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미컴
출발부터 달랐던 한국과 일본
일본에서 닌텐도의 패미컴이 처음 발매 된 것은 1983년 7월의 일이었다. 발매한지 1년 만에 판매량 100만대를 돌파한 패미컴은 1985년까지 무려 500만대 가까이 팔리는 기염을 토하면서 일본 게임 시장의 토대를 만들고 사회 전반적으로도 엄청난 선풍을 일으켰다.
동시기에 한국에서는 MSX와 애플이 이제 막 교육용으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콘솔 시장은 아예 전무하던 시절이었다. 시장의 기초 체력 면에서 앞서 나갔던 일본 시장에 비해 한국 게임 시장의 토대는 너무도 빈약했고 일본의 소프트웨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방 통행로의 역할 밖에는 하지 못했다는 점이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그러면, 일본의 게임 개발자 1세대들은 어떤 계기에서 출발했고 어떤 매개를 통해 발전해 나갈 수 있었을까......?
솔직이 말해, 일본의 게임 개발 1세대가 성장하게 된 영향 요인들을 한국의 게임 시장과 비교할 때 그다지 상이한 점은 없다. 다만, 그 규모나 시기 면에서 여러 가지로 불리했고 컴퓨터나 게임을 바라 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판이하게 달랐다는 점에서 일본과는 달리, 한국 시장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게임 시장의 개발 트렌드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요인 중에 가장 먼저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이 컴퓨터 소프트웨어 판매점과 소프트웨어 전문 잡지의 코어적 역할이다.
공학사의 호시 마사아키 사장은 일본의 PC 게임 문화의 기초를 다진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공학사는 PC 유저들을 위한 기술 정보 잡지, I/O를 출판하고 있었는데 이 회사가 설립되기 전 CQ출판사에서 ‘인터페이스’라는 컴퓨터 잡지의 편집을 하고 있던 호시씨가 ‘무언가 컴퓨터를 이용해 취미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잡지를 내자’ 라고 생각해서 창간한 것이 1976년 10월의 일이었다.
이렇게 초보적인 도안을 가지고 만들어진 최초의 소프트웨어 전문 매거진 I/O는 시장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대인기를 끌게 된다.
I/O가 창간 된지 7개월 뒤인 1977년 5월. 호시의 휘하에서 필자 노릇을 하던 열혈 게이머 니시, 군지, 츠카모토 세 명은 호시의 밑에서 뛰쳐나와 아스키 출판을 설립하고 그 다음 달에 컴퓨터 전문 월간지 ASCII를 창간한다.
I/O 1981년 10월호
ASCII가 창간 된지 불과 한달 뒤인 1977년 7월에는 전파 신문사가 마이컴을 창간, 1980년대의 3대 PC 잡지로 불리는 전문 잡지가 모두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이들 잡지의 태동은 1980년대 후반 한국에서도 그대로 답습 된다.
아마추어 들이 만든 게임도 제 돈 주고 사는 풍토
1970년대 후반은 I/O에 이어 마이컴 등의 컴퓨터 전문 잡지도 속속 등장하여 바야흐로 유저가 직접 PC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만들고 즐기는 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당시 일본의 컴퓨터 시장은 샤프의 MZ-80을 주축으로 이제 막 시장에 선보이기 시작한 NEC의 PC-8001 시리즈가 각광을 받기 시작한 때였다. 사실 이때까지는 PC라고 해도 기껏해야 사무실에서 프린팅이나 고도의 계산 처리를 목적으로 쓰여지는 것이라는 느낌이 강했지만 이런 퍼스널 컴퓨터가 보급 되기 시작하면서 가정에서 어린 학생들이 즐기는 시대로 돌입하게 된 것이었다.
샤프의 MZ-80
시장이 이렇게 형성되기 시작하자 아키하바라 같은 전자 상가 지대를 중심으로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가게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판매하는 가게였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라는 것은 서비스 정도로 생각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런 곳 중에서도 앞으로 다가올 큰 시장에 대한 안목이나 게임이라는 컨텐츠가 지니게 될 시장성이라는 것에 눈을 뜬 곳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허드슨이라는 회사다.
