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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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이 밝아오고 대충 맞춰놓은 휴대폰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어젯밤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찾아와 급히 내 침대를 내어주고 혼자 거실 소파에서 잠을 청했더니 온몸이 찌뿌둥하고 개운하지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벌어진 일인 걸.
나는 방으로 가 아직 곤히 자고 있는 금란을 깨우기 시작했다. 어제의 충격적인 경험에 몸이 지쳤는지 내가 들어온 기척을 느끼지도 못하고 잠에 골아떨어져있다. 바이오로이드였을 그녀였다면 내가 아침에 눈을 뜨기 전부터 이미 활동을 시작했겠지.
아무튼 오늘은 할 일이 많으니 서둘러 깨워야겠다. 평화로운 토요일에 아침기상이 왠말이냐...
나: 금란, 아침이야. 일어나야지.
금란: ...............
말로는 못깨어날거같아 몸을 건드려봤다.
금란: 으...음....
나: 아침이야. 오늘 할거 많아. 일어나야지.
금란: 으음.... 주인님... 조금만 더...
이런.... 금란은 꿈에서라도 오르카로 돌아가고 싶어한건가...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고는 달콤한 꿈을 방해하지 말까 싶었지만 현실에 온 이상 당장 해결해야 할 것이 산더미임을 다시 생각하고 다시 그녀를 정신차리게 만들었다.
나: 일어나. 이제 꿈에서 빠져나와야지.
금란: 아.... 주인님... 그리 심한 말씀을.....헉!!!!!
금란은 꿈속에서 나의 말을 사령관의 모습으로 들은 건지 갑자기 놀라 급히 눈을 떴다.
나: 깻어? 너무 곤히 자는거 같아서 깨우기 망설였는데...
금란: 꿈... 자고 일어나면 다시 오르카호에서 깰 줄 알았는데... 역시나...
실망하고 씁쓸해하는 표정이 역력한 그녀...
나: 괜찮아? 컨디션 나쁜거 같으면 집에서 쉬어도 돼.
금란: 아닙니다... 몸은 괜찮으니 오늘 해야 할 일을 같이 하시지요.
나: 알았어 그럼... 오늘은 병원에서 검진을 받아야 하니 아침은 못먹겠네... 검진 끝나고 점심 맛있는거 사줄게. 그리고 옷도 좀 사야겠다.
금란: 옷 말입니까?
나: 그 한복이랑 메이드복이랑 섞인 옷을 입고 돌아다니면 사람들 시선이 장난 아닐거같은 예상이 들어서 말이야.
금란: 많이... 특이하나요?
나: 아마도 코스프레 행사에서나 용인될 옷이라 생각되는데.
금란: 코스프레??
나: 있어. 나중에 현실생활에 적응되면 행사장에 입고 가봐. 주인공이 되는게 어떤 건지 알 수 있을 거야.
금란: 잘 모르겠지만 인간님의 충고니까 새겨듣겠습니다.
나: 저기... 자꾸 인간님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어제 이름 알려줬지 않아?
금란: 인간님을 이름으로 부르는건 어색해서...
나: 너도 인간인데 뭐가 어색해? 어색하다고 계속 인간님이라고 부르면 영영 못고칠걸?
금란: ...괜찮으시겠습니까?
나: 괜찮고 말고.
금란: 그럼...알겠습니다... 그... 세..환..님...
나: 님 말고 씨.
금란: 세환씨라니 제가 어찌...
나: 다른 사람들이 보면 21세기 주종관계인줄 알겠다. 세환씨라고 해줘.
금란: .......그럼... 세환씨라고 부르겠습니다.
나: 고마워. 그럼 일단 병원 가기 전에 집앞에 스포즈의류매장이 있으니까 간단히 운동화랑 츄리닝부터 사자. 당장 외출할 옷이 있어야 하니까. 난 준비 되었으니까 금란은 씻고 나와. 아, 칼이랑 갓이랑 카츄샤는 착용안해도 돼.
금란: 네 세환씨.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씻고 옷을 입은 금란과 함께 우리는 집에서 길 건너에 있는 스포츠의류매장에 들어갔다.
매장점원: 어서오세요. 찾으시는게 있....????
점원이 매일 하던 대로 고객응대를 하려다 금란을 보고 잠시 당황한 듯 했다. 하긴, 나도 금란이라는 캐릭을 처음 봤을 때 꽤나 신선했는데 하물며 게임에 관심없는 사람들에겐 조금 쇼킹할 모습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나는 금란이 게임속 캐릭터였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거짓말을 해야 할 터.
나: 아,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제 아내가 어디 전통 행사에 갔다 오다가 급히 다른 일을 봐야 하는데 이런 옷으로 다니기 곤란해서 운동복도 새로 살 겸 겸사겸사 와봤어요.
점원: 아아, 그러시군요! 혹시 어떤 운동을 주로 하시나요?
나: 그냥 런닝이나 오래 걷기 좋은 옷좀 추천해주시겠어요?
점원: 네네~! 이쪽에 쭈욱 걸려있으니까 맘에 드시는거 골라주시면 돼요.
그렇게 점원은 우리를 매장 한쪽에 진열되어있는 행거로 안내했다.
