들이 내뿜는 시퍼런 불꽃이 인정사정없이 필드를 달군다. 대항할 힘이 남아있지 않은 '바로네스'까지 완전 연소되어 사라짐으로서, 서문유진의 필드가 깔끔하게 비어버렸다.
"이런…!"
필드에 전개된 몬스터들의 총 공격력은 이미 한 점도 깎이지도 않은 유진의 LP를 넘겨버린 상태다.
마찬가지로 그걸 계산한 모리스의 얼굴 역시 희열을 참을 수 없는지 징그러운 미소를 띄고 있다.
"드디어, 드디어! 이거 킬각 아니냐? 빼도박도 못하잖아. 너무 빨리 찾아와서 허무하기까지 하네."
유진은 그저 눈앞의 상대를 노려볼 뿐이다. 그 시선 역시 모리스에게는 익숙한 것이었다.
싸움에서 밀리는 주제에 오기만 부리는 건 매를 벌 뿐인 행위이거늘. 속으로 그렇게 비웃으며 상대를 짓밟아온 그였다.
"뭘 째려봐? 너 끝났다니까?"
또 대답이 없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밟아버리고 나서 모든 것을 빼앗아주면 되는 것이다. 발이나 주먹이 통하지 않는다면 카드라는 무기를 써주면 된다.
한 번 겪은 실패 끝에 드디어 그 성과를 맛보기 직전이었으니 기쁘지 않을리가 없다. 자신은 그것을 위해 되살아난 셈이니까.
"됐다. 그럼 배…"
"아직이야."
그런 모리스의 기분에 유진의 대답이 찬물을 끼얹는다.
"뭐?"
"메인 페이즈에 상대가 몬스터 5장 이상을 소환하면, 패에 있는 '원시생명체 니비루'의 효과를 발동할 수 있어."
"그건…."
모리스가 잽싸게 D-패드의 화면을 두드려가며 카드 효과를 확인하자 표정이 팍 찡그려진다. 그리고는 잠시 쌍욕까지 내뱉었다.
이럴 거면 배틀 선언하기 직전까지 왜 입 다물고 꼬나보기나 했단 말인가.
"아씨, 그건 또 뭔데! '벨페고르'를 릴리스하고 '릴리스'의 ②의 효과를 체인! 몬스터 효과를 무효로 하고 제외!"
파란 불꽃이 거세지면서 '벨페고르'의 몸체가 갑자기 연소되어 흩어진다. 이를 연료 삼아, '릴리스'가 용수철과도 같은 목을 뻗어가면서까지 포효해왔다.
그 여파에 유진의 패에서 튀어나오려던 '니비루'의 카드가 실체화를 이루지 못하고 흩어져 사라진다.
이는 유진 본인도 예상한 결과였다. 어찌 됐든 이걸로 적 몬스터 하나를 줄이는 데에는 성공한 것이다.
배틀 페이즈 선언을 철회하고 다시 메인 페이즈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뭘 더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패나 묘지에 있는 '인페르노이드' 특수 소환 몬스터를 자체적으로 특수 소환하기 위해서는 필드의 몬스터 레벨 합계가 8 이하여야 한다. 즉, 레벨 9의 '릴리스'가 남아 있는 시점에서 새 '인페르노이드'를 내보낼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고 이들을 소재로 엑스트라 덱에 있는 몬스터를 꺼내자니, 기껏 꺼내놓은 이들의 타점을 과연 넘길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어, 잠깐. 안 돼….'
더 나아가 모리스는 방금 전에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닫는다. '릴리스'의 ②의 효과를 발동할 때는 자기 자신을 릴리스하고 발동해도 상관없었을 터.
'인페르노이드'는 제외할 묘지 소재만 있다면 다시 특수 소환이 가능하니, 필드에 남은 몬스터의 레벨 합계가 6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묘지에 있는 '릴리스'를 다시 꺼내면 그만인 문제였다.
단순히 조금 앞서는 공격력만 내다본 근시안적인 선택 때문에 어렵지 않게 거머쥘 수 있는 승리를 그르쳐버린 꼴이었다.
"저 개같은 새끼를 진짜…."
약이 바싹 오른 모리스가 살기 어린 시선을 던진다. 하지만 뭣도 없는 녀석이 욕부터 날리고 본다는 사실을 유진도 알고 있었기에 그 정도로 움츠러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유진은 그 반응을 통해 적의 승리를 수포로 되돌릴 수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저쪽이 조금이라도 더 영리했더라면 헛된 발버둥으로 끝났을 테니까.
아무리 덱을 강화하고 돌아와봤자, 이 정도 수준이라면 차라리 아까 상대했던 메이드 듀얼리스트가 훨씬 위협적이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아닌 필드 쪽으로 시선이 돌아가면서 유진은 긴장을 되찾아야 했다. 마을 하나 정도는 우습게 불바다로 만들고도 남을 만한 몬스터가 둘이나 남아 있었으니까.
아직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 순간이다.
"그래도 몬스터는 남았거든. 배틀! '릴리스', '플러드', 다이렉트 어택!"
두 몬스터가 주둥이를 벌리더니, 보랏빛과 푸른 빛의 불꽃이 차례대로 뿜어져나와 유진의 몸을 휩쓸었다.
[서문유진: LP 8000 → 900]
고통을 견디지 못한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온다. 차라리 재가 되어서 사라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남아있는 몸뚱아리가 원망스러워진다.
그 몸부림에 조금이나마 쾌감이 들었는지 어느새 모리스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가 있었다.
"빨랑 일어나. 더 맞아야지?"
유진은 그제서야 자신의 몸이 주저앉은 상태였음을 확인한다. 겨우내 일어서면서도 머릿속은 여전히 얼떨떨한 상태였다.
"진짜로 일어서네. 독하기도 해라. 어때, 충분히 느꼈냐?"
