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고 답답스러운 가슴을 품에 안고, 차고에서 나와 수영로로 진입하자마자 스로틀을 거세게 당긴다. 1800cc 배기량과 최대 5,500RPM의 출력을 가진 혼다 골드윙 특유의 야수의 하울링을 연상케 하는 배기음을 뿜어내며, 유빈이는 광안리에서 불어오는 짜가운 바닷 바람을 맞으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교차로를 한 서너 개를 지나고, 왼 편으로 함대전력사령부 군항 부지를 끼며 고가대교를 한 다섯 개를 지나 부산과 진해의 경계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잇는 다리인 가덕대교로 진입한다. 여기서부턴 차가 없으니 스토틀을 좀 더 당겨 속도를 올려보았다. RPM이 올라가고 토크가 용솟음치며 속도가 점점 80, 90, 100을 넘어간다.
불어오는 맞바람을 맞으며 속도를 더 올리기 위해 스로틀을 틀어보자.
집에서 나오기까지 응어리찼던 마음이 이 순간 만큼은 바람에 휘날려 훨훨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좋아, 느낌 탄 김에 여기서 속력을 더 높혀볼까?
- 왜애애애~앵!!!!
“응?”
“후, 후우-!”
“아! 아! 거기 앞에 가는 바이크! 갓길에 바이크 세웁니다!!! 두 번 경고 안 합니다!!!”
“앞에 가는 바이크!!!!”
“당장 갓길에 차 안 세워?!?!?!?!?!?!?!?!”
“?!?!?!?!”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 사이드 미러를 보니 유빈이의 뒤를 검은색의 커다란 SUV형 경찰차 한 대가 사이렌 경적과 불빛을 번쩍번쩍 내면서 대단히 위협적으로 추격해오고 있었다.
... 아니다. 그것은 경찰차가 아니었다.
자신의 애마 1호인 에스컬레이드 ESV의 천장에 시티가드 순찰차용 휴대용 경광등과 사이렌을 멋대로 부착하고 자신의 뒤를 보란듯이 맹렬하게 바짝 뒤쫓아오고 있는, 자신의 아내이자 자비의 여신 리앤이었다. 아니 내 차 키는 또 언제 챙겨서 쫓아온거야? 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보다도 직업 정신 한껏 발휘하여 확성기로 고함을 있는 힘껏 지르면서 쫓아오는 리앤이 훨씬 더 무섭게 느껴졌다.
왜 그녀의 이명이 하필 자비로운이었을까? 범죄 용의자들의 죄를 자비롭게 구제하여 줘서? 아니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설마 그럴 리가? 사실은 범죄자들이 제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서 자비로운 리앤이라는 이명이 붙은게 아니었을까? 그러지 않고서야, 내 아내가, 저렇게까지, 눈에 쌍심지를 키고, 고함까지 질러대며, 사이렌은 있는 힘껏 틀어제끼면서 나를 맹추격해올 리가 없었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그러니깐 여기선 우선 갓길에 세우는게 맞는데...
... 그만 스로틀을 더 당겨버리고 말았다.
- 쿠우우우우우웅~!!!!
“어어????”
“야, 야!!!!!!!!!!!!!!!!!!!!!! 거기 안 세워?!?!?!??!?!?!??!?!?!??!?!?!??!?!?!?”
“아, 아니 갑자기 왜 저렇게 화났어...?!”
-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앙!!!!
- 왜애애애앵!!!! 왜애애애애애애애앵~!!!!
그렇게 유빈은 순간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가덕대교 한 복판에서 마누라랑 광란의 추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내가 저거 탈 때는 몰랐지, 저게 멸망 전에는 국가원수들의 경호용 차량이었다는 것을. 저 크고 우람한 차가 경광등달고 사이렌 소리 무진장 울려재끼면서 뒤에서 쫓아오니 공포도 이런 공포가 따로 없었다. 필시, 이건 경찰영화이기 이전에 사람 한 명쯤은 죽는 슬래셔 무비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속도를 낮출까 하여 슬쩍 사이드 미러를 보니, 한 손엔 운전대, 몸은 반쯤 차창 밖으로 나와서 주먹을 쥐며 쫓아오는 리앤이 비춰짐을 볼 수 있었다.
저 주먹은 금방이라도 날 잡아다가 족칠 기세였고, 입은 역시나 그 자비로운 리앤 답게 굉장히 자비로운 언어로 자신을 자비롭게 부르고 있었다.
“왓슨-!!!!”
“유빈-!!!!!!!”
“여보-!!!!!!!!!!!!!”
“남편-!!!!!!!!!!!!!!!!!!!!!!!!!!”
“야이 빗자루 새끼야!!!!!!!!!!!!!!!!!!!!! 너 거기 안 멈춰?!?!?!?!?!?!?!?!?!?!?!?!?!?!?!?!?!?!?!”
“으으으...!!!!”
