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난 주 화요일부터 일요일, 5박 6일 스케쥴로 일본을 다녀온 직장인 아저씨입니다.
지인 레지던트가 "나 레지 붙었음 + 곧 군대가니까 일본 갈 사람 구함" 이라고 사방팔방에 방을 붙인 끝에,
동생 대학교 서류처리 밎 동의서 등등 이슈로 어차피 일본에 가야 하는 저와 일정이 맞아
기적적으로 2인팟이 결성되어 떠나게 되었죠.
사실 여행 떠나기 전부터 이번 여행 일정이 험난하기 그지없을 거란 것은 예상되어 있었습니다.
뭐가 문제였냐구요?
둘다 욕심보가 아주 그득했기 떄문이죠
코로나 전만 해도 반년 간격으로 일본에 드나들던 저는 물론이고
초등학교 때 오사카 간 이래 처음 일본을 가는, 그
리고 세미나 외의 목적으로 해외여행을 가지도 못했고 곧 군의관이 될 레지던트의 욕심은 끝간 데를 몰랐고,
일본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한 일은
도쿄역으로 날아가
인증사진 몇 장 찍고
라멘 스트리트에서 시오라멘 한 그릇 떙기고
신칸센을 타러 가는 것이었습죠.
뭔소리냐구요?
이 미친 욕심그득 일정(하루 평균 도보거리 15km)의 시작은
무려 도쿄 - 하코네로 시작한다는 소리입니다.
Q: 제정신임?
A: 제정신입니다
원래는 저 혼자서 목~토로 일본 다녀올 예정이었습니다.
비행기를 제외하고 숙박도 그렇게 잡았고, 서류처리 하고 나카노 브로드웨이 좀 뒤지다가 돌아오는 심플한 일정이었어요
그런데 일본여행 스케쥴을 풍성하게 하자고? 아니 일본 여행이 사실상 처음이라고? 콤보를 맞은 저와
일본 여행을 가는데 이거도 하고 싶고 저거도 하고 싶고 리스트에 블루 아카이브와 온천과 디즈니랜드를 쑤셔넣은 레지던트(이하 닥터-센세라고 지칭합니다)의 광기는
"평일 온천 료칸은 싸게 구할 수 있을 테니 화-수로 잡아보자"로 융합하고 맙니다.
신칸센은 처음 타봤는데, 빠르긴 어마어마하게 빠르더라구요.
동생이 있는 모토스미요시-히요시를 니어미스하는 도중입니다.
구름과 마을이 너무 이뻐서 차창 밖으로 찍었어요.
신칸센의 도착지는 오다와라역.
외국인 대상으로 판매하는 하코네 2일 패스 등의 각종 패스를 판매하는 장소는
신주쿠역, 오다와라역, 하코네유모토역 같은 오다큐 철도회사의 주요 역들에 존재합니다.
원래라면 신주쿠역에서 출발하는 패스를 사는 것이 할인도 많고 하코네 로망스카를 탑승할 수 있어서 더 편리합니다만
일정 확정이 너무 늦어 로망스카 전망석이 다 차있었어요.
뭐 2/14 에 출발하는 신주쿠발 하코네행 로망스카면 발렌타인 수요도 있었겠죠.
전망석 없는 로망스카는 팥 없는 도라야끼 같은 물건이라 과감하게 패스했습니다.
사실 밖에서 역사를 찍으려고 했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더라구요. 오다와라 성만 빠르게 보고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평범한 일본의 마을 사진입니다. 전 이런 사진이 좋더라구요.
다리 넘어 보이는 오다와라성.
사실 오다와라성은 그렇게까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성도, 관광적 가치가 있는 성도 아닙니다만
일본에 왔는데 성 한번 안 보고 가는게 말이 되냐는 갬성,
그리고 이 주택가 사이에 성이 덩그라니 놓여있는 초현실함 때문에 일정에 억지로 꾸겨넣었습니다
이제 여행의 최종목적지인 고라역으로 떠납니다.
오다와라역에서 하코네유모토까지 가는 하코네 등산전차를 하코네 2일 패스권으로 탑승.
이게 1인당 5000엔이라 싼 가격은 아닌데도, 하코네 여행을 숙박 포함해 하려면 꼭 사는 게 나을 정도로 편리한 패스입니다.
