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용산구.
캠프 험프리스, 한미연합군사령부.
“오늘자 결재 서류입니다, 부사령관님.”
“거기 위에 두고 가게.”
“그리고 부사령관님? 방금 전에 2작사령관님에게 연락이 왔는데, 어제 저녁에 수도군단이 동두천과 파주시 집결지에 최종적으로 부대 이동을 완료하였다고 합니다. 2기갑사단도 마찬가지로, 제1스트라이커 여단이 파주시로 무사히 집결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다만 훈련간 부대 이동 과정에서, 합동참모본부의 고은빈 작전본부장이 수도군단의 부대 이동과 관련해서 문제를 제기했다는 모양입니다. 일단은 합참 측에서 원만하게 해결을 한 것 같습니다.”
“고은빈이라...”
“아시는 분이십니까?”
“아, 잘 알지. 성격 지랄 맞기로는 돋보적으로 유명한 년 한 명 있어.”
“하여튼 알았네, 부관. 이만 돌아가보게. 무슨 일 있거든 바로 내게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충성!”
전속부관인 라인하르트는 민하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에게 오전 결재 서류를 가져다주고 연락 받은 내용들을 보고한 뒤 각 잡힌 경례를 하고 부사령관 집무실을 나왔다. 한미연합사부사령관 집무실의 바로 옆에 딸려있는 전속부관실에는 전속부관인 라인하르트 대위와 통역장교인 리처드 대위가 상시 상주를 하는데, 이들의 일은 솔직한 말로다가 아무것도 안 하는게 일이었다.
한미연합군사령부 특성상 부사령관은 직책의 이름만 부사령관이고 실질적으론 한미연합군의 한국측 대표 사령관의 역할을 맡기 때문에 부사단장, 부군단장처럼 결코 한가한 자리가 아니었다. 한미 상호 연합 합동 작전은 주한미군과 작전상 거의 모든 부분의 논의가 필요하고, 특히 미군의 정보 수집을 최대한 빨리 군에 반영한 업데이트를 하는 것이 필수적인 바쁜 자리였다.
이렇다보니 당연히 자연스레 전속부관과 통역장교들이 바빠지는 것이 정상일 터.
하지만 가상현실에 들어오고 민하준 한미연합사부사령관의 전속부관과 통역장교로 배속된 지 사흘 째, 한가하다못해 나른한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부사령관에게 연락이 오면 연결을 해주거나, 결재 서류가 생기면 전달해주는 것 뿐. 그것들 뿐이었다. 사실 그 마저도 민하준 대장 쪽에서 워낙 일을 혼자서 일사천리로 잘 하는 덕분에 전속부관에게 시킬 건덕지가 없었던 것이었다. 애초에 본인 부터가 부관에게 일을 잘 안 시키려는 타입이기도 하고.
두 아이들은 작은 아버지의 위엄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 진짜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러게, 눈치 보여서라도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거 같은데...”
“그런데 어떻게 일을 한 번도 안 시키시지?”
“그 마저도 거의 그냥 짧은 잔심부름 정도고.”
“작은 아버지, 오르카에서도 그렇게 일 하기 싫어하시면서, 정작 여기서는 엄청 열심히 하시네. 그러면서 맨날 전역시켜달라고 하시고...”
“그게 아니야, 리히터.”
“응?”
“작은 아버지는 그냥 자기 할 일 다 끝내시고 나니 정말 더 이상 할 게 없어서 땡깡 부리시는 것 뿐이야.”
“그 외 있잖아, 만렙 다 찍어놓고 컨텐츠 없다고 욕하는 유저.”
“아아아~...”
그렇게 비유를 하니 작은 아버지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인류가 멸망하기 전 제1차 연합전쟁 시절엔 아버지 벨리코프와 함께 더불어서 NATO군을 지휘했던 3인의 원수들 중 한 명이었고, 그러다가 인류가 멸망한 지금까지 살아남아 지금 오르카 인류 저항군에선 큰아버지 라자르와 함께 셋이서 오르카 인류 저항군의 최선임 지휘관 주축 3인을 이루어 저항군을 지휘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군인의 최정점의 최정점을 찍은 사람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한가롭게 있어도 되나 싶었다. 가상현실이라고 게임 속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이렇게 한가로히 느긋하게 시간을 뻐기고 있는 것 만으로 과연 게임이 클리어가 될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이렇게 시간만 주구장창 흘러가다가 그냥 아무것도 클리어하지 못하고 접속 종료를 하면 그건 그거대로 기분이 찜찜할 것 같았다.