"……."
대답 대신 그저 멀뚱히 쳐다본다. 다시 돌아온 그 시선에는 분노라기 보다는 당황과 혼란의 기색이 서려 있었다.
당장 그의 말을 부정할 수는 없었으니까. 확실할 정도로 뜨거웠고, LP도 단번에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 위기감은 몇 번을 겪어도 적응할 날 따윈 오지 않으리라.
유진은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한끗 차이로 못 미쳤다고는 해도, 하마터면 자신을 골로 보낼 뻔했다는 사실을. 어쨌거나 이전 승부에서 엿보였던 그의 실력이 몰라볼 정도로 발전한 것이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지옥으로 보내려고 이를 갈았다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느라 대답할 타이밍을 놓친 유진에게 모리스는 또 대답을 씹혔다고 여겼는지 불쾌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네 턴이야. 하기 싫으면 도로 뻗어있던지."
"……."
이러니 저러니 해도 유진은 운이 따라줬기에 버텨낸 셈이다. 패배가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고 해도 좋다.
열기를 맛보았음에도 등골이 서려 오는 감각이 느껴진다. 숨이 거칠어지고 손이 떨린다. 고통에 시달린 나머지 판단력이 흐려질 것만 같다.
[서문유진: 패 2장]
[엔도 모리스: 패 1장]
그럼에도 이대로 불지옥 속에 떨궈지고 싶지는 않았기에, 유진은 발버둥치듯이 새 카드를 뽑았다.
확인하자마자 잠시 숨을 고른다. 이번에도 손에 잡힌 기회를 활용해 볼 차례다.
"상대 필드에만 몬스터가 있으면 마법 카드 '역경의 패'를 발동할 수 있어. 이걸로 2장 드로우."
[서문유진: 패 3장]
혀를 차는 소리 따윈 무시하고 새로 챙겨든 패를 확인한다.
지금 눈에 들어오는 상황 하나 하나가 그 때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그 때처럼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것이야말로 고문이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데도 매달려 있는 낡은 동앗줄을 붙잡고 있는 것만도 같다.
그동안 되찾은 것을 다시 놓지 않고 싶은 유진은 그것이라도 붙잡고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찾아와준 카드 한 장 한 장에 신뢰를 걸어야 하는 것이다.
또다시 스스로를 다독인다. 전에 했던 일을 하면 되는 것뿐이라고. 설령 언제까지 해야될지 알 수 없다고 해도.
"내 필드에 몬스터가 없으면, 패에서 '크샤트리라 오우거'를 특수 소환!"
[크샤트리라 오우거: 사이킥족 / 물 / 레벨 7 / ATK 2800 / DEF 1000]
효과를 따로 발동해서 특수 소환한 것이 아니기에 이번에는 '릴리스'의 효과로 막지 못한다. 그러나 모리스에게 다른 수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안 되지. '릴리스'를 릴리스하고 '플러드'의 ①의 효과! '오우거'의 특수 소환을 무효로 하고 제외한다."
저번 턴처럼 '릴리스'의 커다란 몸뚱이가 연소되며 사라지자, '플러드'가 땅이 울리는 듯한 포효를 내지른다.
그것은 단순한 위압감만이 아니라 주변에 뚜렷한 충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결계를 떠돌던 푸른 불꽃이 굉음에 이끌려 소용돌이치더니 방금 나타난 '오우거'를 뒤덮고는, 몸뚱이는 물론 들고 있던 육중한 도끼까지 남김없이 연소시켜 버린다.
이걸로 모처럼 꺼낸 몬스터는 재도 남기지 못했지만, 아직 손에 잡힌 동앗줄이 끊어진 것은 아니다.
"그럼 마법 카드 '아카식 레코드'를 발동. 2장 드로우하고, 그 중에 사용한 카드가 있으면 나온 카드를 전부 제외한다."
바짝 긴장한 상태로 덱에서 뽑은 카드를 확인한다. 이런 카드를 투입한 시점에서 중복 카드의 비율을 다소 낮춰놓았기에, 다행히도 아깝게 날리는 사태는 없이 그대로 패에 맞이할 수 있었다.
[서문유진: 패 3장]
들어온 것은 또 드로우 카드. 지금 상황에서는 마치 목마른 상태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 같다.
다양하게 넣어둔 드로우 카드는 패가 부족하던 상황을 벗어나보려고 안간힘을 쓰던 그 자신의 선택이긴 하지만, 필요한 순간에 딱 찾아와주는 것은 분명 행운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터.
"마법 카드 '칠성의 보도'. 패에 있는 레벨 7의 '거신조'를 제외하고 2장 드로우."
"적당히 해라, 몇 장을 뽑아먹으려고?"
딴지는 무시하고서, 마지막으로 남은 카드마저 날리고서 갈아치워진 패를 다시 확인한다. 몬스터가 없는 지금으로서는 마법만으로 승부를 보는 수밖에 없다.
더욱 신중해질 필요가 있었다. 여태까지 무슨 카드가 오고갔는지, 그 중에서 뭘 이용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 두어야 한다. 자신의 카드 뿐만 아니라, 상대의 카드 역시 마찬가지.
"'죽은 자의 소생'. 상대 묘지에서 '하염의 구희'를 되살린다."
[하염의 구희: 악마족 / 화염 / LINK-3 / ATK 2700 / DEF ←→↓]
빼앗아간 김에 철저하게 이용해준다. 유진은 그 선택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럼 나도 '구희'의 효과를 발동. 묘지에서 화염 속성 몬스터 1마리를 부활시킨다."
[크샤트리라 샹그릴라: 사이킥족 / 화염 / 랭크 7 / ATK 0 / DEF 3000 / ORU 0]
이어서 파란 결계에 지지 않겠다는 듯 붉은 별이 다시 떠올라 하늘에 붉은 기운을 흩뿌려왔다.
