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동안 지방에 내려와서 적응하기 바빴는데 여유가 생기니까 취미를 뭘로 가질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 생신 때 이화주를 빚은 걸 계기로 이번엔 막걸리를 빚어보자는 결심이 선 김에
다이소 가서 담금통부터 사왔습니다.
원래 머릿속에만 있으면 실행을 안 하잖아요?
이번에 빚은 술은 막걸리 중에서도 석탄주라는 술 레시피를 참조했습니다.
술을 빚는데 누룩과 곡식으로 단 한번에 술을 만들어내면 '단양주',
이걸 밑술로 삼아 다시 덧술을 하면 '이양주' '삼양주' 등등등이 된다고 합니다.
사진은 쌀가루로 범벅을 만들어서 이걸 누룩과 섞어준 상태입니다.
이때 사실 통이 숨을 쉬도록 위를 면보자기로 씌워줘야 하는데,
실수를 범했습니다.
저걸 그냥 담금통 뚜껑으로 덮어놓는 바람에 발효가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비가 오는 날이라 은근히 기온도 낮아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밤새도록 온도를 올려주기 위해서 쇼를 했습니다.
출근하기 전에 새벽에 황급히 면보자기를 씌워주고 밑은 전기장판을 깔아주고 담금통은 담요로 싸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흘 정도 후에 덧술을 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덕분에 직장에서 '오늘따라 왜 이렇게 멍하게 있냐'며 주변 사람들에게 한소리 들었습니다.
한번 결심한 이상 끝까지 가보려고 합니다.
석탄주는 단맛이 나는 술이기 때문에 찹쌀을 사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밑술을 담근지 사흘 후 찹쌀 2kg을 고두밥을 지어서 밑술과 섞을 준비를 합니다.
고두밥을 짓기 전에 찹쌀을 계속 씻어 맑은 물이 나오게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안 씻으면 술이 맛이 텁텁해지고 이상한 맛이 난다고 합니다.
물론 저는 그 맛이 무슨 맛인지 모릅니다.
단지 망치기 싫은 고로 정말 열심히 씻어주었습니다.
저도 목욕탕 가서 목욕하고 싶습니다.
코로나는 정말 망할 질병입니다.
옆에 있는 항아리는 이화주를 담은 항아리입니다.
원룸에 별걸 다 갖다놓았습니다.
제대로 빚은 밑술은 원래 기포가 계속 올라오면서 술 맛이 난다고 하는데
밑술에 신맛만 가득해서 사실 망쳤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기포가 올라오면서 비 오는 소리가 방 안에 가득했는데
뚜껑을 덮어서였나, 혹은 온도가 부족했나.
끓어오른 자국만이 남아있습니다.
고두밥은 원래 찜솥에다 면보자기를 깔고 찌는게 정석이라고 합니다.
원룸에 찜솥같은 걸 놓을 공간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냥 전기밥솥에 물을 적게 넣고 밥을 합니다.
찹쌀이 2kg입니다.
원룸에 저걸 감당할 밥솥을 놓을 리 없습니다.
그냥 전기밥솥에 세 번 밥을 해서 식혀줍니다.
퇴근해서 바로 한 작업인데도 한밤중이 됩니다.
어쨌든 지은 고두밥 2kg를 밑술에 덧술해줍니다.
지은 고두밥이 뭉치지 않게 풀어주는 호화작업을 합니다.
원래는 큰 대야에다가 일일히 섞어서 호화를 40여분 가량 해야 한다고 하는데
원룸에 그런 걸 놓을 공간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냥 담금통에 고두밥을 넣어줍니다.
사진이 별로 없는 건 열심히 호화작용을 맨손으로 해줘서입니다.
그러고 일주일 가량이 지났습니다.
전기장판을 깔고 그 위에 술통을 두고 담요로 싸줘서 발효가 계속되도록 해줍니다.
혹시 실패할까봐 불안해서 찹쌀을 1kg 더 고두밥을 지어서 한번 더 덧술해주었습니다.
덧술을 두 번 해주었기 때문에 삼양주가 되었습니다.
원룸에 막걸리 냄새가 가득합니다.
집안 꼴이 개판이라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가 없습니다.
참조한 레시피에서 적당히 맛이 나면 걸러주라고 합니다.
이번 술은 같은 부서 동료들에게도 한 병씩 돌리려고 합니다.
적당히 단 맛이 나서 술지게미를 걸러주었습니다.
물론 더 두면 도수는 올라가지만 술맛이 독해집니다.
고운 술을 얻으려면 원래는 담금통에 용수를 박아야 합니다.
원룸을 양조장으로 만들 순 없어서 용수는 안 사고 체와 면보로 술지게미를 거르려고 합니다.
원룸에 술지게미를 거를 만한 대야가 있을 리 없습니다.
집안에 있는 큰 그릇을 총동원합니다.
이화주를 빚었던 항아리, 밥솥, 면기까지 전부 동원합니다.
면보에 술을 부으니 방울방울 걸러집니다.
어지간히 술지게미 입자가 많나 봅니다.
이때가 밤 11시입니다.