허드슨은 삿포로에 본사가 있는 역사가 매우 오래 된 게임 개발 회사로, 지금은 경영난으로 인해 코나미 그룹의 산하에 들어갔지만 한때는 일본의 게임기 시장에서 한 축을 형성했던 8비트 가정용 게임기 PC 엔진을 기획하고 공급 했던 회사이기도 하다.
원래는 컴퓨터 기기를 주로 판매하던 이 회사가 PC 게임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78년부터였다. 컴퓨터에 관심 있는 젊은 학생들이 가게에 북적거리면서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러운 커뮤니티 공간이 형성되었고 서로 자작한 게임 소프트웨어를 보여주기도 하는 등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이루어졌는데 이런 상황을 자세히 지켜 보고 있던 사장 쿠도 유지씨가 "기왕 만든 거라면 팔아보지 않겠나" 라고 제안한 것이 시작이었던 것.
그때까지는 학생들이 게임을 자작했다고 해도 상용화 한다거나 하는 사례가 일체 없었다. 그런 시기에 허드슨에서 1979년 마이컴 7월호에 처음으로 게임 소프트웨어를 판다는 광고를 싣고 게임의 통신판매를 개시한 것이었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고생이 그려준 미소녀 캐릭터가 앙증맞게 가격표를 제시하고 있던 이 반쪽 짜리 광고는 그대로 적중해서 그날부터 매일 사과 상자가 꽉 찰 정도로 전국 각지에서 현금 등기 우편 주문이 밀려들었다.
어떤 날은 그 주문서들의 확인 도장을 찍는데 만도 30분 이상 걸렸다. "야자열매 떨구기", "오셀로", "스타트랙" 등의 카세트 테이프에 더빙한 것뿐인 게임 소프트웨어가 개당 3,000엔 정도에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으니 허드슨의 사장 이하 종업원들조차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순식간에 허드슨은 컴퓨터 게임 소프트웨어 업계의 일인자로 등극했다. 당시 사장인 쿠도 유지 씨의 동생인 쿠도 히로시씨는 다음과 같이 당시를 회고한다.
"당시는 동일 업종의 타사라고 해봐야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여서 시장에서 판매 되고 있는 게임의 8할 정도를 우리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150타이틀이라고 치면 우리 회사 것이 130 타이틀이고 다른 회사가 20타이틀 정도, 그런 상태였지요 아무튼 그 당시는 하루에 게임 한 개씩 만들어 냈기 때문에......"
1980년대에 한국의 소프트웨어 판매점들이 열심히 일본 것을 카피해서 팔고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에서는 아마추어들의 창작 게임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 유저들에게 공급 되었던 것이다.
여기도 덧글 생겼다. -.-
그러니까 .. 그때 그랬었죠... 옜날 생각 나느군요... 그런데 우리나라 게임 이라는게 . 망한건 알겠는데 언제 흥한적이 있었나요? 올해로 1942 를 시작으로 23년 째인데.... ........ 아무리생각 해도.. 우리게임이라는건...... 생각 해볼만한게 없군요.. 다음기사 기대 하겠습니다.
좋은 글이로군요. 다만..좀 감질납니다 ^^;;;;;
역시 시작부터가 다르니 두 나라의 게임에 대한 인식은 완전히 다른 듯 -_-
헉 패이컴 ;; 옛날에 졸라많이햇엇는데 ㅠ 요새는 겜기이자먹엇다는; 팩하나에 게임이 몇백개? 하여간 초딩때 졸라잼잇게햇던 게임기
.....리니지...프리스타일...카트라이더....고스톱...이거다 게임인대요... 지금 온라인게임으로 흥하고 있는중이지요.
메인스트림인 콘솔 및 PC패키지는 엄두도 못내고..과금형태의 온라인게임만 만드는게 작금의 현실이죠...