이것만으로도 4링크까지는 뽑아낼 수 있었지만, 뺏을 카드는 더 남아있었다.
"다음은 '정신조작'. 이걸로 '플러드'의 컨트롤도 뺏어올 거야."
"뭣!?"
[인페르노이드 플러드: ATK 3600 → 3000]
[서문유진: 패 1장]
'구희'를 뒤따르듯 적진으로 옮겨간 '플러드'의 몸체에서 결계의 축복이 빠져나간다.
이렇게 몬스터 셋을 갖춰놓기는 했지만 당장 전력으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다.
'샹그릴라'는 당장 쓸 효과가 없는 벽 몬스터. 더구나 '정신조작'으로 컨트롤을 뺏어온 몬스터는 공격을 할 수 없으니, 당연하게도 이들을 소재로 써먹는 것이 상책일 터.
'하염의 구희'를 데려온 이상 그 효과로 인해 화염 속성밖에 특수 소환할 수 없다는 제약이 걸려 있었지만, 마침 그 상황에서도 꺼낼 만한 몬스터가 유진에게는 있었다. 그것도 하나만이 아니다.
"화염 속성인 '플러드'와 '샹그릴라'를 링크 마커에 세트. 엑스트라 몬스터 존에 링크 2 '작열의 화령사 히타'를 링크 소환."
[작열의 화령사 히타: 마법사족 / 화염 / LINK-2 / ATK 1850 / DEF ↙↘]
익숙한 붉은 머리 소녀의 모습에 모리스는 한 순간 흠칫한다.
"'히타'의 ①의 효과. 상대 묘지에서 화염 속성 하나를 링크 앞에 특수 소환."
[인페르노이드 플러드: 악마족 / 화염 / LINK-4 / ATK 3000 / DEF ↑↙↓↘]
그 소녀의 뒷편으로 소재가 되어 사라졌을 몬스터를 다시금 필드로 끌어왔다.
이제 공격 제한 따위는 없으니, 이들을 그대로 원래 주인에게 부딪히기로 한다.
"배틀! 세 몬스터로 다이렉트 어택!"
[엔도 모리스: LP 8000 → 450]
이번에는 두 소녀의 붉은 불꽃과 '플러드'의 격류하듯 솟아나는 푸른 불꽃이 모두 모리스를 향해 몰아쳤다.
끓는 소리를 내면서까지 비명을 억누른다. 그리고 마침내 불꽃이 모두 가시고서야 참은 숨을 헐떡였다.
이미 그을린 피부가 더 그을리는 일은 없는 가운데, 숨을 고르고 나서 꺼내는 한 마디는 다름아닌 조롱이었다.
"헤헷, LP가 남았네? 어쩐다?"
이전 턴의 모리스가 그러했듯 안타깝게 LP를 다 깎지 못했지만, '하염의 구희'의 특수 소환 제한으로 인해 전개에 한계가 있는 유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나 해서 투입해 본 카드들이 시너지를 내서 이만큼 몰아붙일 수 있는 것이야말로 기적으로 봐야 할 터.
"메인 페이즈 2. 난 화염 속성인 '구희'와 '플러드'를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2 'ET레인저 파이로레드'를 링크 소환! '파이로레드'의 ①의 효과로, 덱에서 화염 속성이 아닌 레벨 4 이하의 몬스터도 특수 소환."
[ET레인저 파이로레드: 사이킥족 / 화염 / LINK-2 / ATK 1800 / DEF ↑↓]
[이피리아: 파충류족 / 땅 / 레벨 2 / ATK 500 / DEF 500]
든든하게 상대를 몰아붙였어야 했을 전력이 두 번씩이나 적에게 이용당하는 꼴은 모리스의 속을 끓게 만든다.
더 끓게 하는 것은 그렇게 나타난 몬스터의 정체. 다시 얼굴을 드러낸 빨간 슈트의 전사를 모리스는 알아보지 못할리가 없었다.
"'저 새끼는……."
"'이피리아'의 효과로 1장 드로우. 이어서 '파이로레드', '히타', '이피리아'를 소재로 링크 소환. 링크 4 '양륙군함 암브로엘'!"
[양륙군함 암브로엘: 기계족 / 화염 / LINK-4 / ATK 2600 / DEF ←→↓↘]
육중하고 견고해보이는 고래 모양 전함이 무한궤도를 끌고 행차한다. 그 몬스터 역시 모리스는 기억했다.
자신 나름의 인조이 라이프에 종지부를 찍어버린 그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열불이 터져 왔다.
"'암브로엘'은 양쪽 묘지의 링크 3 이하의 링크 몬스터 수만큼 공격력을 200 올릴 수 있어."
"나도 알거든."
[양륙군함 암브로엘: 2600 → 3200]
그는, 그들은, 단번에 자신에게 남은 모든 것을 앗아가버렸다. 패배의 굴욕을 안기고, 추하게 발버둥치며 사그라드는 자신을 앞두고 구경이나 하고 있었다.
인과관계 따위 엿이나 먹으라지. 그저 순수하게 배알이 꼴려올 뿐이다. 되살아난 김에 그 분을 풀어버리고 싶다. 그걸 위해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한 편 유진은 잊지 않았다. 상대 패에 아직 '라바 골렘' 카드가 들려있다는 것을.
'파이로레드'의 묘지 발동 효과를 써서 링크 몬스터를 하나 더 살렸다간 제물을 마련해주는 꼴이니 필시 다시금 뜨거운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되리라.
"카드 1장을 세트. 턴 엔드야."
"내 턴."
[엔도 모리스: 패 2장]
[서문유진: 패 1장]
"스탠바이 페이즈에 '증식의 G'를 버리고 효과 발동. 체인은?"
"저 씨…."
또 욕을 내뱉으려던 모리스는 뭔가를 떠올리고 잠시 참기로 한다.