저걸 다 할 만큼 참을성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냥 체로 웬만한 술지게미를 걷어냅니다.
술지게미에서 걸러낸 원주를 하루 냉장고에서 묵힌 다음 위에 뜬 맑은 술만 떠냈습니다.
이 술이 청주淸酒입니다.
양이 굉장히 애매합니다.
맛있어서 홀짝홀짝거렸더니 적어도 두 병은 나올 줄 알았는데 한 병하고도 반만 나왔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맛보기로 마시지 말 걸 그랬습니다.
전통주의 향은 누룩으로 결정된다던데
이화곡을 써서 그런가 묘하게 배 향이 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화곡은 배꽃이나 배로 만드는 누룩은 아닙니다.
그만큼 향이 좋다는 의미입니다.
선물하기 애매해서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중입니다.
그냥 탁주만 주고 말까...
원주에서 청주淸酒를 떠내고 남은 탁주입니다.
이 술이 흔히 알려진 막걸리입니다.
레시피대로 잘 만들어졌다면 이 술의 도수는 청주랑 같은 12-13도 정도 된다고 합니다.
역시 향은 청주랑 같습니다.
그래서 보통 물을 타서 도수를 조절하라고 하는데 물을 좀 타니 묘하게 싱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하루이틀 더 두고 맛을 조금씩 본 뒤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막걸리나'에서는 아이보리 매직이라고 하던데
화이트 매직입니다.
술 색이 굉장이 뽀얘서 이쁩니다.
마무리는 지난번 게시글에서 담갔다고 한 이화주입니다.
정말 맛있습니다.
집에 두고 온 한 병은 아버지께서 드시고 '난 역시 막걸리는 취향이 아닌갑다' 하십니다.
식감은 플레인 요거트,
첫 맛은 막걸리를 먹는 것처럼 톡 쏘는데 뒤로 갈수록 묘하게 달콤새콤한 향이 목구멍을 넘어가면서 코로 올라옵니다.
저에겐 과거의 달콤했던 향수를 자극하는 맛입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도수가 셉니다.
맛있다고 마구 퍼먹으면 뿅 갑니다.
문제는 누룩을 처음 넣을 때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서 넣었어야 하는데 그걸 몰랐습니다.
먹다 보니 가끔 누룩이 씹히는데 그 식감이 영 별로입니다.
다시 만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다음번에는 절구를 사서 누룩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원룸에 절구같은 걸 놓을 공간이 있을 리 없습니다.
역시 내년엔 전세로 이사를 가야 하나...
고민을 동생에게 말하니 동생이 대꾸합니다.
'왜, 방 늘리면 아예 그 방을 술 빚는 공방으로 삼으려고?'
고민이 늘어나는 밤입니다.
석탄주... 대단하시네요. 惜呑酒면 너무 맛있어 목구멍으로 삼키기 애석하다는 그술인데...
와 술 빚으시는군요 공이 많이 들어갈텐데 멋집니다.
이화주 진짜 먹어보고파요 저걸 빚으시다니..!
저도 맥주나 만들까 생각했는데 술만드는게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ㅎ 수제 청주한잔 하고 싶네요ㅎ
기다림의 즐거움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공이 많이 들어간 걸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
와 술 빚으시는군요 공이 많이 들어갈텐데 멋집니다.
기다림의 즐거움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공이 많이 들어간 걸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
이화주 진짜 먹어보고파요 저걸 빚으시다니..!
생각보단 간단합니다! 한번 할 때 내리 한두 시간을 작업하는게 문제지만요 :)
저도 맥주나 만들까 생각했는데 술만드는게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ㅎ 수제 청주한잔 하고 싶네요ㅎ
주말에 시간 내서 도전해보심이 어떠신지요 :) 저도 다음은 맥주 키트를 사볼까 합니다
와~ 능력자시네요~ +_+
과찬이셔요 :) 감사합니다
석탄주... 대단하시네요. 惜呑酒면 너무 맛있어 목구멍으로 삼키기 애석하다는 그술인데...