그 때, 라인하르트는 순간 달력의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 야, 리처드.”
“응? 왜?”
“오늘... 그 날 이지 않냐?”
“그 날이 뭔ㄷ...”
“어, 설마...?!”
리처드와 라인하르트는 달력의 날짜를 보고 그제서야 자신들이 이렇게 한가롭게 노닥거릴 시간이 없음을 깨달았다.
가상현실이 바깥 현실과 시간이 동일하게 흘러간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지, 가상현실 속 날짜가 오늘이라는 사실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 때였다.
- ♬♩♪~ ♬♩♪~ ♬♩♪~
“여, 여보세요?”
- “아, 리히터야? 나 유빈이!”
“형이야?!”
“뭐야, 유빈이야?”
- “너네 지금 서울이랬지? 대한민국 국방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국방부가 아니고 한미연합사에서 그 작은 아버지 전속부관이랑 통역장교로 들어왔거든, 우리는...”
“무슨 일이야?”
- “잘 들어, 키리시마 총리랑 은하수 쿠데타 사이의 연관점을 찾아냈어.”
“은하수랑 키리시마 총리 사이의 연관점이라고?”
“그러고보니 육군참모총장이 어제 일본에 갔었지??”
- “그 육군참모총장이 오늘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거야.”
- “나랑 피에트로가 하토모리 전 총리의 집에서 키리시마 총리가 자위대를 움직여서 은하수 쿠데타를 지원하고, 향후 한반도를 일본과 합병하려는 계획이 담긴 문건을 찾아냈어.”
- “키리시마가 원하는 건 상임이사국 진출이 아니야, 그건 그냥 보조 목적이고 수단이지.”
“그럼 진짜 원하는 게 뭔데?”
- “일본의 제국화. 그리고 핵무장.”
“뭐?!?!”
- “키리시마 총리는 은하수와 손을 잡고 일본을 상임이사국으로 진출시키면서 동아시아 내의 일본의 영향권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론 핵무장을 해서 일본을 미국과 대등한 국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
- “그리고 때 마침 오늘이...”
12월 중순의 둘 째날.
실제 역사에서도 은하수가 쿠데타를 일으켜 반란군 부대를 서울로 진격하려고 했었던 그 날이었다.
“그럼 육군참모총장이 키리시마 총리랑 비밀 회동을 하고 있다는게...”
- “분명 키리시마 총리랑 은하수 군사반란에 자위대의 협조를 재확인하고, 일본의 핵무장을 한국 측이 도와주려고 하는 것을 재확인하려고 했던 것이었겠지.”
“그래서 제2작전사령부에서 수도군단이 동두천이랑 파주로 부대를 이동시켰을 때, 작전본부장이 그렇게 길이길이 날 뛰었던 거구만...”
“언론에 퍼뜨리는게 낫지 않아??”
- “이걸 이대로 세상에 알리기에는 지금은 타이밍이 너무 안 좋아. 이대로 알렸다간 분명 저 쪽에서 손을 쓰고 무마를 시키려고 할 테니깐.”
- “심지어 우리 어제 밤에 하토모리 전 총리 사망 사건 현장에 갔었다가 경찰한테 영장도 없이 체포당할 뻔 했었어. 이거, 아무래도 키리시마 측에서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거 같아.”
“역사의 거대한 한 장 면에 이렇게 난입을 해버리다니...”
“그래도 최소한 작은 아버지한테는 알려야 하는게 맞다고 봐.”
“무슨 수로 알려드리게? 기자가 알려줬다고 하고 그냥 퉁 치게? 아무리 작은 아버지라고 해도 그렇게 말하면 안 믿으실걸?”
“뭘 어렵게 생각해, 그냥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신 기자 친구라고 대충 둘러대지 뭐.”
“애초에 작은 아버지가 제2작전사령관님에게 부대를 이동시키라고 협조를 한 것도 은하수 녀석들이 괜히 뭔 짓거리를 저지를 까봐 미리 사전에 차단하려고 한 거였잖아. 지금 상황에선 은하수가 뭔 작당 벌이려는 걸 막으려면 이러한 정보라도 필요해.”