... 이거 아무래도 오늘 밤 집에 돌아가기전에 할아버지 얼굴부터 먼저 보게 생겼다.
자비의 여신이시여, 그 풍만한 자비를 빌어 제게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아니지,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최씨 가문 장손 최유빈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얼굴을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니다, 이 경우엔 벨리코프 가문이라고 그래야 하나?
그러면 안녕하세요, 친할아버지. 장손자 조너선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저도.
아니 왜 하필 아빠는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성을 둘 다 가져다 써서 이름을 두 개씩이나 들고 다녀서는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거야, 도대체...
* * *
광란의 추격전은 유빈이 먼저 가덕도 휴게소로 진입하고 나서야 끝이 날 수 있었다.
“하아... 하아...”
“허억... 허억...”
바다 위에 세워진 드넓은 주차장에서 서로가 거리 30미터 정도를 벌리고 대치하고 있을 때, 먼저 말문을 연 것은 리앤 쪽이었다.
“왓슨!!!!”
“으읏!!!!”
“너 거기 꼼짝말고 있어!!! 너 여기서 어디 도망갈 생각 하기만 해봐, 진짜!!!!”
“내가 그대로 달려가서 천선항 앞 바다로 확-! 하고 던져버릴 테니깐!!!!”
“아, 아, 알겠습니다!!!!”
한적한 휴게소에서 모두가 숨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차에서 내린 리앤이 주차장을 건너 유빈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 저벅! 저벅!! 저벅!!!
아, 일단 오늘 밤에 집에 두 발로 걸어들어가긴 글렀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내가 지금 무슨 저지레를 한 거지 하며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생각해봤다.
왜 멋대로 나랑 상의도 없이 아버지 마음대로 날 대뜸 대위 2년차에서 소령으로 진급시키신 거냐? 하면서 식사 자리에서 물은게 문제의 시초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직 저항군은, 그러니깐 연방은 아직 전시 상황이니깐 필요한 사람들을 모아다가 전시 진급으로 일찍 진급시켰을 뿐이고, 너도 그 중에 포함되어있었을 뿐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럼 이번에는 왜 나를 아버지의 전속부관으로 인사이동을 시켰느냐 물었다.
아버지는 그제서야 내의 앞에서 이실직고를 하셨지. 아들을 전장에서 잃을 수는 없다라시면서. 그럼 주위에서 나를 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어떻겠느냐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봐온 아버지는 이런 분이 아니셨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오히려 이게 당신의 제 진짜 모습인냥 말씀을 해주셨다. 어깨 위의 별, 옷 소매의 금 수장, 4성 제독이란 자리는 마냥 군인으로서의 능력만 좋다고 해서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그러니 차라리 이 기회에 아버지 옆에서 실무도 한 번 배워보는게 어떻느냐 오히려 내게 되물었었다.
가당찮은 소리 같아 언성을 높이려 할 즈음에 엄마가 말했다, 엄마들이랑 이모들 모두가 다 동의를 했던 부분이었다고.
인류가 멸망하고 태어난 자손들인 자신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인류 재건을 이어나가야 할 재목이지 않느냐며 날 어르듯 말씀하시며, 만약에라도 전쟁이 터져서 전쟁에 참전한다 쳤을 때, 숙소에 혼자 남겨질 아내를 생각해보긴 했느냐 물었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사실 할 말은 없다. 아니, 부모로서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 어떻게 모를 리가 있겠나. 그런데 그럴 마음이 있어서 그랬다면, 최소랑 그 전에 나랑 상의라도 해주면 좋았을 거늘.
이제야 이 복잡답답한 감정이 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 포옥~!...
“리, 리앤...”
“왓슨...”
아쉬움이었다.
부모를 향한, 자식이 가지는 아쉬움의 마음.
이랬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그런 시원섭섭한 마음.
거기까지 결론에 도달했을 때, 리앤은 가상현실에서처럼, 그리고 가상현실에서 나왔던 것처럼, 제 품에 포옥-! 하고 껴 안겼다.
그러더니 이내 수갑처럼 자신을 꽉 놓아주지 않은 채로 제 가슴 팍에서 얼굴만 쏙 올려서 자신을 바라보곤 제 남편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마누라 고생 시킬거야, 정말? 내가 너 뒤쫓아서 얼마나 달려왔는지 알기나 해??”
“고, 공권력은 그럴 때 쓰라고 있는게 아닐 텐ㄷ...”
“시끄러!!!!”
“네, 넵...”
“말이 나와서 그런데...”
“지금 남편 앞으로 딱지 뗄 것만 벌써 세 개 이상이야, 알아?!”
“속도 제한 구역에서 과속했지!! 헬멧도 안 쓰고 운전했지!!!”
“경찰 대응에 불응했지!!!!”
“아니 그러니깐 그건 정식 공무 집행 중이 아니었잖...”
“내가 공무 집행 중이라 하면 공무 집행 중인거야, 알았어?!?!”
“아...”