저녘의 하코네유모토역.
사실 이 떄부터 중대한 사실 하나를 까먹고 여행 일정을 기획한지라, 일이 꽤 바빴습니다.
그게 뭐냐구요?
일본은 일출도 일몰도 30분씩 빠르다는 점이죠.
우리나라에서 해 지는 시간을 기준으로 계획을 세웠더니, 하코네유모토에 도착했을 땐 이미 비 내리는 저녘.
이게 고작 5시 언저리 사진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이번 여행 일정에서 직전까지 괴롭혔던 게 바로 하코네 날씨였거든요.
비가 계속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사라졌다 말았다 하면서 사람 조이게 했었습니다.
그런데 올라가다보니, 상황이 바뀌더라구요.
오히라다이역. 비가 눈을 녹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미야노시타를 지날 즈음엔 비가 옅은 눈으로 바뀌어가고 있었고
코와키다니(해발 523m)역에 도착했을 떈 가랑눈이 폭설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하코네 여행은 눈 속의 여행기가 된 것이죠.
사실 일기예보에서, 오다와라 언저리에서 오와쿠다니가 눈으로 표시되긴 했었습니다만
누가봐도 따뜻한 날씨에 비까지 내리고 있으니 아,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빗줄기에 쓸려내려가겠구만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코네 등산철도의 종점, 고라역입니다. 5시 50분인데도 기념품 가게가 다 닫아서 충격이었죠.
여기서 딱 한 정거장만 등산 케이블카로 올라갈 겁니다.
하코네 패스를 무조건 구입하라고 권하는 이유가, 바로 이 하코네의 기상천외한 탈것들 때문이죠.
하코네유모토에서 고라까지, 스위치백 방식(기차의 전후를 바꿔가며 급경사를 오르는 방법)으로 오르는 등산철도,
고라에서 소운잔까지 지상을 로프로 끌어당겨 달리는 케이블카,
소운잔에서 도겐다이까지 하늘을 매달려 이동하는 로프웨이.
또 도겐다이에서 모토하코네, 하코네마치 항구까지 운영되는 유람선과
이 모든 거점을 운행하는 버스
이 모든 운송수단을 2일 동안 자유롭게 이용가능하고, 관광시설 할인까지 되는 게 하코네 패스에요.
코엔시모 역에서 하차하고 찍은 하코네 케이블카.
차량 하단에 있는 철로 된 와이어를 당기는 방식으로 급경사를 올라갑니다.
이쯤 되어 눈이 펑펑 내리다 못해, 입고 간 코트 어깨는 하앟게 물들고 말았습니다.
눈으로 가득찬 하코네 고갯길.
숙소까지 걸어서 5분이었지만, 살면서 이렇게 은색 야경을 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고향도 겨울이 되면 눈이 이렇게 내립니다만, 거기엔 이만큼 가로등이 자주 배치되어있지 않은지라....
1박할 숙소,라라카입니다.
정식 온천 료칸이라긴 좀 그렇습니다만, 캐주얼한 가격에 료칸 풍을 즐길 수 있는 숙소에요.
사실 이 숙소는 독타센세가 싸다고 잡아왔는데, 놀랍게도 5년 전에 부모님 모시고 하코네 다녀왔을 때 제가 예약헸던 숙소였습니다.
지난번에도 경험이 좋았기에 고민 없이 이 숙소로 정했죠.
그리고 이 방이 아저씨 둘이 1일간 점거할 다다미방입죠.
원래 침대 아니면 잠을 못 잔다던 독타센세도 가혹한 인턴-레지던트를 통해 어떤 데서든 잘 수 있는 스킬을 획득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다다미방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만, 일본까지 와서 온천숙소에 묵으면 다다미 방 외의 선택지는 사도인 법입니다.
한국에 와서 굳이 남산 한옥마을에 숙소를 정하면서 침대방을 고르는 사람은 희귀하지 않을까요? 그런 개념이에요.
그리고 어딜 가든 제일 먼저 하는 tv 채널 탐색.
고독한 미식가 방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독타센세가 일본어 청해 능력까지는 갖추지 못한 탓에,
hdmi로 아이패드를 연결해 도라마코리아를 틀어봤습니다.
저 hdmi 연결 특유의 상하좌우 레터박스는 여전히 거슬리네요.
