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춥고 무섭다*
우리는 모두 음악가들인데, 술에 거나하게 취해 이
리저리 혀 꼬부라진 말들이 오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음악가 ㅁ과 어딘가 몹시 답답한 인상
을 풍기는, 낯선 사내 하나가 따라 들어오는 것이었다
날씨는 덥고 방은 비좁고 올라오는 취기 속에서 더
이상 선풍기의 바람이 흐르는 땀을 식혀주지 못하는
새벽, 술 취한 목소리로 애교 섞인 노래 한 곡 불러
줄 여자 하나 없이, 우리는 곤드레만드레 취해 빌어
먹을 개1새1끼 호1모 딴따라 계집애 같은 씨1발놈, 그러
고 있는데
구부정한 어깨, 헝클어진 머리, 음악가 ㅁ을 따라
들어온, 어딘가 몹시도 사람을 피곤하게 할 것만 같
은 낯빛의 사내는, 나 시인이오 시인 아무개요, 그러
는 거다 (시인은 무슨 쥐똥같이……) 술 맛이 떨어져
서 우리는 딴청을 피워댔고, 목소리 큰 음악가 ㅈ이
일어나, 어이! 미음, 비읍, 시옷 이 개1새1끼들아 음악
이 장난이냐! 소리치며 건너편에 앉아 있던 음악가
ㅁ을 노려보았고, 시인 아무개는 인상을 구기며 입
을 꾹 다물어버리는 것이었다
담배 연기와 악취, 열기로 방 안은 숨이 막혔고 어
쨌거나 우리는 더 이상 마시기가 싫다! 그러고 있는
데, 한쪽에서 음악과 ㅁ과 사인 아무개가 계속해서
챙 챙 챙 술잔을 부딪쳤고 음악가 ㅂ 역시 그런 음악
가 ㅁ이 못마땅했는지, 씨1발1놈 일찍 일찍 좀 다닐 것
이지, 하며 비틀비틀 일어나 방문을 열어젖혔고, 음
악가 ㄱ이 뒤따라 일어섰고, 음악가 ㅈ이 재킷을 집
어 드는 순간,
어딘가 몹시도 불안해 보이는, 꼬일 대로 꼬여서,
도무지 내 인생 왜 이래? 하는 표정의, 지저분한 턱
수염, 충혈된 눈알의 시인 아무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문짝을 걷어차
며, 다 대가리 박어! 그러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음악가들인데, 지지리 궁상의 끝에서
도무지 쓸쓸하게 취해버렸는데 왜 갑자기 난데없이
나타난 시인 나부랭이가 우리에게 대가리 어쩌고 하
는 것일까,
그때 당황한 음악사 ㅅ이 술상을 엎드려 자고 있던
음악가 ㅇ을 부랴부랴 발로 걷어차며, 야 대가리 박
지 마 일어나 대가리 박지 마, 얼떨결에 헛소리를 해
댔고 시인 아무개 자식은 낄낄거리며, 이 새1끼 봐라
이거 아주 맛이 갔구만, 또 그러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음악가들인데 말이다, 장기 공연을 끝
내고 허탈한 심정으로, 여자 하나 없이 취할 대로 취
해버렸는데, 왜, 뭣 때문에, 간밤에 잠을 설쳐 피곤
해 죽을 지경인데, 대체 왜, 왜!…… 담배 연기와 악
취, 열기에 쉴 새 없이 진땀이 흐르는 이 좁아터진
골방에서, 우리는 아침이 오도록 음악과 시를 섞어야
했는가, 말이다
주먹은 까졌고, 날은 밝았다
* 어어부 밴드의 노래 제목.
황병승
트랙과 들판의 별, 문학과지성 시인선 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