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마을 앞 손바닥만 한 못에서 개헤엄을 치던 여름방학 때
의 어느 날, 동네 형들과 이웃 마을 저수지로 원정을 갔다.
형들이 긴 나뭇가지로 길옆에 난 수풀을 휙휙 치면, 조무
래기들도 따라서 작은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저수지로 가
는 길가에 드문드문 가지밭이 있었다. 형들은 햇빛에 익어
뜨끈뜨끈해진 가지를 베어 물었다. 형들이 “맛있다”고 우
물거리면 조무래기들도 “맛있다”고 조잘거렸다. 형들이 “아,
맛없어” 하며 등 너머로 반쯤 베어 문 가지를 내어 던지
면, 조무래기들도 입에 든 가지를 퉤퉤 소리 내어 내뱉었
다. “아, 맛없어” 우리 입술은 가지 물이 들어 모두 자주색
이 되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걸었을 때, 장성처럼 우뚝
한 짙푸른 둔덕이 나타났다. 형들이 인디언 같은 소리를 내
며 앞장서 뛰자, 조무래기들도 “호이, 호이” 소리치며 따라
뛰었다. 가파른 제방에 올라서니, 학교 운동장보다 몇 배
는 큰 저수지가 땡땡하게 배가 부푼 채 누워 있었다. 그리
고 둔덕 아래서는 들리지 않던 이웃 마을 아이들의 조잘거
리는 소리와 물장구 소리가 돌연 시끌벅적하게 들려왔다.
하늘 높이 옷을 벗어 던진 형들은 물속으로 첨벙첨벙 뛰어
들었고, 조무래기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때, 이 마을에 사
는 4학년 1반 계집애를 봤다. 2주 만에 만난 그 애는 아프
리카 토인처럼 새카맸고, 수영복 대신 입고 있는 면 팬티는
노랗게 민물이 들어 있었다. 우리는 마치 조퇴를 하고 먼
나라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한 것 같았다. 그 애는 나
를 보더니 물속으로 뛰어들어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게
온몸을 감추었고, 나도 그 애를 뒤따라 형들과 조무래기들
이 물싸움을 하고 있는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물
가에서 물장구를 치던 형들이 말했다. “자, 건너자!” 그러
자 모두들 저수지를 건너기 시작했다. 여름방학은 저수지
보다 더 서늘했다. 나는 외톨이가 될세라 동네 형과 조무
래기들이 내놓은 둥그런 물무늬를 따라 헤엄을 쳤다. 저수
지 한복판에 이르자 사위가 조용해지고, 누가 발목을 잡
아당기는 것처럼 수온이 내려갔다. 가지 먹은 신물이 올라
왔다. 나는 그것을 꾹 눌러 삼켰다. 그러면 물귀신이 좋아
서 모여들 거야. 저수지에는 해마다 소년이 빠져 죽는다. 경
박한 라디오 아나운서들은 “수영 미숙으로 인한 익사”라고
떠들어 댄다. 하지만 수영 미숙으로 죽는 소년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슬며시 몸을 뒤집어 봤다. 그것은 한 번도 배
워 보지 않은 동작이었다. 하늘에는 먼저 배영을 배운 구
름 한 점이 둥둥 떠 있었다. 뒤늦게 저수지 건너편에 이르
자 먼저 도착한 형들과 조무래기들이 물가에 앉아 잡담을
하고 있었다. 일찌감치 도착했다는 듯이 나도 슬며시 잡담
속에 끼었다. 그러자 모두들 나를 힐끗 보더니, 이렇게 합
창을 했다. “자, 건너자!” 일순, 여름방학의 온도가 조금 더
내려갔다. 소년은 옷을 벗어 놓은 맞은편 물가를 보면서,
어서 방학이 끝나기를 헤아렸다. 팔다리가 가늘고 새카만
그 애를 한 번만 더 볼 수 있다면…… 그 애와 입맞춤을
하는 상상을 하며, 소년은 알 수 없는 요기를 내뿜는 저수
지에 몸을 내던졌다. 깊고 서늘한 물속에서 보이지 않는 머
리카락이 소년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눈 속의 구조대
장정일, 민음의 시 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