맛있습니다 :) 1차 발효 전 밑술의 실패로 석탄주라 하긴 애매하지만요
아 그래서 석탄이군요 ㅋㅋㅋㅋㅋㅋ 전 제목보고 석탄(숯?)을 넣어서 발효시키나?? 생각했음
저도 석탄주라는 명칭만 보고는 숯으로 부유물을 걸러내는 술인가 했습니다 :)
ㅋㅋㅋ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글 써주세요 ^^ 청주와 막걸리 맛은 정말 궁금하네요
향은 사실 미미하더라구요. 좋은 술은 첫 향 말고 목으로 넘겼을때 코로 다시 올라오는 향이 있는 술들이 많던데, 이 술은 그냥 향만 맡고 끝이어서 아쉬웠습니다. 막걸리는 아무래도 체로 걸러서 그런지 뻑뻑한 감이 있었어요. 그래도 저는 알고 먹어서 그런가 차이를 느꼈지만 지인들은 그런게 뭐가 중요하냐면서 마시던걸 보면 큰 문제는 아니었나봅니다 :)
와.. 원룸에서 온도 조절하기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하십니다. 저도 블루베리 와인담갔다가 온도 조절이 잘 안되서 식초가 되어버렸던 기억이.... ㅜ
아무래도 와인이 훨씬 민감하고 섬세한 술이라 그런게 아닐까 싶네요. 사실 막걸리는 와인에 비하면 투박한 감이 없잖아 있는 듯합니다 :)
온도조절보단 초산균이 들어간거같아여...물이많았거나 당도가 안맞았거나
아니면 온도가 높았으니 쉬어 버렸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은 안넣었으니 그건 아닐 거고, 당도는 브릭스를 맞추었으니 가능성이 낮고... 당시엔 집을 비우는 시간도 길었고 해서 방 온도가 좀 높았었거든요. 게다가 저도 원룸이었다 보니 ㅎㅎ
와아.. 존경존경! 대단하시네요. 저도 해보려다가 엄두가 안나서 포기했는데ㅠㅠ
저도 한동안 이 기행(…)은 안 하려고 합니다 :)
혹 증류기도 사용하시나요? 떠낸 청주 두어번 증류시키는것도 좋던데. 도수가 30~40으로 올라가지만 쌀내가 마지막에 다 잡아줍니다요.
어이쿠, 그건 희망사항입니다요. 원룸에 놓을 만한 증류기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걸 들여놓는 순간 정말로 본업에 소홀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ㅠㅠ :) 언젠가 사는 날이 올 희망만 갖고 있습니다
전기 밥솥 싼거 사서 드릴로 뚜껑에 구멍 뚫고 실리콘 호스 박아서 증류하시는 분도 계셨죠. 몰트위스키를 그렇게 만드시던…
증류기 별거 없습니다. 대체품도 꽤 많아요. 과학실험기에서 보면 투명시험관으로 만들어진 증류파이프들도 꽤 있는데 소형이고 싸며 투명이라 내부 세척도 편리해요. 열 전달도 잘 되서 3회 연달아 증류하면서 최종적으로 1리터 뽑는데 시간도 그리 안걸려요. 휴일에 할만합니다.
아래 사진을 보니 롱보우아처님 본인 이야기이신가요 ㅋㅋㅋ 위스키는 만들기보다는 아직 익숙해졌으면 하는 술이라 좀 더 마셔보고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증류주는 우선 증류식 소주부터…!
저는 전통주갤러리에서 본 소줏고리나 황동 증류기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종류가 많네요 :) 참고하도록 해야겠네요. 우선 그 전에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요 ^^;;
내공이 모자라 발효주만 만들어 봤네요. 에일과 라거, 꿀로 만드는 미드, 미드에 과일을 첨가한 멜로멜 같은 거요.
주로 서양 쪽 술인가봅니다. 아직 지식이 많이 부족해 직접 만들기 전에 먼저 맛부터 보고 싶은 술 이름들이네요 :)
'맛있어서 홀짝홀짝거렸더니 적어도 두 병은 나올 줄 알았는데 한 병하고도 반만 나왔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제사를 지냈다면 분명 제사주로 올린 다음 음복한다는 핑계로 남들 안 주고 실컷 마셨을 겁니다 :)
옛날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몰트 분쇄해서 맥주 만들어 마시던 생각나네요. 나중에 시간되면 미인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쌀 씹어 줄 아가씨는 없으니 물과 함께 믹서로 갈고 베타아밀라아제와 효모를 같이 넣어서 만들어 보고 싶네요.
학교다닐때 식객에서 처음 본 미인주에 대한 기대감이 저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
맥주는 공방가서 해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키트도 있지만 완전곡물로 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주변에 공방에 견학신청을 해야겠군요! 추천 감사합니다 :)
전 아직도 퇴근하면 힘들어서 빚던 전통주들도 접어버렸는데 대단하시네요. 청주 양은 밑술, 덧술칠 때 들어간 물 양에 영향을 받습니다. 밥할때 소모된 물양은 의미가 없어요. 덧술칠때 물을 거의 안 넣으셔서 청주양이 적게 나온 것 같네요. ㅎ 더 깔끔한 청주를 얻고싶으면 양조용 사이펀 하나 사셔서 떠놓은 청주 윗부분만 따라내시는게 좋습니다. 자리도 얼마 안 차지해요! 탁주는 물탄후에 지게미부분에서 맛이 우러나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보통 일주일정도 기다리셔야합니다.
정말 물탄 것 같은 맛이 사실 우러나지 않아서였군요! 음갤은 볼때마다 고수들이 많으셔요 :)
한잔 얻어마시고 싶네요..
오시면 한잔 드릴수도 있지요 :)
꿀술은 만들어본적이 있는데 이건..... 굉장하군요!
저도 다음은 미드에 도전해볼까 합니다!
레시피같은 것은 어디서 배우셨나요?
전문 공방이나 그런건 아니고 인터넷 레시피들 짜깁기한게 다입니다 :)
술단지 들고 벌컥벌컥 해보고 싶네요.ㅋ
ㅋㅋㅋㅋ 어릴때 물로 흉내내다가 웃옷을 왕창 적신 적이 있어서 지금은 안 하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