“네, 넵... 알겠습니다...”
그러더니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더니, 진짜로 교통딱지 세 장을 꺼내서는 유빈이의 바이크에 다가가 따다닥-! 하고 붙혀버렸다.
“아, 그, 그거 그렇게 붙혀버리면?!?!”
“뭐??? 불만이야????”
“아... 아닙니다...”
“하... 나중에 떼기 힘든데 저거...”
“벌이야, 벌. 아주.”
“내가 진짜 면허 취소시키고 옆에다 두고 운전 연수 처음부터 다시 시킬 줄 알아라.”
“넵...”
“하아... 너무 멀리 와버린 거 같아.”
“날이 차다. 기왕 여기까지 나온 거, 휴게소까지 왔는데 뭐 따뜻한거라도 마실래?”
“... 나 아무것도 안 챙기고 나왔는데.”
“나 지갑 챙겨왔으니깐 괜찮아. 내가 사줄게.”
“뭐 마실래?”
“그럼...”
- 꼬르르르륵~...
“아...”
“...”
“... 하이고~ 남편아...~ 남편아...~ 그렇게 지 감정 주체 못하고 냅다 쏘다니니깐 배가 고프지!”
“애초에 아까 옆에서 보는데 몇 숟갈 뜨지도 않았더만...”
타박을 안 받을래야 안 받을수가 있나.
집에서 몇 숟갈 뜨지도 못한 채, 자기 감정을 어이하지 못하여 그대로 집을 나와버렸기에 사실상 그는 저녁을 굶은 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다행이 휴게소 푸드코트는 아직도 영업 시간이었다. 리앤은 쫄쫄 굶은 제 남편의 손 붙잡고 휴게소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따뜻한 밥 한 끼를 사 멕였다.
뒤늦게 배가 고프다는 것을 인지한 것인지, 유빈은 경양식 돈가스가 나오기 무섭게 나이프로 채 썰지도 않고 포크로 냅다 큼지막한 돈가스를 찍어서 먹기 시작했다.
“아 천천히 먹어, 체할라...”
“우물... 우물... 음...”
“왓슨, 돌아가면 아버님, 어머님한테 죄송하다 말씀드려. 아버님께서 왓슨 앞 길 막으려고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니시잖아.”
“아버님 방법이 잘못된 건... 나도 동의해. 원래라도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사실. 그런데 아버님, 어머님 말씀대로 왓슨이나 다른 형제들 모두 아버님, 숙부님들 뒤를 이어서 인류 재건을 이어나가야 할 재목이기도 하고.”
“그건 왓슨도 이해를 한다며.”
“...”
“... 무엇보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제 자식 전장 나가는 걸 보고 걱정을 안해? 멸망 전에도 제 자식 군대 안 보내려고 기를 쓰던 부모들이 얼마나 수두룩했는지 알아?”
“... 근데 왓슨은 직접 제 발로 들어가서 입대를 했잖아.”
“아마 아버님이나 어머님이나... 두 분 다 왓슨을 기특해하면서도, 또 안타까워 하시고 계실거야. 아버님께서도 그러셨다면서. 누구도 너더러 군에 들어가라고 강요한 적 없다고. 그저 왓슨은 아버님 모습 하나만 보고 아버님 동경해서 군에 들어간거였잖아.”
“왓ㅅ... 아니...”
“여보...”
“나도 솔직히 우리 남편이 안전하게 뒤에서 근무했음 좋겠어. 내 욕심이지만...”
“... 넌 어떻게 생각해?”
“어떤 거? 지금 이 상황 전부?”
“뭐... 상황도 그렇고...”
“아버지 행동을 어떻게 생각해? 지극히 리앤의 개인적인 입장에서.”
“그렇게 물어보면 난 사실 할 말 없어. 왠지 알아?”
“아버님은 법을 어기신 게 아니시거든.”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거야?”
“응. 사실이니깐.”
“물론 도의적인 잘못은 분명히 있지. 그런데 그걸 경찰이 뭘 어떻게 할 수는 없어.”
“하지만 내 자리는 누군가 노력해서 가려고 했었던 자리일 수도 있었어.”
“그렇게 생각하면 진짜 한도 끝도 없어. 하지만 자리는 계속 만들어질거고, 왓슨은 단지 그 자리를 좀 특별하게 빨리 올라갔다 생각하면 돼.”
“그러니깐 그 특별하게 대우 받는게 싫다고.”
“어쩔 수 없잖아! 아까 본인 입으로 아버지들 뒤를 이어서 인류 재건을 이어나가야 할 재목이라는 걸 이해한다면서!”
“근데 그렇게 나오면 도대체 왓슨 기분을 누가 어느 장단에 어떻게 맞쳐줘야 한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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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중 삽화로 사용되는 그림과 사진의 출처는 구글링과 핀터레스트입니다.
에이다: 마음이 불안정한 유기체는 물러나고 유능한 ai에게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휴먼
철-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