- “일단 나랑 피에트로는 오전에 미나토구로 갈거야. 거기에 키리시마 총리가 이사장으로 있었던 학교가 있는데, 그 곳에 키리시마 총리의 딸이 재학중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가서 조사를 좀 하려고.”
“아, 참. 피에트로는 잘 있어?”
- “나 여깄어, 우리 사랑하는 버질~”
“어, 음, 그래. 뭐 잘 있나보네.”
“너 거기서도 나한테 하던 것처럼 유빈이 속 썩히지 말고.”
- “안 그러거든?!”
- “피에트로도 옆에서 활약하고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마.”
“아, 알았어.”
“형, 우리에게 필요할 것 같은 정보를 찾으면 바로바로 좀 보내줄 수 있어? 일단 작은 아버지에게라도 보고는 해야할 것 같아서.”
- “응, 알았어. 상황보고 나중에 다시 연락 줄게.”
“응.”
지금 보니 일본 쪽도 상황이 만만찮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나마 상관 잘 만난 덕분에 어려운 일 없이 몸은 편히 있는 리히터와 리처드와는 달리, 저 쪽은 경찰에게도 잡힐 뻔 하고, 여러모로 몸까지 고생하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키리시마 총리랑 윤도철 육군참모총장과 은하수 조직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것인지, 설명을 들어도 갈피가 안 잡혔다. 허나 확실한 것은, 현대사 시간에 배웠던 키리시마 스캔들과 은하수 쿠데타가 서로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우선 유빈이한테 받은 자료부터 정리를 좀 해 보자.”
“일단 가장 급한 건 자위대가 은하수 쿠데타에 군사지원을 해준다는 건데...”
자위대는 정식 군대가 아니지만, 세계적으론 군대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었다. 엄연히 미군과 한국군과 함께 제3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같이 중공군을 무찌른 집단이었다. 그러니, 만에 하나라도 자위대가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진입하는 반란군 세력과 함께 진압군과 교전이 들어가게 된다면 진압군 측의 출혈이 상당할 것이다. 반란군 세력 부대와 자위대가 연합하여 서울을 침공한다니, 참으로 끔찍한 발상이었다.
물론 자위대가 한반도에 상륙하기도 전에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막아서겠지만, 만약 자위대가 작정하고 미군과의 교전마저도 불사항전하겠다고 한다면, 그 땐 이야기가 달라진다. 양자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동북아시아의 수 억만의 국민들의 목숨이 크게 위협을 받고야 말 것이다. 더군다나 작은 아버지께서 어제 브래들리 한미연합사령관과 이야기 한 것을 들어보면 어느 정도 미군의 개입을 염두를 하시는 모양새이기도 했고.
제4차 세계대전이 어렵지 않게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 리처드와 라인하르트는 절로 소름이 돋았다.
그 때였다.
- 달칵
“응?”
“어?”
“추, 충성!!!!”
라인하르트와 리처드가 유빈이와 피에트로로부터 건네받은 자료들을 추합하는 사이, 한미연합사부사령관의 전속부관실의 문이 열리고, 검은색 정복을 잘 차려입은 검은 머리의 단아한 미모를 가진 해군 장교가 들어왔다. 라인하르트와 리처드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소리없이 전속부관실로 들어온 해군 장교의 옷소매에 새겨진 두 줄의 수장을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경례를 해보였다.
큰 금장 한 줄과 작은 금장 한 줄은 해군에서 투스타, 소장을 가리키는 계급이었기 때문이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절도있게 경례를 하는 두 젊은 대위를 보며, 전속부관실을 찾아들어온 해군 소장은 경례를 받아주기는커녕 무표정으로 둘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하고 웃더니 이내 소리를 내어 웃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갑자기 웃어보이는 해군 제독의 모습에, 라인하르트와 리처드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하하하하~!!”
“어... 어어...?”
“뭐야, 둘이 왜 그렇게 긴장을 하고 있어? 리히터, 너 설마 유모 얼굴도 못알아 본 거야??”
“나야, 나. 시라유리.”
“아...?”
“아아아아?!?!?!”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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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중 삽화로 사용되는 그림과 사진의 출처는 구글링과 핀터레스트입니다.
연참입니당.
오르카 인류 저항군의 시라유리도 닥터가 명목상 기술 대령인 것처럼, 명목상 해군 소장 계급을 가지고 있습니다.
080기관도 엄연히 군 첩보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연참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