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 중 가장 먼저 군문에 입대한 유빈이는, 얌전하고 고상해보이는 분위기와 다르게 역동적인 스포츠를 좋아했다.
겉보기와 다르게 몸을 쓰거나 과격한 스포츠라면 라인하르트 못지 않게 좋아했으며, 형제들 중 그 어느 누가 몸매 안 좋은 소릴 듣고 있겠냐마는 유빈이는 그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피지컬이 뛰어났다.
물론 슈퍼솔져 아빠랑, 덴세츠 출신의 여배우이자 오르카 머슬퀸 대회 최다 챔피언인 어머니로부터 빼어난 유전자를 받았음을 감안해야겠지만 말이다.
유빈이는 오르카 내의 아메리칸 풋볼팀인 “네이발 스트라이커즈(해군 출신들로 구성된 오르카 미식 축구팀. 라이벌 팀으로는 육군의 아미 블랙나이츠가 있다.)” 의 쿼터백 제1후보였으며, 종합격투기를 즐겨하고, 이따금씩 트라이애슬론 경기에도 나갈 정도로 범생이 헬창인 삼남 라인하르트에게 가려진 숨은 스포츠맨이었으며, 라인하르트와 함께 형제들 사이에서도 3대 3000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인물들 중 한 명이었다. 그게 가능한 다른 형제들은 요환이, 카를 정도.
그런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좋아하는 유빈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단언컨대 아웃도어 스포츠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웃도어 스포츠 그 자체가 종목인 것은 아니고, 실외에서 하는 모든 스포츠 활동을 아웃도어 스포츠라고 칭하는 것이긴 하다만, 유빈이는 이따금 이런식으로 기지를 나와 폐허가 되어버린 멸망 전의 도시를 홀로 탐색하는 것을 즐겼다.
철충을 박멸하였지만 재건의 손길은 아직 닿지는 않은 곳. 그렇기에 구 인류가 남겨놓은 유산들이 찾아보면 많이 남아있으며, 아직도 저항군의 수 많은 탐색 부대가 재건의 손길이 닿지 않은 멸망 전의 인류의 도심을 향해 자원 탐색을 나서곤 하였다. 유빈이의 경우도 말이 아웃도어 스포츠지, 사실상 1인 자원 탐색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철충이 박멸되었다 하더라도, 혹시라도 있을 만일의 위험 상황을 대비하여 개인방어화기는 당연히 챙기고 다녔다.
유빈이가 이렇게 혼자서 자원 탐색을 다니는 이유는 종종 신기한 멸망 전의 물건들을 손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원 탐색 부대의 경우에는 할당된 자원이 아니면 챙겨갈 수 없기에 유빈이는 자원 탐색 만큼은 이렇게 홀로 다니는 것을 더욱 선호했다. 그걸 아웃도어 스포츠라고 적당히 포장해서 말하는 것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인류가 멸망한 후의 스산한 폐허를 돌아다닌다니, 실로 스릴감 넘치는 스포츠가 아닐 수 없었다. 작은 엄마나 우 만큼은 아니지만 엄마가 덴세츠의 대마왕이었던지라, 유빈이도 은근히 덕후 기질이 있었기에 이런 식으로 혼자 탐색을 다니면서 가지고 싶은 물건들을 찾는 편이었다.
사실은 오히려 어렸을 땐 우보다 유빈이가 더 덕후기질이 심했다.
“발매일이 연합전쟁 이전인 특촬물 시리즈가 아직도 남아있다니...”
“거기다가 발매사가 덴세츠 엔터테인먼트 일본지사가 아니라 한국지사라니, 그럼 이것도 엄마가 나온 작품이겠지?”
“이거 엄마랑 작은 엄마 가져다 주면 좋아하시려나?”
유빈이는 멸망 전 오타쿠들의 성지라고도 불렸던 아키하바라의 한 상가건물에서 발매일이 제1차 연합전쟁 이전인 특촬물 시리즈의 DVD를 챙길 수 있었다. DVD는 다름 아닌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백토 시리즈. 그것도 무려 독립 법인이 나뉘어져 있었던 덴세츠 엔터테인먼트 한국 지사에서 촬영된 마법소녀 시리즈였다.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탓에 겉표지가 많이 헤졌지만, 분명 DVD의 표지에는 뽀끄루 대마왕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유빈이는 단번에 표지 속 뽀끄루 대마왕의 배우가 자신의 엄마인 규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수 많은 마법소녀 시리즈 물들을 봤었지만, 그 중에서 직접 자신의 엄마가 배우로 나왔던 작품을 본 것은 몇 안 된다.