일단은 게임기에 대한 시각부터가 크게 다르죠. 우리나라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오락실은 조직폭력배들이 들락날락하는 곳으로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지금이 시작단계라고 볼 수도 있을겁니다. 게임이 수면위로 뜬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의 소프트웨어 판매점이 일본 것을 카피해서 판다고 하셨는데,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지요. 당시 게임기는 부자들이나 이용을 할 수가 있는 상징물의 수준이었습니다. 90년대 극초반까지도 그런 상황이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었습니다. 더욱이, 컴퓨터의 보급도 별로 안 좋은 상황에서 컴퓨터 게임을 만들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회사를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하자면 가능한 일이겠지요. 공업화의 시작부터가 늦은 우리나라는 이제가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건 우리나라 알게모르게 일본 베끼기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겁니다. 500 원짜리 과자서부터 1000 원짜리 학용품, 펜, 샤프연필 하나하나, 그리고 게임까지 카피 판매. 물론 일본도 모방으로 컸습니다만 일본은 개량하고 더 작게 만드는데 치중한데 비해 우리나라는 고대로 베끼기에 바빴지요. 직접 부딫혀봐야 어짜다 횡재도 하고 기술도 늘고 하거늘. 우리나라 이렇게 하면 정말 발전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우리나라는 첫단추부터 잘못 꿰기 시작한겁니다...7~80년대초부터 단순히 아마추어가 만든 소프트도 돈을 주고 구입하고 지적재산권의 가치를 초기부터 인정받아온 시장이기에 지금과 같을 수 있는겁니다..북미나 일본쪽은.... 그러나 국내의 경우 시작부터 복제된 소프트가 당연한것으로 인식이 자리잡혀있었고...지금까지도 바뀌지 않고 있죠...(80년대 중후반 pc잡지,게임잡지들을 보면 당당히 게임을 복사해준다는 광고까지 실렸었습니다...) 초기 이런차이가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 이어진겁니다..(국내 역시 몇몇 분들에 의해 국산 게임이 만들어졌었으나 불법 복제의 영향으로 모두 접기도 했었죠..나중에 90년대 초중반에 잠깐 다시 살아났다가..)
술도한잔 걸치고 이야기도 두서없고 주제에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잠깐 넋두리 하자면... 지금 우리나라 상황으로서는 온라인이 그나마 패키지보다 낫기 때문에 온라인 이 흥하고 있을뿐입니다. 개인적이지만 빠르면 10년 15년 사이에 비겜이라는 것은 지금 시대의 레저나 스포트 낚시등의 취미생활로 인식되는 사회가 온다는 겁니다. 아직도 비겜하면 애들장난이라는 인식이 있다는 건 누구나 아실겁니다. 하지만 위의 기간에 보다 많은 게이머들이 사회에 진출하고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더욱 영상 음향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편화가 이루어진다면 그에 맞춰 비디오게임 이라는 것도 충분히 하나의 여가활동으로 정착할수 있다고 봅니다. 또한 관과할수 없는 pc의 발달 역시 비디오 게임 문화의 대중성에 한 몫한다고 봅니다. 게임소프트는 게임기로 만드는것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거기에 발 맞추어 우리나라도 게임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 몇몇 개발사들이 비겜소프트를 개발하는것은 아주 바람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지 정식수입을통한 게임시장활성화에 그치기보다 비록 시간이 오래걸리더라도 자체적인 개발을 통해 하나의 새로운 산업을 일으킬수 있어야 합니다. 뭐 말이 쉽고...다 그렇죠. 그럼 오늘도 취업을 위해 고생하시는 분들 화이팅입니다. - ㅡb(쌩뚱 200%)
밑에댓글에 90년도 초반에는 극부자만 게임기를 썼다구요? -ㅁ- 정확히 90년도.. 저희동네 왠만한집은 컴보이는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희집도 어려운 형편이였지만 컴보이는 가지고 있었구요.. 그당시 15만원 이였나? 25만원이였나.. 7살때니깐 기억이 가물가물.. 요즘 플스 가지고 있다해서 사람들이 우와~ 하지않잔아요.. 그때도 컴보이 가지고 있다해서 부럼움이나 선망의 대상은 아니였습니다.
90년도에 15만원 20만원 이었으면 엄청난 돈입니다. 그 당시에는 재믹스만 가지고 있었어도 온 동네의 선망이었습니다. 밑에 분은 부자동네에 사신것 같네요. 그때 중1 정도 됬는데 평균용돈이 만원이 안되던 시기였습니다....요즘은 제 조카도 형 만원만 줘 하는 시대이니...
