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GS] 다양한 선택지와 갓글화의 조화, ‘아우터월드’ 시연기
‘아우터월드’ 시연 세션에서 두가지 주의점이 있었는데, 바로 초반 캐릭터를 설정하고 기원을 알게 되는 튜토리얼, 그리고 시연 미션 마지막의 선택지는 서술과 촬영을 금했다는 것입니다. 개발자들은 그 순간들을 플레이어들에게 특별한 순간으로 남겨두고 싶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만큼 이들이 플레이어의 경험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죠. 총 시연은 약 50분간 진행되었으며, 영상은 편의를 위해 10분 내로 편집되었습니다.
캐릭터를 설정하고 초반 튜토리얼을 마친 후에는 스페이서 초이스가 지배하는 엣지워터에 강하하게 됩니다. 거기서 플레이어는 본래 자신을 실어나르기로 했던 이의 우주선을 탈취하고, 엣지워터에 들어가 미션을 받게 되죠.
그리고 이 짧은 과정도 여러가지 선택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저는 화술과 주먹에 투자한 입과 주먹 양면의 대화의 달인 캐릭터를 설정했는데요. 함선을 탈취할 때에는 함선의 AI를 교묘하게 속아 넘겨서 손쉽게 배를 탈취해냈습니다. 마치 폴아웃3 에서 감언이설로 인공지능을 자폭시키던 그 느낌이 들었죠.
그리고 여기서 꼭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한글화 퀄리티입니다. 대화를 주력으로 삼는 캐릭터를 플레이할 때 중요한건 그 대화의 맛, 얼마나 맛깔난 대사를 볼 수 있냐에 달려있는데, 그런 면에서 우리에겐 한국어 번역의 퀄리티가 굉장히 중요하죠. 많은 분들이 걱정한 부분도 이 부분이고요. 그런 면에서, ‘아우터월드’ 의 번역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대사 곳곳에 숨어있는 간단한 비꼼의 뉘앙스나 사회성 부족한 컴패니언이 쭈뼛거리며 겨우 대화를 하는 톤까지 다 잘 살려냈고, 대사를 하나하나 읽으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재미가 있었어요. 지금까지 본 게임 번역 중에서 종합적으로 최고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분명 대사의 뉘앙스까지 고려하여 섬세하게 번역이 이루어진 것은 확실했습니다. 개발자들도 이 부분을 많이 신경을 썼는지 체험 후에 저에게 한국어화 퀄리티에 대해서 물어봤고, 매우 훌륭하다고 답하니 굉장히 기뻐했습니다.
이 덕분에 많은 대화 선택지 중에서도 바로 내 의도를 드러낼 것인지, 아니면 의도는 숨기고 적당히 떠볼 것인지, 아니면 문답무용 주먹의 대화부터 할 것인지 등 의도대로 대화의 방향성을 정할 수 있었죠. 상대 NPC 도 그 의도에 맞게 대답했고요.
그렇게 함선을 획득하고 나서 경비대장에게 말을 걸고 나면 엣지워터로 안내해주고, 엣지워터의 관리자를 만나면 그들이 당면한 지금의 문제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넘어갑니다. 함선을 고치기 위해서는 발전기 부품이 필요한데, 마침 이들은 지열 발전소와 관련된 문제를 앓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스페이서 초이스가 지배하는 엣지워터와, 거기서 탈주한 이들이 모여 살고 있는 식물 연구소라는 두 세력의 대립이 끼어있죠.
엣지워터는 스페이서 초이스에 납품해야 하는 통조림 공장을 돌리기 위해 도시로 다시 탈주민들을 강제 이주 시켜야하고, 식물 연구소 그룹은 그런 강압적인 노예 생활에 반발해 자유를 찾고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그 사이에서 내 이득만 취할지, 누굴 도와줄지를 고민하고 있고요. 이런 세력 간의 다툼, 그리고 선택의 기로가 이 게임의 근간입니다.
여기서 첫 컴패니언인 페르바티를 만나 동행하게 되고, 페르바티는 식물 연구소의 입장을 동정하기 때문에 이 사정을 도시의 목사에게 상담하고자 합니다.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인 목사와 상담을 하면서 플레이어도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실마리를 찾고, 자기 판단 근거를 찾게 되죠. 게임의 기본 흐름은 이런 대화와 조사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렇게 식물 연구소 그룹에서도 한차례 대화를 해서 양쪽의 입장을 모두 들어본 후, 어떻게 할지 결정하면 됩니다.
이제 전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알고 있는 폴아웃 스타일의 전투와 매우 흡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킬 시스템도 유사한데요. 다만 다른 점은 타격감이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느리고 타점을 알 수 없는 베데스다식 모션과는 달리 좀더 확실해서 다행이죠. 물론 초반에는 근접 무기보다는 소화기를 자주 쓰게 되기 때문에 그걸 느낄 틈이 많진 않지만요.
그러나 전투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컴패니언, 그리고 보다 스킬 기반이 강해진 부분이었습니다. 컴패니언은 기본적으로 2개의 액티브 스킬을 가지고 있고, 플레이어 캐릭터도 2개까지 액티브 스킬을 배정할 수 있습니다. 컴패니언이라고 그저 같이 데리고 다니고, 어디어디 이동을 배정하는 것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스킬을 배정하고, 또 만약 내 캐릭터가 리더십 기반의 캐릭터라면 컴패니언을 더욱 강화시킬 수도 있죠. 그만큼 전투가 분대 단위가 되어 보다 복잡해지고, 스킬 하나하나에 따라 전황이 바뀔 수도 있었습니다.
지열 발전소는 매우 강력한 로봇형 적들에게 보호받고 있는데, 소화기를 쓰는 캐릭터에겐 꽤 어려운 적들입니다. 하지만 컴패니언인 패르바티는 로봇형 적에게 매우 강력한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됩니다. 물론 은신으로 잠입 플레이를 할 수도 있고요. 발전소에 잠입해서 적을 처치하고 시설을 복구하고 나면, 드디어 선택의 시간입니다. 물론 제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개발자들의 의도대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전반적인 느낌을 볼 때, 대화를 통해서 다양한 선택지를 찾아내고 화술로 해결을 보는 시스템 하나 만큼은 지금까지의 RPG 중에서 단연 톱급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전투의 경우에는 완전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컴패니언과 리더십, 그리고 액티브 스킬이라는 적절한 보완요소를 잘 찾아 넣은 느낌이기에 충분히 복합적이고 재미있는 전투 방식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죠. 실제로 이번 시연은 게임의 극 초기 부분이기 때문에 선택지가 많지 않았지만, 이전 E3 등에서 보았던 데모에서는 강력한 중화기와 근접전 특화 컴패니언이 몬스터를 도륙하고 다니는 등 호쾌한 액션도 분명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방대한 선택지를 쥐어주는 오픈월드 RPG 팬이라면 올해 가장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이 장르의 궁극적인 게임이라는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이 분야의 큰 손인 베데스다가 한동안 차기작 소식이 없는 지금, ‘아우터월드’ 는 단순히 대체제가 아니라 훨씬 더 발전한 ‘더 나은’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장점에 갓글화까지 더해지니, 어찌 이 게임을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요?
이명규 기자 sawual@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