숙소에 도착한 건 6시라, 저녘은 7시였습니다.
나름 료칸풍이라 제대로 된 저녘 메뉴가 나오는 곳이라, 기대하고 식당으로 이동합니다.
바보같이 메뉴표 사진 찍는 걸 잊어먹어서 대강 감으로만 말해야 하는 전채류.
엄청나게 맛있는 메뉴는 아니어도, 일본식 정식을 시작하는 데 알맞은 깔끔한 맛이었습니다.
새우와 생선회. 새우가 굉장히 신선해서 인상깊었습니다.
생선회는 딱 평범한 횟집 생선회 정도였습니다만, 여기에 사시미 장인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와사비와 간장의 질이 좋았기에 충분히 맛있는 메뉴였습니다.
상당히 특이한, 그리고 처음부터 탁자 위에 있던 메뉴.
가리비와 연어, 그리고 야채를 간장을 살짝 얹어 찐 다음, 그 위에 크림소스를 끼얹어 아래의 고체연료로 뎁힌 요리입니다.
간장 양념과 옅은 맛의 크림소스 덕에, 서양풍 메뉴인데도 일본 메뉴들과 상당히 잘 어울렸고, 깔끔한 맛이었습니다.
슬슬 사진이 건성이 되어 간다면 사실입니다. 위에 거도 먹다가 찍었고, 이거도 뚜껑을 벗긴 사진이 없네요.
배고픈 아저씨들끼리 식당에 오면 사진 찍는 걸 잊어버리는 건 일상다반사입니다.
껍질벗기를 한 게를 튀긴 요리와 생선묵 양갱이었던가요.
소프트쉘 크랩은 동남아 여행 이래 오랫만에 먹어보는데, 역시 먹기가 편해서 게 맛이 더 잘 느껴지는 듯한 그런 착각이 듭니다.
메인 메뉴인 와규 샤브샤브입니다.
상당히 분홍빛을 띄는 색에 먹으라고 하셨는데, 먹어보니 그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보통 고급 소는 기름이 많다고들 하는데, 이건 기름이 많다 못해 소가 사실은 고혈압으로 죽은 게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기름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조금이라도 더 익으면 기름이 국물에 배어나오고, 소기름의 텁텁한 맛이 오히려 더 강하게 느껴지더군요.
샤브샤브의 어원은 일본어 의성어에서 왔다고 하고, 몽골 요리라는 설이 있는데,
사실 몽골 요리는 아니란 게 정설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나라 때 생겨난 요리긴 합니다만, 요리의 발상이나 발생권이 한족에 더 가깝죠.
몽골 특유의 고기 국물 조리법이 한족과 결합되어 탄생한 것 아니냐는 설을, 대학 때 배운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대학 떄 왜 샤브샤브의 기원을 배우고 있었냐구요? 글쎄요.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경험이군요.
사진이 세로로 찍혔는데, 파일을 돌려서 업로드하는 게 귀찮으니(....)
보리쌀을 묻혀 튀긴 덴뿌라와 츠케모노(절임), 그리고 된장국이 솥밥과 같이 나왔습니다.
후식은 딸기 케이크와 녹차 물양갱.
엄청 맛있진 않았습니다만, 깔끔한 맛입니다.
독타센세는 이 시점에서 샤브샤브의 국물을 밥과 먹으면 맛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설립하고 자신의 몸으로 증명하려 하셨는데,
"기름이 너무 많아서 부대끼는 맛"이라고 평하신 바 있습니다.
실제로 와규의 기름이 너무 많아서인지 국물을 먹기는 좀 그렇더라구요.
샤브샤브를 저녘으로 내면서 왜 우동이나 죽으로 마무리가 아닌지 의아했는데, 국물을 마시고 깨달았었습니다.
이 날은 이후 온천욕을 즐기고, 아이패드로 애니메이션 한두 편을 보면서 끝냈습니다.
사실 이 온천이 각별했는데 사진을 올릴 수가 없는 점 양해드립니다.
온천욕실 자체가 촬영금지였고, 그리고 촬영이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더러운 아저씨 둘이 목욕탕에 잠기는 장면을 누가 보고싶을까요.
다음 여행기에서 다시 뵙죠 여러분
잘봤습니다 추천
마침 하코네 가는데 참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