90년도 초반이라면 그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패미컴이나 겜보이 정도는 가지고 있는 애들이 꽤 있었죠. 팩 대여점도 있었고 동네문방구에서 일판 세가마크3 패키지를 팔던 때였습니다. 재믹스 한 대로 선망이 되었던 시기는 80년대 후반정도가 아니었을까요. 제가 살던 곳은 부산이었습니다.
90년도 초반이면...패미컴은..아주싸서..거의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망의 대상은...슈퍼패미콤이죠...그리고 재믹스는 80년도 중후반에..싸게 구할수 있었습니다...tv에 달려있는 재믹스도 팔았죠..
90년대 초반이면....좀 과장해서 말하자면...개나 소나 다 갖고 있을만한 게임기였습니다...(패미컴의 경우 3만원이면 샀으니깐요...)당시 슈패미를 알바뛰어서 구입했었고....그걸 본 주위 친구들이 전부 슈패미를 사는 상황이 벌어졌었죠..^^(물론 그때쯤 저는 듀오와 메가cd로 전환한 상태였고..^^)
80년대에 복사소프트를 열심히 카피해서 팔았다고 하지만 정작 80년대에 대중들에게 게임기(혹은PC계열)의 보급율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련지... 물론 수효가 적다는이유로 복제품이 정당화될순 없긴 합니다만은... 다만 애시당초 당시의 우리나라와 일본의 환경을 비교하려는 자체가 무리가 있다고 보여지는데요... 이제겨우 먹고살만하다곤 하지만 여전히 경제발전이 주력이었던 우리나라로선 아무래도 놀이문화를 등한시 할수밖에 없었다구 생각이됩니다. 복제소프트 문제에 대처를 잘못했다기보다 아예 관심이 없었던 거겠죠. 그것을 그대로 방치했으니 지금과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테고... 그래도 요즘은 예전보다는 훨신 사람들의 인식이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씩이긴 하지만 정품사용을 외치는 사람들도 늘고있구요. 허나 개인적으론 우리나라의 게임산업은 아직 갈길이 멀다고 봅니다. 복제품을 찾는 유저들도 문제지만(사실 이게 젤 큰문제이긴 함...) 자신이 게임을 개발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돈벌이에 급급해서 자존심도없이 몇몇 인기게임들을 모방해서 너도나도 만들어(이걸과연 만들었다고 할수 있는지..)팔아먹은건 부정할수 없죠. 물론 지금도 그런 작태(..)들은 계속 되구 있구요. 그런 게임들중에도'재미만 있으면 그만' 이라는 사람들의 인식부족으로 전에없는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작품(?)들도 있죠. 그러면 메스컴은 입아프게 떠들어 대죠. 모모소프트 모게임 20만 돌파! 라는둥의... -_- 아직 우리나라는 게임강국 소리듣기에는 개인적인 생각으론 한참 멀었습니다...
제가 91년도에 삼성 겜보이 SPC100V가지고 있었습니다. 음.. 세가 마스터즈 시스템이죠. 92년쯤에 삼성 알라딘보이 (SMS2)가 나온걸로 알고 있는데.. 그 당시에만 해도 저 뿐만아니라 제 친구들, 친척, 그 외에 여러 사람들이 SMS기종이나 FC기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 사촌형집에서 FC로 록맨시리즈와 카드로 하는 드래곤볼Z외전을 하던 기억이 새록 새록 나네요. SMS로 했던 게임은.. 더블드래곤, 소닉1, 마리오 정도밖에 기억이..