금란: 아내라뇨... 거짓을 말하시는게 청산유수시네요.
금란은 진열대로 가면서 나에게 작게 말하며 나의 연기력에 대해 평가했다.
나: 왜... 불쾌했어?
금란: 그건 아니지만... 그냥... 조금 이상한 느낌이었습니다.
나: 주변사람들의 의심을 빠르게 잠재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부부관계임을 어필하는 거거든. 제3자가 어찌 따지기도 힘든 관계니까. 괜히 건드려봤자 좋을게 없다고 생각하는거지.
금란: 그렇군요. 나쁜 방법은 아닌거 같습니다.
나: 금란도 곤란할 때는 그냥 부부라고 둘러대. 그쪽이 편하니까.
금란: 네 세환씨.
나: 후후... 그럼... 맘에 드는거 있어?
금란은 찬찬히 진열행거에 걸려있는 옷들을 살펴봤다. 옷 재질을 만져보기도 하고 자기 몸에 대보기도 하다가 이윽고 상하의 한세트를 손에 들었다.
금란: 이걸로... 할께요...
나: 오케이. 혹시 이거 얼마에요?
점원: 상하의 세트 제품이라 5만7천원입니다 고객님.
가격을 들은 금란은 내 귓가에 작게 소근거렸다.
금란: 비싼건가요? 물건 살때는 매번 참치로만 계산해서...
나: 요즘 스포츠웨어 나오는거에 비하면 저렴한거야. 돈걱정은 안해도 돼. 후훗. 참치라니. 나중에 마트가서 참치 한바가지 사주면 까무러치겠는걸~
금란: ......감사합니다 세환..씨...그치만 너무 웃지는 말아주세요. 아직 저는 이 세계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나: 알았어~ 아 맞다. 신발도 사야하잖아? 저기 혹시 런닝화는 어떤거 있나요?
점원: 런닝화는 이쪽입니다 고객님. 발사이즈가 얼마신가요?
금란: 발사이즈요? 사이즈가...
점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줄자 갖고 오겠습니다.
점원은 곧바로 카운터 서랍에서 줄자를 갖고 와 금란 발사이즈를 제기 시작했다.
점원: 240mm네요. 발 볼은 그렇게 넓지 않아서 그냥 이쪽 진열대 제품 중 고르시면 되겠어요.
금란: 아..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금란은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맘에 드는 신발 하나를 골랐다.
금란: 세환씨... 이거...
나: 아, 그걸로? 블랙에 핑크라. 어울리네. 이걸로 하자. 혹시 이건 얼마에요?
점원: 네 그건 4만3천원 입니다~
나: 아까 그 옷이랑 같이 계산할께요.
점원: 네.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트레이닝복 세트랑 런닝화 합쳐서 10만원입니다. 할인 포인트 같은건 없으신가요?
나: 네 없어요. 그냥 카드결제할께요.
점원: 할부 몇 개월 해드릴까요?
나: 2개월 해주세요.
점원: 네. 결제되었구요. 여기 쇼핑백에 넣어드렸어요.
나: 아,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점원: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나와 금란은 구입한 옷을 들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일단 금란의 한복인지 모를 옷에서 방금 산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병원에 가야 하니까.
금란: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안해주셔도 되는데...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금란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 고마워 할 것 까지는. 내가 해야 할 일인데 뭘.
금란: 제가 어디까지 신세를 져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나: 앞으로도 감 잡지 말고 그냥 신세 편히 지면 돼.
금란: ......거듭... 감사합니다.
나: 후훗. 아무튼 집에 들어가서 얼른 갈아입고 병원가야지. 정말로 온전한 인간이 된건지 확인해봐야 하니...
금란: 네...
그렇게 집에 들어가고 몇 분 뒤.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금란의 변화를 알아낼 본격적인 일정에 착수하게 되었다.
이건 이거대로 ntr이라 봐야되려나요. 인게임 사령관과는 별개 인물로 인식되니ㅎㅎ
주인공의 의지 -> 주인공의 손가락 화면터치 -> 주인공의 아바타나 다름없는 라오 사령관의 말.... 금란은 과연 이 상황을 어찌 납득할지 저도 궁금해집니다 ㅎㅎ
그래도 ㅈ간이 아닌 선량한 사람이라 다행이려나요. 거짓말로 속이고 가스라이팅하면서 노예로 만드는 짓은 안하니. 현대 사회에 잘 적응하는거부터 우선이겠죠.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 있을지도 문제지만.
생각해보니 ㅈ간 관련 소재로 진짜 괜찮겠네요. 현실로 넘어와 인간이 되면서 바이오로이드 특유의 인간에 대한 복종은 안하게됬지만 그만큼 신체능력이 약화됬고, 현실에서 뭘 하려해도 신분이 없는 불법체류자 신세라 막상 떠나도 할 수 있는게 거의 없고. 만난 인간이 싫어 떠난다해도 그건 그거대로 험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니 ㅈ간 관련으로 시달릴 가능성도...ㄷㄷ
보다보니 생각난건데 흑츙이나 모모가 이 작품의 금란처럼 넘어온다면 어떻게 반응할지도 궁금해집니다
참치가 화폐인 곳에서 왔으니 명절 참치선물을 누구보다 좋아할 거 같은 금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