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눈빛을 가진 청년이 하늘에서 무언갈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들 보기가 많이 힘들어졌어."
"니가 볼 때마다 비가 내리니까 그렇지. 다 건물에 숨어버리잖아."
"하지만.. 난 비인걸.."
청년은 계속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누군가 보고 있을 것이란 생각은 안했던 모양이다.
실제로 그를 지켜보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정체는 하늘의 비.
이 청년은 평소 구름 뒤에 숨어있다가 지상을 향해 고개를 내밀게 되면 지상에는 비가 쏟아졌다.
그는 수많은 시간을 누군가와 이야기 해본 적도 없고 평생토록 혼자였다.
그런 외로운 나날들의 연속.
근래에 들어서 지상의 인간 때문에 매연을 자주 마시게 된다.
청년은 그 매연을 마실때마다 콜록이며 기침을 하게 되었는데 이 때마다 '녹아내리는 비'가 내렸다.
인간들은 지칠 줄 몰랐고 매연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그때마다 청년의 기침은 심해졌고 덩달아 녹아내리는 비의 강도는 강해져만 갔다.
시간이 흐르고 지상의 건물들은 점점 부식된채 식수는 귀해져만 갔다.
하늘 위에 사는 청년의 기침이 일상이 되어갈 때쯤 인류의 대부분이 건물에 나오지 않았다.
지상의 생물들을 구경하는게 유일한 일상이었던 청년은 더더욱 외로워져 갔다.
그렇게 모든 것이 하늘을 마주하지 않는 생활에 익숙해져 갈 무렵.
수세기가 지나버린 그때, 누군가 건물 밖에 나왔다.
그것은 인간은 아니였고 보통 건물에 붙어있는 쇠붙이 같은 것이였다.
청년은 누군가 밖에 나왔다는 사실이 기뻐 날뛰고는 구름 뒤에 숨어서 빼꼼 내다보았다.
쇠붙이인 그것의 등 뒤에는 어린 애들이 쓴 것 처럼 바르지 않은 글씨체로 'ROBOT'이라는 단어가 새겨져있었다.
청년은 화색이 돌았다. 수세기만에 밖 세상에 나온 것의 이름까지 알아버렸으니 말이다.
청년은 만세를 부르며 투명한 눈빛을 더욱 반짝였다.
이후 로봇과 청년은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지 않았지만 친구같은 존재가 되었다.
로봇은 대게 음식 같은 것을 몸에 담고 다녔고 청년은 그 음식이 어떤 맛이 날까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지상의 로봇과 하늘에 사는 청년은 점차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로봇과 수 많은 나날들을 보낸 청년은 날이 갈 수록 재채기가 줄어듬을 느꼈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자 도리어 청년의 '녹아내리는 비'가 없는 날이 다가온 것이다.
그 녹아내리는 비가 없어짐을 느낀 인간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몇몇 안되는 인간들이었지만 모두 기뻐보였다. 맨 몸으로 비를 맞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하늘의 청년도 기뻤다. 인간들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인 것 마냥 말이다.
청년은 이런 기쁨을 로봇에게 전했다.
로봇은 여전히 묵묵하게 음식을 나르고 있었지만 인간들은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그러나 청년은 알고있다. 로봇이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평화와 안도감을 찾게 해주었는지.
청년은 드물게도 소리를 질러보았다.
"고마워!"
그러자 지상에서 큰 천둥이 내리쳤다.
인간들은 놀라 다시 건물안에 들어가버렸다.
하지만 청년은 더이상 인간들은 신경쓰지 않았다.
"듣고있지?! 네 덕분이야!!"
이번엔 더욱 더 거대한 번개가 지상에 내리꽂혀버렸다.
청년은 너무 놀라 뒤로 넘어져버렸다.
그 번개가 설마 로봇에게 맞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 활기찼던 로봇이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의 목소리가 로봇을 해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기에.
청년은 자기자신의 무지를 나무랐다.
자기 혐오감에 사로잡힌 청년은 더이상 밖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지상에는 대대적인 가뭄이 일어났고 인류는 거의 멸종에 가까워져 갔다.
그리고 더 많은 세월이 지나자, 청년은 약간의 용기를 내어 다시금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매말라버린 땅에 여전히 로봇은 서 있었다.
흉한 몰꼴이었지만 로봇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푸른 눈 청년은 투명한 눈물을 흘러보였고 로봇에게 계속 사죄했다.
청년이 더 많은 눈물을 흘리며 로봇에게 사죄할 수록 지상의 강수량은 깊어져만갔다.
그와 동시에 로봇의 몸통은 녹슬어져간다.
그러던 어느날 로봇의 몸이 부분적으로 내려앉아버렸다.
부품이 녹슬어져 바람에 떨어져나간 것이다.
떨어져나간 부품처럼 청년의 마음은 청천벽력이었다.
더이상 옛날의 로봇이 아니였다. 그러나 로봇에게 향한 청년의 마음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가슴 아프지만 청년은 로봇의 부식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이다.
청년은 슬픔에 잠겼지만 더이상 수줍게 구름 뒤에 숨지 않았다.
구름을 벗어나 자신의 몸을 지상에 던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청년의 몸은 점점 얼어붙어 불투명한 눈덩이가 되어갔다.
투명함을 잃을 수록 청년의 시야는 초점을 잃어갔다.
정신을 잃은 청년은 완벽한 눈이 되어 살포시 로봇의 눈가에 떨어졌다.
떨어지고 있는 모든 '비'들이 그의 죽음에 애도하듯 자신들도 따뜻한 눈이 되었다.
로봇의 눈가에 물이 흘려내렸다.
이 추운 날씨에 눈이 녹아 물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fin.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글이네요
핵전쟁 이후인가요? 마치 방사능 낙진, 핵겨울을 보는 느낌이 드는군요
여러분의 말씀대로 약간 세기말같은 느낌으로 써봤습니다 헤헤..
아 이런글 정말 좋아합니다. 잘 읽었어요! 약간 애잔하기도 하네요. 윗분 밀씀대로 핵전쟁 이후 같아요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글이네요
핵전쟁 이후인가요? 마치 방사능 낙진, 핵겨울을 보는 느낌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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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말씀대로 약간 세기말같은 느낌으로 써봤습니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