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Teamarex라는 게임팀에서 게임디자인을 합니다.
흔히 개발팀에서 ‘기획자’라고 하는 포지션입니다.
팀 이름은 '팀 아렉스'라고 읽습니다.
10년 전쯤에 <런 도로시>, <수사기록>, <암중모색> 같은 게임들로 활동을 했었습니다.
이런 게임들이에요. 종종 기억해주시는 분을 볼 때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래도 당시에는 많이들 좋아해주고 그랬어요.
나름 상도 하나 받았습니다.
그때 미국 가서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과 사진도 찍었어요 ㅋㅋ
첫 짤은 원숭이 섬의 비밀 시리즈의 론 길버트님,
둘째 짤은 (구) 이드 소프트의 존 로메로님...
정말 찰나같았던 좋은 시절이었죠.
루리웹 분들도 많이 축하해주셨습니다. (저 글을 올려주신 분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
http://bbs.ruliweb.com/family/4383/board/300007/read/402372
에... 그리고 1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회사를 차리기도 하고(잘 안 되었지요)
게임 회사 다니기도 하면서 암울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지무지 암울했지만, 어디 사연 없는 사람 있나요. ㅋㅋ
아무튼 그 후에 다시 인디로 돌아오기로 했고,
이걸 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보자 신작을 출시하기로 했습니다.
조금 덜 불행하게 살고 싶었거든요...
1. 상품 기획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을 모토로 기획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희의 목표는 대충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
첫째: AAA 게임들이 제공하기 힘든 독특한 플레이를 만든다. (인디라서 가능한 시도)
둘째: 반드시 ‘재미’에 초점을 맞춘다.
셋째: (첫째 목표에 의해) 편의성과 직관성을 가능한 최대치로 올린다.
그래서 저희는 보다 게임의 본연의 재미(!)에 집중하고자
가챠나 광고를 일절 배제하였습니다.
(사실은 광고나 가챠 들어간 게임.. 정말 어렵더군요....… ㅜㅜ
이런 게임 잘 만드시는 개발자분들 정말 부럽습니다...)
그리고 팀 멤버들은 전 회사에서 모바일 프로젝트를 했었기에
PC나 스팀으로 가는 것보다는 이쪽이 노하우를 살리기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이 본격적으로 게임 디자인에 들어갔습니다.
1. 전투 디자인
기본 아이디어는 다수의 유닛을 움직여서 부딪히는 전투였습니다.
편의성을 생각했기 때문에 모바일 세로 화면을 선택했습니다.
전철 손잡이를 잡고 한 손으로 플레이가 가능한 게임이었으면 했거든요.
그래서 첫 번째 전투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어요.
ㅋㅋ 어이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클래시 로얄도 처음 프로토는 이렇게 시작했다고 하더라구요.
다수의 유닛들이 싸우지만
마치 1:1의 밀리 배틀처럼 조작하게 하는 것이 기본 아이디어였는데,
플레이 테스트 결과 재미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세계관은 다크 판타지로 잡았기 때문에 냉병기 전투를 떠올렸고,
밸런스의 컨셉은 '사무라이 스피리츠'로 잡기로 했습니다.
사무라이 스피리츠는 다른 2D 대전격투 게임에 비해서 느린 박자를 가졌지만
타격의 결과가 치명적이라서 긴장되는 느낌이지요.
그래서 타격 성공시, 피격시의 효과가 보다 크게 느껴집니다.
(물론 저의 다소 주관적인 해석입니다.)
군체를 직접 이동시키는 UX는 모바일 게임에서 잘 구현한 사례를 못 보았기 때문에
과감히 포기하고, 대신 상태전환을 통한 타이밍 액션으로 방향성을 잡았습니다.
적의 돌진을 쳐내는 패링, 대기시간 이후의 돌격,
돌격 거리를 벌릴 수 있는 범위 넉백 등으로 기본 전투의 뼈대를 만들게 됩니다.
어디서 주워온 캐슬배니아 리소스로 임시 스프라이트를 붙인 버전입니다.
당연히 실제 그래픽 퀄이 저렇게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ㅋㅋ
2. 메타 플레이 디자인
저희는 처음부터 캐주얼과는 거리를 좀 두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디 게임 유저들이 좋아할만한 로그라이크 장르를 선택했습니다.
