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시 풍으로 쓴 눈의 자서전
한국에서는 나름 유명한 시인이에요, 해외로 전혀 번역이 안 돼 그렇지
―박정대
파리의 한 낡은 아파트 단지에서는 저도 나름 유명한 시인이에요
―알렉시스 베르노
방법서설적으로 눈이 내린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낡은 책의 페이지들은 펄럭이며 글자
들을 음표처럼 튕겨낸다
허공에 흩어지는 글자들을 누군가 소리 내어 읽는다
아래의 구절들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미국의 송어낚
시』중 <영원의 거리에서의 송어낚시> 장章에서 왔다
나는 이 낡은 문장들을 한 글자씩 옮겨 적으며 소리 내
어 읽었다(그대들도 조용히 소리 내어 읽어보라)
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알론조 하겐의 송어낚시 일기
알론조 하겐은 젊었을 때 이상한 병을 앓다가 죽은 그
노파의 남동생 이름인 것 같았다, 그러한 사실은 내가 눈
을 똑바로 뜬 채 그 여자의 방에 진열되어 있는 한 커다란
사진을 본 기억으로부터 추측해낸 것이었다
그 일기장의 다음 페이지를 넘기자, 몇 가지 항목들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여행의 날짜와 놓친 송어들의 숫자
1891년 4월 7일, 놓친 송어의 숫자 8
1891년 4월 15일, 놓친 송어의 숫자 6
1891년 4월 23일, 놓친 송어의 숫자 12
1891년 5월 13일, 놓친 송어의 숫자 15
1891년 5월 24일, 놓친 송어의 숫자 10
1891년 5월 25일, 놓친 송어의 숫자 12
1891년 6월 2일, 놓친 송어의 숫자 18
1891년 6월 6일, 놓친 송어의 숫자 15
1891년 6월 17일, 놓친 송어의 숫자 7
1891년 6월 19일, 놓친 송어의 숫자 10
1891년 6월 23일, 놓친 송어의 숫자 14
1891년 7월 4일, 놓친 송어의 숫자 13
1891년 7월 23일, 놓친 송어의 숫자 11
1891년 8월 10일, 놓친 송어의 숫자 13
1891년 8월 17일, 놓친 송어의 숫자 8
1891년 8월 20일, 놓친 송어의 숫자 12
1891년 8월 29일, 놓친 송어의 숫자 21
1891년 9월 3일, 놓친 송어의 숫자 10
1891년 9월 11일, 놓친 송어의 숫자 7
1891년 9월 19일, 놓친 송어의 숫자 5
1891년 9월 23일, 놓친 송어의 숫자 3
여행의 총 횟수 22번, 놓친 송어의 총계 239
한 번 여행 때 놓친 송어의 평균 마릿수 10.8
나는 세 번째 페이지로 일기장을 넘겼다, 여행 연도가
1892년이고, 알론조 하겐이 24번 여행을 해 총 317마리의
송어를 놓쳤으며, 따라서 한 번 여행할 때마다 평균 13.2
마리의 송어를 놓쳤다는 것만 제외하면, 모든 항목이 앞
페이지와 똑같았다
다음 페이지는 1893년으로 되어 있었다, 그는 33번 여
행을 떠났으며, 총 480마리의 송어를 놓쳤고, 따라서 한
번 여행할 때마다 평균 14.5마리의 송어를 놓친 셈이었다
다음 페이지는 1894년으로 되어 있었다, 그는 27번 여
행을 떠났으며, 총 349마리의 송어를 놓쳤고 따라서 한
번 여행할 때마다 평균 12.9마리의 송어를 놓친 셈이었다
다음 페이지는 1895년으로 되어 있었다, 그는 41번 여
행을 떠났으며, 730마리의 송어를 놓쳤는데, 그건 매번 낚
시를 갈 때마다 평균 17.8마리의 송어를 놓친 셈이었다
다음 페이지는 1896년으로 되어 있었다, 그는 단지 12번
여행을 떠났으며, 총 115마리의 송어를 놓쳤고, 따라서 한
번 여행할 때마다 평균 9.5마리의 송어를 놓친 셈이었다
다음 페이지는 1897년으로 되어 있었다, 그는 딱 한 번
여행을 떠났을 뿐이었으며, 총 한 마리의 송어를 놓친 셈
이었다
그 일기의 마지막 페이지는 1891년에서 1897년까지 7
년 동안에 걸쳐 그가 행한 각 항목의 총계가 나와 있었다,
알론조 하겐은 총 160번 송어낚시를 위한 여행을 떠났으
며, 총 2,231마리의 송어를 놓쳤고, 따라서 한 번 여행할
때마다 평균 13.9마리의 송어를 놓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총계가 적혀 있는 칸의 아래쪽에는, 알론조 하겐이 쓴
미국의 송어낚시를 위한 비문이 적혀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참을 만큼 참았다
7년 동안 낚시를 하러 갔는데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나는 낚싯바늘에 걸린 송어를 전부 놓쳐버렸다
그것들은 펄쩍 뛰어오르거나
또는 몸을 비틀어 빠져나가거나
또는 내 낚싯줄을 끊거나
또는 수면으로 떨어지면서 빠져나가거나
또는 자신의 살점을 떼 내면서 빠져나갔다
나는 송어에 손을 대본 일조차 없다
이러한 좌절과 당혹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는다
놓친 송어의 총계를 생각해볼 때
그것이 매우 흥미로운 실험이었음을
그러나 내년에는 다른 어느 누군가가
또 송어낚시를 하러 가야만 할 것이다
다른 어느 누군가가 그곳으로 가야만
할 것이다
이절에서의 눈송이 낚시가 이와 같을 것이다
짐 자무시 풍으로 쓴 눈의 자서전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다
그리고 낡고 오래된 스피커에서는 여전히 밤새도록
바람 부는 소리가 날 것이다, 그럴지도
대관령 구절, 이절, 그리고
정선, 그중에서
이절의 시인 박정대 형
2022년 12월 10일, 김도연 드림
―김도연,『강원도 마음사전』속지에 쓴 말(도연은 어
느 날 문득 이절 작업실에 들러 책이 나와서라고 한 마디
하고는, 툭 건네주고 갔다)
방법서설적으로 내리던 눈이 이제는 짐 자무시 풍으로
바뀌었다
짐 자무시에스크esque, 짐 자무시에스크, 누군가 자
꾸만 기침을 한다
그럼 이만 총총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
박정대, 달아실시선 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