"그래. 뽑으려면 실컷 뽑던가."
단념의 뜻일까. 그럴리는 없다고 유진은 판단한다.
적어도 '인페르노이드'를 계속해서 꺼낼 여건이 마련된 그가 지금 상황을 끝이라 여길리는 없으므로.
"그나저나, 아까 그거 내 카드 아니냐?"
뜬금없이 던지는 질문에 뭔 소리냐고 따지려던 유진은 그 말이 맞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열의 화령사 히타'는 분명 모리스가 썼던 카드. 이전 듀얼에서 '암브로엘'의 효과로 데려와서는, 듀얼이 끝나고도 돌려줄 기회라고는 없이 어물쩡 차지해버린 것이었다. 그가 다시 돌아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하던 동안, 그걸 무심코 이번 듀얼에 쓰게 된 덱에까지 넣어놓았다.
딱히 욕을 보일 의도는 없었더라도 결과적으로 뺏어서 썼다는 것은 사실.
"좋은 카드 많이 갖고 있으면서, 또 남의 걸 도둑질해서야 쓰나. 방금 전에도 내 카드 막 뺏어서 쓰더니."
"미안하게 됐어."
모리스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이딴 마음에도 없는 사과나 들으려고 던진 말이 아니다.
"장난하나. 자기 건 소중하고 남에 건 멋대로 가져가든 상관 없다 이거냐? 역시 안 되겠다, 너."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그것이 어둠의 듀얼리스트라는 것들의 행동 양식이라는 것을 유진은 귀담아들었다.
그런 그들의 카드를 빼앗고 빼앗아서 자신의 덱을 강화시켜 왔다. 지극히 그 양식대로 따르는 꼴이라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알아서 납득했다. 유노 역시 그걸 굳이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붙잡아 온 희망은 남의 목숨으로 이뤄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 희망으로 부지해 온 마당에 망설이고 있을 여유 따윈 없을 것이다.
"꼬우면 이겼어야지."
그렇다. 이런 작자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필요 따위도 없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다시 벌칙으로 사라져버린다면 더이상 죄를 묻지도 않겠지.
그런 식의 반응에 기가 막히다는 듯 모리스는 다시 한 번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러게, 이겼어야 됐는데."
여전히 속에서 타는 듯한 분노는 그 때 이기지 못했기에 남아 있는 것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꺼버리고만 싶어도, 아직은 참을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그 한계를 시험하려는 듯 분노를 부채질해 와도, 섣불리 몸을 맡겼다가는 그 때와 다를 바 없는 최후가 찾아오겠지.
그 정도의 생각은 모리스 역시 할 수는 있는 것이었다. 의도해서 엿을 먹이고 있는 것이라면 되갚아주는 수밖에.
"야, 그러고 보니까."
"뭐."
"아린이라는 애 얘기 꺼낼 때 그렇게 발작을 하고 뛰쳐나오지 않았나."
유진의 눈매가 더 험악해진다.
"뭔 소리를 하려고?"
"아니, 그냥. 그렇게 소중한 애인가 싶어서. 어때, 예쁘냐?"
화는 보기 좋게 부채질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것에 보람을 느낀 듯, 모리스는 흉하게 얽힌 뺨을 한 층 더 히죽이며 도발에 나선다.
"오오, 맞나 본데. 그럼 얼굴이나 보러 가야겠다. 네 눈깔에 콩깍지라도 씌인 거면 어쩌게? 내 취향대로 이쁜지 아닌지는 직접 봐야 알겠지."
시뻘개진 얼굴과 그 사이에서 돋보이는 땡그란 눈동자와 하얀 이빨. 호러 영화 분장을 하고 나온 코미디언 행세라도 하내고 있는 것 같다.
저런 몰골로 꺼내는 소리는 뭐가 됐든 웃기기는 커녕 화딱지를 자극할 뿐이다.
"아 그리고, 걔 좀 하냐?"
"뭐, 이 새끼야?"
"아니, 뭐? 듀얼 말야, 듀얼. 기왕이면 예쁜 애하고 해보는 게 더 좋은 거 아냐?"
듀얼이야 대체로 자신보다 잘 하는 편이라 생각하지만 뭐가 목적이든 저딴 녀석을 마주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약을 올리는 중이라는 것 정도야 머리가 부글부글 끓는 유진도 알 수는 있지만, 도저히 참고 들어주기가 힘들었다.
"확실히 이거보다야 낫겠네. 이야, 살 이유가 또 생긴다는 게 좋긴 좋아."
"누가 살려준대?"
"살려준댔다, 어쩔래?"
갑자기 농담할 생각이 사라졌다는 듯이, 확연히 바뀐 눈매로 대답한다.
살려준다는 것이 자신이 아닌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지, 유진은 이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확인하겠다는 듯이 물어본다.
"누구?"
"누구겠냐?"
"설마 내가 생각하는 놈 맞아? 걔 말을 따른다고?"
굉장히 거슬리는 표현으로 들렸는지 눈썹 대신 눈두덩이 부분이 확 내려앉는다. 아마도 찡그린 표정이리라.
"그래. 내 인생이 이 모양인데 어쩌냐. 왜 이러고 있을까? 그게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해?"
"남 탓 안 하겠다며."
"아니, 상식을 갖고 생각 해보시라고. 내가 이 따위로 되살아나서 장난감 취급 받는 게 누구한테 져서 그런 건지."
"너 살린 놈한테 따지면 되는 거잖아."
유진이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대꾸 한다. 더이상 그 흉측한 몰골에 꺼리는 기색조차도 없이.
"자기가 장난감 취급 받는 게 싫으면, 사람 목숨을 장난감 마냥 갖고 노는 놈한테 따지면 되는 거 아냐? 왜 곧이 곧대로 따라서 나한테 화풀이야?"