다만 넷핵류의 코어한 로그라이크보다는 FTL식 ‘로그라이트’에 가까운
비교적 단순한 게임성이 모바일과 더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낯선 전투에 익숙한 진행방식을 해야겠다 싶었거든요.
기획서를 쓰기보다는 당장 맵을 생성하는 로직 코드부터 짰어요.
Google sc__ript와 Spreadsheet를 이용해서 기본 맵 생성기를 만들어봤습니다.
실제 코드는 진짜 엉망 진창이지요… ㅋㅋㅋㅋ
그리고 10개 남짓의 단편적인 사건 스토리들을 썼습니다.
Inkle sc__ript를 이번에 처음 제대로 이용해봤는데, 상당히 괜찮더군요.
혹시 비주얼노벨 만드시는 분들 계시면 이용 한 번 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자 이렇게 랜덤 생성되는 맵 + 단편적인 사건들이 준비가 되었습니다.
바로 페이퍼 프로토타이핑을 진행했지요.
마치 TRPG 하듯이 제가 마스터를 했습니다… ㅋㅋㅋ
테스트는 괜찮았지만, 이것만으로는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생각한 기본 아이디어는 슬레이 더 스파이어식의 1자 맵 진행에
FTL식 스토리 인카운터를 믹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하니 좀 밋밋하더군요.
그래서 스토리가 단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에 따라
나중에 뒷일이 발생하는 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구조를 이용해 팩션과의 관계를 구현하기도 하고,
작은 퀘스트들을 구현하기도 했습니다.
구체적인 예시는 일종의 스포일러 같은 거라 언급은 안 하겠습니다. ㅎㅎ
여튼 플레이 테스트 결과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넣기로 했지요!
그리고 이 동안 리더는 코드의 설계와 실제 구현을
거의 동시에 진행했어요.
...그리고 이런 괴물같은 시트가 나옵니다. 짤보다 가로가 3배가 더 길어요... ㅋㅋ
리더는 이 괴상한 아이디어를 코드로 구조화하기 위해서 끔찍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고,
그 기묘한 데이터 구조를 익히느라 저도 무척 힘들었지만
계속 개선해가면서 막판에는 많이 좋아지긴 했습니다.
3. 시각화의 방향성
이제 [탐험]과 [전투]가 준비되었습니다.
...그리고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페이퍼 프로토를 통해 재미를 검증하긴 했지만,
이렇게 만든 [탐험]과 [전투]는 시각화를 하기엔
서로 너무 다른 성격을 띄고 있었던 겁니다.
이건 모바일 게임이라 큰 화면을 쓸 수도 없고,
심지어 전투가 낯설기 때문에 유저에게 설득력이 있으려면
시각화를 직관적으로 해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막혔어요.
아이디어가 마땅히 없더군요.
“ㅈ됐다. 시간은 없고 아이디어는 안 나오고… 돈은 떨어져가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머리를 쥐어짜다가
리더가 메인 화면에 기사 캐릭터를 배치하고
마치 인형극처럼 '실루엣'만 살리자는 아이디어를 냅니다.
이런 스타일은 예전에 해본 적이 있었어요.
10년 전에 만들다가 중단된 프로젝트 스샷입니다.
그래픽 멤버가 군대가는 바람에…
여튼!
전투는 리얼 비율의 캐릭터들로 싸우되,
탐험에서의 낭만은 그 캐릭터들의 실루엣만으로 표현하자가 된 거죠.
어수선하던 게임 플레이가 드디어 정돈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래픽 리소스를 만들 방향타가 잡혔습니다!
4. 음악 + 일러스트
처음에 음악은 좀 잔잔한 기타 음악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넣어보니 좀 따분하더라구요.
이때 음악을 담당한 친구가
'클래식 악기들로 오케스트레이션을 하면 몰입감 있는 분위기가 될 것 같다'며
샘플 곡을 보내줬습니다.
음악은 여기서부터 일이 잘 풀렸던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일러스트의 경우는 생각을 많이 해야 했습니다.
일단 캐릭터의 능력이 다양해서 그걸 표현하는데 집중을 했습니다.
