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삶의 고가에서 잊혀질까 두렵다
가리봉2동 닭장촌에서 남부순환도로를 넘어 공단으로
가는 길은 그 고가뿐이었다 철근쟁이 어깨마냥 한켠으로
10도쯤 기울어진 계단, 6차선 순환도로 위에서 출렁거리
다 꽈배기처럼 비틀려진 다리, 나도 그 고가르 비틀거리며
수없이 넘었다
그 고가 너머 한 닭장집 지하 끝방에 살았다 보증금 50
에 월세 8만원 바퀴벌레와 쥐벼룩이 혼거하던 방 슈퍼집
외상 장부에 씌어지던 라면과 부탄가스… 여덟 개의 칸막
이 닭장 위에 툭 트인 안방과 마루를 가진 주인 여자는 가
끔씩 방문 앞에 서서 가지 않았다, 월세를 내지 않으려면
너의 젊음을 내놓으라는
그 방에서 때론 네 명이 부침개를 해먹고, 다섯 명이 술
잔을 돌리고, 여섯 명이 자기도 했다 나는 그 지하에서 맑
스와 레닌과 모택동과 호찌민과 중남미혁명사와 한국근현
대사를 월경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을 주유했다 그러다 지치면 살갗이 벗겨지도록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수음을 하곤 했다
아침이면 다시 지하방에서 솟아오른 사람들이 공단으로
피와 땀을 팔기 위해 활기차게 넘던 그 고가, 그 길밖에 없
었던, 젊은 날들을 다 보낸, 지금은 테크노 디지털밸리가
된 굴뚝 공단에 흉물처럼 남아 있는, 나처럼 남아 있는, 나
는 아직도 그 불우하고 불온했던 삶의 고가에서 내가 잊혀
질까 두렵다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창비시선 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