"이 새끼 말하는 거 봐."
어쩜 이리도 한 마디 지기를 싫어할까. 분노가 치밀어오르면 오히려 이렇게나 웃음이 나온단 말인가. 본인이 한 짓은 전혀 자각을 못 하는 모양이었다.
이제 와서 딱히 누구의 잘잘못을 가릴 생각은 없다. 그냥 건방진 주둥이와 눈깔을 태워버리고만 싶을 뿐.
"똑바로 알아 둬. 나 누가 시킨다고 따르는 사람 아냐.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주의라니까. 걔도 할 수 있는 걸 해보랬고."
"……."
"그 새끼가 시킨 게 아니라, 내 머리가 너 하나 조지고 싶어 하니까 여기까지 온 거라고, 알겠냐?"
그런 살기 어린 시선 너머로 유진은 어렴풋이 내다볼 수 있었다. 그 작자가 왜 이런 인물을 되살리기를 택했는지.
"네가 그럴줄 알고 있었겠지."
"그래. 이해 관계가 겹친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 걔는 걔대로 재미있는 거 구경하고. 나는 한 층 더 거지같아진 인생 부지할 겸 거지같은 놈도 태워버릴 수가 있잖아?"
유진은 더더욱 결심을 굳힌다. 일직선의 살의를 품고 돌아온 적을 이번에도 역시 재도 남기지 않기로.
진심이든 아니든, 둘 중 누가 됐든 어차피 이 듀얼에서 패배한다면 또다시 불타버릴 운명이다.
유진 자신에게만 적용된 디젠의 법칙이 아직도 건재하다면, 그 벌칙을 자신이 통제할 방법은 없으니까. 또다시 어쩔 수 없다고 자신을 설득하면 되는 일이다.
"할 수 있으면 해 보던가."
물론, 그것도 이기고 나서 고민할 문제겠지만.
"'연옥의 결계'의 효과로, 제외된 '인페르노이드' 몬스터 하나를 패에 추가한다. '인페르노이드 벨제불'을 회수. 계속해서 묘지의 '데카트론'을 제외하고 '벨제불'을 특수 소환."
[인페르노이드 벨제불: 악마족 / 화염 / 레벨 2 / ATK 0 → 700 / DEF 2000]
[엔도 모리스: 패 2장]
[서문유진: 패 1장]
저번 때처럼 특수 소환하는 몬스터를 보며 유진은 패를 챙겨든다. 그 당연한 동작마저도 모리스의 눈에는 얄밉게만 비쳐졌다.
"'벨제불'의 효과로 이번엔 '암브로엘'을 되돌린다."
'릴리스'에 비하면 크기가 작은 기계 마인의 외침에 견고하게만 보였던 전함이 순식간에 퇴장한다.
'라바 골렘'을 경계해서 하나만 꺼내놓은 몬스터가 허무하게 사라진 것이다. 이래서야 '암브로엘'의 효과 중 어느 것도 써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어쩌냐? 비장의 몬스터가 간단히 치워져서."
"그걸로 칠 거야?"
그럼에도 비아냥에 비아냥으로 받아치는 여유가 있다니. 그 때처럼 자신이 패를 벌어다줄 것이라 믿는 눈치다.
그런 그에게 어떻게든 한 대 때릴 기회가 필요했다.
"칠 거라. 다른 걸 칠 생각은 있는데."
"뭐?"
"아니 뭐, 네가 알 필요는 없고."
애매한 대답과 함께 히죽이는 미소에 유진은 다시 한 번 얼굴을 구겼다.
"저게 진짜…!"
"알았어, 알았어. 더 꺼내면 되잖아. 묘지의 다른 '인페르노이드' 둘을 제외하고, 묘지에서 '인페르노이드 벨페고르'를 특수 소환."
[인페르노이드 벨페고르: 악마족 / 화염 / 레벨 6 / ATK 2400 → 3300 / DEF 0]
[서문유진: 패 2장]
이대로도 얼마 남지 않은 LP를 바닥내기는 충분하다. 문제는 아직 깔려 있는 1장의 세트 카드.
자신마저 LP가 간당간당한 상황임을 고려하면 경계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판단한다.
"계속해서 묘지의 '인페르노이드' 둘을 제외하고 '릴리스'를 다시 특수 소환."
[인페르노이드 릴리스: 악마족 / 화염 / 레벨 9 / ATK 2900 → 4000 / DEF 2900]
[서문유진: 패 3장]
"잊은 건 아니겠지? '릴리스'가 특수 소환되면 '연옥' 말고 다른 마법이나 함정은 전부 파괴야. 이걸로…"
"파괴 전에 체인. 함정 카드 '위협하는 포효'. 이걸로 이번 턴에 공격은 못해."
"…그건 또 뭔."
"'거울의 힘' 갖고 소용없다는 걸 네가 알려줬었잖아."
그 위기를 눈앞의 상대는 또 기어이 버텨낸다. 모리스는 끓어오르는 화를 떨리는 한숨으로 달래야 했다.
유진에게 남은 몬스터가 없으니 '라바 골렘'을 꺼내서 끝장을 내는 수는 불가능. 다음 턴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쳇, 카드 1장을 세트. 턴 엔드."
"내 턴."
[서문유진: 패 4장]
[엔도 모리스: 패 1장]
패를 들여다 본 유진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단념일까, 안도일까. 그 한숨의 의미를 해석해보려 들기도 전에 유진이 직접 한 마디를 꺼낸다.
"솔직히, 네가 뭔 생각을 하고 뭘 지껄이던 알 바 아니거든."
"엉?"
"네가 다시 오기 전까지 많은 일이 있었어. 너같은 놈들, 아니, 너보다 더 한 놈들 지긋지긋하게 봤다고. 더이상 너같은 놈한테 쫄 이유가 하나도 없어."