전 80년 생이기 때문에 옛날엔 어쨌느니 저쨌느니 할처지는 아니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으로 90년대에 자기 주변 사람들의 게임기의 소장률 만으로 그당시의 가치를 판단하는건 상당한 무리가 있지 않나 싶네요...허허. 90년대 초반 저의 클라스에 게임기 3~4명정도 가지고 가지고 있었던걸로 기억하는데...[제가 국민학교 3~4학년때군요...] 그리고 25만원이라....하하...지금의 25만원과는 느낌이 다르죠..느낌이... 그당시 중학생 나부랭이들이 선뜻 게임숍이나 백화점에 들고가서 "게임기 주세요" 하기에는 좀...아니 지나치게 큰 금액이 아닌가요...; 지나치려다 타인을 비방하기에는 너무 주관적이지 않나하는 마음에 한마디 하고 갑니다...;
아, 좋은글 쓰시네요. 정말 올드 30대 게이머로서는 10대 초중반의 열악하지만, 아무나 하지못하는 그 제미있었던 게임들의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음.. 문제는 그당시 정품팩이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일본팩 정품은 찾기가 힘들었던 시절이죠 지금처럼 정보가 많이 돌았을때도 아니고 대만팩을 정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90년대 초반이면 패미콤은 이른바 패밀리라고 해서 대만산 변형게임기들이 판을 쳤죠..금액도 쌌고.많이들 갖고있었습니다.그때 슈패를 21만원주고 산 기억이 있습니다. 그땐형이 사준게임기..ㅡㅡ 그리고 80년대에는 별로 게임기로 한기억이 없고 애플컴퓨터로는 많이 햇습니다. 그당시 유행한 컴퓨터학원을 다닌 사람은 모두 게임을 접하였을테니.그당시 놀이문화 등한시라는 말은 어쩐지 맞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삼국지2 라든가,야만인같은 게임을 했었는데 큰 플로피 디스크로..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전부 복사였더군요.,,지금 컴게임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정품게임을 살려고하면 살수있다..란 선택권이 있다는 점에서 지금이 조금 낫다고 볼수도 있겠네요.
90년대에 슈퍼콤보이를 비롯한 게임기가 국내에 얼마나 널리 퍼졌는지 간과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군요. 지금의 PS2보다 더 이슈가 되었으면 되었지 못하지는 않았ㅅ브니다.
글쎄요... 정품이라곤 구입한적이 없고 아버지께서 사신적이 딱 한번...
글쓰신 분 닉네임이 이돌컴.. 음... 어디서 많이 들어본것 같은데.. 혹시 예전 90년대에 발행됐었던 게임챔프 라는 잡지의 기자 아니셨는지.. 정말 재밌게 읽던 책이였는데^^
좋은정보 감사 ^^
국내에서는 어디가 더 락을 잘깨서 좋은 소프트를 가지고 있는가를 비교해보는 웃지못할..상황이.. 써드 웨이브 같은 데는 정말 락을 잘깨서 다른데 없는 리스트의 게임도 갖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한번 사무실에 간적이 있는데.. 점심 시간에도 다들 자고 있더군요.. 폐인 생활이 기본이었는듯.. 당시 컴퓨터 회사라고 생각해서 커다랗고 생각했지만 막상 가봤을때의 횡...한 느낌은.. 당시에는 멋져.. 보이기까지 했긴 했습니다만..
한국에서도 공모전을 해서 공모전에 당선한 프로그램- 대부분이 베이직으로 되어 있고 일부 기계어도 사용된-을 돈을 주고 사서 사용했습니다. 기종은 spc-1000 이었고. 음, 공모집 6권에 헬리콥터와 7권에 돈키콩을 재밌게 한 기억이 있네요. 아~즐거운 추억이네요.
써드웨이브를 아시는분을 만났네요.^^ 저도 패미컴 팩(월풍마전,사라만다)을 살려고 한번 가 본적이 있습니다. 강남역 근처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애플컴퓨터 게임들에 패미콤 팩도 취급했던걸로 기억나는군요. 게임매장이라기보단 사무실같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써드웨이브.. A+ 였던가 하는 곳하고 업계? 1, 2위를 다투던 곳이죠. 가끔 그 지역을 지나가다가도 그랬지... 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 때 다 베려논 거겠죠. 우리나라에서 인식되는 지적재산권의 가치.
아.. A+ 도대체 얼마만에 들어보는 이름입니까..휴.. 이름도 그립습니다. 카피해주고, 메뉴얼도 카피해서 팔았던 A+.. 아직도 어릴적 세운상가가 눈에 선합니다. 쩝..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글쓴이는 일본과 우리나라의 인구수 차이를 모르시는것 같구나
샤프의 MZ-80의 모습을 보게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