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도쿄올림픽이 성공하려면 한·일 관계가 좋아야 하고, 북한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
지난 13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구촌 최고 축제인 올림픽 성공의 필수조건이 북한 참여와 한·일 관계 정상화라니, 동·하계 올림픽을 현장에서 취재했던 기자로서 선뜻 공감하기 어려웠다. 발언 기저에 스포츠의 본질보다는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어서다.
물론 스포츠는 국가 간 외교에서 톡톡한 역할을 했다. 2017년 북핵 도발로 얼음장 같던 남북 관계는 평창동계올림픽이 있었기에 녹을 수 있었다. 북한 ‘2인자’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이 직접 평창에 내려왔고,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의 하모니는 작지 않은 감동을 안겨줬다. 이후 남북정상회담뿐 아니라 북미 정상까지 마주 앉은 터라 평창에서 시작한 평화의 물결이 비핵화라는 결실로 이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노딜’로 끝난 하노이 회담 후 한반도에는 다시 찬바람만 불고 있다. 평창에서의 평화 무드는 하나의 ‘쇼’에 불과했다. 출전 기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일부 선수들의 희생은 추억으로 끝났다.
이 과정에서 득을 본 건 여당이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유례없는 압승을 거뒀다. 이 때문에 이 대표의 발언이 내년 대선 경선용 이벤트는 아닐지 살짝 의구심이 든다.
스포츠를 정치적 도구로 삼으려는 시도는 문재인정부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이 정권에서는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선수·단체 등 관계자와 한마디 협의도 없이 남북단일팀 구성 지시를 찍어누르듯 내렸다. 불공정 시비가 일며 청년 세대가 거세게 반발하자 화들짝 놀란 청와대는 “북한 참가와 평화라는 큰 숲 안에 있는 작은 나뭇가지 하나의 문제”라며 여론 달래기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8월엔 도쿄올림픽 보이콧 주장까지 나왔다. 현 민주당 최고위원인 신동근 당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는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문제지만, 국민 안전이 최우선인 만큼 조사 결과 안전성이 담보되지 못한다면 도쿄올림픽을 보이콧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방사능 안전 문제 때문에 나온 발언이었지만 구슬땀을 흘리던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이 당혹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최근 만난 한 체육계 인사는 “이 정권은 스포츠에 대해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으면서 정치적으로 필요할 때만 손짓한다”며 “그럴 생각이 있으면 평소 스포츠에 관심을 갖고 챙기면서 체육인들의 자존심과 위상을 세워줬어야 한다”고 털어놨다. 일부 체육계 폭력 사태가 나올 때마다 전체 스포츠계를 범죄집단시 하다 보니 우리나라 엘리트 체육은 이번 정부에서 더 만신창이가 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스포츠의 정치적 독립성·자율성’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운다. 스포츠를 이용하려 하지 말고 선수들이 도쿄올림픽에서 최상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주는 게 정치의 역할이다. 그런 과정에서 남북, 한·일 관계가 풀리면 일거양득이 되는 것이다. 올림픽 시작 전부터 ‘외교 지렛대’로 삼겠다며 나서면 어느 선수가 좋아하겠는가. ‘쇼’를 벌일 생각 전에 평소 스포츠에 애정을 담아 응원하는 자세가 우선돼야 한다.
최형창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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