"그러셔? 아까 퍼뜩 안 나오고 버티려 든 게 누구더라?"
듀얼 말고 누가 더 허세를 잘 부리나 대결이라도 시도하려는 것일까.
"그야, 이런 듀얼 더는 하기 싫으니까."
"거 봐. 겁나서 그런 거잖아?"
"그래, 겁나."
유진은 다시 떨리는 숨을 고른다.
뭐라 형용하기 힘든 감정에 고조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필요 따윈 없다. 어차피 두 번 다시 볼 일 없을 상대 앞에서라면.
"근데 그렇게까지 못 해서 안달이면, 내 주변 사람 들먹이면서까지 꼭 해야겠으면."
하지만 눈앞의 인물처럼 망가지는 순간 끝장이다. 자신은 그 갈림길에 서 있는 처지임을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버텨야만 한다. 언제든 각오해야만 하는 것을 알고 있다.
"해주면 될 거 아냐!"
그런데 꼭 소리를 질러야 했을까. 그럴 것이라고 스스로 답을 내린다. 어차피 관용도 자비도 필요없는 놈이니까.
저 자야말로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하면, 몇 번을 잿더미로 만들어도 모자랄 것만 같다.
"내 필드의 몬스터 수가 상대보다 적으면, 패에 있는 '다이너레슬러 판크라톱스'를 특수 소환할 수 있어."
[다이너레슬러 판크라톱스: 공룡족 / 땅 / 레벨 7 / ATK 2600 / DEF 0]
모리스의 남은 LP는 450. 배틀로 들어가서 '벨제불'을 때리면 승리로 끝난다.
물론 그렇게 놔둘리 없다는 것 쯤은 유진 역시 예상한 바, 모리스는 그 예상에 빗나가지 않는 대응에 들어간다.
"그럼 '벨제불'을 릴리스하고 ②의 효과 발동. 상대 묘지의 카드 1장을 제외한다."
유진의 묘지를 확인하자마자 모리스는 누굴 고를지 감이 잡혔다. 뭐가 됐든 가증스러운 존재를 치운다는 것에 의미가 있을 터.
"'파이로레드'가 좋겠네."
키 카드가 묘지에서 빠져나가고도 유진은 담담하게 플레이를 속행한다. 이 시점에서 '판크라톱스'가 전투로 해치울 만한 몬스터는 없으니 다른 역할을 맡길 필요가 있었다.
"그럼 '다이너레슬러'를 릴리스하고 ②의 효과를 발동. 상대 필드의 카드 1장을 파괴한다. '릴리스'를 지정."
"막아야지. 이번에도 '벨페고르'를 릴리스, '릴리스'의 ②의 효과로 무효야."
그 효과조차 막혔더라도 몬스터를 2장이나 치웠으면 충분히 제 역할을 해낸 셈이다. 아직도 패는 3장이나 남았으니까.
"LP를 800 지불하고 마법 카드 '사이코패스'를 발동. 제외된 사이킥족 몬스터를 2장까지 패로 가져온다. 링크 몬스터인 '파이로레드'는 엑스트라 덱으로 회수. 그리고 필드에 몬스터가 없으니까 회수한 '오우거'를 다시 특수 소환. ②의 효과로 '크샤트리라' 함정 카드 1장을 패에 추가."
[서문유진: LP 900 → 100, 패 3장]
[크샤트리라 오우거: 사이킥족 / 물 / 레벨 7 / ATK 2800 / DEF 1000]
가뜩이나 간당간당한 LP를 또 밑바닥까지 깎아내린다. 마치 제 살을 도려내는 듯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걸로 상대를 칠 기회만 얻을 수 있다면야 망설일 이유 따위 없다. 어설프게 아끼려드는 것이야말로 지옥불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을지 모르는 일.
유감스럽게도 '오우거'만으로는 '릴리스'를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이 없지만, 무사히 새 전력을 꺼낼 수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차원동이체 바리스'를 소환. '바리스'의 ②의 효과로 자신을 물 속성으로 변경."
[차원동이체 바리스: 사이킥족 / 빛 → 물 / 레벨 1 / ATK 0 / DEF 0]
"이어서 물 속성의 '오우거'와 '바리스'를 소재로, 'ET레인저 하이드로블루'를 링크 소환. 그리고 '하이드로블루'의 ①의 효과. 덱에서 물 속성이 아닌 레벨 4 이하의 몬스터도 특수 소환."
[ET레인저 하이드로블루: 사이킥족 / 물 / LINK-2 / ATK 1800 / DEF ←→]
[디브전: 기계족 / 화염 / 레벨 2 / ATK 200 / DEF 200]
"'하이드로블루'의 ②의 효과로 자신을 지정. 그리고 그 링크 마커 수만큼 덱을 넘겨서 카드 1장을 패에 추가한다. 그리고 '디브전'을 릴리스하고 ①의 효과도 발동. 릴리스한 수의 배만큼 '기계 토큰'을 특수 소환."
[서문유진: 패 3장]
[기계 토큰: 기계족 / 화염 / 레벨 1 / ATK 200 / DEF 200]
[기계 토큰: 기계족 / 화염 / 레벨 1 / ATK 200 / DEF 200]
소재가 갖춰진 그 순간, 유진은 뇌리로부터 간만에 느끼는 자극을 맞이한다.
'때가 되었다'는 간결할 표현을 던진 것만 같다. 왜 여태까지 잠자코 있었냐는 딴지를 속으로 던지기를 잠시, 유진은 꺼내려던 카드를 마저 꺼내기로 했다.
"간다! 소환 조건은 'ET레인저'를 포함한 몬스터 둘 이상! 난 '하이드로레드'와 '기계 토큰' 둘을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소환, 나와라 'ET레인저 코스모화이트'!"
