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대죄: 그랜드 크로스, 원작 재현의 직설법
넷마블 상반기 최대 기대작 ‘일곱 개의 대죄: 그랜드 크로스’가 오는 6월 4일 정식 서비스에 돌입한다. 주간 소년 매거진에서 인기리 연재 중이며 MBS에서 TVA 방영된, 동명의 액션 어드벤처 만화를 모바일 게임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국내에도 학산문화사가 원작을, 애니플렉스가 애니메이션을 들여와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다. 일곱 가지 죄목마다 재미있는 상품을 제공한 사전등록 이벤트도 소소한 화제를 모았다. 교만의 죄로 아이폰을 넣고 질투의 죄로 갤럭시를 붙이다니 이벤트 기획자가 아이폰 오너임에 분명하다.
인기 소년 만화를 게임으로, 일곱 개의 대죄: 그랜드 크로스
일본의 인기 만화를 자국에서 게임화한 사례야 흔하지만, 본 작은 국내 업체인 퍼니파우가 개발을 맡았다. 그만큼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유려한 그래픽과 고품질 한국어 더빙이 특징. 과거 애니플렉스 방영이 자막이었으니 본 작이 최초의 한국어 더빙인 셈이다. 다만 특정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작품은 어느정도 안정적인 흥행이 보장되는 반면 그 한계가 명확하고, 2014년 방영작이라 요즘은 인기가 다소 쳐진 점은 다소 우려스럽다.
이에 과연 ‘일곱 개의 대죄: 그랜드 크로스’가 뭇 만화와 게임 팬덤의 기대에 부응할만한 작품인지, 정식 서비스보다 한 달여 앞서 한국어 빌드를 체험해봤다. 시연기에 이은 개발자 인터뷰는 오는 21일 게시될 예정이다.
공식 PV, 자신있게 '실제 모바일 게임 플레이 장면'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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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원작 재현, 미묘한 게임 플레이
일반적으로 IP 게임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원작 내용을 재현하기 마련이다. 애초에 주요 유저층이 원작 팬덤이니 당연한 수순이다. 오리지널 스토리를 진행하되 추가 콘텐츠로 원작 내용을 제공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원작의 줄거리를 그대로 쫓는 경우도 있다. 다만 둘 중 어느 쪽이든 원작을 성실히 담아내는 모바일 게임은 의외로 흔치 않다. 아무래도 만화 내용을 게임 시스템에 그대로 대입하기 무리가 따르고, 모바일의 짧은 호흡에 긴 내용을 담기 어려우며, 어쩌면 그저 성의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간 나온 IP 게임은 대부분 실망스러웠다.
그런 면에서 ‘일곱 개의 대죄: 그랜드 크로스’는 상당히 대범한 시도를 벌였다. 고품질 3D 모델을 활용하여 TVA를 거의 그대로 재현해낸 것이다. 그냥 캐릭터들 세워놓고 대사를 치는 정도가 아니라 화면 구도와 연출, 동세까지 최대한 똑같이 만들었다. 유저는 한 편의 3D 애니메이션을 즐기다 사이사이 액션 파트만 턴 기반 전투로 소화하면 된다. 거의 인터랙티브 무비에 가까운 방식이다. 액션 파트가 게임플레이로 대체되고 일부 생략된 부분이 없진 않지만 24분짜리 내용을 거진 다 담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4분짜리 애니메이션 한 편이 매우 충실하게 3D로 옮겨졌다.
원작과 게임 비교. 3D 쪽이 표정이 좀 부족한 대신 작화 붕괴 걱정은 없다.