심지어 대부분 인권을 박탈당한 연합전쟁 이후에 촬영된 작품들이고, 그 이전의 작품들은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남아있는 자료도 없기에 그냥 못 보고 마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찾으니깐 보통 운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마 우도 좋아할 테지.
아, 골타리온 삼촌도 좋아하겠네.
“이 다음에는... 어디를 가볼까...?”
유빈이는 상가 건물에서 찾은 마법소녀 DVD를 가방안에 넣고, 이번엔 다음 탐색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가는 곳마다 마법소녀 시리즈 판넬이 걸려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멸망 전에 마법소녀 시리즈가 인기가 많았던 작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가는 곳마다 유독 뽀끄루 대마왕의 판넬과 굿즈가 잔뜩 있는 것을 보면, 역시 마법소녀의 진짜 주인공은 모모나 백토가 아니라 뽀끄루 대마왕이었음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당연히 오타쿠들에게 말이다. 하기사 키 크고 육감적인데다 노출도 높은 마왕님이니, 누가 싫어하겠나.
아키하바라 거리의 다른 상가 건물로 들어간 유빈이는 마법소녀 시리즈 뿐만 아니라 다른 덴세츠 엔터테인먼트의 멸망 전 작품 DVD를 찾아낼 수 있었다.
제로와 카엔 주연의 <대전란 ~ 시들어버린 무로마치의 꽃 ~ >, 우의 유모이자 지금은 아내인 송나빈 대장(진)님이 주연으로 나오던 시리즈, 요환이의 엄마인 다미 이모가 주인공인 <가면라이더 – 클로버 에이스>, 샬럿 이모와 아르망 이모가 주인공인 <샬럿 로망스>까지. 의외로 오르카엔 없는 시리즈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근데 <전국 블레이드>라니, 이건 대체 무슨 작품이지?
오르카의 엄마, 유모, 이모, 누나들이 출연하는 작품들을 살펴보며 감탄하던 유빈이는 어느새 공연 라이브 실황 DVD코너로 넘어왔다.
애니메이션과 특촬물 시리즈의 DVD들이 한 가득 있던 앞전 코너와 다르게, 여기는 연극, 뮤지컬, 가수나 밴드 공연의 라이브 실황을 녹화한 DVD들이 모여있는 코너였다.
그 곳에서 유빈이는 비교적 건전하게 표지가 남아있는 DVD를 하나 집어 들었다.
“뭐야 이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한국 공연 00주년 기념 라이브 실황>...?”
“크리스틴 다에 역의 복규리...?”
“와, 우리 엄마 뮤지컬도 했었다는 게 사실이었구나. 이 이름을 이 때부터 쓰셨었나보네.”
“덴세츠 작품 말고 다른 작품에서 나오는 엄마랑 이모들이라. 혹시 다른 거 또 없나? 나빈이 이모도 멸망 전에 뮤지컬 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 이건가? <엘리자벳 한국 공연 00주년 기념 라이브 실황>.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 역할의 송나빈.”
“나빈이 이모 이 때는 엄청 청순하셨었네. 이것도 우 가져다주면 좋아하려나?”
제1차 연합전쟁 이전에 바이오로이드들이 인간이던 시절에는 바이오로이드 배우들도 다양한 작품에 등장하곤 하였다. 태어난 목적 자체는 배역으로서 태어난 건 맞으나, 어디까지나 배우로서 태어난 것이지, 배역 그 자체로서 태어난 것이 아니니깐. 그래서 해당 작품이 끝나면 곧 바로 다른 작품으로 넘어가 얼굴을 비추는 배우들이 많았다. 엄마인 규리는 말할 것도 없고, 바니 슬레이어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태어났던 나빈이 이모도 바니 슬레이어 시리즈 촬영이 끝나자마자 곧장 드라마랑 영화 촬영에 뛰어들었으며, 이렇게 뮤지컬 무대에 오르기도 하였다.