[ET레인저 코스모화이트: 사이킥족 / 빛 / LINK-4 / ATK 2500 / DEF ↑←→↓]
아무리 낮선 카드 집단이라도 '레드'가 있다면 '블루'든 '옐로'든 '그린'이든 동료격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미디어라는 것을 접하는 이상 그런 예상 정도는 가능했다.
그러니 저것은 그 우두머리격 몬스터일 터. 슬슬 본 실력을 발휘해보겠다는 뜻으로 비춰진다.
"'코스모화이트'의 ②의 효과. 엑스트라 덱에서 다른 'ET레인저'를 불러올 수가 있어. 나와라, 'ET레인저 에어로그린'! 그리고 '에어로그린'의 ①의 효과로 덱에서 바람 속성이 아닌 몬스터도 특수 소환."
[ET레인저 에어로그린: 사이킥족 / 바람 / LINK-2 / ATK 1800 / DEF ↑←]
[초전자 터틀: 기계족 / 빛 / 레벨 4 / ATK 0 / DEF 1800]
[ET레인저 코스모화이트: ATK 2500 → 3000]
"'코스모화이트'의 공격력은 필드의 다른 'ET레인저' 하나 당 500씩 상승. 그 다음 '에어로그린'의 ②의 효과로, 필드의 카드 1장을 패로 되돌린다. 그 세트 카드를…."
역시 얄밉다. 가증스럽다. 마치 제 행동을 예측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대응해버리는 플레잉마저도.
하지만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필드의 '연옥의 결계'를 묘지로 보내고 함정 카드 '연옥의 광연'을 발동! 레벨 합계가 8이 되도록, 덱에서 '인페르노이드' 몬스터를 3장까지 특수 소환한다!"
[인페르노이드 샤이탄: 악마족 / 화염 / 레벨 1 / ATK 0 / DEF 0]
[인페르노이드 루키후그스: 악마족 / 화염 / 레벨 3 / ATK 1600 / DEF 0]
[인페르노이드 아스타로스: 악마족 / 화염 / 레벨 4 / ATK 1800 / DEF 0]
[인페르노이드 릴리스: ATK 4000 → 2900]
필드를 뒤덮던 푸른 불꽃이 전부 꺼지고서 제각각으로 생긴 기계 마인들이 수비벽으로 튀어나온다.
위기감 속에서 모리스는 희망을 떠올려보았다.
벽이 되어줄 몬스터는 충분히 마련했으니, 어떻게든 이번 공세를 버텨낸다면 다음 턴에 승산이 찾아온다.
'암브로엘'을 다시 꺼내서 덤빈다고 해도, 특수 소환된 '인페르노이드'들의 효과로 묘지의 링크 몬스터를 제외해서 효과로 올라갈 타점을 낮춰놓는다면 어떻게든 LP는 건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묘지의 '치동하는 연옥'을 제외하고 ②의 효과를 발동해서 제외된 '인페르노이드'들을 덱으로 되돌린다. 그 다음 '연옥의 허몽'으로 마련된 소재를 전부 사용해서 공격력 3400의 '인페르노이드 티에라'를 융합 소환한다면, 그것만으로 LP가 100밖에 남지 않은 유진을 이기고도 남을 테니까.
설령 그걸 경계해서 다른 수를 쓴다고 해도 걱정할 것은 없다. 지금처럼 몬스터 둘 이상을 남겨놓았다면, 패에 남아도는 '용암 마신 라바 골렘'을 꺼내서 턴을 넘기기만 해도 그는 몸을 녹이는 용암 속에서 자멸해버릴 터.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느라 모리스는 미처 떠올리지 못한 것이었다. 유진에게 아직도 다음 비장의 카드가 남아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에어로그린'과 '초전자 터틀'을 소재로 '트로이메어 유니콘'을 링크 소환."
[트로이메어 유니콘: 사이킥족 / 빛 / LINK-4 / ATK 2500 / DEF ↑←→↓]
패가 남아있을 텐데도 '유니콘'의 효과를 쓰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리스는 이번에도 생각해내지 못했다. 자신이 미뤄둔 패배의 공포를 망각해버린 듯이.
"소환 조건은 엑스트라 덱에서 특수 소환된 몬스터 2장 이상! 난 '코스모화이트', 그리고 링크 3의 '유니콘'을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소환, 빛을 묶어 강림하라, '쌍궁의 기사(잭나이츠 파라디온) 아스트람'!"
[잭나이츠 파라디온 아스트람: 사이버스족 / 빛 / LINK-4 / ATK 3000 / DEF ←→↙↘]
세번째로 등장한 링크 4 몬스터는 보구가 내뿜는 푸른 빛으로 온 몸을 감싼 듯한 기사의 모습이었다. 그 비장한 시선에 압도되기를 잠시, 모리스는 유진의 전력 수를 확인하고는 바로 조롱을 날린다.
"하, 장난하냐? 공격력 똑같은 애 하나 꺼내려고 자기 몬스터 수를 줄여? 그렇게 내가 우습다 이거지?"
이런 무식한 반응과도 이제는 끝이다. 그런 생각으로 유진은 일일이 대꾸하지 않기로 했다.
'아폴로우사'의 자리를 대체해가면서까지 투입한 이 카드의 성능을 마지막으로 깨닫게 될 테니.
"배틀, '아스트람'으로 '릴리스'를 공격!"
쌍궁의 기사가 독특한 조형의 대검을 들고서 표적을 향해 뛰어든다.
저 일격에 몬스터가 쓰러지더라도 문제없다. 다음 턴에 바로 반격에 들어가서 그 안일한 대처로 넘긴 대가를 치르게 해줄 테다.
모리스가 그렇게 기대하려던 순간이었다.
"이 순간 '아스트람'의 ②의 효과! 특수 소환된 몬스터와 전투에 들어가면, 데미지 계산시 그 몬스터의 공격력을 이 카드의 공격력에 더할 수 있어!"