확실히 원작 재현이란 측면에서는 여느 IP 게임과 궤를 달리한다. 그런데 RPG에게 인터랙티브 무비 같다는 말이 칭찬인지는 좀 미묘하다. 왕녀 엘리자베스가 일곱 개의 대죄 기사단 단장이자 돼지의 모자 점장인 멜리오다스와 만나는 첫 화를 살펴보자. 멜리오다스가 손님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엘리자베스가 들어오고 다시금 추격대와 싸우기까지 거의 10분이 소요된다. 일반적인 글줄 대사라면 빠르게 읽어 넘기겠지만 이건 영상이라 그냥 보거나 통째로 스킵해야 한다. 살쾡이 수염 기사단을 쓰러트리면 또 잠시 감상의 시간을 가진 후 기사 트위고와 싸운다. 여기까지가 대략 15분 정도. 이 와중에 직접 플레이한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영상과 전투 사이에 연결도 그리 매끄럽지는 않다. 시스템상 유저가 이겨야 전투가 끝나는데, 그 뒤 전개는 원작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가령 전투에서 트위고를 가볍게 꺾었는데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엘리자베스가 자신이 투항하면 당신은 살 수 있다며 울며 걸어간다. 어째서!? 수집형 RPG인 이상 아직 합류하지 않은 동료가 전투에 등장하기도 하고 그러기 때문에 게임적 허용으로 봐줘야 하긴 하다. 하지만 이처럼 ‘내가 전개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감각은 게임이 아닌 애니메이션 시청이란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물론 새로이 더해진 한국어 더빙이 정말로 매력적이지만, 여전히 게임으로서는 미묘하다.
메인 스토리는 애니메이션 감상 → 전투 → 다시 감상,이란 흐름이다.
수집형 RPG로서 있을 건 다 갖췄다
그러면 유저가 직접 조작할 수 있는 부분은 어떨까. 먼저 전투는 턴 기반으로, 수집형 RPG로는 살짝 적은 편인 3인 파티(+1 서포터)다. 흥미로운 점은 각 캐릭터의 스킬이 단순히 재사용 대기시간에 따라 발동되는 것이 아니라 카드 형태로 손패에 들어온다는 것. 이때 스킬을 발동시킬 수 있는 횟수만큼 캐릭터 구분 없이 원하는 것을 낼 수 있다. 스킬 발동 횟수를 하나 소모해 카드 위치를 바꿀 수도 있는데, 같은 카드끼리 인접하면 상위 스킬로 합쳐지기도 한다. 스킬은 크게 여섯 타입이 있으며 이와 별개로 노란색 게이지가 가득차면 필살기를 쓸 수 있다.
넷마블이 ‘혁신적인 스킬 카드 배틀’이라 홍보하는 시스템인데, 스킬 아이콘이 카드인 것은 그냥 디자인적 선택이라 쳐도 어느정도 전략성은 분명히 있다. 스킬이 카드라는 형태로 캐릭터와 분리된 덕분에 한 턴에 특정 캐릭터가 연속해서 공격할 수도 있고, 카드 인접을 통한 스킬 강화도 염두에 둬야 한다. 다만 어차피 캐릭터가 셋이라 스킬 가짓수의 한계가 있고 전/후열 개념도 없기 때문에 반드시 ‘일곱 개의 대죄: 그랜드 크로스’가 여타 RPG보다 전략성에서 우위에 있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그냥 본작의 특징적인 전투 시스템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천편일률적인 수집형 RPG 전투에서, 스킬 카드는 확실히 유의미한 변주다.
3D 모델링도 스킬 연출도 썩 볼만하다. 평타와 필살기의 강약 조절을 잘했다.
메인 스토리를 벗어나면 인터랙티브 무비스러운 감각은 많이 옅어진다. 유저는 멜리오다스가 되어 돼지의 모자 주점과 다섯 개 마을을 직접 돌아다닐 수 있다. 그러면서 하는 일은 서브 퀘스트를 수주하고 간단한 재료를 사다가 요리를 하고, 다른 캐릭터와 이야기하며 호감도를 높이거나 코스튬을 갈아입히는 정도. 냉정히 말하면 배경 원화와 아이콘 몇 개로 충분한 기능을 온통 3D로 만들어 번거롭지만, 원작 팬덤에게는 ‘그 세계에 들어가 있다는’ 감각도 중요할 테니까. 심지어 화면을 휘휘 돌리며 엘리자베스의 다리를 엿볼 수 있는 자이로 모드까지 지원한다.