막상 생각해보니, 유빈이는 엄마랑 나빈이 이모가 나온 뮤지컬 DVD 실황을 보며, 문득 가창력으론 누가 더 뛰어날까 궁금해졌다. 두 사람 모두 멸망 전에 뮤지컬 무대에 올랐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두 사람이 같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깐.
그런 궁금증을 뒤로 한 채 코너를 나가려는 순간, 또 다른 공연 실황 DVD가 유빈이의 시선을 끌었다.
“이건 또 뭐지?”
“<다카라즈카 가극단 창단 00주년 기념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공연 실황>...?”
“오스칼 역의...”
“... 사라카엘?”
“...”
“... 아니겠지.”
“...”
“... 혹시 모르니 가져가서 나중에 한 번 물어봐야겠다.”
사라카엘이라니.
설마 피에트로의 엄마 그 사라카엘은 아니겠지, 생각하며 유빈이는 1인 탐색에서 찾은 DVD들을 가방안에 차곡차곡 넣고 정리하여 상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이만하고 돌아가야겠다.”
“운동은 돌아가는 길에 유산소 한 셈 치고, 내일 새벽 첫 비행기로 집에 가서 한 번 풀어봐야지.”
원하는 것들을 만족스럽게 찾았으니, 이젠 기지로 돌아가서 피로를 풀고 내일 첫 비행기로 부산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 먹은 유빈이었다.
새해의 겨울이다보니 ·해가 짧아져서 어느새 도쿄의 해는 저물어 가고 있었다. 만약 쉬지 않고 걷는다면 자신의 BOQ가 있는 태평양함대사령부 제7함대 기지까지는 두 시간 정도면 충분할 터. 가는 길이 멀기 때문에 유빈이는 옆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뚜껑을 따고 수분을 보충하였다.
“푸하~!”
“수분도 보충했겠다. 자, 어디 한 번 이제 슬슬 출발해볼까?”
그렇게 다짐하며 물병의 뚜껑을 닫으려던 찰나, 실수로 손이 미끄러져 바닥에 뚜껑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어???”
“아이씨 저거 어디까지 굴러가???”
하필 뚜껑이 원반형이었던지라 땅으로 떨어진 뚜껑은 금새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또 어렸을 때 모모 이모한테서 받았던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백토 굿즈 물병이라 아끼는 물병인지라, 뚜껑이 없으면 물병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유빈이는 허겁지겁 굴러가는 물병 뚜껑을 쫓아갔다.
“좀 멈춰라, 좀...!!!”
“... 아오, 잡았다!!!”
“후우... 엄청 빨리도 굴러가네.”
“... 음?”
물병의 뚜껑을 잡고 멈춰선 유빈이의 눈 앞에, 어떤 건물의 간판 문귀가 들어왔다.
“아키하바라 역... 시티가드 무인... 파출소...?”
“... 무인 파출소? 램파트나 펍헤드 같은 AGS들이 담당하던 파출소인가?”
기지 숙소로 돌아가려던 유빈이의 눈 앞에 비춰진 폐건물.
아키하바라 역 시티가드 무인 파출소라는 간판이 붙혀진 파출소 건물이었다.
경찰서, 파출소는 들어봤어도 무인 파출소라는 말은 들어본 적 없었기에, 유빈이는 호기심에 반쯤 열려있는 파출소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무인 파출소라니... 그런 거 치고는 일반 시티가드 경찰서 사무실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무인 파출소라는 것이 뭘까? 시티가드 소속이나 AGS들로만 이루어진 파출소를 뜻하는 걸까?
근데 그런 것 치고는 부산시내에서 볼 법한 흔한 시티가드 경찰서 사무실이랑 다를 바 없어보였다.
적어도 사람이 여기서 근무를 하긴 했었다는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기에, 무인 파출소라고 하기에는 뭔가 어폐가 있어보였다.
“엄마랑 아빠는 알려나? 돌아가서 한 번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그냥 다시 기지 숙소로 돌아가려던 찰나, 파출소 사무실 안 쪽 벽에 작지만 눈에 띌 정도의 크기로 UOU라고 적혀있는 문양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UOU? 저건 또 뭐지?”