"뭐!?"
[잭나이츠 파라디온 아스트람: ATK 3000 → 5900]
'아스트람'의 검에 서려 있던 푸른 빛이 아예 검신을 뒤덮더니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의 빛으로 진화한다.
그 빛을 바라보는 시선에 이미 살기 따윈 가시고, 대신 망연자실의 기색이 차지하고 있었다.
'지는 거야? 내가? 이번에도?'
필드의 '연옥의 결계'를 그냥 남겨뒀더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을까. 아니, 유진보다 아주 조금 높을 뿐이던 LP로는 무리였을 것이다.
이미 소용없어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록 분노는 한탄으로 바뀌어 간다. 자신이 뭐가 부족해서 이런 녀석한테 두 번이나 당해야 한단 말인가.
"꺼져버려!"
그러고 있을 여유조차 눈 앞의 상대들은 전혀 용납하지 않았다. 파란 망토를 휘날리는 '아스트람'의 검격에, '릴리스'는 용의 괴성과도 같은 비명을 지르며 두동강이 나버렸다.
[엔도 모리스: LP 450 → 0]
그 순간 몰아치는 검풍과 섬광 때문에 그만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다. 자신의 미래처럼 한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렇게 주인의 생명(라이프)가 떨어지는 즉시 벽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전력들도 신기루처럼 사라져갔다.
듀얼이 끝나자 보이는 것은 다시 잔잔한 어둠. 그 사이에서 서로의 디젠이 빛을 발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 사람은 이미 예측할 수가 있었다. 그 기대를 벗어나지 않듯 모리스의 몸에 다시 불이 붙기 시작한다.
이미 한 번 경험했던 일. 그 사실을 떠올리자니 저절로 일말의 희망이 쥐어졌다. 그걸 기반으로 모리스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질문을 꺼내 본다.
"…이런다고 끝일 것 같냐? 너 내가 또 살아나면 어쩌려고?"
그러나 유진은 눌리는 기색이라고는 없이 담담히 대답할 뿐이었다.
"덤비려면 또 덤벼. 그 때도 박살내줄게."
"햐, 이 새끼 또 대답하는 거 봐."
역시 가증스럽다. 당장 저 면상을 태워버리든 밟아서 뭉개버리든 해야 속이 풀릴 텐데, 그러기 위한 손발이 먼저 불타서 사라져간다.
이번에도 뜨거움은 커녕 감각조차 없었다. 고통이 따르지 않는 연소를 지켜보고 있자니, 혹은 여전히 같잖은 저 태도에 어쩐지 실없는 웃음이 새어나온다.
'거지같네. 이럴 거면 그냥 살려주지 말지.'
그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처음부터 자신은 이용당했다. 그걸 어렴풋이 짐작해 왔고, 지금은 대놓고 알고 있었지만, 결국 언제가 됐든 거역하지 못하고 움직이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 인생에서 즐거움을 찾겠다는 것이 무리수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담담하게 자신의 꼴을 자조할 뿐이다.
"그래, 너 잘났고요. 또 보든지 안 보든지 합시다."
"지옥에나 떨어져."
"알았어, 가면 되잖아. 위태위태한 인생 어디 즐겁게 지내보시던가."
마지막까지 독한 반응이다. 저런 독기를 품을 만한 무언가를 겪기는 겪었다는 것이리라.
그렇게 자기 자신이 품은 분노가 빠져나가니 그런 냉철한 이해가 가능해지는 자신이 새삼 놀라웠다.
더구나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사라진다는 것이 두렵지 않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기려고 발악을 했던 것도 같은데.
그 새 적응해버린 것일까. 또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살아있지도 않은 것이라는 의혹 때문이었을까.
그런 의문조차도 곧 사라질 시점에서는 바보같이 느껴질 뿐이다.
"지옥에서 보자."
그 말을 끝으로, 이번에도 그 문드러진 육신은 완전 연소라는 형태로 세상에서 지워져간다. 바닥에는 재조차 남지 않았다.
대신 적의를 가득 품은 상대가 그런 식으로 사라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유진 자신이 있었다.
의식이 끝나고 어둠이 가라앉으면서 보이는 풍경은, 불이 켜진 거실이었다.
그런 듀얼을 집 안에서 치른 것을 떠올리고는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조차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분노를 거둔 유진에게 찾아오는 것은 당연하게도 공포와 불안이었다.
그러나 뇌리에 급하게 무언가를 떠올린 유진은 바로 D-패드의 통화 기능을 킨다.
[응, 왜?]
"지금 아무 일도 없지?"
[뭐?]
"너 말고 아무도 없는 거지?"
[어, 어……]
당황스런 나머지 대답을 주저하는 모양이다.
유진은 괜시리 다급해진다.
"곧 갈게."
[뭐!?]
아린의 되물음을 끝으로 유진은 통화를 끊는다.
그리고는 밤거리를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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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오랫만에 오붓한 일상 속의 짜릿한 듀얼의 시간 되겠습니다
다시 컴백하신 분의 떼노 덱은 사실 예전부터 정해놨었는데 정말 고맙게도 본격적으로 쓰기 앞서 지원이 나와주더군요. 그러나 본인의 머리로는 그걸 다 소화해내고도 주인공이 버티게 할 재간이 없었기에 나머지는 언급으로나마 어떻게든 때웠습니다. 후공이 기본인 떼노를 무슨 고집을 부렸는지 후공으로 시작하려다 결국 선공으로 바꾸기까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려버렸네요. 면목이 없는레후우
어찌 됐든 다음 분량 써지는 대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안뇽
악몽 재발이랬으니 또 재버워키토키가 재발하겠군요
의외로 마지막에는 담담하게 가는군요 인격적인 성?장을 이뤘구나 엔도아조시
다른 말로 현자타임이라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