이외에 실시간 PvP 바이젤 싸움 축제와 길드 커뮤니티 및 보스 레이드, 강화 던전, 진화 던전, 골드 던전까지 수집형 RPG로서 있어야 할 건 다 갖췄다. 어찌 보면 메인 스토리는 철저히 원작 정주행에 집중하고 게임은 그 외 콘텐츠에서 즐기라는 안배인 셈이다. 그 의도가 제대로 먹혀 들지는 정식 서비스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스토리의 경우 메인 외에도 외전, 시련, 이벤트, 스페셜 카테고리가 눈에 띄었다. 일본 인기 만화는 IP 홀더의 입김이 쌔고 검수가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넷마블과 퍼니파우가 어디까지 이야기를 확장할 수 있을지도 기대되는 부분.
은근히 직접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 많다. 팬이 아니라면 거추장스러울 수도.
길게 적었지만 엘리자베스를 좋아한다면 그냥 무조건 하면 된다.
세로 화면이 꼭 필요했을까
끝으로 UI와 BM(수익화 구조)을 잠깐 짚고 넘어가자. ‘일곱 개의 대죄: 그랜드 크로스’는 국내에선 드문 편인 세로 화면을 채택했으나 직접 플레이해보면 딱히 그럴 필요성을 느끼기 힘들다. 당장 원작을 방영한 TV부터 가로 화면이니 세로로 재현하기 난감하고, 캐릭터 게임 주제에 전투 시 캐릭터 뒤통수만 보인다는 문제도 있다. 이 부분은 게임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원작의 최대 팬덤이 자리한 일본 시장을 겨냥한 선택이었으리라. 그런데 일본 유저들이 세로 화면을 선호하는 주된 이유는 한 손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인데, 정작 자주 쓰이는 나가기(되돌아가기) 버튼을 좌측 상단에 배치해 놓았다. 한 손으로 플레이하려면 엄지가 굉장히 길어야 할 것이다.
BM은 영웅과 장비 뽑기가 주가 되고 패키지와 신기(코스튬)도 판매한다. 단차에 유료 재화인 다이아 3개(1일 1회 1개로 뽑기 가능), 11연차에 다이아 30개가 필요하며 별도로 영웅 티켓을 통해서만 가능한 ‘여성 영웅 뽑기’ 같은 신사적인 픽업 뽑기도 있다. 어차피 뽑기란 운수와 팔자에 따라 저마다 느끼는 강도가 다른 법이지만 ‘나올 때까지 뽑으면 확정’이란 금언을 기억하자. 원작 캐릭터가 그리 다양하지 않다 보니 동일 인물이 여러 버전으로 나오는데, 파티에 함께 넣을 수는 없어 체감상으로 꽝이 늘어난 느낌도 있다. 기자는 인생에 몇 없는 강운을 발휘하며 SSR 1명, SR 7명, R 3명을 뽑으며 화려하게 날아올랐으나 테스트 기기라 차마 들고 나올 수 없었다.
늘 적지만 나올 때까지 뽑으면 확정 가챠다. 그치만 통장이 버텨줄까.
뭔가 쓸데없지만 멋진 연출과 함께 가챠가 흥했다. 이거 테스트 기기인데….
정리하자면 ‘일곱 개의 대죄: 그랜드 크로스’는 준수한 수집형 RPG이며 원작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선물 같은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원작에 관심이 없는 경우라면 미묘한 점이 이리저리 보이겠지만 그건 IP 게임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도 하다. 어쨌든 여기서 제목을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생각만해도 한숨이 나오는 모 만화 원작 게임들에 비하면 콘텐츠의 양과 질 모두 만족스럽다. 원작 팬이라면 본 작을 통해 오랜만에 정주행을, 아직 안 봤다면 이번 기회에 입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