UOU라고 적혀있는 정체불명의 문양. 벽에 저런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이, 유빈이가 보기에는 본능적으로 위화감이 들었다. 분위기상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멸망 전 펑범한 파출소 사무실에 달력이나 액자나 근무표나 그런 것도 아니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알파벳 문양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 유빈이의 호기심을 더더욱 자극하였다.
“UOU라니, 이게 대체 무슨 뜻이지...?”
- 덜컥!
“앗?!”
“벼, 벽이... 열렀어...?!”
손을 뻗어 벽에 새겨진 문양을 더듬어 보던 유빈의 눈 앞에, UOU라고 새겨진 벽이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필시, 이것은 누군가 일부러 벽 뒤에 공간을 만들고, 벽 앞에 어떤 비밀 장치를 해놓은 것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영화나 만화에서 보면 그런 장면들이 나오는 것을 꽤 많이 봤으니깐, 유빈이는 알 수 있었다. 홀로 자원 탐색 도중 찾은 이 비밀스러운 공간은, 유빈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여 유빈이는 개인방어화기로 들고있던 SIG M7 소총의 조정간을 안전에서 단발로 놓고, 열려진 벽 뒤로 조심스럽게 천천히 들어갔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 속에선 이런 상황에 비밀 공간에 들어갔을 때, 누군가 감금을 목적으로 문을 막아놓는 함정을 파놓는 경우도 있었기에 유빈이는 책상들 중 가장 무거워보이는 것 하나를 가져다가 문이 닫히지 않도록 완전히 막아놓았다.
벽 뒤의 비밀 통로는 어두웠기에, M7 소총에 달린 후레쉬 라이트로 앞을 밝혀 한 발자국 씩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몇 발자국 걷지 않은 유빈이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은 데이터 저장 장치가 한 가득 설치되어있는 서버실이었다.
“서버실이잖아. 거기다가...”
“... 작동하고 있어...?!”
분명히 인류가 멸망하였을 텐데, 이 비밀스러운 공간 안에 발견된 서버실은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었다.
유빈이는 절로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 뭐야, 또 이건?”
“펍헤드랑 램파트...??”
서버실을 둘러보던 유빈이의 눈 앞에는 바닥에 쓰러져있는 펍헤드와 램파트들이 비춰졌다. 유빈이는 그 순간 들고 있던 M7 소총의 총구를 램파트와 펍헤드에게 겨누었지만, 곧 그들 AGS들의 기능이 정지해있었음을 깨닫고 총구를 내렸다.
좀 더 자세히 보니, 이 펍헤드랑 램파트들이 서버실과 케이블로 연결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서버실에 연결된 램파트랑 펍헤드라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거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였다.
시티가드 무인 파출소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양과, 그 문양이 새겨진 벽 뒤에 숨겨진 서버실 공간.
그리고 서버실과 연결된 램파트와 펍헤드들까지.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서버실을 좀 더 살펴보던 유빈이는, 서버실 안 쪽 구석에서 또 다른 뭔가를 발견하였다.
“이건... 뭐지...?”
“마치 VR 게임기기처럼 생겼는데...?”
달걀 모향의 탑승형 VR게임기기처럼 생긴 물건.
그리고 그 위에 적혀있는 문구.
문구 위에 쌓인 먼지를 쓸자 글귀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찾으라, 그러면 발견할 것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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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중 삽화로 사용되는 그림과 사진의 출처는 구글링과 핀터레스트입니다.
멸망 전 바이오로이드가 노예로 종속되기 전 인간이었던 시절.
레모네이드 알파는 해병대 군법무관 출신(소령)입니다. 꽤나 열정적인 법무장교였으며, 이후 전역하고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모티브는 영화 "어 퓨 굿맨"의 데미 무어가 맡았던 갤러웨이 소령입니다.
육군의 미식축구팀 이름. 사실은 하마터면 "아미 타이거즈" 라고 지을 뻔...
아미 타이거즈도 괜찮지않을까요ㅎㅎ
아아아아아 아닌 거 같아오오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