게임 안에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이를테면 보물사냥꾼, 요리사, 통역사 등 탐험 특기뿐만이 아니라
전투 특기인 망치 돌격, 멀티샷 등 표현이 좀 난해한 캐릭터들이 있었거든요.
그 때 일러스트 하는 동료가 아이디어를 냅니다.
복장이나 인상보다는 ‘소품’과 ‘자세’를 강조해서 특징을 잡아내서
먼저 스케치를 보내주더군요.
일러스트는 이러한 방향성으로 진행을 해나갔습니다.
이렇게 11개월간 500잔가량 커피를 투여하며 작업을 진행한 결과 드디어….
완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게임 제목은 '언노운 나이츠'라고 합니다.
거듭된 테스트와 수정을 통해서 재미있다는 평가도 많이 받았습니다. ㅜㅜ
크.. 나름 치열했던 개발 순간순간이 떠오르네요.
그런 시간들을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궁금해 할 수도 있을
기획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정리해봤습니다.
혹시 기획을 지망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당연히 그래픽, 프로그래밍, 일러스트, 음악 등등 각자의 과정과 관점은
모두 서로 달랐을 거예요.
역시 게임은 만드는것 보단 하는게 훨씬 재밌는거 같습니다. ^^
이건 입장 상관 없이 통일된 의견일 것 같아요 ㅋㅋㅋㅋ
플레이스토어 링크 :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teamarex.troop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인디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만은 않은 것 같더라구요...
이 글도 정성들여 열심히 쓴 개발기이긴 하지만
동시에 홍보 글이기도 해서 조심스럽습니다.
부디 처지를 너그러이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런도로시 정말 재밌게했었습니다ㅎㅎ 유료버전, 무료버전 같이 운용하시는 개발사분들 많이계신데 꼭 고려한번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아이폰유저라 앱스토어 런칭하시면 꼭 구매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이폰 유저시군요! IOS 버전은 현재 열심히 개발중입니다. 아주 오래전 게임인데도 저희 게임 기억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_ _) 열심히 해나가겠습니다!
런도로시 정말 재밌게했었습니다ㅎㅎ 유료버전, 무료버전 같이 운용하시는 개발사분들 많이계신데 꼭 고려한번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아이폰유저라 앱스토어 런칭하시면 꼭 구매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이폰 유저시군요! IOS 버전은 현재 열심히 개발중입니다. 아주 오래전 게임인데도 저희 게임 기억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_ _) 열심히 해나가겠습니다!
당시 게임개발자 하고싶어하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정말 재밌게 했었거든요ㅎㅎ 너무 오래되서그런지 BGM이 인상깊었다는 기억은 남는데 노래는 기억이 안나네요. 결국 저도 게임기획일을 하고 이래저래 하다가 지금은 개발사 서포트하는 일을 하고있는데, 여기서 런 도로시를 다시 보게될줄은 몰랐습니다. 꼭 잘되실겁니다!
글은 진작에 봤는데 게임 업데이트를 작업하느라고 댓글이 늦었습니다. BGM은 '몽구스'의 'Motorola' 라는 곡이었습니다. 밴드 리더분께 게임에 포함하는 것만(무료였으니!) 허락을 받고 사용한 곡이에요. ㅎㅎ 와 그걸 기억해주시다니요. ㅠㅜ 정말 반갑습니다. 게임 업계에 계셨군요. 뭐든 그렇겠지만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ㅎㅎ 하시는 모든 일 번창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열심히 해나가겠습니다!
아이고 해보고 싶은데, 아이폰은 아직이군요 ㅎㅎ;;
안녕하세요. IOS 버전 준비중입니다! 이달 내에 출시 계획이니 부디 기억해주세요. 감사합니다! (__)
중간이미지에 동 ㅋㅋㅋ
ㅋㅋㅋㅋㅋ 그렇습니다..
다운받았습니다~ 혹시 인터넷 연결 안돼있을때도 플레이 할 수 있나요??
감사합니다. (_ _) 넵, 오프라인에서도 얼마든지 플레이 가능한 게임입니다.
삭제된 댓글입니다.
라피즈K
재밌게 플레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밸런스와 관련해서는 유저분들의 피드백을 통해 지속적으로 관리해나갈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